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91
791화. 대거점, ‘화과산(花果山)’ (3)
이건 설마….
“근두운?”
적호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모를 리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49층 전체를 호령하던 제천대성. 그리고. 모든 영역을 아우르게 할 수 있었던 전설적인 환수를.
나머지 왕들과 장로들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근두운의 현현을 바라봤다.
제천대성이 이곳에 직접 온다는 건 엄청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위기인 것과 동시에,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캠프파이어 시간이면 양초라도 좀 가지고 올 걸 그랬네. 가족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도 갖을 수 있게.”
근두운에 타고 있는 건 제천대성이 아니었다.
“강진혁….”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수장이며,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주의 인물 중 하나.
어쩌면 제천대성 보다 더욱 굵은 대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진혁의 목에 걸린 가치보다도 더욱 경악스러운 점이 있었다.
“대체 무슨 수로… 근두운을 다룰 수 있는 거지?”
근두운은 제천대성의 상징 그 자체.
절대 다른 이들이 그 위에 올라갈 순 없다.
그게 49층에 있는 이들의 상식이었고.
어긋나서는 안 되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헌데, 그게 깨진 것이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너희들이 알 것 없고. 그보다 몇몇 친구들이 보이질 않네. 바르어비스는 구워먹을 삼겹살이라도 사러 간 건가?”
“하하. 다짜고자 와서 뭔 소리를 하다 했더니. 우리가 네놈 질문에 답이나 해주려고 이곳에 모여 있는 줄 아는 건가?”
적호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르르….
인간의 본능을 얼어붙게 만드는 저주파의 포효.
날카롭게 세운 발톱에서 금빛 물결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과연. 인왕은 인왕이라 이건가.
저 앞뒤 안 가리는 호전성과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마력에 심장이 간질거렸다.
싸워보고 싶다.
십이지. 그것도 ‘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싸우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주 맛깔나는 능력을 복사하고 융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건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진혁이 아공간에서 반쯤 꺼낸 퍼스트 블레이드를 도로 넣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야.’
이곳에 온 건 싸우기 위함이 아닌 흔들기 위함이다.
“안면이나 좀 터둘까 하고 일부러 찾아온 건데, 시작부터 까칠하게 벽이나 치고 섭섭해지려 하네. 아니면, 진왕을 찾으러 간 게 그리 큰 비밀이었어?”
툭 하고 던진 한 마디.
“……!?”
“……!!”
왕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네놈….”
“마, 말도 안 돼.”
“답해라! 우리도 방금 안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안 거냐!”
표정 관리도 안 될 정도로 지금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문답을 던지며, 조금이라도 상대 측의 정보를 캐내려던 계획 또한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진혁이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그 능구렁이 같은 니알라토텝도 항상 골탕을 먹는 와중에 너희들이 뭘 어쩌겠다고?
하필이면 고인물과 정보싸움을 하려고 한 스스로의 불행을 원망하려면 원망해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이야기도 몰라?”
괜히 생쥐 일족과 벼슬을 하고 있는 닭들이 움찔였다.
때마침, 이곳에 쥐와 새가 다 있네.
모르긴 몰라도 이 자리가 마무리되면 뒤쪽에 끌려가서 한참 동안 심문을 당할 게 틀림없었다.
“쥐새끼… 아니, 첩자가 있다는 뜻이냐?”
“글쎄. 어떤 뜻이려나?”
“속지 마세요. 이간질을 시키려는 생각일 겁니다. 애초에 정말로 첩자가 있었으면, 그걸 숨기기 위해서라도 저런 말을 늘어놓진 않았겠죠.”
백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까지 예측하고 한 번 더 꼬은 걸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내가 정보를 입수한 루트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 전쟁 자체에 뒤통수를 맞게 될 거야.”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걸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작은 의심의 불씨라도 지필 수 있다면, 과연 제대로 된 효율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라고 본다.
“숲속의 너구리가 활동할 시간이다. 정찰대의 규율을 무시하면, 많이 따가울 걸?”
내부에 있는 동료에게 암호 비슷한 말을 던져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의미를 파악하려고 골이 깨질 걸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따땃해지려고 한다.
볼일을 끝낸 진혁이 근두운의 털을 쓰다듬었다.
“어딜, 지 할 말만 하고 내빼려고 하는 것이냐!”
콰앙!
적호가 단숨에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맹수의 발톱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나중에 또 보자고.”
퍼엉!
이미 긴 꼬리를 남긴 근두운은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근두운 덕분에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게 됐다.
최대 전력인 우마왕과 바르어비스가 자리에서 빠진 것도 공격 시점을 미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원숭이들은 화과산의 방어를 더욱 강화하고 부상자들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혁 역시 여러 가지 카드를 추가하며, 다가올 대전쟁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알겠어요. 꼭 성공할게요.”
쪽지를 읽은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의 소환수 하나만을 데리고 떠나는 극비 임무.
이걸 성공시키느냐 마냐에 따라서 승률이 대폭 달라질 수 있었다.
“믿을게요.”
“네!”
주먹을 꼭 쥔 테레사가 곧장 화과산의 비밀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흐음. 바보 성녀에게 그런 막중한 일을 맡겨도 괜찮겠느냐?”
“테레사 씨라면 잘 할 거야.”
“…….”
진혁의 따뜻한 시선에 엘리스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왜?”
“그 눈 빛.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다정한 표정은 오롯이 짐을 위해서만 하도록 하거라.”
“애도 아니고. 무슨.”
“하란 말이다! 짐한테만 하라고!”
엘리스의 분노가 폭발했다.
쿠쿠쿠쿠!
“저, 적습인가?”
“온다! 다들 방어 대형으로!”
산을 지키던 병사들이 즉시 병장기를 고쳐잡았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진정해 좀! 엄한데 힘쓰지 말고 적들이 오면 거기다 쓰라고!”
진혁이 가까스로 달래고 나서야 엘리스의 횡포가 잠잠해졌다.
“동료들과 사이가 많이 좋으신가 보네요.”
모든 걸 지켜보던 서리혼령이 쿡쿡 거리며 웃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타인을 베고 동료들을 배신하던 삶. 그것이 서리혼령이 시련의 탑을 오르면서 겪고 느낀 탑의 어두운 면이며 동시에 유일한 진리였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거대 세력들이 이해관계라는 과실 앞에서 흥망성쇠를 달리했던가?
하지만, 이 세력은 뭔가 다르다.
동료라는 울타리.
서로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 무엇보다 아끼고 있다.
생소하면서도 낯선 광경이다.
피비린내 나는 탑의 상층부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궁금했다.
과연 이들이라면 고대의 등반자들인 자신들마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함께 하고 싶어.’
그 위대한 원정을 같은 시야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적어도 서리혼령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산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드디어 적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각자의 위치로!”
“단 한 명도 안으로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
방어를 맡은 지휘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혹독한 훈련을 받은 건지 물 흐르듯 방진을 갖췄다.
이 정도 정예들이라면 그리 쉽게 거점을 내줄 것 같진 않았다.
제천대성 역시 적들이 몰려온다는 말에 가장 먼저 나섰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
“저 정도 연합이 갖춰진 적은 없을 테니까요.”
“슬픈 일이지. 여러 분란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멸족을 노리고 뭉친 적은 없었거든.”
어디까지나 선이라는 게 있었다.
어쨌거나 49층이라는 층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나름의 균형을 이뤘으니까.
하지만, 태고의 존재들이 개입함에 따라 모두가 가진 분수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누군가가 사라져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안타깝다고 해서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사달이 난 건 저들의 욕심일 뿐. 제천대성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하.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제천대성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결 홀가분해졌다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조심하게. 그대의 계획이 천재적이라는 건 알겠다만, ‘그곳’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어.”
“최대한 조심할 생각입니다. 저라고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건 아니라서요.”
“외지인이 어떻게 그 장소에 대해서 알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만, 말해 줄 수는 없는 거겠지?”
“나중에… 모든 일이 다 끝나면요.”
진혁이 말끝을 흐렸다.
“그런가.”
제천대성이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라고 이해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신.
뽀옥.
머리카락 몇 개를 더 뽑아서 건네줬다.
“필요할 일이 있을 거야. 부디 잘 써줬으면 좋겠군.”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 성유물.
오. 이건 좀 쏠쏠하네.
일전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던 게 생각난다.
“감사합니다.”
“그럼, 무운을 빌지.”
승산이 희박한 싸움이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져야지만, 그나마 돌파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수준이었으니.
그런데도 왜일까?
제천대성은 심장 한 가운데가 뜨겁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단순히 전투를 목전에 뒀기 때문이 아니다.
기대감.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외지인을 보자, 마치 과거의 자신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박했던. 모든 게 지옥과 같던 싸움에서 일족을 구원해낸.
꾸욱.
여의봉을 쥔 제천대성이 자세를 낮췄다.
“길을 열겠다!”
쿠쿠쿠쿠쿠쿠!
거대한 폭풍이 몰려들었다.
감히 문자로 형언할 수 없는 격이 펼쳐지며, 산 아래에서 돌진하는 적들이 그 분노를 첫 번째로 맞이했다.
그렇게.
콰아아아앙!
화과산의 일부가 그대로 사라졌다.
***
제천대성이 움직이면서 생긴 이목의 집중.
그 소란을 틈타 진혁이 산의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부우우웅!
근두운에 올라탄 진혁과 엘리스가 가장 앞쪽에 자리잡았다.
“꽉 잡아.”
“으, 으응! 알겠다!”
엘리스가 진혁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워낙에 나무들 사이를 고속으로 움직이는 탓에, 제대로 눈을 뜨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모기이이!”
“빠, 빠르네요. 이 아이.”
“아하하! 짜릿한데 이거?”
그 뒤로, 고구마 등에 탄 서리혼령과 아델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아공간에서 대기 중인 프레이와 티본. 그림자 속에서 호위 중인 월영까지.
소규모로 구성된 별동대 멤버가 확정되었다.
‘다들 무사하길.’
진혁이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콰콰콰쾅!
퍼어엉!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방어에 특화된 이태민과 메드레이는 제천대성과 함께 화과산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기로 한 것.
방어를 하는 입장이니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진 않을 테지만, 문제는 저 많은 수의 적을 상대로 오랫동안 버텨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그 기약이 언제인지 말해줄 수 없었기에 심리적인 부담감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걱정이 되는 것이냐?”
엘리스가 그 의중을 간파했다.
“약간은. 그래도 괜찮을 거야.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애들이니까.”
“맞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해주는 게 저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화과산 근처에 위치한 유적. ‘산맥의 뿌리’.
저곳을 공략하는 게 눈앞에 닥친 최우선 과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