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92
792화. 틈새 유적 ‘산맥의 뿌리’ (1)
화과산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적.
이곳은 십이지들이 지배하는 49층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성을 가진 장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가 50층으로 가는 입구 중 하나거든.’
진혁이 도착한 장소를 꼼꼼하게 살폈다.
통상적으로 존재하는 정규 루트와는 다른 백도어.
워낙에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50층의 난이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일종의 편법이었다.
물론, 나중에 49층 공략 이후 여기를 통해 50층으로 간다고 한들, 드라마틱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1 ~ 1.5% 정도 확률을 올려주는 수준.
하지만, 50층의 아득함을 고려했을 때, 1 ~ 1.5%면 엄청나게 높은 확률이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이기려면 여기에 있는 것을 이용하기도 해야 했고.’
일거양득.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다만, 여기도 그냥 개방되는 게 아닌 게. 이 유적이 활성화되려면 화과산에 일정 이상의 마력 반응이 있어야만 한다.
그냥 적당한 양의 마력이 아니라.
산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대량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예를 들자면 전쟁 같은….
지금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십이지들의 영역 다툼이.
“저곳인가?”
엘리스가 어두컴컴한 구덩이를 가리켰다.
“응. 저기가 입구야.”
“피… 냄새가 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향이다. 오래되고 쾨쾨하면서 존재하면 안 되는… 그런 느낌이구나.”
그래도 탑의 절대자 중 하나라고. 이런 부분에서는 본능적인 감이 뛰어나다니까.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 하나는 시련의 탑을 플레이한 고인물에 뒤지지 않는다.
‘저 안에서 참 많이도 죽었었지.’
진혁이 과거의 기억을 곱씹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49층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최악의 유적.
난이도 자체만 따지자면, 50층을 제외한 전체 유적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태고의 마력이 흘러나오면서 생태계를 이질적으로 바꾸어버린 탓이다.
‘그래도 50층을 앞두고 멤버들의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순 있겠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다.
기왕이면 맛보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편이 좋겠지.
“들어가자.”
진혁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칠흑 같은 어둠이 반겼다.
“훗! 드디어 내가 나설 때가 온 건가! 나한테 맡겨 주인!”
살라맨더가 의기양양하게 불을 내뿜었다.
상급 정령수를 훨씬 더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한 격을 보여주듯, 선명한 불길이 화려하게 주위를 물들였다.
그런데.
후욱!
불길이 치솟기 무섭게,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오더니 빛을 집어삼켜버렸다.
모든 게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오잉?”
살라맨더의 하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곤란하구나. 마력 파장이 불안해서 기감으로 대신 하는 것도 한계가 있거늘. 계속 이런 상황이라면 싸움 자체가 힘들어질 거다.”
엘리스가 벽의 한쪽 면을 더듬었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다.
빛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라면 일단은 감각에 의존해서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시각이 사라진 대신, 그 외에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느리게나마 앞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번쩍!
갈라진 틈의 오른쪽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여러 개의 녹색 빛이 점멸했다.
벽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서로 다른 크기의 광석들.
“후우. 드디어!”
“좀 살겠구나.”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답답했던 어둠이 끝난 것이다.
“심해의… 야광석이군요.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 뭐죠 이건?”
서리혼령이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나름대로 수많은 지역을 탐험한 그녀로서도 생소한 종류였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저게 뭐였더라.
진혁이 기억을 더듬었다.
툭툭.
아델이 흥미롭다는 듯 칼끝으로 광석을 건드렸다.
“오러에 베이지 않는데? 반으로 쪼개질 줄 알았더니. 신기하네.”
은은한 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을 뿐, 특별한 반응이 나오진 않았다.
기억났다.
오러를 오히려 흡수하면서 더욱 짙게 빛나는 건….
‘배고픈 광원석’.
이 안에 들어온 자들의 마력을 조금씩 끌어모아 빛으로 전환하는 특성을 지닌 돌이다.
‘젠장. 이게 초입부터 있었나.’
진혁의 표정이 단번에 구겨졌다.
겉보기에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지만, 배고픈 광원석은 생각 이상으로 골치 아프다.
빛이 일정 수치를 넘길 경우 포식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
포식자는 배부르게 먹잇감을 포식하고.
광원석은 먹다 남은 뼈나 찌꺼기에서 배출되는 마력을 흡수한다.
효율적이면서 성가신 상생관계라는 소리다.
“여기는 피해서 가야 돼. 다들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크오오오!”
“키에에!”
한 쪽에서 길고 긴 무언가의 포효소리가 울려퍼졌다.
젠장. 일이 안 풀리려면 끝이 없다더니.
훨씬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도 정말로 재수가 없어야 마주치는 놈들에게 걸렸다.
카가가가각!
칵!칵!칵!칵!칵!칵!
딸각거리는 기분 나쁜 소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하아.”
진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뭘. 그리 걱정하는 것이냐? 뭐가 오든 간에 짐이 처리할 테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우우웅!
피로 만든 수십 개의 꼬챙이들이 나타났다.
“제가 얼려버릴 테니 마무리만 부탁드려요.”
서리혼령 역시 양손에 푸른 냉기를 끌어모았다.
쩌저저적!
순식간에 얼음 줄기가 어두운 통로를 따라 퍼져나갔다.
바로 뒤를 이어, 엘리스의 꼬챙이들이 다가오는 놈들을 사정없이 꿰뚫어버렸다.
퍼퍼퍼퍽!
“키에엑!”
“켁! 끄으으….”
헛바람 마시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숨통이 끊어지는 게 확인되었다.
“됐느냐?”
엘리스가 한껏 어깨를 폈다.
그러나, 자신감 넘치는 여왕님과는 달리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쓰디쓴 한약이라도 마신 것처럼 딱딱한 상태였다.
“저거나 보고 말해.”
생긴 건 주먹만한 크기의 네 발 달린 전갈처럼 생겼다.
하지만, 사막의 흔한 몬스터라고 착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50층의 군대개미라 불리는 청소부들.
둥근 원형의 통로 표면을 가득 덮은 엄청난 숫자는 물론. 강기 마저 갉아먹을 수 있는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강력한 능력일수록 녀석들에게는 맛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콰드득!
까득!
서리혼령이 펼친 얼음을 갉아먹고. 엘리스가 쏘아보낸 꼬챙이들도 분해한다.
죽은 동료들의 시체 또한 말끔하게 먹어치운 뒤였다.
저걸 일일이 상대하다가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마력과 시간이 무한이면 상관없긴 한데, 영원히 여기에 있을 생각이야?”
“그,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어쩌기는.
“뛰어!”
퇴로가 막혔으면, 앞을 향해서 무작정 달려야지.
혹여라도 넘어지거나 뒤쳐진다면.
제2의 티본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할 거다.
***
같은 시각.
화과산에서는 치열한 혈투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제천대성을 필두로 한 신(申)족의 전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는 적들을 막아섰다.
콰콰콰콰쾅!
투콰아앙!
“끄아아악!”
“으아아악!”
익숙한 지형상의 이점을 활용해 철저하게 적의 전략을 깎아내는 방식.
여러 개의 함정들이 연이어 발동됨에 따라 적들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특히나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는 곳엔 제천대성의 분신들이 개입하면서, ‘압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과를 연신 올리고 있었다.
당연히, 연합측에서는 걱정에 가득 찬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왕이시여.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맞는 겁니까?”
이미 전체적인 그림에 대해 전해 들은 왕들과는 달리, 장로들은 그 내막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길게 보세요. 수천 년간 무너뜨리지 못한 화과산을 1시간도 안 된 공격으로 흔들 수 있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불안한 사족들의 중얼거림에, 사왕 백희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이 싸움은 장기전이 될 확률이 높을 터.
지금 하는 공격은 거점의 완성도나 병력의 배치. 적의 대응 수준 등을 확인하는 전초전에 지나지 않는다.
“쳇.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함께 전쟁을 하는 것도 일이군.”
적호가 짜증 섞인 얼굴로 혀를 찼다.
제대로 된 정예들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저 방어선을 뚫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
특히나 가장 골치 아픈 건….
[방어타워 ‘포트리스 오브 헬’이 가동됩니다!] [대인지뢰 ‘AK –553’이 발동됩니다!]다른 층계에서 온 인간들이었다.
“으라차아!”
건틀렛을 낀 채 무투를 펼치는 여자도 만만치 않았고.
형형색색의 마력을 발산하는 거구의 남자 역시 성가시긴 마찬가지였다.
[메드레이가 레인보우 브릿지 – ‘색(色)의 향연’을 발동합니다!]기계군주에 다양한 색이 주입되었다.
상황에 맞게 강화와 변형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모습.
저들을 먼저 제거하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만 생각해도 수천이 넘는 병력 손실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고위 장로나 왕들의 개입은 현재로서는 금지된 상태였다.
적호의 시선이 힐끗 옆으로 향했다.
새롭게 파견된 틴달로스의 사냥개 중 하나.
‘아문 드 아카샤’
고대 50층에 존재했던 왕국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바르어비스가 오기 전까지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아카샤는 얼마나 많은 전사들이 죽든 하등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절망의 왕관을 가지고 있던 페르무트 역시 본진에서 산 위쪽의 전투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왕관은 넘겨준 건가? 놈이 의심하진 않았고?”
아카샤가 입을 열었다.
“그럴듯하게 상황을 만들어두고 넘겨준 거니 의심하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50층으로 가는 열쇠를 거부할 이유도 없을 테고요.”
“확신하진 마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놈이니까.”
“그 부분은 저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일에 허점이 없게 잘 처리하고 있으니, 아카샤 님께선 이 거점 공략에만 집중해주시죠.”
“…….”
파치칙!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일어났다.
경계와 살기가 뒤섞인 마력의 파장이 서로의 목덜미를 당장이라도 물어뜯으려 했다.
바르어비스의 직속 부하인 아카샤.
그리고.
남자를 따르는 페르무트.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기에 같은 길을 걷고 있어도. 두 세력의 근본은 완전히 다르다.
여차하면 언제 적으로 돌아서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
철컹.
아카샤가 등에 찬 대검에 손을 갖다 댔다.
스윽.
페르무트 역시 지팡이에 영창식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삐이이익!
[‘적염의 불꽃’이 발동됩니다!]붉은 빛 폭죽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각각의 상황에 대비해 설치해둔 7개의 알람.
그 중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을 알리는 적염의 불꽃이 솟구친 것이다.
‘뿌리’쪽으로 가는 길에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듯.
동시에 재생된 영상에는 진혁을 비롯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핵심 멤버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다.
“……!?”
“……!!”
아카샤와 페르무트가 동시에 반응했다.
산맥의 뿌리.
50층으로 가는 샛길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 당장 화과산이 공격당하는 와중에 굳이 주력 멤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49층을 정복하지 않는다면, 50층으로 갈 수 없을 텐데?’
설마.
그 조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뭔가 방법을 찾아낸 건가?
다른 이라면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경우의 수였으나, 상대는 평범한 자가 아닌 강진혁.
기존에 갖고 있는 상식을 몇 번이고 박살낸 이질적인 존재였다.
아카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 방 먹었군.”
무진룡의 복종 뿐 아니라, 릭 헤네시의 토벌까지 해결해야 했기에, 노스이디크와 바르어비스, 우마왕은 당분간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 뿌리 쪽으로 갈 전력을 뽑아야 한다는 뜻.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저 자들이 더욱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기 전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