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93
793화. 틈새 유적 ‘산맥의 뿌리’ (2)
투두두두두!
엄청난 속도로 달린 진혁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었다.
“여기가 맞는 것이냐!”
엘리스가 꺄아악 거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따라왔다.
신발에 붙은 벌레를 질색하며 털어내는 건 덤이었다.
“이 녀석들 지치지도 않는다. 주인!”
“저리가! 저리가!”
정령수들 역시 작은 몸으로 벌레들과 사투를 벌이며 도주했다.
50층에서 서식하는 놈들답게, 크기는 작아도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지친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갈수록 체력만 소모되는 건 이쪽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그게’ 자라는 곳이 있다.
기억이 틀림없다면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통로가 훨씬 더 넓어지는 지점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진혁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녹색 이끼들과 함께 기괴하게 생긴 무언가가 잔뜩 자라나 있는 장소다.
“뭐냐, 저 맛대가리 없어 보이는 버섯들은?”
엘리스가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엄살이 아니라, 진심으로 요리를 한다면 3초 안에 식중독에 걸릴 것만 같은 외형이다.
이유라도 설명해주고 싶긴 한데.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카가각! 가가가가각!
벽면을 긁는 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고작해야 몇 미터.
놈들에게 거의 다 따라잡혔다.
서리혼령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물러서세요!”
[서리혼령이 ‘얼어붙은 협곡’을 발동합니다!]동굴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혹한의 기운이 뿜어졌다.
쩌저저적!
다가오던 벌레들 역시 삽시간에 온몸이 서릿발로 뒤덮였다.
동굴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광석들 역시 빛과 함께 그대로 얼어버렸다.
진혁이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짧은 순간에 이 정도로 강력하고 순도 높은 냉기를 만들어낼 줄이야. 저 지독한 놈들이 냉동식품이 되어버린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한 기분이었다.
과연, 대단하긴 하네.
고대의 등반자들 중에서도 최강급에 속하는 절대자답다.
‘일단 전력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패가 들어왔어.’
50층에서 홀로 일주일 이상 생존할 수 있는 자는, 49층까지 전체를 통틀어도 열다섯이 채 안 될 것이다.
‘나나 엘리스 테레사 고구마 그리고 서리혼령 정도.’
십이지 중에서는 제천대성이나 우마왕이 끝이겠지.
아 천유성도 있지만, 그 건방진 놈은 제외하도록 하자.
나중에 엉덩이라도 두들겨 준 다음에야 인간으로서 취급해줄 생각이 들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보니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시련의 탑을 플레이 했을 때부터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기만 했는데. 꽤 오랫동안 안 보고 있으려니 뭔가 허전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떨쳐내고 싶었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네.
진혁이 머리를 훌훌 털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배신자의 처분을 어떻게 할지가 아니다.
투두둑!
뚜둑!
바닥에 있는 버섯들 중 붉은 점이 박혀 있는 버섯들을 뜯어냈다.
“나, 나는 죽어도 안 먹을 거다.”
엘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걱정 마. 너보고 먹으라고 시키진 않을 거니까.”
“다행…이구나. 진심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응?”
“농담이야.”
다음은 뿔과 비슷한 것들이 달린 것들을.
마지막으로 녹색 곰팡이가 지그재그 모양으로 새겨져 있는….
뚝!
“쁴애애애애애!”
어린애가 울부짖는 듯한 비명. 동시에 녹색 가루가 진혁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
“크윽!”
진혁이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호흡기를 통해 들이마시면 즉시 내장이 녹아내리는 종류. 이건 멸천만독으로도 중화시킬 수 없는 맹독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라 그만 순서를 헷갈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거는 본능적으로 대처법을 몸에 익혀두고 있다는 것.
만약 조금이라도 들이마셨다간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투콰아아앙!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며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북실북실한 흰 털이 뒤덮인 손은 순식간에 서리혼령을 낚아채려 했다.
서걱!
진혁의 단검이 좌우로 움직였다.
“크오오오!”
손바닥에서 푸른 피가 뿜어졌다.
제법 깊숙이 베었다고 생각했는데, 피부 몇 꺼풀 벗겨낸 정도인가.
끔찍하게 높은 물리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50층의 ‘육종설인’이었다.
“냉기에… 반응하고 있어요!”
서리혼령이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그녀의 말대로 뚫린 구멍 사이로 다수의 육종설인들이 보였다.
모두가 얼어붙은 서리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를 흡입하며 더욱더 거칠게 날뛰었다.
우두둑!
콰드득!
구멍을 넓히며 통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모습.
동시에, 방금 전의 충격으로 얼음으로 막아두었던 통로에도 굵직한 균열이 생겼다.
“킥! 킥! 킥!”
“케에에에!”
벌레들이 그 사이로 하나둘씩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이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이유는 알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절망의 왕관’.
아직 정화의식이 끝나지 않았기에, 흘러나오는 특유의 불행이 경우의 수중에서 최악의 일들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왕관을 포기한다는 건 선택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금의 불행들을 쌓아가야지만, 이번 일의 진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을 일행들에게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그러게 내가 빛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말자니까. 하여간 말들은 더럽게 안 들어서는. 대체, 누구야? 어두운 게 싫다고 찡찡대던 게?”
오히려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정치질을 하는 게 상책이다.
“지, 짐이 문제라는 것이냐!”
“다음부터는 내가 하는 말만 잘 따르라는 거야.”
“알…겠느니라. 고집부리지 않고 얌전히 말 잘 듣겠다.”
엘리스가 살짝 풀이 죽었다.
“뭘 하든지 빨리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산채로 잡아먹히는 건 내 계획에 없는 일이다.”
아델이 잔혹한 현실을 알렸다.
서걱! 카가각!
버들나무류의 초식이 펼쳐지자, 다가오던 벌레들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도려졌다.
부드러운 검격은 피부와 속살을 벗겨내며 아름다우면서 잔혹한 광경을 자아냈다.
그래.
작은 녀석들은 그나마 죽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저 군체의 더 상위종이 개입한다면….
“쓰읍.”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지금 첫 번째 통로를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진혁이 조금 전에 채집한 버섯들을 보따리 안에 넣고 격하게 흔들었다.
독소와. 곰팡이와. 기묘한 냄새가 나는 향이 뒤섞인다.
거기에.
[고유능력 ‘역병창궐’이 발동됩니다!]툴차로부터 빼앗은 50층 특유의 농축된 액기스가 추가되었다.
보랏빛과 녹색빛이 뒤섞인 초승달 형태의 마력이 가루에 녹아들었다.
노린 것은 벌레들이 아니었다.
부우우웅!
가루가 잔뜩 담긴 자루가 육종설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빙그르르 회전한 보따리가 놈들의 한복판에 위치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랑흑아’가 발동됩니다!]콰직!
허공에서 나타난 이빨이 그대로 자루를 물어뜯자, 안에 있던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실피드!”
“응!”
바람의 정령이 즉시 진혁의 부름에 응답했다.
휘이이이잉!
거센 돌풍이 육종설인들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가루가 온 털에 달라붙게 만들었다.
“크오?”
“그오오?”
난데없는 상황에 육종설인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키에에에!”
“케에에에!”
벌레들이 육종설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 순위로 삼는 체취를 바꿔서 육종설인들을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하고 육즙이 흐르는 고깃덩어리로 보는 중이리라.
실제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는 걸 보니 허기가 몸과 머리를 완전히 지배해버린 것 같았다.
“지금이야!”
진혁이 그 틈을 이용해 반대쪽 통로로 움직였다.
이 유적의 초입에서 육종설인들이 나름대로 어깨에 힘주는 놈들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래시 이터(Flesh eater)’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50층의 군대개미에게 걸린다면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리는 게 상식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상관없다.
승자가 정해져 있긴 했으나….
시간 벌이로서는 아주 훌륭히 제 역할을 다 해줄 테니.
***
49층의 최외곽부.
모든 십이지의 배후에 위치한 초원의 끝엔 거대한 소금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다.
고작해야 1m 남짓.
백금으로 물든 너무나도 아름다운 대자연 위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쿠쿠쿠쿠쿠!
“키이이!”
“키키키”
오염된 쇼거스들이 용들의 영역에 침입했다.
파츠측!
파치칙!
황금색 스파크와 검보라빛 스파크가 한 공간에서 맞부딪쳤다.
거점에 있는 각종 방어기재와 동양의 용언으로 이루어진 결계들이 발동되었다.
“기어이 싸우겠다는 거군.”
바르어비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자신들의 본거지가 발각되면 어느 정도 머리를 숙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존심은 더럽게 센 놈들답게 도무지 굽힐 줄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모조리 박살낼 수밖에.
쿠웅!
바르어비스의 주위로 마력이 뿜어졌다.
50층에서 데리고 온 쇼거스들보다도 훨씬 더 짙고 농후한 살기가 하늘까지 닿았다.
바로 그때.
“더 앞으로 다가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늘로부터 한 마리의 용이 현현했다.
갈색 용린에, 기다란 한 쌍의 뿔을 가진 동양의 외형.
은은하고 맑은 마력이 시야를 밝혔다.
[지룡(地龍) ‘천혜류’가 고유능력 ‘자연의 호흡’을 발동합니다!]쏴아아아….
소금 호수 위로 깔려 있던 물이 용오름 쳤다.
결정들이 모여들며, 날카로운 육각형의 흉기로 변했다.
이어진 것은 칼날폭풍이었다.
퍼퍼퍼퍽!
퍼어억!
“키에에에”
“키에에엑!”
거점의 버프를 받는 천혜류의 능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순식간에 가장 앞쪽에 있던 쇼거스들의 몸이 걸레짝으로 변했다.
소금 결정에 난도질 당한 몸뚱어리.
그래도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진 못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을 가진 50층의 생명체들을 쓰러뜨리기엔 무리였기 때문. 몇 분 가량 시간을 번 게 한계였다.
천혜류가 곧바로 다음 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두둑.
허공에 떠 있던 뼈들이 소금 사막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거대한 방패와 창을 든 무장한 중갑보병들이 만들어졌다.
거점을 수호하는 ‘용아병(龍牙兵)’이다.
“신성한 땅에 들어온 이들에게 용의 분노가 무엇인지 똑똑히 각인시켜라.”
쿵! 쿵! 쿵! 쿵!
용아병들이 진군을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전장의 분위기가 한 차례 바뀌었다.
콰앙!
방패로 막고.
푸욱!
창으로 찌른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진은 공격과 방어에서 완벽하게 빛을 발했다.
그러나.
콰아아앙!
마치 하나처럼 완벽하게 움직이던 용아병들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찌그러진 중갑주들 사이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만 같은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재밌군. 언제부터 진족 따위가 그런 시건방진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된 거지?”
우마왕.
제천대성과 더불어 49층의 양쪽 하늘을 지탱하는 최강의 절대자가 개입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