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96
796화. 용들의 거점 ‘소금 호수’ (3)
테레사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얼룩졌다.
말랑흑두루미가 진족과 어떠한 연관점이 있다는 건 아예 듣지 못했던 일.
더군다나 ‘배신자’나 ‘추방자’라는 키워드는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저는.”
“알지 못했다?”
무진룡이 대신 말을 받았다.
“변명으로 들리실 수 있겠지만, 진짜입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면 저희가 굳이 말랑흑두루미를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인간들의 간사한 혓바닥은 정말이지 끝이라는 게 없구나. 좋다. 헌데, 그 말이 맞다면 대체 이 층계에 갓 들어온 네놈들이 우리가 있는 위치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일족의 추방자. 놈이 우리의 행적을 쫓는 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더냐?”
“……아니에요!”
테레사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소금 호수에 대해서 알아낸 건 전부 진혁이 미리 알려준 덕분.
하지만.
그 변명이 통할까?
무진룡이 했던 말처럼 난데없이 아래 층계에서 온 인간이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니.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지금 화과산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야 진혁이 판을 짜는 능력을 의심하지 않겠지만,
이 자는 다르다.
아직까지 직접 진혁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뭐, 됐다. 어차피 지금 와서 그런 걸 일일이 따져봐야 의미도 없겠지. 이미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해뒀다.”
스윽.
무진룡이 옆에 있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척.
스릉.
산호로 만든 검들이 뽑혔다.
“저희와…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으나, 이번 것은 너무도 거대한 천재지변이다.”
쿠쿠쿠쿠쿠쿠!
저 멀리서 보이는 검은 벼락들.
우마왕이나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문제가 아니다.
노스이디크.
태고의 존재들 중에서도 상위 신격에 속하는 괴물이 직접 움직였다.
만에 하나 그자가 제대로 마음먹고 본신의 힘을 발동한다면. 49층 어디에 숨더라도 죽음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저 여자를 사로잡아라. 사라진 배신자를 추격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무진룡이 결정을 내렸다.
누구와 함께 하기로 할지를.
“예.”
“명을 따르겠나이다.”
반격의 비수가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진족이 태고의 존재들에게 결탁했다.
***
퍼어어엉!
진혁이 있던 곳에 날카로운 폭발이 일어났다.
‘시체 폭발’.
살점들을 이용한 흑마법이 연이어 발동되었다.
그 뒤를 이어 십이지의 정예들이 움직였다.
“죽여라!”
“저 놈만 죽이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호랑이와 인간이 반씩 섞인 인족들이 달려들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걸린 현상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 각 왕들이 미래의 장로 자리까지 약속했기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내던질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현상금을 걸어놨다는 소리다.
그러나.
단순히 욕망이라는 동기부여 만으로 넘어서기엔 한참이나 역부족이었다.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즈’를 발동합니다!]퍼퍼퍼퍼퍼퍽!
“크아아악!”
“커억!”
몰아치는 꼬챙이들의 향연에 달려들던 호랑이들이 모조리 꼬치가 되어버렸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 미물들이로구나. 감히 짐과 짐의 계약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다니. 살기를 포기했다고 밖엔 생각이 들지 않는도다.”
엘리스가 고고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미 고유성창인 ‘개벽의 계시록’을 꺼내놓은 상태.
아무리 인족의 정예들이라고 해도 진조의 분노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수십이 넘는 이들이 그 자리에서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고르고 고른 정예였기에, 팔다리만 잃고 목숨을 건진 이들이 몇 명인가 존재했다.
바로 그때.
툭.
소나기처럼 몰아치는 꼬챙이를 피해 안쪽까지 파고든 남자가 그대로 손톱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엘리스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진혁이 끼어들었다.
두 자루의 단검을 교차해 공격을 막아낸 진혁이 상대를 바라봤다.
“이거, 귀한 분이 오셨네.”
“호오. 나를 아는가?”
“인족의 왕쯤 되면 그래도 기억을 하긴 해둬야지.”
적호.
제천대성과 우마왕의 뒤를 이어. 3번째 왕을 꼽으라면 무진룡과 더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후보군이다.
실제로 과거 탑을 오를 때 꽤나 애를 먹었던 무투파이기도 했고.
“네놈이 강진혁이로구나. 그리 맛이 좋다고 평가가 자자하던데, 확실히 내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는 걸 보니 소문이 완전히 거짓은 아닌 모양이야.”
적호가 입맛을 다셨다.
두 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광기.
역시 전투에 미친 놈들은 다 같이 같은 유치원에라도 다녔나 보다. 그저 강해 보이는 호적수만 나타나면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니까.
천유성이나 이 녀석이나.
똑같은 냄새가 난다.
아주 위험하고 지긋지긋한.
고개를 가로저은 진혁이 즉시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파츠츠츠!
칼날을 완전히 뒤덮은 검붉은 강기에.
[제 7식 ‘마영투사’가 발동됩니다!]‘천마신검’의 초식이 펼쳐졌다.
빠르고.
날카롭게.
공간을 뛰어넘은 검격이 비스듬한 각도로 뻗쳐나갔다.
교묘하게 궤도를 틀고. 목표에 닿기 직전 다시 한 번 그 궤도를 가속하여 틀어버리는 검법.
투콰아앙!
적호의 머리가 그대로 뒤로 돌아갔다.
통째로 뜯겨나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위력이다.
그런데.
“크으으으….”
적호의 이마 한 복판에 붉은 색 타격흔이 나타났을 뿐. 꿰뚫어버리는 덴 실패했다.
나름대로 힘을 실은 건데 말이지.
“이야, 호랑이 가죽이 질기다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찰지네.”
진혁이 가감없이 감상평을 늘어놨다.
물론.
“죽여 버리겠다!”
그런 칭찬이 위로가 될 리 만무했다.
콰아앙!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은 적호가 마력을 해방했다.
[적호가 고유능력 ‘호환의 형’을 발동합니다!]의태(擬態).
사신수 중 하나인 ‘백호’의 권능을 불러오는 것으로. 페이즈 2와 같이 외형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게 특징이었다.
화르륵!
새하얀 화염으로 뒤덮인 적호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과연.
유일하게 50층에서 서식하던 초대 백호의 능력을 계승한 것답게, 마력의 상승폭이 규격 외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훌륭하다는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레벨이랄까.
하지만.
“여기서 그걸 함부로 꺼내면 안 되지.”
화(火)속성. 그것도 백염은 플래시 이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 중에 하나거든.
아무리 인왕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50층의 생태계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야 한단다.
이 참에 뼛속까지 외워둬라.
“키에에에에!”
“케에에에에!”
그 말을 증명하듯, 후미에 있던 벌레들의 고함 소리가 한층 더 격해졌다.
“우와아아악!”
“막아! 막아라!”
“무리입니다. 이 녀석들. 너무 빠르고 많… 끄아아아!”
십이지의 전사들이 산채로 잡아먹혔다.
지름길을 만들었다는 이점이 무색하게, 죽어나가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게다가 여러 가지로 소란이 크게 일어나면서 플래시 이터 뿐 아니라, 근처에 있던 다른 생명체들도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아주 판 자체를 혼돈으로 만들어주지.’
진혁이 개구쟁이 같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숫자를 데리고 온 게 오히려 악수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달그락! 불렀나 마스터!”
소환한 건 티본이었다.
살점이 없는 티본은 플래시 이터들이 가장 관심 없어 하는 먹잇감.
이런 상황에서 마음껏 날뛰기엔 최적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저기 있는 놈들부터 쓸어버려. 벌레들 떨쳐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테니, 꽤나 쉬울 거야.”
“곤경에 처한 약자를 괴롭히라는 말인가? 그거라면 자신 있지! 달그락!”
티본이 즉각 유령군마를 몰았다.
두두두두!
빠른 속도로 쇄도한 티본이 적호를 지나쳐 뒤쪽으로 향했다.
노린 곳은 ‘자갈을 먹는 지렁이’가 막 뚫고 나온 지점.
적들이 이동하는 통로였다.
[티본이 ‘죽음의 질주’를 발동합니다!]서걱!
데스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르자 피분수가 뿜어졌다.
마왕을 넘어서는 ‘암흑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랜드 데스 나이트의 일검은 상상 그 이상으로 무거웠다.
거기에.
[서리혼령이 스킬 ‘블랙 아이스’를 발동합니다!]쩌저저저적!
지면에 보이지 않는 서릿발이 나타났다.
‘슬립’효과가 붙어 있는 스킬은 통상 균형을 잃어버리는 정도의 효과가 발생한다.
허나, 그건 일반적인 스킬일 경우의 이야기고.
서리혼령 급 정도 되는 절대자가 사용할 경우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콰앙!
콰당!
정예전사들은 물론, 장로들조차도 그 자리에서 미끄러졌다.
심할 경우 완전히 고꾸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달달 그라라라락! 쉽다. 너무나 쉬워!”
아군의 경우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사기적이었다. 티본이 무방비상태의 적들을 말 그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
가뜩이나 넓지 않은 입구에서 꾸역꾸역 나오고 있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장애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명절날 정체가 걸린 고속도로처럼.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다.
“이 자식들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적호가 단번에 티본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직전.
카아아앙!
지면을 훑고 부드러운 칼날이 쇄도했다.
가까스로 공격을 튕겨낸 적호가 새로운 상대를 바라봤다.
“넌 또 뭐냐?”
“사냥…꾼이야. 맛 좋은 것들만 골라 잡는.”
핥짝.
순진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을 데리고 와야 하고.
미친 싸움광을 상대하려면 그보다 더한 또라이를 보내야 하는 법이다.
때마침, 이번 레이드에는 그것에 아주 적합한 인재를 데리고 왔다.
아델의 검이 흐물흐물 늘어졌다.
“미친 놈이로구나. 감히 날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다니.”
으르렁.
적호가 거칠게 포효했다.
선을 넘으면 단번에 물어뜯어버리겠노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하하. 좋아좋아. 더욱더 날 달아 오르게 만들어주렴. 천유성이 사라진 덕에 꽤나 오랫동안 욕구불만 상태거든.”
아델은 그 협박에 오히려 더욱더 상기된 표정을 자아냈다.
동시에.
‘버들나무류’의 초식이 펼쳐졌다.
***
모두가 각자의 적수를 찾자 잠깐의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진혁이 느긋하게 멤버들의 전투를 지켜봤다.
그래. 바로 그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의 숙련도 뿐 아니라, 전투 센스까지 고인물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조금씩 50층에 함께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있는 순간이다.
“아주 만족스러워 보이는군.”
기분 좋은 순간을 꼭 깨뜨리는 놈이 있는 법.
페르무트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들었다.
“뭐, 동료들이 쑥쑥 커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없지 않겠어? 항상 박살만 나는 너희와는 다르게 우리는 미래엔 꽃밭만 가득하기도 하고.”
“후후. 네놈이 모든 걸 다 쥐고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페르무트의 두 눈에 짙은 안광이 피어올랐다.
“무슨 뜻이지?”
“세상에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소리다.”
“사자성어 시간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소리나 듣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가 않은데, 내가.”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페르무트가 짧은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무진룡.”
“……!?”
그 말에, 여유롭던 진혁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네놈이 뒷길을 통해 테레사를 보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용들이 너희들과 손을 잡으려 할까? 말랑흑두루미라는 그 귀여운 도룡뇽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텐데?”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미안하군. 문답이나 나누기엔 나야 말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말이다. 이 싸움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마.”
따랑. 따르릉.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페르무트가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등(燈)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나 볼 법한 오래되고 아름다운.
은은한 녹색 빛이 유리를 통해 밖으로 뻗어나가자, 헛구역질이 몰려올 만큼 역겨운 기분이 엄습했다.
설마.
그 빌어먹을 놈들이 저것까지 넘겨줬다는 말인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