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죽은 자들의 모태(母胎) ‘펜다리엘’ (2)
모든 게 얼어붙은 세상.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마경(魔境).
이곳이 바로 빙하조형이 만들어낸 마지막 감옥이다.
“뭐지. 이건…….”
펜다리엘이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난반사로 인해 끝없이 늘어난 자신과 좀비들의 모습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콰아아앙!
손을 뻗어 벽을 깨 봤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벽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빙옥만화경(氷獄萬化境)의 효과로 인해 ‘광역 혼란’이 발동됩니다!]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시로 인해 만화경의 두 번째 능력이 개화했다.
“키에에에에!”
“케에에엑!”
좀비들이 일제히 괴성을 토했다.
쾅! 쾅! 쾅!
콰드득!
그리고 머리로 벽을 찧고 서로를 물어뜯었다.
심지어 이성을 잃어버린 몇몇 놈들은 펜다리엘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완전히 그녀의 통솔에서 벗어난 상황.
순식간에, 하얀 얼음 위로 붉은 피가 덧칠해졌다.
“인간!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자기 손으로 자식들을 찢어 죽인 펜다리엘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동시에 온몸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흉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펜다리엘이 Lv?? ‘흑사(黑死)’를 발현합니다!]이안 스미스가 이끄는 공격대를 전멸시킨 스킬.
이것이 시독 중 가장 지독하다고 일컫는 ‘흑사(黑死)’다.
뻗어 나온 검은 기운이 얼음벽에 스며들었다.
쿠쿠쿠쿠쿠쿠!
그러자 결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검게 변해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겹겹이 둘러 싼 벽이 무너지고.
얼음 미궁의 근간이 되는 만화경의 기본 골자가 파훼됐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분노로 인해 전력을 발휘한 펜다리엘의 고유 능력은 아예 격이 달랐다.
괜히 탑의 중층 거주자인 무림의 세력들조차 여왕과의 싸움을 꺼려했던 게 아니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능력 앞에선 호신강기마저 소용없었을 테니까.
“어디. 숨어 있는. 거냐. 나와라!”
하지만.
얼음 감옥을 모조리 날려 버렸음에도 정작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펜다리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는 건 여전히 박살난 얼음 조각뿐이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시선이 결계 중심부로 향했다.
무언가 있다.
작고 반짝이는, 동시에 희미한 마력의 잔여물이 남아 있는 무언가가.
“이건…….”
틀림없다.
시간차를 이용해 결계를 발동하게 하는 마정석이었다.
‘설마, 미끼였다고? 이것조차도?’
자신의 거점과 동료들을 미끼로 삼고.
화려한 스킬과 도발로 시선을 묶은 뒤.
그 자신은 정작 모습을 감췄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랫동안 말라비틀어져 제 기능을 잃었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위험하다.’
펜다리엘은 생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저 인간은 정말로.’
상대가 무얼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기에.
‘내가 아끼고 소망하는 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본능이 최고조의 경고를 보냈다.
수만의 플레이어보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위협적이라고.
***
4층은 거점 방어전.
이 말은 플레이어에게도 해당하지만, 동시에 좀비들에게도 해당한다.
여왕이 자신의 군락지를 벗어나 진혁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다시 말해.
‘놈들의 본진은 텅텅 비어 있다.’
진혁이 속도를 더욱 높였다.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에 ‘얕은 호흡’까지 사용하는 상태라 빠른 속도에 지구력까지 동시에 챙길 수 있었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
저 멀리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여왕 역시 전력을 다해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예 바보는 아니군.’
만약 펜다리엘이 상암 경기장을 공격했다면, 거점은 금세 함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순 없다.
4층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거점이 무너져야 좀비들의 승리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거점은 수백여 개.
그 모든 걸 무너뜨리기 전에 자신의 거점이 먼저 박살날 테니, 어쩔 수 없이 회군을 결정했으리라.
‘이제 와서 알아차려 봤자 너무 늦었어.’
레벨과 스킬.
힘과 속도.
모든 게 펜다리엘에 밀린다.
당연한 이야기다.
상대는 본래 4층에서 나와선 안 될 보스 몬스터였으니까.
‘전투에선 내가 지겠지.’
허나, 압도적인 전력 차를 극복하고 층을 강제하는 룰을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바로 그것이.
고인물이 시련의 탑을 오르는 방법이었다.
“후우.”
진혁이 호흡을 크게 가다듬었다.
어느새 여왕의 군락지에 도달했다.
보초로 남겨 둔 병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흔 마리인가.’
물론, 이 정도로는 시간 벌기조차도 되질 않는다.
스릉!
한 쌍의 검이 예기를 발했다.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왼손에 쥔 검에 검은 기운이 깃들었다.
파츠츠츠!
소름끼치도록 검붉은 검강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오른손에 쥔 검에 별의 기운이 깃들었다.
우우우웅!
별자리를 수호하는 빛이 시전자의 부름에 응했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역사 속 유물과 탑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기적이 한 자리에 현현했다.
“크아아아!”
“케에엑!”
달려들었던 좀비들이 일격에 쓸려나갔다.
잘린 팔과 다리에서 핏줄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양산형 좀비들로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진혁은 군락지의 입구를 돌파해 더욱 깊숙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시야가 바뀐다.
공기 또한 바뀐다.
피비린내가 짙어졌고 썩어 가는 시체 특유의 향 또한 코끝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여긴 몇 번을 봐도 역겹군.’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시체와 해골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은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했다.
콰콰콰콰콰콰!
“케에엑!”
“케엑!”
안으로 들어갈수록 좀비들의 수도 더욱 많아졌지만, 진혁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받아내는 녀석은 없었다.
진혁은 기계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개별 개체들을 베어 버렸고.
적이 밀집해 있는 곳엔 신성 계열인 ‘데이라이트’를 이용해 일거에 쓸어 버렸다.
이제 멀지 않았다.
가장 깊숙이 위치한 여왕의 깃발이 있는 곳까진 채 100미터도 남지 않았다.
‘이쯤에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진혁이 살짝 색이 바뀐 바닥을 바라봤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곳이 보였다.
예전엔 이 녀석의 등장 신에 몇 번이고 놀라곤 했었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아아앙!
바닥에서 길쭉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진혁은 이미 몸을 크게 뒤로 날린 상태였다.
역시나 나타났군.
“머…… 먹을…… 거다!”
“맛……있겠다! 피! 내장! 살코기!”
머리가 두 개 달리고 등이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체구의 좀비가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여왕의 깃발을 지키는 파수꾼, 일명 ‘도살자’.
특수 계체형 좀비 중에 가장 성가신 놈이다.
그 왜.
게임에서도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는 짜증나는 네임드 몬스터들이 있지 않은가?
4층에서 그 녀석들을 고르라면 이 녀석이 단연 리스트의 맨 위에 오를 놈이었다.
2m에 이르는 가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다 급소가 없기에, 심지어 머리를 잃어도 계속해서 움직인다.
완전히 숨통을 끊으려면 원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든가 아니면 사지를 모두 잘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펜다리엘과의 거리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두른 건 모두 이 녀석을 상대해야 하는 시간까지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은 약 3분.
“골라 봐. 이번엔 어떤 걸로 해 줄까? 매콤하게 태워 줘? 아니면 깔끔하게 잘라 줘?”
진혁이 선택지를 양보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린…… 너…… 보는 거…… 처음인데?”
도살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와중에 두 개의 머리가 부딪치지 않게 좌우로 번갈아 움직였다.
“그렇겠지. 근데, 난 너희랑 싸우는 게 이번이 30번쯤 되거든.”
아래층부터 다시 오르다 보니 과거에 끔찍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칼로도 베어 보고.
불로 태워도 보고.
나중엔 젓가락으로 몇 대까지 때려야 죽일 수 있나 시험도 해 봤다.
거의 18만 대 정도 때리니까 머리 하나 박살낼 수 있더라.
‘젠장. 그건 다신 하지 말아야지.’
그놈의 도전 정신이 뭔지, 덕분에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해 본 것 같다.
“먹……잇감…… 주제에…… 헛소리……를 한다.”
“얌……전히 먹히기나…… 해. 난 머리통부터…… 아그작 아그작…… 먹을 거야!”
철컹! 철컹! 철컹!
도살자가 위협적으로 가위를 움직였다.
두꺼운 철판도 종잇장처럼 잘라 버릴 수 있는 고문용 흉기다.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면서 그 위력 또한 증명했을 터.
하지만.
이번 먹잇감은 달랐다.
가위가 진혁의 다리를 노린 것과 동시에.
진혁은 쌍룡검을 바닥 깊숙이 꽂았다.
카아아아앙!
가위가 양쪽의 검에 막혔다.
“안…… 움직여?”
“이이……이익!”
어떻게 된 건지 가윗날이 얇은 칼 하나를 잘라내지 못했다.
평범한 칼이라고 생각한 게 도살자가 한 첫 번째 실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Lv6 ‘불의 원소’가 발동됩니다!]먹잇감에 불과한 인간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간과했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도살자의 머리에 올라탄 진혁이 생긋 웃었다.
화르르륵!
한 줄기의 화염이 두 눈을 들쑤셨다.
망막을 태우고 그대로 뇌수까지 파고든 불꽃.
“크아아아아아!”
“눈이…… 눈이!”
젓가락을 사용해 길고 느리게 고통을 주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죽이는 법 또한 습득했다.
‘일시적으로 시야를 뺏는 게 그 초석.’
다음은 지금 생긴 틈을 이용해 적의 방어력이 가장 취약한 곳을 노린다.
진혁이 손가락 끝에 불꽃을 모았다.
그리고 도살자의 발밑에 룬어로 만든 주문을 그렸다.
아래에서.
콰콰콰콰콰콰!
위로.
겁화(劫火)가 도살자의 살을 태우고 뼈를 녹였다.
허나, 진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을 줬다간 회복하는 게 네임드 좀비의 특성이었으니까.
한창 연약해진 지금이야말로 녀석을 박살내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진혁이 검강이 발현된 검을 좌우로 움직였다.
회색 살점 위로 붉은색 선이 그어졌다.
“끄아아아……악!”
“아프……다! 아파!”
도살자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가위를 휘둘렀다.
공격이라기 보단, 자기 본능으로 인한 발악에 가까웠다.
당연히 궤적도 단순하고 공격에 감정이 실릴 수밖에.
“고마워. 1분이면 최단 기록 갱신이거든.”
덕분에 31회차에는 신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퍼퍽!
퍽!
쌍룡검이 도살자의 양측 척수에 파고들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진혁이 모아 두었던 마력을 모조리 ‘만다라(曼茶羅)’로 치환했다.
시야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원혼이 담긴 가위’를 습득하셨습니다.]빛이 휩쓴 자리에 서 있는 건 없었다.
무(無)로 돌아간 도살자는 그가 존재했던 증거 대신 날붙이 하나만을 남겼다.
레벨업과 보상.
‘이 맛에 고생을 하지.’
먼 거리를 달려 치열하게 싸운 보람이 느껴졌다.
스탯의 분배나 아이템의 확인은 조금 뒤에 하면 될 터.
이제 남은 건 깃발을 뽑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가로막는 적은 없었다.
이 싸움은 이걸로 끝났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뜻밖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것 봐라?”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