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죽은 자들의 모태(母胎) ‘펜다리엘’ (3)
[‘검은 사냥개’가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집트 신화를 대표해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합니다.]‘검은 사냥개’라는 이명(異名).
이건, 아누비스다.
지하 1층에서 혼쭐이 난 뒤에 한동안 잠자코 있나 했더니, 이 타이밍에 나타난다라…….
‘재밌네.’
진혁이 한 손으로 깃발을 잡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마 군락지에 들어오기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4층이 아닌.
훨씬 더 위에 있는 층에서.
“듣고 있으니 말해 봐.”
[‘검은 사냥개’가 낮게 포효합니다.]신격을 표현했음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하대하는 모습에, 아누비스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쿠쿠쿠쿠쿠!
공기가 떨리며 마력이 거칠게 날뛰었다.
물론, 그런 협박 따위에 굴할 리 없다.
여기가 자기들이 지배하는 층도 아니고.
어디서 기침을 하고 난리야?
“어허? 지금 화를 내? 그냥 이거 뽑고 치울까?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진혁이 깃발에 쥔 손에 힘을 줬다.
깃발이 미묘하게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던 기운이 사라졌다.
[‘검은 사냥개’가 크게 당황합니다.] [진정하라고 다독입니다.] [자신들은 아직 이 싸움의 제대로 된 결말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알고 있어. 그래서 개입했다는 거.”
탑의 상층을 지배하는 녀석들 입장에선, 보스 몬스터와의 제대로 된 싸움 없이 4층이 공략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제대로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길지는 너무나 뻔했으니까.
거기에 건방진 인간 하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 따윈 보고 싶지 않을 테고.
하지만 말이다.
“내가 왜 너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지?”
진혁이 코웃음을 쳤다.
굳이 불리한 싸움을 할 이유는 없다.
이미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으니까.
[‘검은 사냥개’가…….]“아! 싸구려 협박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솔직히 말해. 너희 정도 수준의 신격이 백날 짖어 봤자 무섭지 않거든.”
부탁인데, 채찍은 사람을 봐 가며 써라.
“차라리 나와 협상을 하고 싶으면, 당근을 써.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제안을 하면 혹시 알아? 여왕과 싸워 줄지?”
진혁이 이죽거렸다.
잠시 상태창이 멈췄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흘렀다.
또다시 상태창이 나타났을 땐, 예상 밖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야.
설마, 저걸 제안할 줄이야.
쩨쩨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통 크게 나온다.
‘쟈칼의 이빨’은 공력 속도를 10%만큼 상승시켜 주는 재료 아이템이다.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아이템에 제한이 걸려 있어 A급 평가를 받았지만, 능력 자체만으로만 본다면 여느 S급 아이템에 밀리지 않았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대가다.
충분히 만족할 만하긴 한데.
문제는.
“내가 욕심쟁이라서 말이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우선, 이빨 중에선 어금니를 내놔. 그리고 또 하나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생각해 볼게.”
[‘검은 사냥개’가 크게 당황합니다.] [이빨의 종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묻습니다.]쟈칼의 이빨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게 바로 ‘어금니’다.
20%의 공격력을 올려 주는 다른 이빨들과 달리 이건 무려 30%의 공격력을 올려 주었으니까.
대상의 신체에 거대한 상흔을 남길 수 있는 최강의 창은 아누비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알 거 없고.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
[‘검은 사냥개’가 또 하나의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별건 아니야. B급 재료 아이템 중에 ‘하얀 나뭇가지’라는 게 있는데, 그게 필요해. 당연히 지금 말한 건 모두 선지급이야.”
하얀 나뭇가지는 주로 의학용으로 사용하며 4층에서는 구할 수 없으나, 10층 이상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누비스 입장에서는 하등 가치가 없는 쓰레기였다.
[‘검은 사냥개’가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계약이 성사됩니다.] [‘검은 사냥개’는 약속한 두 개의 아이템을 지금 당장 지급해야 하며, 플레이어 강진혁은 여왕과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깃발을 뽑을 수 없습니다.]우우우우웅!
눈앞에 날카로워 보이는 어금니와, 눈처럼 새하얀 나뭇가지가 나타났다.
……걸렸다.
진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모든 것들이 자신 아래에 있다고 착각하는 오만한 신은.
지금부터 스스로가 한 계약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
콰아아앙!
지면이 모조리 박살나며, 군락지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설마. 죽였단 말인가. 가디언까지.”
펜다리엘이 잿더미가 돼 버린 도살자를 바라봤다.
그 어떤 인간도 뚫을 수 없다고 생각했건만.
역시나 지금 상대하는 인간은 그녀의 예상치를 아득하게 초월한 놈이었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짓밟아 죽여야 할 벌레가 아닌.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하는 적이라는 것을.
저벅.
펜다리엘이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깃발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대는 깃발 아래에서 군락지의 여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서. 뽑지 않은. 거지? 깃발 뽑으면. 네놈의. 승리일 텐데?”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너무 시시하잖아?”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시. 하다고? 나를. 눈앞에. 두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차갑게 가라앉은 음성.
저릿저릿!
피부를 따라 솜털이 일제히 일어났다.
과연, 지독한 마력이다.
‘레벨이 낮을 때 이 녀석과 싸우는 건 역시 스릴 넘치는군.’
아무리 ‘간극’ 스탯으로 인해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여왕을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 펜다리엘과의 1:1 승부는 성립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 계약으로 인해, 단 한 명.
좀비들의 모태를 쓰러뜨릴 수 있는 플레이어가 탄생했다.
카캉!
진혁이 ‘도살자’로부터 얻은 원혼이 담긴 가위를 반으로 쪼갰다.
칼날이 하나만 남았다.
정확히는 두 개 중에 오른쪽 날만이.
순식간에 낫처럼 생긴 섬뜩한 모양의 무기가 완성되었다.
진혁이 곧바로 다음 단계를 밟았다.
“‘하얀 나뭇가지’와 ‘쟈칼의 이빨’ 그리고 ‘원혼이 담긴 가위’를 융합하겠다.”
융합(融合).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고유 능력.
오직 나만을 위한, 탑을 오르기 위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능력이.
지금 이 순간.
최악의 적에 맞서기 위해 발현되었다.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인과를 끊는 낫’이 완성되었습니다!] [인과를 끊는 낫]입수 난이도: 측정 불가
내용: 절대 판정 효과를 갖고 있는 주신(主神)의 성유물입니다. 죽지 않는 자를 죽일 수 있으며, 베지 못 하는 것을 베어 버릴 수 있습니다.
[4층에 어울리지 않는 성유물의 등장으로 인해, 시스템이 개입합니다.] [이 아이템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쿠쿠쿠쿠쿠!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낫을 완전히 휘감았다.
‘역시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상세설명을 읽던 진혁이 혀를 찼다.
개연성에 어긋나는 힘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2번이나 3번 정도는 사용하게 해 줄 줄 알았는데.
현실이 된 지금은 그 조건이 더욱 깐깐해진 게 틀림없었다.
아마 아누비스가 아니라, 그리스 쪽 신격들의 성유물을 융합했으면 최소한 한 번은 더 사용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것도 현 상황에선 사치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소한의 조건을 클리어 했다.’
일격필살(一擊必殺).
적중시 반드시 적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손에 넣었다.
이로써 조건은 대등해졌다.
서로가 서로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검은 사냥개’가 기함합니다!] [이집트 신화에 속한 신격들이 현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상태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탑의 저 위로부터 경악과 공포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무기를. 어떻게……?”
당황스러운 건 펜다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잡스러운 무기를 잔뜩 늘어왔을 때만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쟈칼의 이빨’이나 ‘도살자의 가위’나 혹은 ‘하얀 나뭇가지’나.
그 어떤 걸로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질적인 아이템들이 하나로 뒤섞인 순간.
모든 게 완전히 바뀌었다.
“이럴…… 수가.”
기존에 알던 상식이 무너졌고.
새로운 규칙이 도래했다.
“네놈! 대체! 누구냐?”
펜다리엘이 전신을 웅크렸다.
동시에 사기를 한껏 뿜어냈다.
파츠츠츠츠!
검은 기운이 서서히 주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아주 약간의 위협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언제나 고고하게 공격만을 일삼던 그녀로선 생전 처음 해 보는 방어 기제였다.
“적어도 누가 겁먹은 건지는 알겠네.”
“뭐라고?”
“아니야? 내가 보기엔 고슴도치가 잔뜩 가시를 세운 채 머리는 몸 안 쪽으로 파고든 꼴인데 지금?”
“크아아아!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이!”
펜다리엘이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사기가 그녀의 손동작에 맞춰 쏜살같이 날아갔다.
콰콰콰콰콰콰!
닿는 것이 무엇이든 그대로 부식시키는 능력.
죽음으로부터 가장 가깝고도 먼 기운이 땅과 공기를 새카맣게 태워 버렸다.
온다.
진혁이 그에 맞춰 움직였다.
워낙 범위가 넓어 전부 피할 순 없었지만, 상관없다.
이쪽도 그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고유 능력 ‘만다라(曼茶羅)’가 발동됩니다!]황금빛 얇은 막이 전신을 감쌌다.
치이이익!
사기와 만다라가 접촉하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 능력을. 상쇄한단 말이냐?”
펜다리엘은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고유 능력이 제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세상에 무적인 능력 따위는 없어.”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상극(相克)의 힘을 사용하는 자가 살아남을 뿐.
무엇보다 스프레이식으로 넓게 펼쳐 사용하는 사기의 농도로는 만다라로 만든 갑옷을 꿰뚫을 수 없다.
“크윽!”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은 펜다리엘이 이번엔 넓게 펼친 사기를 한 곳으로 모았다.
2m에 이르는 바스타드 소드의 형태가 갖춰졌다.
가녀린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펜다리엘은 그 거대한 검을 이쑤시개 가지고 놀 듯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
지면을 가르는 일격.
매섭다.
또한 위협적이다.
허나, 그 일격, 일격이 아무리 파괴력을 갖고 있다 한들.
“맞지 않으면 소용없지.”
진혁은 이미 공격의 궤도를 읽고 있었다.
쌍룡검에 ‘검의 무덤’과 ‘별의 가호’가 덧씌워졌다.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상대의 체력과 집중력을 깎아야만 했다.
이어진 것은 폭풍처럼 이어지는 맹공이었다.
콰앙!
카아앙!
카카카카캉!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두 개의 검이 펜다리엘의 빈틈을 찾기 위해 꿈틀거렸다.
“겨우, 이딴 걸로!”
조금씩 궁지에 몰리자 결국, 펜다리엘이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펜다리엘이 Lv?? ‘죽은 자의 장송곡’을 발동합니다!]키이이이잉!
바스타드 소드로부터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이 울부짖는 것이다.
고통에 견디지 못해서.
“아쉽네. 이제 막 흥이 오르려고 하는데, 벌써 클라이맥스로 가려고?”
“이걸. 보고도. 웃을 수 있는지. 보겠다.”
[‘제1검(第一劍)’]죽은 자를 배웅하기 위한.
죽은 자를 멸하기 위한 검.
[‘영멸(永滅)’]바스타드 소드의 검신이 사라졌다.
모양도.
냄새도.
존재감도.
모든 게 무(無)로 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