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죽은 자들의 모태(母胎) ‘펜다리엘’ (4)
감각을 초월한 초감각(超感覺).
보고 반응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지금의 검격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거나.’
혹은.
‘모든 검로를 외우고 있는 고인물이 되거나.’
둘 중 하나만이 이 여왕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그리고 둘 중에 어느 것이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의 선천성보다는 즐기면서 완성시킨 후천성.
바로 이것이 고인물이 지향해야 할 길이다.
카아앙!
눈부신 불꽃이 비산했다.
진혁은 심장을 노린 1검을 쳐냈다.
한 번의 헛손질로 인해 둘 사이의 거리가 한 걸음 좁혀졌다.
“크윽!”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펜다리엘이 두 번째 공격을 펼쳤다.
[‘제2검(第二劍)’]이번엔 검 끝이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쪼개졌다.
나뉘어진 점들이 어지럽게 흐드러졌다.
[‘파송(派送)’]칼날이 칼날의 잔영을 지우며, 적을 찢어발기기 위해 몰아쳤다.
전후좌우.
사각 따윈 없는 폭풍과 같은 검격이었다.
카카카카캉!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혁은 자로 잰 듯 쌍룡검을 움직였다.
그 많은 공격 중에 유효타를 입힌 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또 다시 좁혀졌다.
“이번엔 내 차례다.”
진혁의 손끝에서 한 줄기 냉기가 일어났다.
[Lv5 ‘빙하조형(氷河造形)’, ‘블랙 아이스’가 발동됩니다!]‘빙하조형’을 이용해 빙판을 만들어 상대의 중심을 잃게 하고.
“큭!?”
[Lv1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가 발동됩니다!]쿠쿠쿠쿵!
‘검마제왕보’를 사용해 지근거리에서도 놀랄 정도로 괴랄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크아아아!”
펜다리엘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포효했다.
약만 잔뜩 올리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움직임.
태풍에 버티는 나무는 부러진다.
하지만, 바람에 순응하는 갈대는 살아남는다.
진혁은 거대한 파도에 맞서지 않고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카앙!
마지막에 웃는 건 언제나.
카카카캉!
‘나다.’
마침내 기다리던 틈이 보였다.
진혁이 쌍룡검을 지면에 꽂은 채 ‘인과를 끊는 낫’을 꺼냈다.
“빌……어먹을! 이럴 수는…… 없다! 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펜다리엘의 입이 가로로 찢어졌다.
이토록 강할 수는 없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수많은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어느 것 하나 빈틈 따위는 없는 완벽한 능력들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고 발악해 봤자 늦었다.
이미 둘 사이의 거리는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였으니까.
서걱!
전투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들린 파육음.
깔끔하게 잘린 절단면에서 흐르는 한 방울의 피가 싸움의 종막을 고했다.
[4층의 보스 몬스터 ‘펜다리엘’이 쓰러졌습니다!] [시련의 탑 5층이 개방됩니다!] [다음 층을 정복할 때까지 남은 시간: 89D 23h:59m:59s]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거점 수호에 성공하셨습니다. 거점 인원에 따라 ‘A급 랜덤 박스(5개)’가 지급되었습니다.] [최다 킬 보상으로 ‘상급 스킬 강화서(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인기 투표 보상으로 ‘코인 환전 수수료 10% 할인권(1회)’를 획득하셨습니다.] [히든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보상으로 ‘마법 도서관 입장권(1회)’을 획득하셨습니다.]쏟아지는 수많은 상태창.
그 누가 예상했을까?
승리를 확신하던 아누비스와 이집트의 신격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3층의 보스보다는 훨씬 강했어. 무혼이란 녀석은 밑에 부리는 부하들 뒤에 숨어만 있었거든.”
진혁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미 목숨이 끊어진 여왕에게 들릴 리 없을 테지만.
***
치열했던 4층의 싸움이 끝났다.
절망적이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반전이었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난 현재, 홍대의 한 술집.
이곳에선 진혁과 거점 방어전을 함께한 나머지 사람들이 조촐하게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다.
“오빠! 여기야!”
유연화가 손을 흔들었다.
탑에서 싸울 때는 피가 뚝뚝 흐르는 너클을 낀 채 보는 사람 살 떨릴 정도로 살벌한 격투기를 사용했지만…….
밖에선 편안한 츄리닝 차림에 후드티를 쓰고 나왔다.
꽤나 신선한 모습이다.
“형! 왔어요?”
이태민 역시 청바지와 검은색 티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 모자를 거꾸로 쓴 게 포인트랄까.
“미안, 조금 늦었지?”
“아니야. 우리도 방금 왔어. 그나저나 오빠는 진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네? 얼핏 봤을 때 연예인이 오는 줄 알았어.”
“형. 탑에서도 이렇게 좀 하고 다니면 안 돼요?”
모처럼 쉰다고 미용실도 가고 옷도 몇 벌 샀더니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미용사도 왁스를 바르는 게 훨씬 더 낫다느니 뭐라느니 했었지.
당시에는 영업용 립서비스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완전히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꾸미고 다니면, 탑은 어느 세월에 오르려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재차 입을 열었다.
“테레사 씨는?”
“테레사는 한 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된다고 하더라고. 오빠랑 우리보고 먼저 먹고 있으라고 하던데?”
진혁과 달리 테레사는 자신이 왔던 유럽 쪽 게이트를 통해 되돌아갔다.
같이 왔으면 좋았겠지만, 유럽에서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뒤에 합류하기로 했다.
랭커인 그녀라면 전용기가 있을 테니, 한국까지 오는 길이 그리 험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테이블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웅성거리는 주위.
“저 남자 봤어?”
“조금 있다가 말이라도 걸어 봐.”
“우와! 나 방금 눈 마주친 거 같아.”
기럭지랑 비율이 좋으니 뭘 입어도 티가 난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담은 것 같은 시크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모두의 시선이 주목될 수밖에.
하여간 똥폼 잡는 거 하고는.
“나 왔어.”
“알고 있다.”
“안 오거나 아니면 몇 시간은 늦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약속은 지켰네?”
진혁이 실소를 머금었다.
저 녀석을 이 자리에 끌고 오기까지 과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일 저녁 7시까지 홍대 3번 출구에 있는 술집 앞으로 와. 다 같이 맥주나 한잔할 테니까.
-웃기는군. 그딴 자리에 왜 내가 참여해야 하지?
천유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딴 자리에 참여해야 랜덤 박스에서 원하는 걸 뽑는 방법을 알 수 있겠지?
진혁의 말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홍대까지 오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약속을 지켰고.
그나저나 저 녀석.
말투나 하는 짓이나 완전히 동네 조폭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의대생이란다. 그것도 한국대학교의.
미래에 녀석의 첫 번째 환자가 될 분의 안위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수술하다 수틀리면 메스 대신 검을 휘두르는 게 너무나 훤히 보였으니까.
“부탁인데, 내가 다치면 힐러를 부르든가 그냥 죽여 줘.”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너한테 내 몸을 맡길 바에 그냥 죽는 게 편할 것 같아서…….”
“걱정마라.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내가 맡게 된 환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릴 거다.”
젠장. 이건 뭐 농담도 못 하겠네.
진혁이 혀를 차며,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정신없이 싸우고 달려오느라 달아오른 몸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얼음 맥주가 스며들었다.
곧바로 매콤한 양념이 발라져 있는 치킨 한 조각을 뜯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크으.”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역시 적당한 땀과 피로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도 내놔라. 치사하게 너만 먹지 말고!]반지에서 잔뜩 토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리스였다.
3층에서의 전투 후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잠했었지만, 먹을 타이밍은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긴, 억겁의 세월을 회랑에 처박혀 있었으니 바깥세상의 음식이 궁금하긴 하겠지.
이거 어쩌면 술값을 아끼고 부수익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정말 같이 먹게 해 주고 싶은데, 이게 상당히 비싼 거라 말이야. 아무리 나라도 지갑에 부담이 되거든.”
[비싸다고? 얼마나 말이냐?]진혁이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엄지손톱만 한 다이아몬드 한 개는 필요해. 그래도 전체 술값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우리 관계를 생각해서 특별히 그 정도만 받을게.”
선심을 쓰듯.
동료를 위하듯.
엘리스의 심리적 부담감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게 핵심이다.
[그 정도야 내마. 나도 염치없이 공짜로 얻어먹는 성격은 아니리라.]엘리스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통 크고 부유한 호구는 언제나 환영이다.
특히나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
“호오. 이게 미물들이 만든 술이라는 것이냐?”
엘리스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드레스에 루비와 황금으로 장식된 목걸이까지.
모처럼 바깥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꾸미고 나왔다.
“생맥주라는 거다.”
“으음! 나쁘지 않구나! 극상의 피나 오랜 세월을 풍미한 와인과는 비교할 순 없어도 그럭저럭 목을 축일 정도의 수준은 된다. 몇 대에 걸쳐 이어 온 장인이 만든 술이 틀림없겠지.”
장인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한 잔에 2500원짜리 맥주다.
특히 오늘은 4층이 공략된 기념으로 1+1 행사 중이고.
“이것도 먹어봐.”
“이건…?”
“치킨이라는 건데. 간장과 양념소스를 발라둔 거야.”
“고기라… 그다지 취향은 아니다만, 애써 권유하니 딱 한 번만 먹어보도록 하지.”
엘리스가 우아하게 포크로 치킨 앞다리살을 찍었다.
오물거리면서 먹는가 싶더니.
이내 눈빛이 변했다.
이건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빛이다.
진혁이 슬쩍 치킨 한 조각을 먹으려하자.
챙캉!
엘리스가 포크로 방어했다.
“…….”
절대로. 단 한 조각도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 고기요리라고 해봤자 삶거나 굽는 게 전부였을 테니 당연히 눈이 돌아가겠지. 양념 역시 소금을 뿌리는 게 그나마 사치를 부린 거였을 테고.
“많이 먹어. 널 위해서 특별히 내가 내는 거니까.”
“고맙다. 이번 일은 잊지 않으마.”
엘리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맥주잔을 꼭 쥐었다.
이렇게 보면 참 천진난만한 소녀인데 말이지.
누가 이 꼬맹이를 보고 탑의 최강자 중 하나인 진조라고 생각할까?
“여러분! 저 왔어요!”
잠시 뒤, 테레사까지 합류하자 술자리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탑에서 있던 일들을 추억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런데, 모두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치지지직!
술집 중앙에 있던 TV 볼륨이 올라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연예계 가십이나 스포츠가 아닌, 시련의 탑과 관련된 특집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4층 공략이 성공함에 따라, 이후에 있을 5층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예, 맞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번엔 한국의 랭커. 강진혁 플레이어 덕분에 무사히 5층으로 갈 수 있게 됐죠.]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이어 갔다.
[5층에 대해 말씀을 나누기 전에 혹시, 일반 시민들도 알 수 있게 간단하게 정리한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아래 보이시는 표가, 1층부터 4층까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플레이어와 그 플레이어가 소속된 국가입니다.]1층을 클리어한 미국 타이탄 길드의 패트릭.
2층을 클리어한 유럽 올림포스 길드의 마리아와 중화 길드의 남궁천. 그리고 무소속 플레이어인 테레사.
3층을 클리어한 정보 미상의 언노운.
4층을 클리어한 한국의 랭커 강진혁.
각국의 정상급 랭커이자 인류의 희망.
미래의 탑을 정복할 선구자들의 이름이 나열됐다.
[와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이라면, 어떻게든 인류를 다음 층으로 인도해 줄 것만 같거든요.] [그럼, 이번엔 5층에 관해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여자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건넸다.
[알겠습니다.]5층.
앞으로 90일간 플레이어들이 보내야 할 장소의 메인 테마가.
[5층은…….]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