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마법 대도서관 (2)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과 화려한 조명 속.
끝없이 펼쳐진 서고엔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있었지만, 진혁은 막힘없이 그 사이를 가로 질렀다.
앞으로.
정확히는 안내 데스크가 있는 중앙을 향해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가 넓어지는 지점의 끝에서 고목으로 만든 책상과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흐음?”
덜컹!
외눈 안경을 쓰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살짝 드러나 있는 의아함.
이유는 알고 있다.
이 미로를 뚫고 어떻게 안내 데스크까지 한 번에 찾아냈는지. 그것이 궁금한 거겠지.
“의외로군요. 이곳에 처음 오신 분들은 책의 미로에서 헤매는 게 보통인데 말입니다.”
“대충 길이 나 있는 대로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제가 제법 운이 좋은 편이거든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릭은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진혁을 바라봤다.
“저는 이 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는 릭 헤네시라고 합니다.”
릭이 공손하게 중절모를 벗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중간 관리자급에 해당하는 자가 고개를 숙인다라…….’
이래서 이 노인이 무섭다.
차라리 하대를 하거나 무시를 했으면 상대하기 쉬웠을 텐데.
높은 곳에 있음에도 한결같은 매너를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었으니까.
탑에서 가장 거대한 상단 중 하나를 운영하며, 동시에 마법 대도서관을 관리하는 거물.
그런 능구렁이로부터 원하는 걸 얻으려면, 이쪽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필요했다.
“강진혁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셨군요. 환영합니다. 탑의 인정을 받아 그 누구보다 빨리 이곳에 방문한 이여. 보상으로 마법 대도서관에 있는 서적 중 하나를 구매하실 수 있으니 마음껏 골라 보십시오.”
릭이 양손을 뻗었다.
결계와 주술, 마법과 환술이 망라된 보고.
이곳엔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있다.
하지만.
“원하는 걸 고른다고 해서 그걸 가질 순 없을 텐데요.”
“하하. 맞습니다. 이곳은 선택의 기회를 줄 뿐. 그걸 구입하시려면 그에 가치에 맞는 걸 지불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구에서 쓰는 화폐는 받지 않습니다. 코인이나 혹은 아이템을 통한 물물교환만 가능하니 참고해 주십시오.”
이것도 예상했던 말이다.
그러나 쓸 만한 마법서들은 하나같이 억 단위의 코인이 필요했으니, 사실상 코인으로 무언가 구매한다는 선택지는 접어 둬야 하리라.
“제가 갖고 있는 코인이 많지 않아서 코인으로 구매하는 건 힘들 것 같고. 물물교환 쪽에 관심이 있는데, 적당한 마법사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멀린의 지팡이’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뒀다.
파르르하고.
릭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물건이 마음에 들었을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다.
“으음.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화염계열 마법서인데, 레드 드래곤이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진 책입니다. 멀린의 지팡이와 교환하다면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겁니다.”
릭이 재빨리 붉은색 표지에 황금색 룬어가 새겨진 책을 골랐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과거에도 아이템의 정확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물물교환에 응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봤었다.
별 쓸모없는 마법서 한 권을 얻으려고 갖고 있는 아이템을 몽땅 털었었지.
그 당시에는 마법 도서관이란 기연이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범한 실수였다.
하지만.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 어떤 게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이 책은 레드 드래곤이 아니라 제국의 궁정 마법사가 집필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름이 아마…… 텔레모스였죠? 6서클의 경지를 갓 넘은?”
수석 마법사도 아니고.
궁정에 있는 70석쯤 되는 마법사가 끄적인 마법서.
그런 쓰레기에 약을 쳐서 팔려고 하면 쓰나?
“……!?”
릭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아까까지는 약간의 의구심과 흥미가 공존했다면, 이제는 경악과 경계심이 뒤섞인 듯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그걸…….”
“이래봬도 발이 좀 넓거든요. 덕분에 아는 정보도 제법 되죠.”
생긋 웃은 진혁이 이번엔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커피포트와 거름종이 그리고 원두를 꺼냈다.
이곳에 오기 전 ‘코인 거래소’에서 구매한 것들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한 잔 드시겠습니까?”
진혁이 잘게 간 원두를 거름종이에 올려두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아뇨. 지금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개를 가로젓던 릭이 갑자기 코를 움찔거렸다.
내부를 가득 채운 향긋한 커피 향.
“이건 설마.”
바로, 릭이 가장 선호하는 ‘벵엔티 정글의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였다.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이 커피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인스턴트는 취향이 아니어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죠. 확실히 탑 내부에 있는 커피들이 더 좋은 향을 갖고 있더라고요. 물론, 그중에서 가장 맞는 게 이거였습니다.”
“……흐음. 커피 보는 안목이 탁월하시군요. 저도 개인적으로 이걸 가장 선호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예전에도 당신이 이 커피만 하루에 12잔씩 줄기차게 먹는 걸 봤었으니까.
개인적으론 쓴 커피보다는 시럽 잔뜩 넣은 캐러멜 마키아토나 초코 프라푸치노가 취향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녀석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도서관의 사서 ‘릭 헤네시’의 호감도가 놀랄 정도로 상승합니다.] [언제나 이득을 추구하는 장사꾼이지만, 당신한테 만큼은 그 고집을 누그러뜨릴 겁니다.]물건의 진위를 꿰뚫어보는 예리한 눈.
거기에 기호식품에 대한 취향까지 같으니 호감이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감’ 스킬까지 은연중에 사용하고 있었으니 이 심리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시, 강진혁 플레어이님께 개인적으로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물어보세요.”
“이곳에 온 것부터 평범한 플레이어와는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특별함 그 이상의 배경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이제 막 5층에 입장한 플레이어가 알 수 없는 정보들.
그걸 태연하게 말했으니 당연히 무언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 뒷배경이 뭔지 궁금하다. 이걸 물어보고 싶으신 거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좋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걸 물어봐 주길 내내 기다렸다.
“사실, 이집트 신격들이 제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고 탑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 또한 얻을 수 있었죠.”
“이, 이집트의 신격들이 말입니까?”
“예.”
“그, 그럴 수가. 그분들이 벌써부터 플레이어에게 관심을 지닐 줄은…….”
“저를 제법 아껴 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로서는 과분한 관심입니다만.”
아누비스가 이 말을 들었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아니, 쓰러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혀 깨물고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나한테 당한 것만 해도 책 한 권을 써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릭의 입장에서 이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말이다.
“아무래도……. 제가 플레이어님을 너무 홀대해 드린 것 같군요.”
릭의 목소리 톤이 완전히 바뀌었다.
“가치가 있는 분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한 법. 사과의 의미로 이곳에 있는 책들 중 하나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호오.
이것 봐라?
당연히 조건이 달라질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건 예상 밖이다.
말 그대로 가격에 상관없이 공수표를 발행하겠다는 거잖아?
“정말로 아무거나 골라도 되나요?”
“어디까지나 사과의 의미로 드리는 보상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고르시길.”
“그렇다면야…….”
가격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원하는 거야 얼마든지 있지.
원래는 멀린의 지팡이를 포기하고서라도 교환하려고 했었는데.
덕분에 가장 원하는 걸 공짜로 구할 수 있게 됐다.
진혁이 서재를 따라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
저벅.
걷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그리고 잠시 뒤, 진혁은 구석진 책장 앞에 멈췄다.
12F – 127열.
바로 여기다.
‘교과서는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이건 왜 이렇게 반갑냐.’
진혁이 서재에 있는 책들 중 하나를 골랐다.
검은색 표지가 꽤나 인상적인 고서였다.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확실히 좋은 마법서이긴 합니다만, 고대 룬어로 적혀 있어 아무나 읽을 수는…….”
“이것은 나 블랙 드래곤 마케드리안이 고룡(古龍)이 됐을 때를 기념해 남기노라. 천년의 세월. 나는 세계의 규칙을 허무는 방법에 대해 고찰해 왔다. 블라블라 어쩌고. 중2병 잔뜩 걸린 도마뱀이 쓴 책. 이걸로 하겠습니다.”
진혁이 자연스럽게 책의 첫 장을 읊었다.
고대 룬어 쯤이야.
10년을 넘게 보다 보니 한국어보다 더 친숙하다.
“푸하하! 이거 제가 또 실례를 했군요. 과연, 신격들의 가호를 받으시는 분다우십니다.”
릭이 유쾌한 폭소를 터뜨렸다.
그것이 고대 룬어조차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인지.
아니면 최강의 생명체라 일컫는 드래곤을 함부로 불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간 관리자 중 하나의 환심을 샀다는 사실뿐.
“저 역시. 앞으로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눈여겨보겠습니다. 진심으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죠.”
그 말을 끝으로.
쿠쿠쿠쿠쿠!
도서관이 한 줌의 모래가 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보상을 얻었으니,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
시련의 탑 5층.
아직 4층이 공략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5층에 도전했다.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맵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유리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광산’이었다.
[C – 101번이 마감되었습니다.] [D – 77번이 마감되었습니다.] [E – 158번이 마감되었습니다.]빠르게 점멸하는 상태창을 보던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이건 뭐, 마감되는 속도가 거의 대학 수강 신청 수준이네.”
그것도 ‘성과 사랑’ 같은 1초 만에 마감되는 초인기 교양 과목에 버금가는 속도다.
이해는 한다.
보석을 찾기만 한다면 클리어로 인정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겠지.
적어도 다른 곳에 비해 목숨을 잃을 위험은 적을 테니까.
하지만.
“안전한 대신 클리어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리다는 건 모르나 보군.”
광산 깊숙이 묻혀 있는 ‘왕가의 다이아몬드’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난이도다.
90일 동안 곡괭이질을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무엇보다 그 긴 시간동안 몸만 혹사할 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진혁은 인기 있는 맵들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플레이어들이 가장 꺼려하는 곳을 바라봤다.
[Z – 01(정신병동)]현재 대기 중인 인원: 37
남은 시간: 0h:2m:13s
정신병동.
저주 받은 몬스터와 미쳐버린 환자들이 배회하는 죽음의 건물.
바로 이곳이 5층에서 선택해야 할 격전지다.
‘거의 마감 시간이 다 됐네.’
그런데 진혁이 참가를 승낙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띠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존재감을 드러낸 적 없던 이들로부터 뜻밖의 메시지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