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5층, 정신병동 (1)
[칼라디움 왕국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점멸하는 황금빛 상태창.
‘칼라디움 왕국이라면…….’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무림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제국’에 소속된 국가.
그중 하나가 바로 칼라디움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언젠간 접점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토록 발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하긴, 팽팽하던 균형을 깰 수 있을 만한 새로운 변수들이 나타났으니. 미치도록 탐이 날 수밖에.
동시에 귀족주의에 찌들어 있는 제국이 자존심을 한 수 접을 만큼, 지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림도 그렇고 제국 쪽도 그렇고. 탑의 세력 구도를 바꾸기 위해 떡잎이 보이는 플레이어들을 선점하려 하는군.’
선물을 잔뜩 싸들고 오는 꼴이 뭐랄까. 꽤나 귀엽달까?
피식 웃은 진혁이 선물을 살펴봤다.
어디, 탑의 중층을 지배하는 놈들의 배포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 시간이다.
띠링!
[스킬 ‘흐릿한 체취’를 획득하였습니다.] [흐릿한 체취]입수 난이도: F
내용: 본인의 냄새와 호흡은 물론, 미세한 공기의 떨림까지 지워 줄 수 있는 스킬입니다. 사용 시 야생동물들조차도 당신이 숨어 있는 곳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제한시간: 3초, 3번 사용 시, 24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상위 세력의 후원으로 인해 시스템의 억제력이 일정 부분 완화됩니다.]다른 층이었다면…….
이 스킬은 ‘쓸모 있다’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다.
발동시간이 워낙 짧은 데다 횟수제한까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쳐 버린 환자들과 네임드 몬스터들을 뚫고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선 그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유 능력과 스킬이 봉인된 이상. F급이었던 스킬은 S급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3개의 목숨을 더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탑의 제약을 거스르면서까지 나에게 이걸 선물해 줄 정도라면…….
정말로 어지간히 탐이 나긴 하는 모양이다.
‘스킬은 고맙게 쓰도록 하지.’
환심을 사려고 공짜로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필요 또한 없다.
‘나는 그냥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꿀이란 꿀은 죄다 빨아먹으면 돼.’
넘어갈 듯 말 듯 상대의 애간장을 태우며 하는 밀당.
그게 앞으로 취해야 할 최고의 포지션이다.
좋아.
든든한 스킬까지 얻었으니 이제 그만 가 볼까.
진혁이 정신병동을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바로 순간.
우우우웅!
[5층 ‘정신병동’을 선택하셨습니다.] [고유 능력과 스킬이 봉인됩니다.] [규칙은 단 하나, 살아서 병동을 탈출하십시오.]새로운 층의 시작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동시에 진혁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
눅눅한 공기.
피와 배설물에 찌든 악취.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
이 모든 것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극악의 생존 확률을 자랑하는 정신병동이라는 사실을.
띠링!
[고룡. 마케드리안의 마도서로 인해 스킬 중 하나가 해금됩니다!] [‘탐식의 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예상했던 대로 상태창이 나타났다.
그나마 제약이 약한 ‘눈’은 시스템의 제약에서 가장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스킬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마법 대도서관에서 이 책을 골랐지.’
그건 그렇고.
‘다른 건 둘째 치고 냄새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된다. 적응이.’
진혁이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그때.
“으으으…….”
“더럽게 어둡네. 어이! 여기가 스타팅 포인트 맞지?”
“젠장, 여긴 또 왜 이 모양이야?”
진혁의 옆쪽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불 좀 밝힐 수 있는 사람 없어요?”
“능력이 죄다 봉인당해서 안 돼. 완전히 태초 마을로 돌아간 기분이잖아. 이거.”
지금까지 온갖 능력을 사용하다가 난데없이 모든 게 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현대인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리라.
“어? 주머니에 뭔가 있어요!”
“주머니?”
“네. 이거 감촉이…….”
찰칵!
화르르륵!
라이터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실내에 작은 불꽃이 나타났다.
다섯 명의 남녀는 희미하게나마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양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동양인 여자. 마지막으로 흑인 여성.
‘그리고 나.’
이렇게 총 다섯이었다.
“후우. 이제 좀 살겠구만. 이렇게 그지 같은 환경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다른 곳을 고를 걸 그랬어.”
“음? 나도 주머니에 뭔가 있는데?”
“저도요.”
“내 건 열쇠 같아.”
랜덤으로 주어지는 생존 아이템.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빠르게 각자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물론, 진혁은 가장 먼저 어떤 아이템이 주어졌는지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볼펜이라…….’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나미 볼펜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쓸모없는 걸 줬다고 욕했을 테지만.
진혁은 뾰족하게 솟아있는 펜 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진정한 고인물은 템빨을 탓하지 않는다.
갖고 있는 것들을 활용해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 뿐이지.
그나저나.
‘완전히 초짜들만 모였네.’
첫 반응부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까지.
모든 게 어설펐다.
정신병동을 클리어해 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리라.
예전이었다면, 병아리처럼 떠는 뉴비들을 함께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건 웃고 즐기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끼리 해쳐나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여기 와 봤던 사람 있어?”
덩치가 큰 서양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 번 해 보기는 했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애초에 5층은 매번 구조랑 아이템 등이 바뀌어서 플레이해 본 경험이 의미가 없다고 들었어요.”
“나도 그 때문에 여길 고르긴 했어. 광산은 워낙 인기가 좋아서 빨리 마감되기도 했고.”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왔다.
진혁이 보기엔 어느 것 하나 이해해 주기 힘든 이유들이었지만.
“골 때리게 됐네.”
“일단 천천히 상의를 한 다음에 이동하도록 해요.”
다른 사람들이 연신 떠들고 있었으나, 정작 진혁의 시선은 문으로 향해 있었다.
‘라이터를 켰으니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불을 밝힐 경우 얻는 건 시야만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불을 통해 앞을 내다본 순간 이 병동에 있는 놈들도 그 너머에서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저벅. 저벅.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태라 그 이변을 깨닫지 못했다.
다들 현재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제는 방 안에 있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 소리는?”
“문 잠가! 문부터 잠그라고!”
“크윽!”
나무로 만든 문이 닫혔다.
거의 동시에.
쾅! 쾅! 쾅! 쾅!
문이 미친 듯이 앞뒤로 흔들렸다.
“여기다! 이 안에 있어!”
“깔깔깔깔!”
“전부 태워라! 모조리 태워서 정화시켜!”
“이교도들의 피를!”
“찢어 죽여 주겠다!”
광기에 가득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이익!”
“빌어먹을. 벌써 온 거야?”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돼. 저런 문으론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한때 이곳의 환자였던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그 뒤론 알 수 없는 신에게 산제물로 바치며, 피와 광기로 물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두 개.
싸우든가 도망가든가.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싸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체 무슨 수로 싸운다는 말인가?
도망가야 한다.
늦기 전에.
온몸이 갈가리 찢기거나 산채로 타버리기 전에 어서!
“빠, 빠져나갈 곳을 찾아야 돼!”
덩치 큰 남자가 미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고 호흡이 가빠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쾅! 쾅! 쾅! 카각! 퍼걱!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부서진 틈 사이로 살점이 붙어 있는 칼날이 보였다.
이제 시간이 없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문이 박살 날 것이다.
그때.
“여기! 이쪽이에요!”
흑인 여자가 천장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환풍구다.
위로 가면 살 수 있다. 적어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죽지 않아도 된다.
“서둘러!”
“빌어먹을. 빨리…… 빨리!”
환풍구 뚜껑을 뜯어낸 사람들이 미친 듯이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콰앙! 퍼걱!
이제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틈이 벌어졌다.
문 너머에서 붉게 물든 눈동자가 보였다.
“올려 줘요! 나도 끌어 올려 달라고요! 어서!”
아래에서 받쳐주고 위에서 당겨 주며 하나 둘 방을 벗어났다.
그런데.
“뭐 해? 당신! 빨리 손잡지 않고!”
마지막 차례인 진혁은 제자리에 서 있을 뿐. 환풍구로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젠장. 버려! 죽고 싶어 환장한 놈까지 챙겨 줄 순 없어!”
“맞아요. 어서 가요.”
“쳇!”
남자가 혀를 찼다.
진혁을 답답한 듯 바라봤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철컹!
환풍구의 뚜껑이 닫혔다.
***
스킬과 고유 능력의 봉인.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능력이 없다고 겁부터 집어먹어서야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능력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지옥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능력 좀 봉인했다고 꼬리부터 마는 걸까?
‘그것도 고작 광신도 따위한테 말이지.’
칼라디움 왕국에서 받은 ‘흐릿한 체취’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운 스킬이었다.
진혁은 볼펜을 역수로 쥐었다.
찰칵!
익숙한 소리와 함께 펜 끝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문이 박살나며, 반쯤 벌거벗은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수는 약 서른 정도.
뒤집힌 눈동자와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 꽤나 그로테스크하긴 하다.
“죽여!”
“팔다리를 잘라 버려라!”
“신께서 녀석의 피를 원하신다!”
녹슨 낫과 꼬챙이 식칼 등이 진혁을 향해 날아왔다.
“예전부터 궁금하긴 하더라고.”
녀석들이 AI였을 땐 해소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한 가지 있다.
“광신도들도 공포를 느낄 수 있는지 말이야.”
광기와 맹목 앞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
과연, 그 가면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퍽!
“커억?”
가장 앞에 있던 남자의 관자놀이를 파고든 볼펜.
상처 부위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졌다.
“규모의 이점을 살리고 싶었으면, 입구가 좁은 곳으로 오질 말았어야지.”
아무리 인원이 많으면 뭐 하나?
정면으로 들어올 수 있는 놈은 많아야 두 명인데.
게다가 이런 좁은 곳에서 휘두르기 힘든 낫이나 긴 꼬챙이는 오히려 싸우는 데 있어 마이너스 요소다.
볼펜을 뽑은 진혁이 두 번째 타겟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퍽! 퍼억!
눈, 연수(延髓). 목젖.
뼈를 뚫을 순 없어도 노릴 수 있는 급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끄아아악!”
“으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속에 사정 따윈 두지 않은 냉정한 일격.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이들이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
“…….”
사나웠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 사이의 전력 차는 아예 격이 달랐으니까.
플레이어어들을 죽이기 위해 왔던 광신도들은 오히려 상대의 흉흉한 살기에 압도당해 버렸다.
“뭐 해? 벌써 끝이야?”
진혁이 핏방울이 떨어지는 볼펜을 앞으로 뻗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한쪽 벽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