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산제물의 의식 (2)
원탁의 기사.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기사들로, 이들에겐 각각 특별한 능력이 존재한다.
바로 마법, 검술, 환술, 탱킹 등 각 분야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는 능력이.
‘2차 전직 중에선 거의 최상위에 속하지.’
괜히 정부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마인들이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능력과 힘이 뒷받침되었으니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하는 거지.
‘그 거물 중 하나가 이 남자라…….’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이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흰색 단약을 쓴 가치의 수백 배는 뽑아낸 셈이다.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을 수 있는 ‘수호자의 능력’이야 만능형인 진혁에게 필요 없지만, ‘정신방벽’은 꽤나 탐나는 스킬이었으니까.
‘이걸 올려두면 이후에 신격이나 마왕 등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복사 조건을 확인한 진혁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복사 조건]1. 상대의 기사명을 알아내십시오.
2. 지금부터 호센벨트와 하는 대화와 행동을 중2병에 걸린 것처럼 말하십시오.
두 개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상대방이 갖고 있는 고유 능력이나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도 정상이 아닌 조건이 튀어나왔다.
물론, 대상이 대상이니 만큼 복사 조건이 늘어나는 것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 얼마든지 말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대체 탑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놈은 어떤 정신 나간 놈이냐?’
아니. 진지하게.
이쯤 되면 술자리에서 소주 여섯 병씩 거하게 마시고 벌칙 게임으로 정해야 할 걸, 실수로 복사 조건으로 정한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진혁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센벨트가 되물었다.
“아. 미안. 왼손에 있는 흑염룡이 날뛰어서 좀 진정시키느라고 말이야.”
진혁이 오른손으로 왼손을 움켜잡았다.
오른손이 가늘게 떨렸다.
마치, 왼손이 폭주하는 걸 막기라도 하듯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이자가 그대가 말한 자가 맞는가? 걱정해야 할 적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구나.”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은 교주가 입을 뗐다.
당황스러운 건 호센벨트도 마찬가지였다.
“……어이가 없군.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냐?”
심지어 끼고 있던 브라함의 반지도 미친 듯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반지 속에서 엘리스마저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 나도 어이가 없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굳이 상기시켜 주지 마라.
셋이서 조리돌림은 더욱더 하지 좀 말고.
제발 부탁이니까.
“아무래도 겁에 질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한 번만 말하겠다. 이제 곧 너는 산제물로 바쳐질 거다.”
“쿡쿡. 산제물이라……. 마치 5년 전 그때가 떠오르는군. 내 광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날이었지.”
진혁이 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렸다.
검은색 망토에 붉은 서클렌즈만 착용했다면, 완벽했을 거다.
빌어먹을.
이것도 하다 보니 묘하게 몰입되네.
“…….”
계속되는 진혁의 이상 행동에 호센벨트가 멈칫했다.
자신이 알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상대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설마…….
‘준비해 둔 뭔가 있는 건가?’
흑염룡이니 광기니 하는 것도 사실 고유 능력이나 스킬을 발동하기 위한 시동어나 혹은 포석이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보여 준 진혁의 활약을 생각하면 그게 더 그럴듯해 보였다.
‘절대 얕잡아봐서는 안 될 인물이다.’
상대는 협회의 정예들을 농락한 플레이어였으니까.
호센벨트가 전신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마력이 발동되는 느낌은 없었다.
틀림없다.
저 모든 건 허세다.
‘젠장…….’
그런데도 왜일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불안감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놀아나지 말자.’
애써 마음을 다잡은 호센벨트가 본론을 꺼냈다.
“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고유 능력과 스킬이 봉인된 이상 의식에서 살아남을 순 없을 터.”
“흐음. 넌 이미 죽어 있다, 뭐 이런 대사라도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냐?”
“아니, 내가 이곳에 온 건.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
호센벨트가 품에서 투명한 유리병을 꺼냈다.
병 속에 든 액체가 찰랑였다.
“뭐지 그건?”
“일종의 마취제다. 의식 중에 가해지는 끔찍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수 있지.”
산제물의 의식이 악명 높은 건 그 과정이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바엔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 수밖에.
“내 의지를 고통 따위가 꺾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준다면 마다하지 않으마.”
진혁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공짜가 아니다.”
호센벨트가 유리병을 조금 뒤쪽으로 움직였다.
“언노운에 관한 정보. 그걸 말하면 그 대가로 이걸 넘겨주겠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예상했던 바다.
“언노운에 대해 어지간히 궁금하긴 하나 보네.”
“가능성 있는 싹은 짓밟아 줘야 하니까.”
“뭐. 좋아. 말해 줄 순 있는데, 마취약은 필요 없고 대신 나도 질문 하나만 하지.”
“질문이라고?”
예상 밖의 말에, 호센벨트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설마, 그런 걸 원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서로 궁금한 걸 하나씩 물어보는 거야. 공평하잖아?”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다. 말해 봐라.”
“당신의 이름과 마인 협회 내에서 직급. 그것만 말해 주면 돼.”
“마지막 질문 치곤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군. 그걸 왜 알고 싶은 거지?”
“마인 협회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거든. 이래봬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서 말이야. 아! 그리고. 내 마안(魔眼)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니까. 속일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진혁이 일부러 두 눈에 부릅 힘을 줬다.
“……걱정마라. 속이진 않을 테니.”
호센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호센벨트. 원탁의 한 곳을 맡고 있으며. ‘랜슬롯’이란 기사명을 갖고 있다.”
랜슬롯.
원탁을 수호하는 기사.
그것이 바로 호센벨트의 기사명이었다.
‘좋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걸로 두 개의 조건 중 하나를 달성했다. 다른 하나도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고.
“이걸로 궁금한 건 해결된 건가?”
“대충은.”
“그렇다면 이번에 내 차례군. 언노운의 정체에 대해 말해라.”
그거야 어렵지 않지.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언노운은…….”
진혁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유성이란 놈이야.”
“천유성이라면…… 설마?”
“맞아. 네 머릿속에 떠오른 그 녀석. 너희들이 한 번 제거하려다 실패하기도 했었잖아?”
“…….”
호센벨트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된 거였나.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언노운이 그토록 강한 이유도.
자신들에게 적대한 이유도.
무엇보다 강진혁이란 플레이어가 언노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앞뒤가 맞았다.
둘 사이에 계속해서 접점이 있으니 서로가 잘 알고 있던 거겠지.
“원하는 건 모두 들은 건가?”
묵묵히 지켜보던 교주가 물었다.
“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호센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라. 강진혁.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겠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혁을 바라보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 중 하나를 고르십시오.]복사 조건의 달성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딱 맞춰서 성공했군.’
진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수치플을 겪긴 했지만, 원하는 목적은 달성했다.
“정신방벽을 복사하겠어.”
[고유능력 ‘정신방벽(S)’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복사된 스킬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정신방벽]입수 난이도: S
내용: 정신계열을 강화시켜 주는 스킬로, 상태창의 보안을 지킬 수 있는 건 물론, 각종 다양한 종류의 정신 공격으로부터 시전자를 보호합니다.]
S급에 해당하는 정신계 방어 능력.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정신방벽’은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제물들을 밖으로 내보내라. 이제 곧 의식이 거행된다.”
간수장이 간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 안 돼!”
“살려 주세요. 제발!”
“난 여기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갇혀 있던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용없다.
광신도들 앞에서 그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기대해선 안 됐으니까.
‘슬슬 갈 시간이군.’
드디어 이 정신병동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무대로 이동할 때가 왔다.
진혁이 감방 안을 살폈다.
‘찾았다.’
다른 벽돌들에 비해 짙은 회색빛을 띤 벽돌이 보였다.
1초 간격을 두고 벽돌을 일곱 번 두드리자.
쿠쿵!
신기하게도 벽의 한쪽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바로 하수도로 이어지는 틈이었다.
진혁이 조심스럽게 숨겨 뒀던 또 하나의 단약을 꺼내 하수도로 밀어 넣었다.
붉은색 단약이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잠시 뒤.
퐁당!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제물의 방.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공간에는 의식을 보기 위한 광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크아아아!”
“크오오!”
신의 대리자라 불리는 ‘브레이커’가 제물들을 학살했다.
도끼와 대검이 번뜩일 때마다 플레이어들의 몸이 반으로 토막 났다.
“죽여라!”
“신께 영광을!”
“오오오! 더! 더! 더! 더 많은 제물이 필요하다!”
흘러넘친 피가 모래를 붉게 적셨다.
그럼에도 광신도들의 광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더 많은 피를 원하는 것이다.
이 미쳐 버린 세계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라도.
덜덜덜!
그리고 대기실에서 그 생지옥을 바라보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한 지경이었다.
“우우욱!”
“웨엑!”
울거나 구토를 하는 건 비교적 양반이다.
심한 경우엔 오줌을 지리거나 기절해 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잠시 뒤엔 자신들도 저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놈들을 데리고 대리자와 싸우는 건 불가능하겠지.’
진혁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플레이어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제대로 붙어 보기도 전에 꼬리를 말아 버린 녀석들은 오히려 짐만 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쓰레기들은 플레이어들의 목숨을 갖고 장난을 치는 광신도들일 테니까.
진혁의 눈에 차가운 살기가 맴돌았다.
‘정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처리할 수 있겠군.’
악인을 죽이고 스탯을 얻는 히든 퀘스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일말의 거부감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럼, 무대도 갖춰졌고 주연배우들도 모두 참석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진혁이 품속에서 절묘하게 숨겨뒀던 책 한 권을 꺼냈다.
마케드리안의 마도서.
마법 도서관에 있던 수많은 마도서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건 딱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촤르르륵!
책장이 넘어갔다.
룬어로 쓰인 수많은 활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평생을 세상의 법칙의 허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고룡.
이 책엔 그 드래곤의 생이 담겨 있다.
[블랙 드래곤, ‘마케드리안의 마도서’를 읽으셨습니다.]동시에.
[봉인되었던 고유 능력이 해방됩니다.] [봉인되었던 스킬들이 해방됩니다.] [제한 시간: 0h:9m:59s]힘을 억제하는 족쇄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