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선택의 통로 (1)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을 처리한 진혁이 쌍룡검을 회수했다.
‘나머지 광신도들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브레이커가 사라진 이상 광신도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이가 나간 날붙이로 항전하는 게 고작일 터.
이제 남은 건 교주를 처리하는 것뿐이다.
‘그럼, 길 안내를 맡길 한 명만 있으면 되겠군.’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지만, 교주의 은신처가 열 곳이 넘다 보니 시간을 지체할 우려가 있었다.
‘그건 내키지 않아.’
이런 피비린내 나는 곳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답이다.
진혁이 적당히 주위를 물색했다.
오!
마침, 딱 눈에 들어오는 놈이 있다.
저 녀석. 관상부터가 천생 길잡이네.
광신도답지 않게 그나마 덜(?) 미쳐 보이기도 했고.
이곳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재였다.
‘좋아, 너로 정했다.’
진혁이 재빨리 몸을 날려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했다.
도망가는 데 정신이 온통 팔려 있던 터라 제압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쉬었다.
“죄, 죄송해요!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죽……기 싫어.”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것 참.’
살짝 어깨를 눌렀을 뿐인데,
누가 들으면 팔이라도 하나 베어 버린 줄 알겠네.
“진정해. 얌전히만 있으면 죽이지 않을 테니까.”
“저, 정말이요?”
“죽일 거였으면 이런 귀찮은 대화는 하지도 않았어.”
감정 없이 던진 말.
하지만, 소녀한테 있어 이 말은 그 어떤 것보다 회유나 협박보다 강한 설득력을 지녔다.
진혁이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을 생각하면, 구구절절하게 말로 설명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대신, 거짓말을 하거나 허튼 수작을 부리면, 그걸로 끝이야.”
길잡이는 길만 잘 안내하면 된다.
단지 그뿐이다.
“예. 알겠어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예.”
적어도 쓸모 있다는 건 증명됐군.
교주의 은신처가 워낙 많아서 시간 낭비할 우려가 있었는데, 이걸로 그 염려는 덜 수 있게 됐다.
“이름은?”
“안드리아. 안드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좋아. 안드리아. 나를 교주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라. 그럼 네 목숨을 보장해 주지. 아. 대답은 신중하게 해.”
[Lv4 ‘염혼의 낙인’이 발동됩니다.]“내가 말뿐인 약속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화르륵!
진혁의 손끝으로부터 붉은색 화염이 일렁였다.
안드리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약속할게요.”
이걸로 임시적인 계약이 맺어졌다.
배신하면 온몸이 산채로 타들어가는 불공정 계약이.
***
진혁은 안드리아의 안내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가로질렀다.
‘12번째 석실로 가는군.’
혹시라도 시간을 끌거나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아마 안드리아가 없었다면, 자신 역시 가장 보안이 잘되어 있는 7번째나 12번째 석실 중 하나를 고르려고 했었으니까.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겁이 많은 소녀가 어째서 광신도들과 함께하게 된 걸까 하는.
“너도 그 신인지 뭔지를 믿는 거냐?”
피와 제물을 원하는 마왕.
그리고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5층의 광신도들.
맹목을 넘어선 믿음이 없다면, 결코 함께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뇨. 저는…… 세상에 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신이 있다면, 이토록 절망만 가득한 지옥을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럼, 어째서 교주를 따르는 건데?”
“제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전 팔려왔거든요.”
“팔려왔다고?”
“예. 버림받은 거죠. 가장 믿어야 할 가족으로부터.”
안드리아가 죽은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거였나.’
광산, 검투장, 정신병동 등 5층에 흩어진 장소들은 하나같이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돈 몇 푼에 가족을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할 수밖에.
진혁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이제 보니 꽤나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네.’
시스템은 말했다.
악인을 죽일 경우 0.1 적응형 스탯을 주겠다고.
그렇다면 과연, 타의에 의해 팔려온 방관자도 악인에 속할까?
그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 답을 찾을 생각을 접어 뒀다.
“이런 말을 해도 별 위로는 안 되겠지만, 나도 너랑 비슷해.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져서 홀로 자랐거든.”
고독과 절망 속.
너무 이른 나이에 현실을 배워야만 했다.
“근데,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원망해 봤자 바뀌는 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했지.
BJ로서 썩 재능은 없었지만.
적어도 빈곤을 이유로 시청자들에게 후원을 강요하진 않았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시청자들이 원해서 주는 만큼만 받는 걸로 족했으니까.
“물론, 네가 처한 상황이 나보단 훨씬 더 암울하긴 해. 나야 뭐, 말 한 번 잘못하면 제물로 바쳐지거나 하진 않았으니.”
알고 있다. 둘 사이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쯤은.
그러니.
“교주를 죽이고 교단을 무너뜨려 줄게. 다시는 누군가 널 죽이려고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은 좀 그만 지어라. 보는 내가 우울해지려고 하니까.”
“…….”
안드리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해 줄 거라곤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다.
“뭘 그렇게 보냐?”
“아뇨. 그렇게 말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교주님…… 아니 교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요. 이상한 힘을 사용하거든요.”
“알고 있어.”
“예?”
“교주가 갖고 있는 힘도. 그걸 어떻게 하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전부 알고 있다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진지함과는 동떨어진, 너무나 가벼운 웃음이다.
그런데도 왜일까?
두근! 두근! 두근!
안드리아의 심장은 묘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평생을 걸어왔던 캄캄한 길에 작은 빛이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 속에서 몸부림 쳐왔던 소녀의 마음에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이후에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고용인과 길잡이. 그 두 가지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도착한 곳은 검은색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장소였다.
“여기예요.”
안드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고생했어.”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문을 살폈다.
철문의 표면에는 피로 그려진 룬어들이 가득했다.
‘안쪽에 펼쳐져 있는 허상 결계를 유지하기 위한 술식이로군.’
들어올 테면 얼마든지 들어와라 이건가?
‘재밌네.’
진혁이 곧바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쿵!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
[‘선택의 통로’에 입장하셨습니다.] [도전자는 2명입니다.]엄청난 양의 녹슨 열쇠들이 가득 차 있는 방.
이곳이 바로 선택의 통로의 첫 번째 관문이다.
“여, 여기는…….”
안드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황스러운 거겠지.
갑자기 보이는 모든 풍경이 바뀌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진혁이 안드리아를 안심시켰다.
그때였다.
치지지직!
잡음과 함께 화면에 흰색 탈을 쓴 인형이 나타났다.
붉은색 립스틱으로 양 볼에 빙글빙글 문양을 그려 넣은 게 꽤나 인상적이다.
마치, 다음에 나올 대사가 ‘I want to play game’일 것만 같달까?
[이곳에 잘 왔다. 산제물이여. 나는 교주님을 모시는 발세테르라고 한다. 흔히 ‘진행자’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지.]“응? 발냄새가 테러 수준이라고?”
[이이익! 발냄새가 아니라 발세테르란 말이다! 발세테르!]왠지 말할수록 더 오해의 소지가 넘치는 것 같은데.
“이름 한번 기억하기 어렵네. 그냥 발냄새라고 할게.”
진혁이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으하하암.”
진혁이 길게 하품을 했다.
아니, 진심으로.
왜 이런 곳에 있는 놈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헛소리를 줄줄 읊어대는 걸까?
낯선 곳에 오면 뉴비들처럼 꺅꺅대면서 작은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 주기라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진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됐다. 됐다고!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이 방안에 열쇠를 감춰 놨다. 제한 시간은 단, 5분. 그 안에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지 못하면 네놈들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벽에 으깨질 것이다!]발냄새의 엄포와 함께.
쿠쿠쿠쿠쿵!
갑자기 사방에 있던 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면에 제한 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작동했다.
거침없이 좁혀 오는 벽들.
열쇠를 찾지 못한다면, 녀석의 말대로 꽤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열쇠들 속에서 진짜 열쇠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푸하하! 지금이라도 엎드려 빌어라. 그렇다면 진짜 열쇠를 고를 수 있는 힌트 정도는 줄 수 있으니까.]발냄새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여깄네.”
진혁이 열쇠 더미 사이에서 한 개를 골랐다.
[웃기지 마라. 아무거나 고른 거겠…….]철컹!
문이 열렸다.
[어, 어떻게……?]두 눈이 터질 듯이 팽창한 발냄새가 화면을 움켜잡았다.
거, 캠에서 얼굴 좀 떼라.
가까이서 보니까 와꾸 한번 살벌하네.
“대충 찍었어.”
[뭐, 뭐라고!? 이 많은 것 중에서 찍었다니. 그걸 믿으라고 한 소리냐?]“믿기 싫음 말고.”
발냄새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동안 진혁과 안드리아는 두 번째 관문에 입장했다.
이번에는 투명한 유리 주사기가 잔뜩 있는 방이었다.
바로 그때.
푸슉!
벽에 있던 환풍구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곧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후후. 방금 너희들이 마신 연기는 시간이 지나면 혈관이 모조리 녹아 버리는 극독이다.]어느새 평정을 회복한 발냄새가 입을 열었다.
“도, 독이라고요?”
안드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다고 하네.”
반면, 진혁은 심드렁한 얼굴로 맞장구쳐 줬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서른 개의 주사기들.
이 중에 단 하나만이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다. 나머지는 꽂는 즉시 처참한 몰골로 죽게 되는 독약들이고.
[힌트를 하나 주자면…….]“필요 없어.”
진혁이 망설임 없이 주사기 하나를 골라 팔에 꽂았다.
쭈욱!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갔다.
[야이 새꺄. 힌트 좀 듣고 나서 골라!]결국, 참다못한 발냄새가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