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오물을 먹는 항아리
“이, 이게 대체…….”
교주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죽었……는데. 살아났어. 죽었는데. 분명히 죽었는데.”
당황한 건 안드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진혁은 태연하게 어깨와 허리를 어루만졌다.
“어우. 요단강 반쯤 건넜더니 허리가 다 뻐근하네.”
꽃밭이 보이고 아름다운 미녀들이 넘어오라고 노래를 부르기에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다.
노래가 그리스시대 노래여서 망정이지, 트로트였으면 흥에 취해 그대로 따라갔을 거다.
‘마왕의 저주는 이걸로 사라졌군.’
진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마왕을 만나 히든 퀘스트를 받는 것부터.
교주의 성유물을 낭비하고 동시에 ‘별의 가호’를 이용해 마왕으로부터 받은 저주를 푸는 것까지.
모든 게 계획했던 그대로였다.
‘마도서의 시전 시간도 딱 맞췄어.’
더 이상 고유 능력이나 스킬을 사용할 순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힘을 잃은 건 성물을 사용해 버린 교주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완전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셈이지.’
검투장의 주인은 각종 무기에 능통했고.
광산의 주인은 힘 하나만큼은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반면, 교주는 성물을 이용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지만,
마력을 모조리 쏟아 부어 성물이 텅텅 비어 버린 이상, 본신의 힘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네놈! 네놈 대체 뭐냐? 어떻게……!”
교주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거 처음 봐?”
“그거야 당연하지!”
“뭔 교주가 부활도 못 해? 너희들 그럴 바엔 차라리 날 믿지 그러냐?”
‘고인물교’라고.
믿으면 정신이 좀 이상해지긴 하지만, 오래오래 살아남을 순 있다. 게다가 가끔 부활도 하고 눈에서 레이저도 나가고 하는데. 어때? 관심 좀 있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교주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은 무식하게 생긴 외과용 칼을 집어 들었다.
이건 거절의 의미겠지.
“후회할 텐데.”
피식 웃은 진혁이 자세를 낮췄다.
스릉!
어느새 오른손엔 붉은 빛을 띤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카아아앙!
수술 칼과 단검이 교차했다.
심장을 노린 공격을 튕겨낸 진혁이 곧바로 상대의 허벅지를 노렸다.
푹!
적중이다.
단검이 제법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아아아!”
교주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뒤쪽에서 무게나 잡고 있는 놈이 최전선에 나온 순간부터 이 싸움의 승패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딱 한 가지.
교주에게 이 상황을 뒤집을 만한 수단이 있긴 하다.
물론.
‘그것마저도 내가 원하는 거지만.’
진혁이 교주와 항아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슬슬 도박수를 던질 때도 되지 않았어?
이대로 가면 죽을 거라는 건. 누구보다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진혁이 계속해서 상대를 도발하며, 조금씩 궁지에 몰아 넣었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말라 죽을지 아니면…….
“빌어먹을.”
결국, 교주가 결정을 내렸다.
[5층의 교주가 Lv10 ‘희생의 제물’을 발동합니다!]교주의 심장에서 사람의 손아귀 형상을 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연기로 이루어진 기분 나쁜 외형.
“마력이 부족하다면……. 보충하면 그뿐이다!”
그렇다.
자신의 신도를 제물삼아 성물에 마력을 보충하는 방법.
이것이 교주가 갖고 있는 마지막 히든 카드였다.
쇄애애액!
손아귀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전투라곤 해본 적 없는 안드리아로선 당연히 반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아……?”
안드리아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을 움켜잡은 손이 보인다.
연기가 더욱 짙게 일렁였다.
“네 마력을 바쳐라. 미천한 종아!”
아무리 작은 마력이라도 서로 간에 마력이 바닥난 상황에선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터.
하지만.
“페트리아 드 아메…….”
마력을 흡수하기 위한 룬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페테리아 드 아메리오스. 테오 파 베리시오.”
낯익은 또 하나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진혁이었다.
“……!?”
교주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혀까지 깨물 뻔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 어떻게 룬어를…….”
“고대 룬어 정도야 뭐, 기본이지. 요즘 다들 3개 국어 정도는 하지 않아?”
그보다 어려운 건, 수많은 주문 중에 어떤 걸 발동할지 처음 입모양만 보고 예측한 거지만.
교주 입장에선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주문을 선점하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쿠쿠쿠쿠쿠!
‘오물을 먹는 항아리’가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시전자의 명에 따라 대상을 먹어치우기 위해서.
“히이익!”
교주가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체면조차 모두 내팽겨 던진 채 전력을 다해 도망을 치려 했다.
하지만,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손들이 훨씬 더 빨랐다.
콰콰콱!
손들이 교주의 몸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머리와 뺨, 허리와 어깨 마지막으로 다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포획이었다.
“아, 안 돼! 안 돼!”
교주가 마구 발버둥을 쳤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발로 책상과 바닥을 차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다.
물론. 모두 헛된 몸부림일 뿐이다.
손아귀는 먹어치워야 할 대상을 결코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
카카카칵!
돌로 만든 바닥 위로 열 줄기의 손톱자국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끄아아악!”
교주의 몸이 완전히 항아리 속으로 집어 삼켜졌다.
우드득!
콰득!
콰드득!
이후에 들리는 건 뼈와 살이 사정없이 으깨지는 섬뜩한 파육음이었다.
수많은 신도들을 부리며, 마왕의 수족으로 살아 왔던 것치곤. 너무나 처참한 말로다.
아니, 사람들을 산 채로 태워 버린 것 치곤 너무 편히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느낀 시간이 기껏해야 30초도 안 될 테니까.
진혁이 차게 식은 눈으로 교주의 최후를 바라봤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직까지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안드리아가 있었다.
“저, 저…… 산 건가요?”
“알면서 뭘 물어?”
“그, 그렇지만…….”
안드리아가 토끼눈을 뜬 채 자신의 몸을 어루만졌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하다는 얼굴이다.
“그보다 뭐 이상한 게 느껴지지 않아?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가볍다거나? 힘이 넘친다거나?”
“예? 아. 그러고 보니…… 뭐랄까? 엄청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에 활력이 돌아요.”
‘역시, 이렇게 되는군.’
교주는 죽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5층을 정복했다는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직 정신병동의 보스는 죽지 않았으니까.
‘희생의 제물의 발동되는 동안 교주가 죽음으로써, 성물은 새로운 주인을 정한 거겠지.’
다시 말해.
현재 정신병동의 새로운 보스 몬스터는 안드리아가 된다는 뜻이다.
‘슬슬 본인도 자각할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아……!”
안드리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탑의 시스템에 의해 지금 느끼고 있는 활력과 힘이 무엇 때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계승(繼承) 효과.
정신병동의 주인이 새롭게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오직 나에게 복종할 것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보스를 죽이고 층을 정복하는 것만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길 테지만.
‘나는 달라.’
고인물은 정석을 추구하지 않는다.
더 큰 이득과 자극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종류이건 간에 가리지 않았으니까.
그게 고인물이 탑을 오르는 방식이었고.
그게 고인물이 탑의 정상을 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까 전에 그랬지. 가장 소중한 이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이곳에 버려졌다고.”
“네. 분명 그렇게 말했죠.”
“이제 그 시간은 끝났어. 적어도 5층에서는 그 누구도 너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거야.”
더 이상 파리 목숨처럼 살아가는 신도가 아닌, 막강한 마력과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한 층의 지배자.
그것이 안드리아가 앞으로 살아갈 위치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웃으면서 살아라.”
“고마워요. 정말로…….”
안드리아가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까지 겪어 왔던 온갖 설움과 고통들이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간 듯싶었다.
이미 ‘염혼의 낙인’으로 인해 결코 배신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글쎄.
굳이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해도 안드리아가 배신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자유를 찾아 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할 건 해야겠지.
“난 말로만 하는 감사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진혁이 무언가 기다리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안드리아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결연한 눈동자가 진혁을 향했다.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그녀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제 이름은 안드리아. 이 병동의 주인입니다.”
안드리아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를 비롯한 이 병동의 모든 존재들은 당신을 따를 것이며, 당신이 요구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이행할 겁니다. 설령, 그 요구가 상층의 지배자에게 거역하는 것일지라도.”
그리고 진심을 담아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5층 ‘정신병동’의 보스 몬스터 ‘안드리아’가 충성을 맹세합니다.] [‘광산’과 ‘검투장’이 해방됩니다.] [시련의 탑 6층이 개방됩니다!] [다음 층을 정복할 때까지 남은 시간: 89D 23h:59m:59s]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층의 개방과 함께 오르는 레벨.
상태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5층의 힘은 먼 훗날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미래를 생각하면 아래층의 조력은 반드시 선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이번엔, 진혁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레이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보상을 향해서.
[당신은 최초로 보스 몬스터의 충성을 받아냈습니다.] [특수 아이템 ‘경계를 허무는 거울(오버랭크)’을 획득하셨습니다.]이럴 수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또 엄청난 게 튀어나왔다.
***
5층 정복.
그 사실에, 세계는 또다시 환호했다.
이번에도 탑을 정복한 주역은 한국의 랭커, 강진혁이었다.
-타코야끼: 진심. 이쯤 되면 각 나라 대통령들 강진혁한테 표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님?
-오른손에 흑염룡: ㄴㄴ. 이쯤 되면 대통령 자리를 넘기는 게 맞지. 표창은 뭐 하러 받누? 국 끓여 먹게?
-인덱스TM: 난 공략 영상이나 얼른 보고 싶어 죽겠다. 어떤 방법으로 클리어 했는지 ㅈㄴ 궁금함. 물론, 편집본이긴 하겠지만.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 속.
모두의 기대가 담긴 영상이 업데이트되었다.
[관리자가 눈앞에서 탈주한 썰 푼다]자극적인 제목에 시련의 탑 커뮤니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러자 진혁과 ‘선택의 통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워낙 촉박한 시간과 거지같은 난이도로 인해 악명이 높았던 장소.
하지만, 고인물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힌트조차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진혁은 순식간에 관문들을 돌파해 버렸다.
보면서도 어이가 없는 광경이다.
실제로도 어이가 없었고.
결국, 관리자는 탈주해 버렸다.
분노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가득 찬 채.
-인덱스: 앜ㅋㅋㅋ ㅁㅊ. 어그로가 아니라 진짜로 관리자 탈주했는데?
-고인물감별소: 와 진짜 얼마나 썩어야 저런 게 가능할까?
-책상위에 두루마리휴지: 난다 긴다 하는 고인물들 죄다 찍소리도 못 하는 거 보면, 저 사람이 유일할 것 같은데?
-새영언환: 하긴, 강진혁은 인생 2회차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긴 하지.
-방구석김씨: 겨우 2회차? 저 정도면 999회차 수준임. 물론, 난 무한코인 줘도 못 할 듯.
-백수위에트수: 캬아. 진짜 믿고 보는 플레이어네. 플레이 영상 진짜 시원시원하다. 아예 노빠꾸잖아!
-최우진: 저 정신병동에서 생존해 온 플레이어 중 하나입니다. 그 끔찍한 지옥에서 죽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진혁 플레이어님 덕분에 전부 살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은 밤이 되고 새벽이 깊어지도록 멈출 줄 몰랐다.
동시에 인터넷에선 하나의 밈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위에 고인물이 있고.
고인물 위에 석유와 화석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의 재롱잔치를 구경하는 진혁이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