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3)
93화. 각자의 일상
그 흔한 장식품 하나조차 없는 쓸쓸한 방.
TV에선 연신 5층을 공략한 영상과 강진혁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또 저 녀석인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천유성이 중얼거렸다.
복잡한 감정이 배어 있는 혼잣말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넘어야 할 상대와의 격차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상대의 검술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가장 넘고 싶은 상대와 싸우기 위해서 그 상대의 기술을 배운다라…….’
일종의 모순이다.
자신은 결코 그러한 방법으로 이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상대를 닮지 않고선 결코 그 간격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기에 도달한 결론은 하나.
승리의 미주를 마시기 위해선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쳐야 한다는 것이다.
달그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식기가 움직였다.
치킨과 피자, 크림새우와 양장피 그리고 맥주와 소주가 각 2병씩.
모두 과거 진혁이 먹방을 위해 준비했던 메뉴 그대로였다.
그리고 테이블 한켠에 있는 태블릿 PC에는 진혁이 과거 뷰튜브를 했던 영상이 순차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형님들! 오늘 할 콘텐츠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입니다. 티모로 1:5 펜타킬 찍는 모습, 한번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 티확찢이요? 자신 있으면 어디 저격해 보세요. 아주 그냥 콧구멍에 독버섯을 넣어드릴 테니까.]생활 방식과 행동, 식습관은 물론.
녀석이 했던 모든 게임과 콘텐츠까지 모조리 모방하고 답습한다.
의대생인 천유성에게 있어 효율적인 학습 루트를 설계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영상의 핵심은 티모인가.’
[흐흐흫흫하?K하하하?K하?K하! 정찰대의 규율을 무시하지 마세요! 캡틴 티모!]티모.
티모라…….
천유성이 모나미 펜을 잡고 수첩에 끄적거렸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뒤, 별 하나를 추가한 건 덤이었다.
‘반드시…… 이긴다.’
치킨을 한 입 베어 문 천유성이 비장한 얼굴로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띵동!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띵동!
당연히 천유성은 무시하려고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누군지도 모르는 방문객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현관문이 통째로 잘려 나갔을 땐, 더 이상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카가가칵!
고속으로 그어진 검격.
쇠가 잘려나간 자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하하. 실례 좀 하겠습니다.”
능글맞게 생긴 금발의 외국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네놈은!”
“본명은 따로 있습니다만, 편하게 가웨인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가……웨인?”
“예. 저희 쪽에서는 보통 그렇게 불러서요.”
가웨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천유성이 사는 곳을 훑었다.
“흠. 이건 좀 의외네요. 언노운 씨가 사는 곳 치곤 너무 좁고 협소하달까요? 5성급 호텔까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피스텔이 아닌 좀 더 품격 있는 곳을 예상했습니다.”
언노운?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언노운이라고?’
가웨인의 말에, 천유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그러나 곧 이 일의 전말을 깨달았다.
이런 장난질을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강진혁 이 씹어 먹을……!”
천유성은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흐음. 지금 다른 사람 찾으며 여유부릴 때가 아닐 텐데요?”
어느새 예리한 검을 꺼내든 상대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
같은 시각.
영등포의 신세계 백화점 앞에 있던 진혁은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마치, 아주 작은 실지렁이가 고막 주위를 왔다갔다는 기분이다.
“그거야 당연히 누가 욕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옆에 있던 엘리스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 누가 내 욕을 해? 나만큼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쯧쯧. 뱀파이어 중에서도 너처럼 독종은 본 적이 없는데,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이것 봐라?
요즘 잘해 주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그냥 돌아갈까 우리? 백화점이고 나발이고 종일 던전이나 도는 게 모처럼의 휴식에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진혁이 단박에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엘리스의 목소리가 대번에 뾰족해졌다.
“아. 왜 치사하게 그걸 건드리는 건데!”
“왜 건드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두 개가 있거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역지사지란 거야. 말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심정을 생각하란 뜻이지.”
“여, 역지사지 같은 소리하네. 네가 제일 다른 사람 생각 안 하잖아!”
으음.
묘하게 논리적이군.
괜히 수천 년을 살아온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성어가 바로 내로남불이라는 건데. 이 모든 규칙은 나 빼고 다른 사람한테만 해당한다는 뜻이야.”
“그건 애초에 성어도 아니잖아!”
“내가 마음에 들면 성어야.”
성어가 별거냐?
다수가 감탄하고 공감하면 그게 성어지.
잘 봐라.
이거 100년 뒤에는 당당하게 한자까지 붙어서 공무원 시험에도 나올 테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정당하게 따 낸 대가야. 치사하게 이것 가지고 협박하면 안 되지…….”
엘리스가 가끔 안드리아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진혁은 엘리스에게 서울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약속했다.
보스가 살아가는 법.
보스의 하루 일과.
보스의 말투 등등.
일종의 ‘보스학 개론’이다. 엘리스는 그걸 가르치는 교수인 셈이고.
“특별히 한 번만 봐줄 테니 그만 토라져라. 가뜩이나 관리해야 할 직원들 수가 늘어서 골치 아프니까.”
검은 까마귀 길드를 맡겼던 김희웅과도 한번 연락을 해 봐야 한다.
탑을 오르고 성장하는 거에 집중하느라 반쯤 방치해 뒀었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살펴봐야겠지.
“정말 내 마음대로 쇼핑해도 된다고 했다?”
“응. 우리 엘리스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리고 그 말을 그토록 후회하게 될 줄은…… 말을 한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잠시 뒤.
백화점에 들어간 엘리스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풀겠다는 듯 그야말로 폭주를 시작했다.
“전부 사지.”
“저, 전부라면……?”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백화점에 있는 모든 걸 사겠다는 뜻이다.”
“야 이…….”
진혁이 목구멍에서부터 솟구친 쌍욕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진심으로 이 박쥐는 돈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무리 경제 관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냈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돈을 공기 같은 공공재로 보는 수준이다.
“손님. 죄송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반드시 손에 넣는다. 그것이 물건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간에 가리지 않고.”
엘리스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로 황금빛 운무가 일렁였다.
진조의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되려 하는 것이다.
촤르르륵!
유리 선반 위로 씨알 굵은 다이아몬드가 쏟아졌다.
보석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헉?”
직원의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련의 탑의 등장이니 경제 위기니 하며 매출이 급감하는 지금.
고작해야 몇 백만 원 쓰면서 큰 소리 치는 작은 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골치 아팠는데.
그 모든 걸 가볍게 짓밟아줄 초 VVVIP가 등장했으니까.
승진? 보너스?
그런 건 문제도 아니다.
‘반드시 잡아야 돼. 이 손님.’
그렇게.
영등포 역사에 오래도록 회자될 재신(財神)이 강림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점…… 지점장……님! 지금 바로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어딘가로 향해 달려갔다.
반면, 진혁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한국이 망한다면, 아마 네 돈지랄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해서일 거다.”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를 보며 안쓰럽다고 생각했었다.
생수 하나 사려면 주머니에서 뭉칫돈을 꺼내는 걸 봤을 땐, 눈시울이 붉어졌고.
헌데.
이제 보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국가급 인플레이션을 창조할 수 있는 재앙이 있었으니.
“걱정 마라. 인플레이션이라는 게 뭔지 모르지만, 그게 문제가 된다면 그것마저 사 버릴 테니까.”
하아.
“내가 말을 말자. 말아.”
더 이상 말해 봤자 나만 손해다.
***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진혁과 엘리스가 찾은 곳은 인근에서 제법 유명한 술집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를 시킨 진혁은 음식이 나오는 사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레벨업을 통해 얻은 스탯을 분배하는 거다.
띠링!
상타창이 활성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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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나이: 27세
레벨: 30
힘 19 민첩 19 체력 19 마력 74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보유한 스탯 포인트: 9
보유한 코인:1,283,288
직업: 없음.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스킬: Lv6 ‘불의 원소’, Lv5 ’탐식의 눈’, Lv4 ’교감’, Lv4 ‘염혼의 낙인’, Lv4 ‘독식’, Lv4 ‘얕은 호흡’, Lv8 ‘빙하조형(氷河造形)’, Lv4 ‘데이라이트’, Lv1 ‘거인의 손아귀’, Lv3 ‘추혼검(追魂劍)’, Lv1 ‘이중 첩자’, Lv1 ‘진태청화랑심법(眞太淸花郞心法)’, Lv2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 Lv1 ‘흐릿한 체취’, Lv1 ‘정신방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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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와 광신도들을 처리하고 얻은 적응형 스탯이 무려 ‘68’.
거기에 레벨도 3개나 올랐다.
‘다시 봐도 황당한 속도긴 하네.’
간극을 모으느라 한 달을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레벨업이다.
길드 차원에서 독점 던전을 섭외해 주고 몰이사냥을 해서 키워 주는 랭커들조차 30레벨 대에 불과했으니까.
‘스탯을 포함하면 사실상 나보다 스펙이 좋은 플레이어는 없는 셈이지.’
거기에 고인물로서의 지식과 경험까지 있으니 그 격차는 더더욱 벌어졌으리라.
좋아.
진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게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스탯은 깔끔하게 20으로 맞추고 남은 건 전부 마력에 투자하면 되겠군.’
[힘이 19 → 20으로 상승합니다.] [민첩이 19 → 20으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9 → 20으로 상승합니다.] [마력이 74 → 80으로 상승합니다.]강박관념이 있는지 몰라도 끝자리가 딱 떨어지면 뭔가 기분이 좋다.
게다가 이번에 올린 영상도 조회수가 1억은 찍을 것 같으니, ‘코인 환전 쿠폰’을 쓰면 완벽하게 마무리될 듯싶었다.
그때였다.
“127번 테이블 손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직원이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 테이블을 갖고 나타났다.
안주용 메인 요리 두 개와 500cc 짜리 호가든 2잔. 얼음물과 각종 샐러드는 따로다.
“이게 곱창이랑 연어라는 건데, 이렇게 먹는 거야. 잘 봐.”
진혁이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곱창 특유의 느끼함은 매콤한 소스가 적절하게 잡아 주었고.
거기에 녹진녹진하고 두툼하게 썬 생연어에 타르타르소스와 양파를 잔뜩 얹어 먹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건, 술을 안 마시고 싶어도 안 마실 수가 없다.
한 입 가득 입에 쑤셔 넣은 엘리스 역시 두 눈을 반짝였다.
“이. 이 고기는 무엇이란 말이냐? 어떻게 이런 맛이……!”
음.
뭐라고 말해야 하나?
“똥X인데.”
“뭐라고?”
“소 항문 쪽 창자로 만든 요리라고.”
“농……담하지 마라. 기분 좋게 먹고 있는데, 그게 무슨 입맛 떨어지는 소리냐?”
“내가 먹는 거 가지고 농담하는 거 봤냐?”
엘리스가 진혁의 눈빛이 장난이 아님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깊은 절망에 빠졌다.
“먹어야 된다. 아니다, 고귀한 귀족이 어떻게 소의…… 그래도 그 맛은 여태껏 먹어 봤던……. 아니야. 참아. 참기는 개뿔. 으아악!”
엘리스는 이후부터 오랫동안 곱창과 씨름을 하며 고뇌했다.
그리고 엘리스가 자존심과 식욕 사이에서 절망하는 사이. 진혁은…….
‘경계를 허무는 거울이라.’
5층에서 얻은 대망의 특수 아이템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