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6)
96화. 6층, 엘프의 숲
[6층에 입장하셨습니다.]암전되었던 시야가 밝아지자, 눈앞에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과연, 시련의 탑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답네.’
서늘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
무엇보다 수려한 자연 경관이 자아내는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여기 나무 아래로 와! 그래. 바비큐랑 맥주랑 세팅 다 해 놨어.”
“6층에 있는 ‘구름 솜사탕’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우리 한번 먹어 봐야지?”
“크으. 마을 상점에서 꽤 재밌는 아티팩트들도 많이 팔고 있어. 이럴 때 코인 쓰지 언제 또 쓰냐?”
먼저 6층에 온 플레이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들고 있었다.
뭐랄까?
정신없이 싸우며 탑을 오르던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는 기분이랄까?
플레이어들이 6층에만 오면 나태해진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놀고 즐기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엘프의 숲은 자연에 취해 신선놀음이나 하는 곳이 아니다.
오직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들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지.
‘그걸 눈치 챈 놈들은 극소수일 테지만.’
애초에 진심으로 강해지길 원하는 고인물들이라면, 이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엘프들을 찾기 위해서 숲속을 헤매고 있는 중일 테니까.
‘그럼, 나도 슬슬 가 볼까.’
진혁은 플레이어들을 지나쳐 숲속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
스타팅 포인트로부터 3시간쯤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숲이 복잡해졌다.
이곳은 일종의 경고다.
여기까지는 자유롭게 와도 좋지만 이후부터는 엘프들의 영역이 시작되니 더 이상은 접근하지 말라는.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게 나무들을 배치해 둬도 소용없다. 심지어 그 나무들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새롭게 지형을 형성하더라도 소용없는 건 마찬가지다.
진혁은 이미 엘프들이 길을 찾는 방법까지 익혀 둔 상태였으니까.
“스읍.”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온갖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상큼한 풀내음과 과일의 달콤한 향이 그대로 전해졌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흙냄새다.
진혁은 아주 희미하게 배어 있는 쌉쌀한 흙내음을 구분했다.
‘왼쪽이로군.’
왼쪽에 미묘하게 다른 향이 배어 있다.
진혁이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버섯의 위치와 풀의 모양, 나무의 나이테까지.
이후에도 계속에서 갈림길이 나왔지만, 진혁은 거침없이 엘프들의 표식을 식별하며 더욱더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선 그 모든 걸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뾰족한 귀가 인상적인 종족.
바로, 숲의 주인인 엘프였다.
‘어떻게 인간이 저 방법을 알고 있는 거지?’
엘프 마을의 레인저인 실비아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인간들을 막기 위해 고심해서 만들어 둔 여러 가지 방비책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간파당하고 있지 않은가?
‘흙냄새를 구분하는 건 오랫동안 숲에서 생활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야.’
버섯의 위치나 풀의 모양 등도 내부인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종류였다.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그런 사소한 것들엔 아예 관심조차 갖질 않았을 테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하프 엘프라도 태어난 건 아니겠지?’
외모만 아니었다면, 인간이 아니라 엘프라고 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상대가 길을 찾는 방식은 엘프의 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바로 그때.
인간 남자가 결계 앞에 도달했다.
‘됐어!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여기서 끝이야.’
저 앞에 펼쳐져 있는 건 엘프들의 전용 결계였다.
하이 엘프어로 쓰어진 ‘허상 결계’에 들어갈 경우 탈출 따위는 불가능했다.
무수히 펼쳐져 있는 환영 속에서 일주일 정도 제자리를 맴돌다 보면 결국엔 탈진해 버릴 터.
그렇게 의식을 잃은 인간을 결계 밖으로 데려다 놓으면 그걸로 실비아의 임무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으음. 여기 하이 엘프어는 이렇게 쓰는 게 아닌데. ‘에테 타마로스’는 수동태인데, 능동태로 적어두다니. 쯧쯧. 어느 엘프인지 몰라도 문법 시간에 어지간히 졸은 모양이네. 이래서야 원래 결계 능력의 50% 정도밖에 발휘되지 못하겠어.”
나무에 새겨진 하이 엘프어를 보던 인간 남자가 혀를 찼다.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로 틀린 부분을 고쳐 주기까지 했다.
화끈하고.
실비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직 견습 레인저인 그녀로서는 하이 엘프어가 어려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대…… 대체 뭐야 저 인간!’
***
‘고맙게도 풋내기 엘프가 붙었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숲의 경계에 도달했을 때부터 나뭇가지를 타고 따라오던 엘프의 존재쯤이야 당연히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도 숲의 종족이라고 은신 자체는 제법 뛰어난 편이었지만.
그 어설픈 자신감과 실력 덕분에 오히려 상대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미끼는 충분히 뿌려 뒀고…….’
이 정도면 상대에게 확실한 첫인상은 줬을 거다.
그렇다면 다음은 꽁꽁 숨어 있는 상대를 불러낼 차례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준비해둔 식재료와 조리 기구들을 차근차근 꺼냈다.
[Lv1 ‘이세계 식당’이 발동됩니다.]미슐랭을 돌아다니며 얻은 스킬. 그리고 그 스킬들을 융합해 나온 상위 버전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러자 어설펐던 진혁의 손놀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야채와 과일을 다듬는 칼솜씨는 거의 예술에 가까운 경지였다.
‘아……름다워.’
나무 위에 있는 실비아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설마……?”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깜빡했는데, 이 냄새. 그리고 저 요리 특유의 모양.
틀림없다.
저건 ‘고기’다.
실비아가 단숨에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감히, 신성한 엘프의 숲에서 고기 요리를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활시위를 당긴 채 고함을 치는 모습.
분노가 서린 얼굴에선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음.
“이거 고기 아닌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고기 아니라고 이거.”
“분명히 제 눈으로 봤는데, 그걸 믿으라는 말인가요?”
“못 믿겠으면 가까이 와서 확인해 보든가.”
“그럴 리가…….”
실비아가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진혁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어라?”
실비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냄새와 모양은 고기와 너무나 흡사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고기가 아니었다.
흰 콩과 견과류 그리고 신선한 야채로만 만든 음식.
“콩고기라는 거야. 우리 쪽에서도 차세대 대체 식품으로 꽤 각광받고 있지.”
대체 식품.
웰빙이나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 혹은 동물들의 권리나 개인의 신념 등을 이유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실제로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비욘드 미트’라는 회사는 주가가 하늘을 뚫고 고공 행진하는 중이었었고.
‘당연히 고기를 싫어하는 엘프들에게도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 주겠지.’
그래서 준비해 봤다.
최고의 조리 스킬을 사용해 까다로운 엘프들의 입맛조차 충족시켜 줄 특별식을.
“한번 먹어 봐.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꽤 자신작이거든.”
“정말…… 고기가 아닌 거예요?”
“음식 가지고 장난치거나 하진 않아. 엘프들이랑 원수진 것도 아니고. 뭐 하러 싫어하는 고기를 억지로 먹이냐?”
진혁의 말에 실비아가 천천히 활을 내렸다.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콩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작은 입이 연신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
“세상에 이런 맛이…….”
실비아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음식은 생전 처음 먹어 봤으니까.
‘너무 맛있어.’
부드러운 콩과 각종 채소가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자아냈다.
올리브유가 적당히 들어가서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데다.
특별히 제작한 소스로 마무리까지 했으니, 아무리 검소하게 사는 엘프라도 식욕이 동할 수밖에 없다.
[3계급 레인저 ‘실비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실비아’가 당신에게 활을 겨눈 것에 대해 미안함 감정을 느낍니다.]호감도의 상승과 반대로 함부로 상대를 판단 것에 대한 미안함이 전해졌다.
모두 진혁이 계획했던 대로였다.
엘프는 은원 관계만큼은 확실히 하니까.
그리고 그 예상대로.
“죄송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실비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한 행동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후회스러웠던 탓이다.
여기서 사과를 받아주면 그건 하수다.
오히려.
“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이야. 애초에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온 내 잘못이기도 하고.”
진혁이 일부러 실비아의 죄책감에 무게를 실어 줬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고수지.
“아니에요. 이건 제 잘못이에요.”
실비아가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죄의 의미로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 드릴게요.”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겠지.
그걸 위해서 이토록 순진무구한 가면을 쓴 채 연기를 해 왔으니까.
“그렇다면……. 엘프의 마을을 한번 볼 수 있을까?”
“예? 저희 마을을요?”
“사실, 내가 사회학과 학생인데. 다른 종족의 삶을 이해하는 논문을 쓰고 있거든. 인간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금역에 들어갈 기회를 준다면, 나로서는 굉장히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참여 관찰법이라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곳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Lv4 ‘교감’이 발동됩니다.]진혁이 은근슬쩍 교감 능력을 사용했다.
여러 차례 사용하며, 레벨을 올린 성장형 스킬은 이제 타인을 친한 친구로 여길 정도로 강력해진 상태.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마을의 방문이란 말에, 살짝 난처한 기색을 보이던 실비아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일주일 뒤에 저희 마을에 축제가 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콩고기를 대접할 수 있다면 장로님들이나 마을 엘프들도 굉장히 좋아할 거예요.”
일주일 뒤라…….
딱 좋은 타이밍이다.
“알겠어. 그럼 일주일 뒤, 다시 이곳으로 올게.”
“네. 알겠어요.”
진혁을 보내려던 실비아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급히 외쳤다.
“맞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강진혁이라고 부르면 돼.”
헷갈리지 말고 잘 기억해라.
티모대령이 아니라 강진혁이다.
“저는 실비아예요. 엘프 3계급에 위치한 레인저를 담당하고 있구요.”
실비아 또한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3계급이면 하위 엘프에 속하겠군.
“실비아. 기억했어. 다음에 올 땐 더 맛있는 거 많이 가지고 올게.”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가벼운 작별 인사를 끝으로 진혁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웅!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플레이어 김기태 님으로부터 화상 통화가 왔습니다.]김기태였다.
‘준비가 끝났나 보네.’
미궁을 다시 개방할 재료들을 모으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의의로 빨리 끝낸 듯싶었다.
그 정도로 다급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수락을 하자 곧바로 김기태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강진혁 플레이어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장황하게 설명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시간이랑 장소만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1시간 뒤 3층 ‘멜타 언덕’입니다. 현재 있는 곳의 좌표를 말씀해 주시면, 공간 이동이 가능한 마법계열 플레이어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1차 전직과 히든 보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
마침내 회색 신전으로 갈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