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회색 신전 (1)
3층에 위치한 ‘회색 신전’.
이곳의 입구엔 신전을 관리하는 사제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플레이어들의 1차 전직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탑 내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활성화된 ‘전직 소개소’라고 할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사제에게 1차 전직에 관한 퀘스트를 받고 탑의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했다.
대부분 신전의 미궁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제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전 안으로 들어갈 경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궁이 내부에는 그리스 시대 가장 끔찍했던 괴물 중 하나가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무 차례 넘게 공격대를 전멸시킨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
[메두사의 은신처]이곳이 바로 싸울아비와 진혁이 공략하기로 한 미궁이었다.
바로 그때.
우우우우웅!
눈부신 빛과 함께 하늘에서 새하얀 섬광이 쏟아졌다.
공간 이동 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후우. 다 왔습니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진혁이 짧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건 진심이다.
정상적으로 이동했으면 꼬박 12시간을 걸어야 할 거리를 몇 초 만에 이동시켜 줬으니까.
이렇게 보면, 플레이어들이 전문적으로 마법을 배우고 전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쪽이 마법사로 전직하겠다거나 하는 생각 따윈 없었지만.
‘어차피 나는 스킬을 복사할 수 있으니.’
모든 스킬과 그 스킬의 상위 버전의 스킬까지 융합할 수 있는데 굳이 1차 전직으로 마법을 배워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처럼 눈앞에 있는 마법사한테 스킬을 복사해 버리면 되는데?
하지만 복사 조건을 확인한 진혁은 침음성을 뱉어야만 했다.
[복사 조건: 신장 160cm 체중 107kg. 심각한 탈모를 갖고 있는 남자는 38년간 모태 솔로입니다. 언제나 퇴근 후에 반기는 거라곤 어항 속에 있는 암컷 붕어 한 마리뿐. 그를 위해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아 주세요. 성공할 경우 그가 갖고 있는 고유 능력이나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꿀꺽하고.
진혁의 목을 따라 마른침이 넘어갔다.
“…….”
순간, 머릿속에 여러 후보군이 떠올랐지만, 그 누구도 적절한 선택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발록 모가지를 따오는 게 더 쉽겠네.’
아니면 드래곤 브레스를 맨몸으로 맞고 살아남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역대 복사 조건 중 가장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진혁이 손가락으로 미간을 붙잡았다.
유연화……를 잘못 소개해 줬다간 유천영을 비롯해 그 휘하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거다.
어디 그뿐이랴?
유연화한테 어퍼컷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아머드 고릴라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괴력을 떠올리자 진혁의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테레사는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니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스스로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만 같았다.
엘리스는…… 그냥 말을 말자. 스킬 하나 얻자고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으니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번 건 포기하자.’
진혁은 깔끔하게 단념했다.
그때.
“오셨군요.”
공간 이동을 감지한 김기태와 십여 명의 남녀가 다가왔다.
하나 같이 잘 갈무리된 마력을 갖고 있는 이들.
싸울아비 길드의 제2 공격대 플레이어들이었다.
‘과연, 이번에는 싸울아비 쪽에서도 제대로 이를 갈고 온 것 같네.’
싸울아비가 보유하고 있는 공격대는 총 11개.
그중에서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제1, 2 공격대 중 하나가 동원된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저는 제2 공격대를 이끄는 공대장 이영권이라고 합니다.”
훤칠한 키에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다가왔다.
등에 멘 직사각형 방패와 묵직해 보이는 도끼를 보니, 탱과 딜을 동시에 담당하는 듯싶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영권이라면…….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엘리스랑 곱창 먹을 때 TV에 나왔던 그 녀석이군.’
최근 5층의 ‘검투장’에서 꽤 두드러진 활약을 했던 플레이어.
비록 우승을 달성해 ‘자유’를 얻는 건 세계 정상급 길드의 랭커들이 차지했지만.
이영권 역시 시드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강한 적들을 상대로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실력과.
팀 단위의 전투에서 냉정하고 빠른 상황 판단으로 다수를 살린 통솔 능력까지.
제5공격대의 공대장이었던 이영권은 단숨에 메인 공격대의 공대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이 그 능력을 처음으로 평가받는 자리인 셈이다.
“강진혁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개인적으로 강진혁 플레이어님 뷰튜브 동영상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습니다.”
이영권이 상기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앞다퉈 말을 걸었다.
“서브 딜러를 맡고 있는 하연수라고 합니다. 이 미궁 정말 힘들었는데, 강진혁 플레이어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네요.”
“강 플레이어님이 있다면 미궁쯤이야 뭐. 가뿐하죠.”
“저, 저는 공격대 메인 힐러인데. 혹시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레이드에 강진혁 님이 온다고 하니 친구들이 다들 믿질 않아서…….”
“크흠! 사실 저도 한 장만…….”
“저는 팔짱 끼고 찍어도 되나요?”
마치, 최애 연예인을 만난 듯한 분위기다.
모두들 어떻게든 진혁과 한 마디라도 나누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친구 등록을 하거나 개인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무슨 팬미팅도 아니고.’
진혁이 과한 관심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국 2위 길드의 메인 공격대라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을 줄 알았는데.
정상급 랭커와의 연줄을 만들기 위해선 그런 건 얼마든지 던져버릴 수 있는 모양이다.
바로 그때 김기태가 한 마디 덧붙였다.
“명목상 공대장은 이영권이지만, 모든 결정권은 강진혁 플레이어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안에서 나오는 모든 부산물 또한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가지셔도 상관없습니다. 딱 한 가지. 공략에만 성공해 주십시오.”
한 마디로 모든 걸 줄 테니 싸울아비 길드가 이 미궁의 공략에 성공했다는 타이틀만 달라는 뜻이다.
그것도 전부 달라는 게 아닌. 강진혁이란 이름 옆의 한 자리만.
자존심과 이득을 모두 버리더라도 길드의 명예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한국 2위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까.
‘욕심을 부리면 근사하게 뒤통수를 날려 줄 계획이었는데.’
저렇게 주제 파악을 잘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으로 하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가 끝나는 대로 미궁에 들어가겠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혹시 하실 게 있으시면 지금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대충 시간이 어느 정도나 걸릴까요?”
“한 3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30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
이곳에 온 또 하나의 목적, 1차 전직.
신전 안쪽에 있는 석조 건축물에 흰색 로브를 걸친 사제들이 보였다.
진혁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낯선 이여. 이곳에선 본 적 없는 얼굴이군요.”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사제가 입을 열었다.
“1차 전직 때문에 왔습니다. 이쪽에 와야 관련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고 들어서요.”
“그런 이유라면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선 개개인에 맞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 법. 그럼, 묻겠습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검술이라면 검사를. 마법이라면 마법사를.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탱커나 힐러가 적합할 겁니다.”
사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직업들이 공개됩니다.]엄청나게 긴 목록이 나타났다.
‘진짜 세계관 하나는 미친 듯이 크다니까.’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직업은 그야말로 셀 수 없다.
방금 사제가 말했던 건 대표적인 예고, 그 외에도 비인기 직업이라든가 히든 직업 등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겠지만.
그러나.
“으음. 하나같이 재미없는 직업들밖엔 없네요.”
진혁은 따분한 듯 중얼거렸다.
검사, 마법사, 힐러, 궁수 등.
이미 부캐로 해 봤거나 그런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나 몬스터들과 지겹도록 싸워 봤다.
고유 능력과 스킬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뭐가 장점이고 단점인지 모조리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탑을 오르는 것도 좋지.’
인류의 미래가 달린 50층의 정복. 그 중요성이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하지만, 그것과 동급으로.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스릴과 재미다.
‘모든 게 똑같으면 그것만큼 심심한 것도 없어.’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고인물의 DNA엔 조금이라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이 세상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혁은 새로운 직업을 고르고 싶었다.
“비인기 순으로 정렬.”
명령어를 말하자 목록이 역순으로 정렬되었다.
화가
낚시꾼
3. 소설가
4. 결계사
5. 조각사
전투에 부적합한, 혹은 성장하기가 어려운 직업들이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그렇기에 여기 있는 직업들은 반쯤 사장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흠…….’
진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중에서 취향에 맞는 걸 찾아야 한다.
‘두 개 빼고는 전부 예술 계열이네.’
화가나 소설가도 나쁘진 않지만, 성장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 소설.
물론 훌륭하다.
허나 10년을 투자해서 완성하면 뭐 하나? 그 전에 인류가 멸망하든 탑이 정복되든 했을 텐데.
같은 이유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도 취향에 맞질 않았다.
그리고 조각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차원에서 위대한 조각사가 등장할 것만 같았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계사. 이걸로 하겠습니다.”
진혁이 결정을 내렸다.
“겨, 결계사를 1차 직업으로 삼으시겠다고요? 진심입니까?”
사제가 깜짝 놀라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까지 히든 직업 퀘스트의 조건을 묻기 위해 달라붙는 플레이어들은 넘쳐났지만.
비인기 직업을 하겠다고 한 플레이어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혁은 확신하듯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인기도 없고 다루기 까다로운 직업. 딱 제가 원하는 겁니다.”
결계라는 분야가 워낙 복잡하긴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의 이야기고.
‘고대 룬어와 하이엘프어까지 습득하고 있는 나에겐 도전 의지를 약간이나마 불태울 수 있는 수준이지.’
무엇보다 검술로 천유성을 놀려먹는 것도 재밌었지만.
결계로도 놀려먹으면 더욱 재밌을 것 같았다.
‘그 녀석도 결계에 꽤나 조예가 깊었으니까.’
그래.
이게 제일 큰 이유다.
“……알겠습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요.”
사제가 마지못해 검은색 스크롤 하나를 건넸다.
결계사로 전직하기 위한 요구 조건이 적혀 있는 스크롤이었다.
그런데 진혁이 스크롤을 받은 바로 그때였다.
웅성웅성!
갑자기 신전 쪽에서 시끄러운 잡음이 들렸다.
마력이 거칠게 부딪치는 건 틀림없는 신경전이다. 그것도 꽤나 강한 상대끼리.
‘뭐지?’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싸울아비 길드 외에도 또 다른 인물들이 있었다.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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