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회색 신전 (2)
날카로운 인상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상.
허리춤에 찬 일본도와 전신을 형형색색의 문신으로 뒤덮은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야 뭐.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된다.
저 녀석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너무나 뻔했으니까.
‘사무라이 길드라…….’
진혁의 미간이 기분 나쁘게 구겨졌다.
녀석들이 왜 이곳에 왔고 어째서 김기태는 화를 내고 있는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두 집단 사이에 목소리가 커졌다.
“여긴 저희가 소유하고 있는 던전입니다.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김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싸울아비에선 매번 실패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수에 넘치는 미궁을 품고 있기 보단 차라리 공략이 가능한 이들에게 넘기는 것이 인류에 이바지하는 길이지 않을까요?”
턱수염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이죽였다.
말은 정중하게 하고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물을 먹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뿌득!
김기태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나 별 다른 반박은 하지 못했다.
실제로 자신들은 계속해서 실패해 왔고, 대조적으로 사무라이 길드는 최근 들어 놀라울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흐음. 이상하네.”
진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끼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저…… 남자는?”
“가, 강진혁이다. 한국의 랭커 강진혁이야!”
“설마, 싸울아비 쪽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건 안 좋은데…….”
사무라이 쪽 플레이어들의 입에서도 작게나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이가 어수선해지자 선글라스가 재빨리 나섰다.
“이거 또 의외의 분이군요. 헌데,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들어보니 이쪽 전력이 부족해서 계속해서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말했죠. 물론, 기분이야 나쁘시겠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제가 볼 땐 그쪽 전력도 형편없어 보이거든요.”
뭐, 나름대로 끄적끄적 긁어모아 온 것 같긴 한데.
고작 그 정도 멤버로 메두사를 상대하려고?
다 합해 봐야 천유성이나 테레사의 반의반도 안 될 수준으로 자신감이 너무 과하네.
“아! 혹시, 장래 희망이 예쁜 돌석상이 되고 싶은 거라면 이해가 가네요. 저 안에 있는 메두사가 어우야. 아주 그냥 석상 수집가 뺨치는 수준이죠.”
진혁이 생긋 웃었다.
“지, 지금. 우리가 실력이 부족하다. 이런 뜻입니까?”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미달이이에요.”
부족한 건 살짝 아쉽다는 뉘앙스고.
너희는 한 트럭을 모아도 안 되는 뜻이다.
“미, 미달이라고?!”
“빌어먹을, 그걸 말이라고!”
진혁의 말에, 사무라이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크으.”
“역시!”
반면, 싸울아비 길드 쪽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 발언, 후회할 거야. 네놈이 아무리 낮은 층에서 설쳐 봤자. 우리 일본에는 시련의 탑을 30층까지 올라가 본 플레이어가 있다. 너희 따위와는 달리 ‘진짜’ 고인물이지.”
선글라스의 말투가 싸늘하게 변했다.
“30층에 가 본 플레이어가 있다고?”
“그래.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탑의 중층부. 그곳을 경험해 본 분이다. 그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탑을 정복할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일본이 말이다.”
선글라스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폈다.
미래에 대한 정보의 독식!
당연히 고양감이 차오르고 흥분을 감추기 힘들 수밖에.
하지만.
진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개소리도 정도껏이지.’
20층대부터 플레이어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뜬금없이 30층을 오른 고인물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일본에서?
그럴 리가 없지.
‘그래도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면, 적어도 저 녀석은 그렇게 믿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는 건 선글라스와 함께 있는 누군가가 귀여운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뜻일 거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하필이면 내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치다니.’
어떤 말로 사무라이 길드를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진혁이 ‘탐식의 눈’으로 플레이어들을 훑었다.
여러 개의 상태창이 순차적으로 점멸했다.
‘이놈은 아니고. 이놈은 아예 머저리고…….’
눈에 띄는 놈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진혁의 시선이 한쪽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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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야마모토 타케시
성별: 남
나이: 25세
레벨: 27
힘 16 민첩 26 체력 23 마력 32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25,853
직업: 음양사(陰陽師)
고유 능력: 반쪽 미래시(未來視)
스킬: Lv6 ‘거짓 예언’, Lv5 ‘미미한 교감’, Lv5 ‘음양천변(陰陽千變)’, Lv5 ‘식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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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거였군.
어떻게 상대가 그럴듯한 거짓말을 칠 수 있었는지 이제 알겠다.
‘반쪽짜리 미래시라…….’
숙련도에 따라 상층을 엿볼 수 있는 힘,
‘반쪽’이란 단어가 붙긴 했으나, 미래시는 고유 능력 중에서 나름대로 쓸모 있는 편에 속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단편적인 정보든, 혹은 쓸모없는 정보든.
어찌됐든 남들이 모르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건 단지 탑의 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일 뿐.
원하지도 않는 편린을 보는 것과.
실제 그 층을 보고 경험한 것은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진혁이 타케시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묘한 미소를 띠운 채로.
***
일본의 희망.
사무라이 길드가 새로 영입한 히든카드.
세계 100위 랭커 중 1인.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 타케시가 얻게 될 타이틀이었다.
미래를 보는 힘이야말로 시련의 탑을 오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으니까.
‘어차피 내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럴 듯한 정보를 던져 주며, 탑의 높은 곳을 가 본 고인물 행세를 한다면 상위 길드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타케시는 확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확신은 적중했다.
일본 최고의 길드라 할 수 있는 사무라이 길드에서 찾아왔으니.
타케시는 떨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탑의 30층을 가 봤노라고 말했다. 동시에 아직 누구도 모르는 탑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몇몇 경우는 틀렸지만, 타케시는 탑에 숨겨져 있는 굵직한 정보들을 맞힘으로써 사무라이 길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거짓말이 들통 나더라도 그건 먼 후의 일이야.’
그리고 들통 나면 또 어떠랴?
거짓을 현실로 만들면 그뿐.
길드 차원에서 지원을 해 준다면, 강해지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반쪽짜리 능력도 성장할 테고 결국엔 진짜 미래를 보는 랭커가 될 테지.
‘그래. 랭커가 별거 있어? 그 녀석들도 처음엔 다 약했을 거 아니야.’
사무라이 길드가 전폭적으로 밀어주는데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아이템. 경험치. 랭커.
무엇이든 말만하면 들어줄 텐데?
하지만. 승승장구하기만 하던 행보는 바로 지금 멈췄다.
강진혁이란 인물을 만남으로써.
‘……뭐지?’
타케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주위에 있는 플레이어는 자신을 빼고도 수십여 명.
하지만, 진혁은 다른 곳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저 미묘하게 뒤틀린 입꼬리.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미소다.
위험하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위장을 해 온 타케시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전신을 옭아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호오. 30층을 올라본 고인물이라니. 과연 엄청나네요. 각종 매체와 커뮤니티에서도 탑의 10층 이 상에 관한 정보는 거의 풀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진혁이 입을 열었다.
“잘 아는군.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지?”
선글라스가 더욱 기가 산 얼굴로 이죽였다.
“예.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그 정도 고인물이 있다면 당연히 세계적인 차원에서 밀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푸하하! 그래. 한국인 중에서도 말귀가 통하는 놈이 있었군.”
“별 말씀을. 그럼, 먼저가시죠. 저희는 뒤를 따르겠습니다.”
진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돌아가는구만.”
“화제의 랭커라더니. 진짜 고인물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는 것 봐.”
“역시, 한국의 일본의 10년 전 그림자에 불과하니까.”
서른 명의 일본계 플레이어들이 앞장섰다.
딱 한 명.
“…….”
타케시만큼은 무언가 걸리는 듯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 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곧이어 사무라이 길드에서 온 플레이어 전원이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당황한 건 싸울아비 길드 쪽이었다.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설마, 이자들이랑 같이 가자는 말씀입니까?”
김기태와 이영권이 동시에 외쳤다.
“물론 함께 가야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 저희가 양보하지 않았으면, 김기태 씨가 저 사람들 미궁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을 거 아닌가요?”
“무, 물론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서든 막았을 겁니다.”
“그러면 저 사람들 앞으로도 계속 숨 쉬면서 살아 있을 텐데. 그럼 안 되죠.”
“예?”
“서, 설마……?”
이번엔 두 사람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진혁이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말했다시피. 저 정도 실력으론 절대 살아서 못 나와요.”
가짜 미래시 하나 믿고 까부는 놈들 따위가 무슨 수로 메두사를 상대한단 말인가?
어차피 공략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을 텐데?
타케시란 놈은 사무라이 길드의 무력 하나만을 믿고 있었고.
반대로 사무라이는 타케시의 반쪽짜리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
서로가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지옥으로 뛰어가겠다는데.
우리는 한 걸음 뒤에서 불구경이나 하면 그만이다.
자존심상 앞서간 멍청이들이 온갖 함정과 몬스터들을 상대할 테니까.
“처음엔 좋은 말(?)로 타일러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굳이 사지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어야 할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주제도 모르고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었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감수하겠다는 뜻이겠죠.”
차갑게 식은 말투.
능글맞고 고분고분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싸울아비와 사무라이.
총 62명으로 구성된 공격대가 미궁에 입장했다.
[미궁 ‘회색 신전(메두사의 은신처)’에 입장하셨습니다.]짧은 경고와 함께, 암전되었던 시야가 밝아졌다.
진혁이 주위를 둘러봤다.
갈라져 있는 사이로 솟구치는 화염. 그리스 시대를 연상케 하는 각종 건축물들과 기둥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건 돌로 변한 사람들의 석상이다.
“먼저…… 도전했던 플레이어들이야.”
“젠장. 더럽게 처참하구만. 이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지?”
“없어. 눈 마주치면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돼.”
절대 판정을 갖고 있는 ‘석화’는 한 번 발동되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괜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미궁의 장식품이 된 게 아니다.
“걱정마라. 이미 대비책은 세워 뒀으니까.”
선글라스가 들고 있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이 미궁을 공략하기 위한 핵심 아이템.
성유물 ‘페르세우스의 방패’.
그렇다.
사무라이에서 그토록 당당하게 나선 이유는 고인물인 타케시 외에도 신화 속 전투를 재현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던 진혁은 터져 나오는 실소를 삼켰다.
‘고작 저걸 믿고 들어온 거였나.’
하여간 유명인이 사용했던 물건을 하나 구하면, 자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놈들이 있다.
빌게이츠가 사용했던 프로그램 구하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보고 있으면 아이폰이 뚝딱 나오나?
‘아무리 좋은 성유물이라도 다루는 사람이 형편없으면 아무 소용없어.’
물론, 어중간한 레벨에선 ‘템빨’이라는 게 통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시련의 탑의 난이도 높은 유적이나 미궁에선 그런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희는 열심히 앞에서 설쳐라. 나는 뒤에서 느긋하게 공략해 줄 테니.’
진혁이 전체적인 판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웅!
갑자기 아공간 인벤토리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건?’
진혁이 재빨리 내부를 살폈다.
조금 전, 사제로부터 받은 검은색 스크롤이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었다.
동시에.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를 위한 두 번째 특전이 도착했습니다.]눈앞에 황금색 상태창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