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9)
99화. 회색 신전 (3)
행운 스탯과 적응형 스탯을 줬던 첫 번째 보상.
거기에 이어 두 번째 보상이 나타났다.
‘1차 전직 퀘스트를 받고 미궁에 들어온 게 트리거가 된 건가?’
진혁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고인물 조차 놀라게 만들 정도로 첫 번째 보상이 규격 외에 였기에. 이번에는 얼마나 좋은 보상을 줄지 기대됐다.
그래. 여기서 태연한 척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확인할게.”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자.
띠링!
[‘달의 각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 능력은 1차 전직을 완료한 시점에서 효력이 발휘됩니다.] [달의 각인]입수 난이도: 측정불가(최초로 탑을 오른 자에 한한 보상)
내용: 모든 결계의 발동시간을 25%만큼 감소시켜주며, 반대로 결계의 성능은 30%만큼 증가시켜 줍니다. 또한 오래전 탑에서 사장된 ‘잃어버린 언어’를 모두 습득할 경우 ‘이름 없는 결계’들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1차 전직 시 잃어버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장소들이 표시됩니다.)
이건…….
미쳤다.
상태창을 읽던 진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처음엔 그저 새로운 흥미를 쫓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직업을 골랐다.
당연한 이야기다.
진혁에게 있어 직업이란 그저 상태창에 추가되는 하나의 단어일 뿐.
어차피 모든 스킬과 그 상위 버전의 스킬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1차 전직은 따분함을 달래줄 가벼운 여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 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상태메시지로 인해. 그 모든 게 변했다.
단순히 조금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질적인 분야에서.
전신에 있는 세포하나가 하나가 전율할 정도의 새로운 분야로.
진혁의 시선이 상태창으로 향했다.
‘잃어버린 언어’와 ‘이름 없는 결계’
언젠간 탑을 오르면서 봤던 것들이다.
‘계속해서 찾아봤지만, 단서를 찾지 못 했던 것들 중 하나였지.’
당시에는 워낙 망겜이었던 [시련의 탑] 운영진들이 한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최초로 탑을 정복한 플레이어에게 주기 위한 이스터 에그(Easter Egg)였군.’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동시에 진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 누구도 밟지 못한 새하얀 눈 위를 처음으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길의 끝이 허망한 게임 속 엔딩이 아닌 현실이라는 기대감에.
***
공격대는 입구 주위에 있는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정리하며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각종 마법과 스킬들이 눈앞에 보이는 시야를 바꿔버렸다.
콰아아앙!!!
형형색색의 마력이 하나로 모이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미궁 내부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탱커들은 배에 힘 딱 주고 도발기랑 생존기 전부 켜라! 명심해! 절대 어그로 튀게 하면 안 된다!”
“딜러들은 앞쪽에서 오는 녀석들부터 순차적으로 화력을 집중하고! 마력 관리 못 하고 빌빌대는 놈들은 이따가 피똥 쌀 각오해라! 아주 갈아 마셔버릴 테니까.”
과연, 정상급 길드의 정예들답다.
4m가 넘는 맹독 코브라와 강철도 으스러뜨리는 기간트 아나콘다들을 상대로 단 한명의 부상자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
진혁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무라이 길드가 싸우는 장면을 구경했다.
‘그럭저럭 구색 정도는 갖췄네.’
공대원들 간에 호흡도 잘 맞고. 공수간에 밸런스도 나쁘지 않다.
큰소리 칠 자격은 된다는 뜻이다.
어디보자.
저 정도 실력이면…….
‘한… 두 시간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겠네.’
운이 아주 좋으면 한두 명 정도는 열 시간까지도 생존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혁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이젠 고이다 못해 산 채로 썩어가다 보니 대충 상황만 봐도 결말까지 예상이 갔다.
그 때.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눈엔 저들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옆에서 묵묵히 서 있던 이영권이 입을 열었다.
“예? 어떻게 보이다뇨?”
“말 그대로 저들의 실력이 어때 보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뭐. 나쁘지 않네요. 여러 번 손발을 맞춰 레이드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이영권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언가 뒤에 덧붙여질 말을 기대하는 것처럼.
“교과서적이에요.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저 진형이 버티고 있는 것도 그저 상대를 잘 만났을 뿐이죠. 물론, 일본의 레이드 방식이 집단전에 특화되어 있는 것도 한 몫 하고 있겠지만요.”
“그 말씀은. 저 방진에 허점이 존재하는 뜻입니까?”
허점이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대충 봐도 대여섯 군데는 보이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저게 안 보이나?
“만약 상대가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 네임드급이었다면 좌측 3번째 줄에 있는 탱커가 곧바로 뚫렸을 겁니다. 보이세요? 방패로 흘러가는 마력의 흐름이 미세하게 불안정 한 거? 게다가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서포터들의 마력 사용양 역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 0.7%정도 돼 보이는데… 저건 치명적이죠.”
0.7%.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전투가 길어질 경우. 혹은 한 번의 호흡으로 승패가 갈릴 만큼 전투가 치열해질 경우엔 엄청난 격차를 만들 수 있는 수치다.
“…….”
이영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지켜보는 모두가 완벽에 가까운 사무라이 길드의 레이드에 감탄하고 있는데.
진혁 혼자만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실제로 전투를 지켜보던 싸울아비 측의 플레이어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기 바빴으니까.
-교과서적이지만, 특출나진 않네요.
완벽에 가까운 레이드를 보면서도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말투부터.
-왼쪽 세 번 줄에 있는 탱커… 서포터의 마력이….
한 번의 전투로 약점까지 파악하는 안목까지.
그래.
‘보이는 경지가 다른 거구나.’
흙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와 하늘 위를 나르는 매가 다르듯.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수준에 따라 그 시야는 다르게 책정된다는 소리다.
‘뷰튜브에 올려둔 영상은 강진혁이란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실력의 일각도 드러나지 않은 거였어.’
전체가 아닌 편집본의 한계.
구독자들의 이목을 잡아두기 위한 하이라이트와 현실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이영권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라면 정말로…….
저 콧대 높은 사무라이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싸울아비 길드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신수.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낼지도 모른다.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미궁 공략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이영권의 머릿속엔 이미 이 레이드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
치열한 전투와 짧은 휴식이 반복됐다.
그렇게 미궁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기존에 플레이어들이 개척해둔 루트를 따라 거침없이 진격하던 공격대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정보의 공백이 생기는 구간이다.
“공대장님. 도착했습니다!”
척후조의 말에,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곳.
왼쪽은 바닥으로부터 솟구치는 화염으로 인해 시야가 밝았고.
반면 오른쪽은 기습을 당하면 그대로 허용해야 할 정도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선글라스. 아니, 사무라이 길드의 공대장인 마에다가 타케시를 바라봤다.
불과 어둠.
이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레이드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
타케시가 천천히 눈알을 굴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젠장. 내가 봤던 미래가 여기가 아니었나?’
이곳에 오기 전 미래시를 통해 봤던 장면.
갈림길이 나온 건 틀림없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갈림길과는 달랐다.
거기에는 불과 어둠 대신 일렬로 늘어진 기둥들이 있었으니까.
“타케시 님?”
그 와중에도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의혹은 확신으로 변할 것이다.
“그게….”
타케시의 입술을 달싹였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순 없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역시. 왼쪽을 선택하신 거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진혁이었다.
“왼쪽…?”
“크으. 과연 고인물 다운 안목입니다. 탑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위험해 보이는 오른쪽을 선택하려 하겠죠. 역발상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요. 하지만, 이 미궁은 그렇게 잔머리를 쓰는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곳이라는 걸. 역시나 알고 계셨군요.”
진혁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까지 반짝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그렇죠. 저 역시 그 방법을 통해 과거에 이곳을 공략했습니다. 30층까지 가는 길에도 이런 식의 갈림길이 종종 나왔거든요.”
종종 나오기는 개뿔.
시련의 탑이 무슨 IQ 테스트도 아니고.
역발상의 역발상 같은 걸 쓰며, 함정을 설계할 리가 없잖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게임은 망겜이다.
운영진이 심혈을 기울이며 완벽함을 추구한 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고인물을 엿먹이기 위해 마구잡이로 제작한 게임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했다.
저 녀석이 갖고 있는 미래시의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더 형편없다는 걸.
‘차라리 CGV 영화관 안에 하는 타로카드가 더 믿을 만하겠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속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연…! 탑의 위쪽도 이곳과 비슷한 곳이 많나보군요.”
“하하.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언젠가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저희가 한 발 더 앞서겠지만요.”
그렇겠지.
너희들이 관짝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정확히 한 걸음 정도 남은 것 같긴 하다.
“그럼, 다시 가볼까요?”
“알겠습니다. 모두 이동하죠.”
타케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왼쪽이 맞습니까? 타케시 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에다가 한 번 더 확인했다.
“맞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말한 것처럼. 시련의 탑에서 함정에 함정을 파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무언가 끌려 다니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에다는 더 이상 항변할 수 없었다.
어디에도 공개 된 적 없는 탑 5층에 숨겨진 던전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낸 플레이어.
현재 길드에서 가장 신뢰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바로 타케시였기 때문이다.
공격대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환하게 밝혀진 길을 따라 마지막 플레이어가 완전히 통로로 들어섰을 무렵.
화르르륵!
쿠쿠쿠쿠!
갑자기 불길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선들이 플레이어들의 전후좌우를 완벽하게 둘러쌌다.
“뭐, 뭐야?”
“왼쪽은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저도 그런 줄 알았… 아니, 이 정도 쯤은 일상적인 함정입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움직이지만 않으면 저 불길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겁니다.”
타케시가 모두를 안심시키려 했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다.
콰콰콰콰콰콰콰!
미래시를 비웃기라도 하듯. 붉은 선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