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03화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는 마음에 평화를 심어 주는 온갖 문구를 읊조리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저기 저 구름은 왠지 파르페 모양과 닮았군. 저 왼쪽은 붕어빵과 닮았는데…….
꼬르륵…….
그러고 보니 오늘 늦잠을 자서 아침을 건너뛰었지. 슬슬 배가 고파 오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보고 있던 눈을 쓱 내려 옆을 보았다.
수려한 얼굴의 미남자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는 두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으음.”
다자르가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이렇게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이야?
처음에는 신이 나서 제 손도 잡아 달라고 방방 대던 두 아이는 진작에 흥미를 잃고 둘이 놀고 있었다.
“슈우웅! 시오온. 모래성 만들자!”
“꺄!”
아이들은 꽤 오래 모래 놀이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여기서 나만 지금 힘든 거지? 내가 이렇게 에너지가 딸리는 인간이었나?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었다.
벼를 추수할 때 흑매들이 나가떨어지는 동안, 나 홀로 끝까지 모든 일을 마치지 않았었나. 분명 내 몸에 체력이 모자란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정신적 에너지 소모 때문인 것 같아.’
그래.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자르와 마주 잡고 있는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자꾸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어제부터 계속 이러고 있었으니까.
다자르의 기다란 손가락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촘촘히 내 손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 안에 포옥 감싸져 있으려니, 어쩐지 기분이 요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남친이랑도 이렇게 안 잡고 다녔는데.’
미친 사돈 녀석과 붙잡고 있다니. 그를 힐끔 보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윽. 일부러 마주 보지 않으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데.
다자르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천천히 손을 놓았다.
“우선…… 확인하기 위해서는 하루가 지나야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한마디로, 잠을 자야 꿈에서 ‘그녀’를 볼 수 있으니 자러 가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해방되었다는 기쁨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다시 다자르를 마주하고 앉았다.
“……나타나지 않았어.”
“으음. 그, 그래요?”
그럼 오늘도 어제처럼 손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의 방에서 다시 만난 다자르는 어제보다 더욱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어쩐지 잠을 설친 것 같은데.
잠을 제대로 못 잔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우리 사이에 그런 다정한 대화가 오가는 건 조금 오글거리는 일이라 그만뒀다.
다자르가 마른세수를 하며 툭 말했다.
“네 말대로, 황궁에 보고는 해 뒀다. 곧 새로운 식량을 시식해 보기 위해 황궁에서 인력이 올 거야.”
“아…….”
맞아. 생각해 보니 내가 말해 두고 잊고 있었네. 다자르가 엊그제 내게 접촉 어쩌고 하는 부탁을 한 날, 나도 그에게 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식량난이 심각하니 좀 더 진행이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고 했었지.
“나는 딱히 시식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폐하께서는 아무래도 신중하신 모양이야.”
“그럴 만하죠. 사람이 먹는 거니까.”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거니, 아무래도 테스트는 필요하지. 그나저나 마침 렛시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꺼내려 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입술을 뗐다.
“그런데 신경 쓰이지 않아요?”
“……뭐가?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아뇨. 그게 아니라, 렛시요. 아니, 렛시가 아니라…… 폐하 말이에요.”
눈썹을 침울하게 내리고 있던 다자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폐하가 왜?”
“둘이 소꿉친구라면서요. 그런데 렛시가 모로카닐을 보낸 걸 보면…… 당신을 의심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루벤의 추종자로.”
“그렇지. 날 의심하고 있지. 신전과 함께.”
“신경 안 쓰여요? 당신을 오해하고 있는 건데.”
내 말에 다자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리를 꼬았다. 제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해 보이는 태도였다.
“신경이 안 쓰이진 않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해를 없앨 수는 없잖아.”
“왜 없앨 수 없어요?”
“내가 루벤의 추종자가 아닌 걸 무슨 수로 증명하지? 하물며 그 방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걸 해결하며 시간을 허비하느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겠어.”
“으으음.”
다자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이렇게 사실도 아닌 일로 거리가 멀어지는 건……. 내가 다자르라면 정말 억울할 것 같았다.
내가 눈살을 살며시 찌푸리자, 다자르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과거 내 죄의 업보라고 생각해.”
“……네?”
“내 죄의 업보라고. 사실 나는 이번 생에서 ‘그녀’가 아닌 다른 이들과 어떤 관계도 맺을 생각이 없었어. 그것 자체가 또 죄를 짓는 것 같았거든.”
제 연인을 위해 루벤에게 세계를 바친 초월자.
그가 공허한 눈을 하고 중얼댔다.
“그런데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제국이 흔들릴 것 같아서. 그러다 ‘그녀’를 찾는 게 어려워질까 봐, 개입한 것뿐이야.”
개입이라면, 스칼렛의 목숨을 구해 준…… 그때 그 사건을 말하는 건가. 시아스터가가 황제의 오른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사건.
‘칼이 신나서 얘기해 줬었지.’
“그렇게 어쩌다 보니, 스칼렛은 날 친우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난 아니지만.”
거짓말. 당신도 렛시를 친우로 생각하면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문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가라앉았다.
저 쓸쓸함 가득한 황금빛 눈을 보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어쩐지 입맛이 써, 나도 그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의 나무에서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 * *
“가게 이름이 정말 이상하군. 저번에도 이 골목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여기에 왔었던 건가?”
다자르가 ‘3초만 주면 독살시켜 드림’이라는 가게의 간판을 바라보다가, ‘넌 참 취향이 독특해.’라는 얼굴을 하며 날 힐끔 보았다.
나는 왠지 억울해졌다.
“제가 가게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여기 주인이 솜씨가 뛰어나다고요.”
“으음. 하나는 알겠어. 작명 솜씨는 꽝이라는 거.”
“예이, 예이. 댁 말이 다 맞습니다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손을 맞잡고 있는 다자르를 휙 끌어당겼다. 마침 황궁에서 쌀 시식을 위해 인력이 온다고 했겠다, 농약에 대해서도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이 가게에 왔다.
‘밖에 나간다고? 그래. 흠. 어쩌면 장소가 문제였을지도 몰라. 같이 가지. 물론, 손은 잡고.’
금붕어 똥처럼 따라붙은 다자르는 덤이었다.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났다. 가게에는 웬일로 선객이 있었다. 나는 다자르의 손을 잡은 채로 그 손님 뒤에 섰다.
오늘 샘플용으로 쓸 농약을 하나 주문할 생각이다.
‘나중에 황궁에서 공식적으로 대량 생산을 요청할 수도 있으니까. 샘플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나중에 쌀을 키우는 게 공식적인 제국 사업이 된다면, 농약은 아주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럼 이 가게는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
……근데 왠지 그러면 여기 주인은 오히려 싫어할 것도 같고.
가게 안의 물건들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로 눈알을 굴리는 다자르의 손을 붙잡은 채로 멍하니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앞에 서 있던 선객이 우는소리를 한 건 바로 직후였다.
“말이 다르잖소. 분명 이쯤이면 완료된다고 했는데……!”
그러자 툭, 종이가 하나 떨어졌다. 가게 주인의 쪽지가 틀림없었다. 그 쪽지를 재빨리 읽은 선객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덕분에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가 젖혀졌다.
“무, 물론 내가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긴 했지만. 그게 주문을 미룬다는 건 아니잖소.”
툭.
“아. 내가 주문을 미룬다고…… 했…… 다고?”
툭!
“윽……. 그럼 주문을 오늘 당장 마무리를…….”
툭! 툭툭툭!
쪽지가 빠른 속도로 여러 개 떨어져 내렸다. 남자의 어깨 너머로 슬쩍 보인 쪽지에는 갖가지 욕이 적혀 있었다.
“으으……. 그 목걸이가 꼭 필요하단 말이오. 곧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를 목도하고 말 터인데.”
남자가 머리를 짚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좌절하고 있는 동안, 나는 멀뚱히 그의 뒷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이 사람 머리 색이 되게…….
‘악시온, 같네? 아니, 그보다는 우리 에반로아르의 머리 색 같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나와 머리 색이 비슷했다. 그동안 관리를 어떻게 한 건지, 먼지가 잔뜩 묻은 머리는 빛이 바래 있었지만, 분명 백금발이었다.
멀뚱히 그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어?”
남자가 뒤돌면서, 아주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내 기억이 아닌, 실리아의 기억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억?”
“엑.”
이 익숙한 얼굴은 분명, 실리아의 오빠이자 에반로아르 가문의 진짜 가주.
실베스타인 에반로아르. 그였다.
실리아와 꼭 빼닮은 파란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그리고 그 눈은 정확히 나와 다자르가 맞잡은 손을 향해 있었다.
“어어어어어억?!”
파란 눈동자에 떠오른 건, 분명 경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경악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아니, 동생이 남자 손도 붙잡고 다닐 수 있지.
절대 일어날 리 없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목도한 것 같은 저 눈동자는 뭐야?
“잠깐, 이, 이건, 아니, 실리아악?”
“아니, 나는 실리악이 아니고 실리아인데.”
“히이이이…….”
실베스타인은 크게 놀란 건지, 심장을 붙잡고 비틀댔다.
잠깐. 당신 병약남이었어?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나는 비틀대는 실베스타인을 강인한 힘으로 붙잡고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 실베스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