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04화 –
내 부축에 간신히 벽을 짚고 선 실베스타인의 눈동자가 나와 다자르, 그리고 맞잡은 두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 마치 헤드뱅잉을 하듯 그의 고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베스타인.”
당황스러운 건 알겠지만, 덕분에 내 눈이 혼란스럽다. 나지막이 그를 불렀음에도 여전히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그의 머리를 콱 붙잡아 짤짤짤 흔들어 주고 나서야, 마침내 그의 고개가 멈췄다.
“어어……. 이 힘은……! 맙소사, 정말 실리아잖아. 여,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여기에 있냐고?
그건 이야기하자면 너무 긴 스토린데.
나는 뺨을 긁적이며 되받아쳤다.
“그러는 실베스타인이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바로 에반로아르 저택으로 간 게 아니었어?”
내 옆에 바로 루벤이 있다고 해 두었으니, 분명 급히 달려왔을 텐데. 도착하자마자 에반로아르 저택에서 날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람?
“그, 그건…… 널 만나기 전에 우선 그 존재에 대한 대비를 하려고 했지.”
실베스타인이 다자르를 힐끔 보며 우물쭈물 답했다.
그 존재? 아. 혹시 루벤을 말하는 건가?
어떤 대비를 하려고 한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실베스타인이 슬쩍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실리아. 혹시 이 사람이 서신에서 말한 그 존재는 아니겠지?”
다자르가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고 눈을 깜박였다. 그는 아까부터 조용히 입을 닫고 우리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여전히 내 손은 꽉 붙잡은 채로.
보통 이렇게 상대의 가족을 만나면 얌전히 손을 놓아줄 만도 한데. 눈치가 없는 건지 뭔지.
그 존재라면, 역시 루벤을 말하는 거겠지.
“아니야.”
나는 실베스타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실베스타인이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을 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난 또…….”
보통 여동생이 웬 남정네의 손을 잡고 있으면 오라버니로서 “그건 절대 안 돼! 내 여동생을 넘겨줄 수는 없어!” 하면서 노발대발하고 그러지 않나?
‘아예 나에게 남자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느낌인데.’
아무리 사교계에서 악명 높은 실리아라지만! 그래도 가제는 게 편이어야지! 슬쩍 튀어나오는 입술을 굳이 막지 않은 채 그를 뚱하니 응시했다.
그러자 내 눈빛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실베스타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다 힐끔 다자르를 한 번 더 보고는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에…… 그럼 이쪽은 세드릭에 이은…… 새로운 호구라거나……?”
“…….”
세드릭. 넌 대체 에반로아르에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거니.
이 집안 사람들의 취급을 보아하니, 그가 원작과 달리 흑막이 된 배경이 이제는 슬슬 이해가 갈 것 같았다.
내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젓고 아니라는 답을 하려던 찰나.
“아닌데.”
“에……?”
내가 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자르였다.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실베스타인을 응시했다. 눈썹이 하나 살짝 올라가 있는 게, 분명 기분이 상한 게 틀림없었다.
하긴, 나라도 기분이 나쁠 것이었다.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호구 취급하다니.
“어엇. 그럼……! 서, 설마…….”
그제야 실베스타인이 뭔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을 했다. 나와 쏙 빼닮은 파란색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는 작게 중얼댔다.
“오, 신이시여. 드디어 제 동생 실리아에게도 이런 날이…….”
그러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안색이 푸르게 변했다가 활짝 갰다가, 온갖 색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 그래도 이 오라비는 아직 널 이렇게 보낼 수 없다. 실리아. 네가 어린 날 내 머리카락을 뽑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이 오라버니보다 먼저……!”
상상의 나래를 어디까지 펼친 건지, 대략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마지막 뒷말이 좀 걸리긴 하지만, 이게 정상적인 오빠의 반응 아니던가.
로판 세계에서 오빠는 이렇게 제 동생과 미상의 남자 사이를 질투하고! 반대하고! 그러는 거라고!
드디어 정상적인 반응이 나왔다는 것에 기쁨이 올라오는 한편, 곧바로 현타가 왔다. 아니, 왜 내가 이런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거지?
“당신도 이런 벌건 대낮에 실리아의 손을 잡고 다니는 건 지양하는 게 좋겠네. 자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리아는 내가 금지옥엽…… 은 아니지만, 정성을 들여 키운 내 소중한…… 도 아니지만…….”
내가 심적 혼란에 휩싸여 답을 안 하고 있자, 그걸 어찌 해석한 건지 실베스타인은 내게서 다자르에게로 타깃을 옮긴 모양이다.
그가 주절주절 훈계 비슷한 것을 늘어놓는 그때. 다자르가 우아하게 그의 말을 자르며, 예의 내숭 덩어리 미소를 지었다.
“아.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실베스타인 에반로아르 자작이시군요. 이렇게 뵙는 건 처음입니다. 저는 시아스터가의 다자르라고 합니다.”
“나름 잘 키운…… 에?”
실베스타인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더니, 약간 언짢은 듯 꺾여 있던 눈썹이 재빨리 제자리를 찾았다.
입꼬리가 순식간에 올라가고, 꾀죄죄한 외관과 달리 하얗게 빛나는 가지런한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으며 그가 말했다.
“하하하! 시아스터 공작님이셨군요. 이런, 이런. 제가 여행 중 안경을 잃어버렸지 뭡니까. 그래서 공작 각하를 한눈에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하하!”
뭐지, 이 태세 전환은?
나는 순식간에 돌변한 실베스타인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였다.
방금 전 동생의 손을 잡은 낯선 남자를 만나 분노의 시동을 걸던 오라버니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에는 그저 ‘나 속물임’을 써 붙인 것처럼 굽실대고 있는 일개 자작1이 자리했다.
‘안경은 무슨. 원래 쓰지도 않으면서.’
원래도 미스터리 덕후인 그이니, 실리아만큼이나 사교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다자르도 못 알아보지.
“…….”
“…….”
가게 안에는 잠시 정적이 돌았다.
뭐지. 이 대리 수치심.
나는 헤벌쭉 웃고 있는 실베스타인에게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왜 내 주변에는 정상이 하나도 없지.
어찌 된 게, 나 혼자만 정상이구먼.
* * *
“그러니까…… 시아스터 공작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지?”
실베스타인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번드르르한 외모와는 달리, 어딘가 허당 구석이 느껴지는 실베스타인을 데리고 시아스터가로 돌아왔다.
꿈에서 또 그녀를 만날까 부푼 기대를 안고 제 방으로 향한 다자르는 제 저택에 손님이 왔는데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대신 마치 내가 이 저택의 주인인 양 실베스타인을 응접실로 데리고 와 차를 내주고 있었다.
“그래. 아니라니까.”
“그럼 왜 그러고 있었던 거야? 소, 손을 잡고…….”
“아. 그건 일 때문이야.”
“일……?”
실베스타인이 눈을 끔벅였다. 그는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했다.
농사에 미쳐 살던 제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제국의 초월자이자 대귀족인 공작의 저택에 마치 제집처럼 들어앉아 벌건 대낮에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그리고 그게 일 때문이다?
나로서도 전혀 이해 못 할 것이었다.
“일 때문이라니. 내가 없는 동안 에반로아르 자작가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칼도 이곳에 와 있고.”
실베스타인이 내 뒤편에 서 있는 칼을 힐끗 보았다.
칼은 조금 전 실베스타인을 보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붕어즙을 집어 던지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눈물을 휘날렸다. 실베스타인은 익숙한 몸짓으로 그를 달랬고.
아마 그가 연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 게 틀림없었다.
이제는 칼도 조금 눈물을 멈춘 듯했다. 아직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뭐, 별일 없었어. 어느 누가 갑자기 자금줄을 막아 버려서. 없는 살림에서 혼자 애를 키우느라 힘들었거든. 그래서 일을 시작했지.”
“아. 그런 일이 있었구……. 뭐? 애를 키워? 애…… 라니?”
대수롭지 않게 답한 말에 실베스타인이 허허 웃으며 맞장구를 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래. 우선 인사를 나눠야겠다. 칼. 악시온을 데리고 와 줄래?”
“네. 알겠습니다. 실리아 님.”
칼이 살짝 우리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후다닥 물러났다.
“악시온……?”
실베스타인이 눈을 끔벅였다.
그의 눈이 여기저기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온갖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이는 답을 찾은 건지, 실베스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그 악시온이라는 존재가 네가 서신으로 말한 루벤인 거야?”
오. 정답이로군.
다자르에게는 헛발질만 하더니, 웬일로 한 방에 답을 맞혔다.
나는 대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가까운 방에 아이를 두었던 모양인지, 마침 칼이 악시온을 안고 응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악시온을 두 손으로 척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인사해. 내가 서신으로 말한, 이 세계의 루벤.”
“……!”
실베스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악시온을 보았다. ‘뭐? 이 작은 아기가 루벤이라고?’라는 표정이다.
나는 칼에게서 악시온을 받아 안았다. 내 익숙한 몸짓에 그가 의아한 얼굴을 한 것도 잠시,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하나뿐인 아들, 악시온이기도 해.”
“뭐……?”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던 실베스타인의 두 눈이 멍하니 풀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
어째 실베스타인은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놀라기만 하는 것 같은데.
“뭐라고-?!”
곧이어 경악을 가득 담은 외침이 고막을 아프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