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1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11화 –
“오늘은 일부러 두 분만 티타임에 초대했어요. 중요한 날이니까요.”
저택에 도착한 날 반긴 미야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지난날 향했던 추종자들의 소굴로 안내했다.
미야가 준비한 마차에 올라탄 뒤 나는 설렘이 가득해 보이는 미야와 세리아를 적당히 상대하며 창밖을 힐끔힐끔 보았다.
‘다자르가 잘 따라오고 있으려나?’
모로카닐이 내 호위로 붙는다고는 했지만, 이 소굴을 소탕할 이는 다자르였다.
분명 내가 먼저 소굴로 향하면 뒤따라 올 것이라 했는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다자르의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긴. 명색이 초월자인데 내 눈에 보이면 그건 좀 큰일이긴 하지.’
아까 전에 모로카닐도 그림자에 녹아드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다자르는 이전에 공간을 찢고 나타나기도 했으니, 아마 나름의 방법으로 찾아올 것이었다.
“실리아?”
“네?”
그때 미야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내가 너무 창밖을 봤나? 분명 지금까지 둘이서 봄에 피는 꽃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왜 그래요, 미야?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도 발견한 건가요?”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미야가 검지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내 무릎 위, 마주 잡고 있는 두 손을 향해서였다.
“손에 핏기가 없어서요. 긴장되나요, 실리아?”
“어…….”
내가 언제부터 두 손을 꽉 잡고 있었지? 너무 세게 쥐고 있어 핏기가 사라진 하얀 손등을 바라보며 퍼뜩 힘을 뺐다.
다자르가 잘 따라오고 있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긴장이라도 한 건가.
내가 황급히 힘을 빼자, 미야가 안심하라는 듯 살짝 웃어 보였다.
“긴장될 만하죠. 교주님께서 오늘이 ‘시작의 날’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사실 긴장돼요.”
시작의 날. 분명 그때 교주가 그런 말을 했지.
“‘시작의 날’이 정확히 뭔가요?”
마침 궁금했던 단어가 튀어나온 김에 재빨리 물었다. 그러자 미야가 살짝 눈을 깊게 하고 잠시 말을 고르다 답했다.
“파괴 신께서 진정으로 각성하시는 날이라고 알고 있어요. 우리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해방의 날이 성큼 다가온다고 할 수 있는, 뜻깊은 날이죠.”
그 말인즉슨, 루벤이 진정한 루벤으로 각성한다는 소리? 그럼 우리 악시온이 루벤으로…… 각성한다는 소리인데.
‘오늘 이걸 막는 걸 실패하면 악시온이 위험해진다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 지금 악시온의 곁에는 칼과 흑매 몇밖에 없지 않나. 물론 다자르가 제 저택에 결계가 여럿 걸려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날아갈 거라고 했지만.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긴장하게 된 건 오늘이 악시온에게 위험한 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서일 수도 있겠다.
엄마의 감이란 걸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날이니, 다들 긴장하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상냥한 목소리로 미야가 그리 말했지만, 긴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늘 반드시 그 시작의 날인가 뭔가 하는 게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악시온에게 위험할 테니까. 나는 굳은 다짐을 하고 다그닥 다그닥 나아가는 마차에서 입술을 세게 물었다.
마차는 골목길을 여러 번 돌아 마침내 멈춰 섰다. 미야를 따라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곧 지난날 마주했던 광장이 나타났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검은 안개 또한.
“……파괴 신이시여.”
옆에서 미야가 감격한 목소리로 중얼대는 게 들렸다. 어딘가 멍한 기색이 담긴 걸로 보아, 안개에 조종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감격해서 약간 울먹이기까지 하는 미야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살짝 놀란 참이었다.
저번과 달리 광장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마치 인형처럼 서 있었던 까닭이다.
‘으으…….’
마치 좀비 영화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좀비 떼를 직관하는 기분이랄까. 뒷덜미가 서늘한 기분이다.
“실리아, 앞으로 가세요. 교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있는데, 미야가 옆에서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여린 영애의 가냘픈 손인데도, 이미 조종당하고 있는 미야의 힘은 제법 강했다. 무쇠 다리가 살짝 밀릴 만큼.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 일단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앞으로 향하자, 광장에 서 있던 자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갈라졌다.
강심장인 나도 어깨를 움찔할 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모로카닐이나 다자르는, 이 안개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나?’
나야 어떤 외부의 힘도 통하지 않는 몸이니 괜찮고. 다자르에게 미리 안개에 대해 이야기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없다면 오늘 이 ‘시작의 날’이라는 걸 막기 어려울 테니까.
‘안개?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시아스터가가 괜히 초월자들의 수장인 게 아니니까.’
내가 출발하기 전 다자르가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그럼, 괜찮은 거겠지?
나는 불안한 속을 달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갈라지는 사람들의 사이를 쭉쭉 지나 도착한 곳은 지난번에도 마주했던 커다란 돌 앞이었다.
그리고 그 위 단상에는 저번처럼 온몸을 로브로 칭칭 감싼 다자르가 서 있었다.
“……왔는가.”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지하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교주가 불현듯 고개를 내렸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드디어…… 드디어 이 날이 왔도다.”
여전히 변조된 듯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댄 교주는, 이윽고 천천히 단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 그가 날 빤히 응시했다.
당연히, 내가 안개에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므로 나는 열심히 눈의 초점을 흐렸다.
“오늘은 ‘시작의 날’입니다. 모두 파괴 신의 진정한 각성을 영접하도록 하시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쿵! 하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나와 교주를 에워싸고 있던 이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난 소리였다.
이 진중하고 긴장되는 상황에도 무릎이 대체 몇이나 깨졌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도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니, 사실 일부러 그런 생각을 했다. 하마터면 일제히 무릎을 꿇는 이들에 압도되어 화들짝 놀란 티를 낼 뻔했으니까.
‘으. 다자르는 언제 오는 거지?’
그때 홀로 빛을 내는 돌에 의해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살짝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교주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모로카닐이구나.
날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나는 조금 안심한 상태로 교주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린 교주는 품 안에서 단도를 꺼냈다.
오색찬란한 보석이 박힌, 음울한 그의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단도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렸는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 교주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두세 걸음 더 다가오면 코가 마주할 정도의 거리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넌 모르겠지. 이 날을 위해 내 평생을 바쳐 왔다는 것을 말이야. 실리아.”
뭐?
나는 불현듯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내 이름에 움찔했다. 이전에도 분명, 날 아는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반말을 하는 이라면……
그의 정체를 유추하고 있던 바로 그때.
그가 단도로 제 손목을 휙 그었다.
푸확!
순간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아……?’
당황하고 있는 사이, 교주는 내게 단도를 건넸다. 그의 손목에서는 여전히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검게만 보였던 바닥에 이상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루벤을 진정한 각성으로 안내하는, 루벤의 어머니. 실리아. 네 차례야.”
“……!”
루벤의 어머니.
악시온의 보호자는 나이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저 사람이 대체 어떻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가 내민 단도를 보며 깨달았다. 내 차례라는 말은 곧, 나도 똑같이 손목을 그으라는 소리?
‘이 사람들 다 어디 간 거야? 왜 나타나질 않아?’
지금이 가장 위험한 상황인 것 같은데. 모로카닐도 그렇고 다자르도 그렇고!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교주에게서 단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손목으로 단도를 가져가는데…….
“아니. 아니지.”
교주가 내 손목을 잡고 천천히 위로 올렸다.
“이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리아. 그어야 할 곳은 그쪽이 아니야.”
친절하고 상냥한 어투. 그 말투를 듣자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목을 그어야 즉사할 수 있어. 실리아. 그리고 네가 죽어야 그분이 깨어날 수 있어.”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오랜 시간 실리아를 지켜봐 온 남자.
제국의 재상으로서 제국의 대소사에 관여할 수 있고, 황궁의 식량에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으며, 초월자들의 동태를 멀리서 파악할 수 있는…….
세드릭.
이자는 분명 세드릭이었다.
내가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사이, 그와 분명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단도는 목 부근에 우뚝 멈춰 있었다.
순간 그가 내 눈을 보고 멈칫했다. 내 표정이 변한 걸 알아차린 것이다.
“너……?”
세드릭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댔다. 불현듯 손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단도가 단숨에 내 목으로 파고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