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18화 –
세드릭과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돌았다. 나는 물끄러미 내밀어진 단도를 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내가 왜?”
죽어 달라고?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세드릭은 정말 미친놈처럼 보였다. 내가 그걸 받아 줄 리가 있나? 설마 정말 원하는 대로 해 줄 거라 생각하고 저런 제안을 한 건 아니겠지.
그런 의미가 가득 담긴 눈으로 세드릭을 응시했다. 그러자 세드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저 꼬마 시아스터를 죽이는 수밖에.”
“뭐?”
세드릭의 시선이 옆쪽으로 향했다. 바닐라가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벌떡!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몸으로 막았다.
“왜 그래, 실리아? 저 꼬마 시아스터는 네게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잖아.”
세드릭이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손을 활짝 펼치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진짜 인간 말종이구나? 어떻게 아이를 상대로 그런 소리를.”
“그럼 대신 네가 목숨을 내놓으면 되잖아. 실리아.”
성큼, 한 발자국 다가온 세드릭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닿은 귓바퀴가 매우 끔찍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
“…….”
이 녀석은 정말 진심으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 거구나. 뒷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며 그에게서 다시 한 걸음 멀어졌다.
그러자 내가 멀어진 만큼 세드릭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언젠가부터 아까의 단도가 들려 있었다.
그가 손을 올리자 목덜미에 금세 칼날이 들이밀어졌다.
이 장면, 왠지 익숙한데.
“실리아, 단도를 손에 쥐어. 그러지 않으면 저 꼬마 시아스터에게 이걸 날릴 거야.”
세드릭이 음산하게 속삭였다. 그의 다른 쪽 손에 검붉은 기운이 뭉쳐 있는 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바닐라를 향해 쏘아져 나갈 것처럼 잔뜩 응축된 그것은 보기만 해도 살이 떨릴 정도로 진득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여린 살에 닿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바닐라는 건들지 마.”
단도를 넘겨받자 내 스스로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세드릭의 얼굴에 기쁨이 스쳤다.
“착하다, 실리아. 그렇지. 내 친구 실리아는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자신보다 여린 존재에겐 한없이 너그럽지.”
“…….”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세드릭이 키득키득 웃으며 중얼대고는,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점차 그가 힘을 주자 아슬하던 칼날이 목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걸 어떻게 하지? 세드릭이 방심하게 만들고 이 순간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머릿속이 팽팽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건 그닥 무섭지 않았다. 이 몸이라면 왠지 팅! 하고 튕겨 낼 것 같았거든.
……물론, 거기에 더해서 지금 내가 두 아이의 보호자라는 책임감이 두려움을 없애는 데 한몫했다. 여기서 겁먹어 봤자 도움 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방해만 됐지.
‘칼날이 좀 더 목에 파고들게 해서, 세드릭이 방심할 때 업어치기를…….’
웬만한 성인 남성 한 명은 충분히 잡아채 넘길 수 있는 괴력을 지니고 있으니, 이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피를 봐야 하는, 아주 조금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만.
짧은 사이 떠오른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나는 어금니를 아득 깨물고, 스스로 목을 더 내밀었다.
스윽.
살벌한 소리와 함께 칼날이 살갗에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진다. 주르륵, 피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 마마……!”
옹알대는 듯,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이가 나를 불렀다.
“악시온?”
퍼뜩 놀라 요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탓에 단도가 휙 목을 더 긁는 것도 몰랐다. 찰그락. 더불어 목걸이 줄이 걸리며 옷 안에 가려져 있던 목걸이가 튀어나온 것도 말이다.
그때 세드릭의 얼굴이 구겨지는 게 스치듯 보였다. 그의 눈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목걸이…… 이 목걸이는……!”
목걸이? 지금 내 머릿속에는 목걸이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정말 놀랍게도, 악시온이 이 짧은 사이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요람에 서 있었으니까.
“마, 마마!”
악시온이 필사적으로 내게로 손을 뻗는 동시에, 아이의 몸에 보랏빛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와 세드릭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사이, 보랏빛 기운은 내 몸에 직격했고. 차고 있던 목걸이에서도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윽!”
그 빛을 정면에서 마주한 세드릭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선 순간, 나는 재빨리 세드릭을 밀쳐 내고 악시온과 바닐라를 향해 달렸다.
“설마…… 말도 안…….”
세드릭이 허망하게 중얼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그걸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지금 당장 아이들을 구해야 했다. 그런 생각으로 바닐라와 악시온을 두 손에 각각 안아 들던 그때였다.
“어……?”
나는 몸의 변화를 눈치챘다.
키가 조금 더 낮아지고, 악시온을 낚아채듯 안은 팔의 살색이 조금 변해 있었다.
* * *
“뭐야, 네 녀석?”
“제가 왜요?”
다자르는 엘스턴이 쏘아 낸 파이어볼을 결계로 흡수해 공중에 흩뿌리고는, 그에게 제 검을 쏘아 냈다.
엘스턴이 기겁하며 재빨리 몸을 피하는 게 보였다.
‘……점점 이 녀석 마법에서 마력이 줄고 있어.’
그 얘기는 엘스턴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그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그와 대치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다자르에게는 끔찍하게 길게만 느껴지던 중이다.
그동안 실리아가 홀로 그 미친 재상 놈을 마주하고 있을 테니까.
다자르가 입술을 짓씹었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엘스턴의 빈틈을 찾기 위해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또. 또다. 엘스턴은 다자르를 공격하기 전에 힐끔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탑 위의 상황이 너무나도 신경 쓰인다는 듯이.
다자르는 손쉽게 엘스턴의 마법을 날려 버리고 그의 품으로 재빨리 파고들었다. 전광석화같이 달려간 다자르는 순식간에 검을 소환해 강하게 횡으로 휘둘렀다.
콰앙-!
검에서 난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으윽!”
엘스턴은 뒤늦게 배리어를 둘렀으나 빈틈에 정확히 일격을 얻어맞은 몸은 속절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옆구리에서 금방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봐. 마탑주라는 녀석이 이 정도밖에 안 될 리가 없을 텐데. 너, 사실은 내가 어서 저 위에 올라가 줬으면 하는 거 아니야?”
다자르가 검 끝을 엘스턴의 배리어에 콰득, 꽂아 넣으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엘스턴이 살짝 질린 낯으로 그를 응시했다.
재상 놈과 한패인 마탑주가 저를 위로 보내 주려고 생각하고 있다니.
퍽 이상한 소리였으나 지금까지 그가 저를 상대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 만했다.
마탑주가 괜히 마탑주던가. 웬만한 초월자와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그였다. 그런데 이제껏 저에게 쏘아져 온 마법들은 잔챙이들밖에 없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네 녀석. 돌아와서 가만히 안 둔다.”
다자르는 검을 엘스턴의 배리어에 꽂은 채로 중얼댔다.
“결(結).”
그러자 배리어 위로 다자르의 결계가 하얗게 빛나며 둘러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분명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엘스턴은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자르는 이마를 찡그리고는, 급히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바로 그때.
깨질 것 같은 감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윽……!”
끔찍한 고통에 다자르의 무릎이 꺾이며 그의 신형이 휘청였다. 가까스로 기운을 둘러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은 다자르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신음했다.
“제길. 이건…… 뭐지?”
머릿속에 이제껏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누군가 억지로 잔뜩 구겨 넣은 것처럼 터질 듯 폭발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맙소사.”
그 혼란스러운 기억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쳐 간다. 다자르는 멍한 얼굴을 했다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분명 선명한 기억임에도, 그는 제 머릿속을 스쳐 간 기억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방금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떠올려 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도.
‘또 만나요, 다자르. 다음에는 실리아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그때 당신이 흔들 딸랑이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