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1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1화 –
“다자르. 우선은 이곳을 정리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지금 당장 그가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악시온 님이…….”
악시온과 바닐라를 지키고 있던 엘스턴이 심각한 낯을 했다.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
바닐라의 잔뜩 떨리는 목소리도 뒤를 이었다.
“다자르! 시온…… 시온이……!”
재상을 결계로 완전히 포박한 뒤, 다자르는 급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가까이 가 살펴보니 악시온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창백하다 못해 푸르게 변한 얼굴빛은 아이가 곧 숨을 거둔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게다가 악시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루벤의…… 기운.’
그때 불현듯 푸드덕!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새 한 마리가 공중을 비집고 나타났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 새를 볼 수 있는 건 다자르뿐이었다.
새는 하늘을 가볍게 날더니, 다자르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오호. 내 후배가 각성하려 하는 건가. 덕분에 이 세계도 우리 루벤에게 넘기게 되겠는걸. 다자르.”
“……너. 일이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미안하지만 내게 예언 능력은 없어. 그저, 네가 또다시 세계의 파괴를 불러올 거라는 걸 믿었을 뿐.”
붉은 새가 낄낄댔다. 다자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붉은 새는 실리아가 희아라는 것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모습을 감출 거라는 것도 혹시…….
“희아는 어디로 간 거지? 공간으로 빨려 들어 갔다. 분명 넌 알고 있을 거야.”
“글쎄. 그건 내가 답해 줄 수 없는 문제인걸.”
붉은 새는 그리 답하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다자르는 아득 이를 물고 짓씹듯 말했다.
“우선 이 섬에 있는 별장으로 이동해야 해. 루벤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 다른 초월자들이 모두 루벤의 등장을 알아챌 거다.”
“……!”
엘스턴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는 재빨리 바닐라와 악시온을 품에 안고 다자르를 따라 별장으로 향했다.
결계에 갇힌 채 의식을 잃은 재상은 다자르가 공간을 찢어 별장 로비로 이동시켰다. 창살처럼 형상화된 결계 속에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열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만, 루벤의 기운은 여전합니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어요.”
엘스턴이 심각한 낯으로 다자르를 보았다. 다자르는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별장 근처에 거대한 결계를 둘렀다. 그건 엘스턴이 이제껏 봐 온 어떤 결계보다도 강력했다. 루벤의 탑에서 그가 자신을 봐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그 스스로도 제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어 전력을 다하지 않긴 했지만.
“아마 루벤의 추종자였던 너도 알겠지만, 루벤은 불행을 먹고 자라지. 곧 악시온…… 은 루벤으로 각성하며 성장할 거야.”
불행을 먹고 자라는 루벤. 그 이야기를 들은 엘스턴의 낯이 어두워졌다. 악시온이 겪은 불행은……
“실리아 영애가 사라진 것 때문이군요.”
사실 그녀는 이미 사망했을지도 몰랐다. 엘스턴은 실리아가 사라지기 직전 큰 상처를 입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둘러 사라졌다고 표현했다. 재상을 몰아붙이던 다자르는 분명 그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다자르는 결계를 친 이후부터는 로비에 의자 하나를 두고 앉아 재상이 정신 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손대면 베일 것처럼 날이 서 있어, 괜스레 긴장이 됐다.
“머지않아 초월자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거다. 지금쯤 루벤의 기운을 느끼고 루벤을 처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네게 부탁할 게 있어.”
“뭐, 뭡니까?”
상황이 심각했다. 실리아는 큰 상처를 입은 채 사라졌고, 악시온은 루벤으로 각성하기 직전이며, 초월자들이 곧 이곳에 들이닥친다.
엘스턴은 침을 꼴깍 삼켰다.
다자르가 작게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시아스터저에 있는 이들을 모두 데리고 와. 에반로아르 자작도 함께.”
“에반로아르 자작이라면, 실리아 영애의 오라버니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분명 그가 준 목걸이에 무언가 있어.”
실리아가 사라지기 직전 목걸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다자르는 똑똑히 기억했다.
* * *
나는 어린 다자르에게 물었다.
“저기, 그럼 너…… 계속 여기 있으면 이대로 죽…… 는 거 아니야?”
네 아버지에게 말이야.
차마 덧붙이지 못한 질문을 속에 감춘 채로, 어린 다자르의 눈치를 보았다. 다자르는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래도 걱정 마. 네가 루벤을 믿는다고 하면 아버지가 넌 죽이지 않을 테니까.”
다자르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질문한 덕분에, 다자르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어려서인지 다자르는 쉽게 내게 정보를 주었다.
‘그러니까…… 다자르의 아버지는 루벤의 추종자가 되었고, 현 시아스터가의 가주인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인 거구나. 아버지는 다자르를 포함해서 시아스터가를 모두 제거할 계획이고…….’
다자르를 몰래 감춰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그를 칠 생각인 것이다.
‘가족 간에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한다니…….’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족쇄를 찬 채로 쪼그려 앉아 있는 다자르를 바라보며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다자르를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여기서 마냥 그가 아버지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곧, 아버지에게 목숨을 내놓게 둘 순 없다. 여기서 그가 죽으면…… 미래의 나와 만나지도 못할 것 아닌가.
나는 단단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다자르. 내가 널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 맡겨 볼래?”
“……뭘?”
“이대로 아버지에게 목을 내놓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황금빛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다자르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돌아가고 싶어. 할아버지…… 보고 싶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작고 여린 목소리는 물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다자르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럼 이곳에서 나가자.”
“……어떻게?”
“이렇게.”
나는 다자르의 발목에 매여 있던 족쇄를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콰드득!
족쇄가 마치 두부가 으깨지는 것처럼 부서져 내리는 걸 본 다자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너, 뭐야? 힘이…… 역시, 너 초월자구나?”
“아니라니까. 그냥, 그, 원래 좀 힘이 세.”
역시. 실리아의 몸이 아닌, 내 원래 몸임에도 괴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외부의 힘이 내게 작용하지 않는 것도 그대로인 것 같았고.
나는 묘한 기운이 흐르는 창살을 빤히 보다가, 사이 틈을 쭉 벌렸다. 그러자 창살이 마치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치지직!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대단해.”
뒤에서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다자르가 멍하니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엣헴.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괜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게 경쾌한 몸짓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럼, 밖으로 나갈까? 다자르.”
“…….”
다자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맞잡았다. 작디작은 손을 쥐니, 이전에 다자르와 한창 손을 잡고 돌아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다자르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마……!’
악시온도 그렇고, 바닐라도 마찬가지로 날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방금 내가 ‘집’이라고 생각한 건가…….’
언제부터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더라. 분명 나는 소설 속 세상에 빙의한 건데. 나는 뺨을 긁적이며 다자르의 손을 잡은 채 감옥을 성큼성큼 벗어났다.
“자, 여기서부터 감옥을 벗어나게 되는 거야. 나갈 준비 됐어?”
“응.”
감옥은 놀라울 정도로 텅텅 비어 있었다. 오직 다자르만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인지, 딱 우리가 있던 공간만 창살로 만들어져 있었고 나머지는 그냥 동굴이었다.
빛이 들어오는 동굴 밖을 힐끔 보고, 다시 다자르를 향해 눈을 내렸다. 그는 조금 긴장한 낯이었다.
‘동굴을 나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마 알고 있는 거겠지.’
다자르가 할아버지에게 돌아가게 되면, 그의 아버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살짝 확인해 보니 어머니는 그를 낳으면서 사망한 듯했고. 그럼 남는 가족은 할아버지뿐이겠지.
조금 걱정이 되어 다자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그가 입술을 꾹 물더니 단단히 말했다. 언뜻 얼굴에 성인의 그가 스쳤다.
심지가 굳고 강인한 얼굴이.
“나가자.”
다자르는 내가 답하기도 전에 발을 뻗었다. 앞장서는 그를 따라 동굴을 벗어나니, 탁 트인 숲이 나타났다. 그가 휙휙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날 보았다. 낯선 숲일 텐데도 겁먹은 것 같지 않았다.
“너도 같이 갈 거야? 시아스터 저택으로.”
“어…….”
같이 가야겠지? 그래야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것 같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불쑥 물었다.
“네 이름, 뭐야?”
내 이름? 나는 곧바로 실리아라고 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내 모습은…… 실리아의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내 이름은 희아야. 이희아.”
그러자 다자르가 눈을 곱게 접어 빙긋 웃었다. 제 나이에 걸맞은 소년의 미소였다.
“알았어. 희아. 난…… 다자르 시아스터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날 구해 줘서 고마워. 그가 작게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