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3화 –
다자르를 따라 식사 자리에 왔다. 그의 할아버지와 간단히 목례를 나눈 후, 나는 다자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맞은편에 다자르의 할아버지가 앉아 조금 불편……
‘와. 오리 구이가 맛있네.’
……하지는 않았고, 실리아로 지내며 익힌 철판 같은 얼굴 덕분에 열심히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번 자리에 그가 날 부른 건, 다자르의 옆에 붙어 있는 정체불명의 나에 대해 파헤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난데없이 나타나 다자르를 구해 주고 저택에 머무는 여자. 외모도 특이하고 신분도 불명확하니 당연히 경계가 될 것이었다. 어린 제 손주를 꿰어 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어차피 떠날 몸.
더 이상 내게 의심을 갖지 않도록…… 평범하면서도 적당히 눈치 없는 모습을 보여 주며 죽은 듯 지낼 생각이었다. 악시온의 곁으로 돌아갈 시도를 계속하면서.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밥만 퍼먹던 바로 그때.
다자르의 할아버지가 우아하게 스푼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만 괜찮다면 시아스터가에 평생 머물러도 좋네.”
“……으읍. 네?”
켁. 폭탄 같은 제안에 목으로 넘기던 고기가 턱 막혔다. 재빨리 물로 목을 축이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희끗한 머리카락에 깊은 황금빛 눈동자를 한 그는, 다자르와 꼭 빼닮은 얼굴이었다. 다자르가 카리스마 있게 늙는다면 바로 저 모습일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점잖은 몸짓으로 다시 스푼을 쥐며 말했다.
“혹여 지내는 동안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하게. 그게 어떤 것이든 지원해 줄 테니. 작위를 얻고 싶다면 그 또한 도와주겠네. 그러니 마음 편히 이곳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군.”
아니, 할아버지. 저희가 얼굴을 마주한 게 오늘로 두 번째인데…… 이렇게 파격적인 호의를 던지시다뇨. 곧 떠나려는 사람 난감하게. 저 같은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그런 마음에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기만 하니, 할아버지가 이어 말했다.
“그동안 내 손주 녀석이 자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겠네.”
“할아버지.”
그러자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이며 툭 끼어들었다. 분명 아주 어린 소년인데도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자르를 힐끔 보았다. 제 말을 가로막은 손주에 대한 책망이 살짝 느껴졌지만, 다자르를 향한 황금빛 눈동자에는 따스한 빛이 스며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빤히 응시하며 무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내 몫의 식사를 모두 끝내고 디저트에 손을 뻗고 있었다.
……내 마음? 그게 무슨 소리람.
‘날 시아스터가의 수하로 들이고 싶다는 말인가.’
하긴, 다자르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연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만난 첫날 말했었으니까.
“희아. 다 먹었으면 같이 올라가자.”
할아버지는 뭔가 티타임까지 함께 즐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다자르의 방해로 우리는 위층으로 향했다.
내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던 다자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은 신경 쓰지 마. 나는 희아의 의견을 존중하니까.”
“……음.”
얼굴이 살짝 붉은 것이, 속내는 내가 제 수하가 되길 바라는 듯했지만. 다자르는 대견하게도 제 마음을 내려놓고 내게 자유를 주었다.
나는 어린 다자르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자르가 살짝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늘도 네 방으로 가면 될까? 희아.”
“으응. 그래 주면 고맙지.”
다자르는 곧바로 제 방으로 향하지 않고, 방향을 꺾어 내가 묵고 있는 손님방으로 향했다.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내 앞에서 일부러 결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로 이동하기 전 다자르가 곁에 있었으니…… 혹시 다자르의 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싶어 그에게 부탁해 여러 시도를 해 보는 중이었다.
“그럼 시작할게.”
다자르가 자리를 잡더니, 두 손을 살짝 뻗었다. 시작은 여느 날과 같았다. 하얀 기운이 두 손에 모이고 그 기운들이 내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름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신님. 오늘은 꼭 돌려보내 주세요. 악시온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믿지도 않는 신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벼랑에 몰리니 찾을 만한 게 신밖에 없었다. 내가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기도를 올리는 동안, 이전과 달리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그래. 이날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희아?”
다자르의 눈이 동그래졌다.
불현듯 뒷덜미에 툭,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손으로 만져 보니 물방울이 묻어 있다. 나는 실내에 있는데 갑자기 웬 물이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뒤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마주했다.
붉은빛으로 빛나는 동그란 결계가 내 바로 뒤쪽 공간에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어린 다자르가 다급히 외쳤다.
“이건 내가 만든 결계가 아니야. 희아! 이쪽으로 와!”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결계 건너편에 절박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던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남자는 분명 원래 세계에 있었던 다자르였다.
“다, 다자르?”
“위험해! 희아. 물러서!”
어린 다자르가 내 몸을 휙 끌어안으려 했지만, 그의 시도는 무산됐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크기를 늘린 결계가 날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희아-! 안 돼!”
“희아!!”
어린 다자르의 목소리와 공간 건너편에 있던 다자르의 목소리가 동시에 내 머릿속을 울렸다. 구멍에 집어삼켜진 나는, 곧 너머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보이는 건 방금 마주쳤던 ‘그’ 다자르가 아니었다.
“……너. 이희아, 맞지? 내 눈이 잘못되지 않은 거지?”
본래보다는 어리지만, 방금까지 보고 있던 어린 모습보다는 한층 성숙한 외모. 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숲속인 게 분명한 곳.
모닥불의 붉은빛만이 간간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잔뜩 상처 입은 듯한 눈은 날 원망하듯, 그럼에도 기쁜 듯,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다…… 다자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십 년…… 만인가.”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표정이, 그를 부르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을 챙그랑 내려놓고 내게 달려들었다.
“앗……!”
“희아. 희아…….”
그가 두 팔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나는 눈 깜박할 사이에, 그의 품 안에 완전히 갇혀 있었다.
“잠깐. 다자르. 진정해.”
아니. 진정해야 할 건 그가 아니라 나다. 나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또 어디로 이동한 거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던 나는, 그나마 다자르가 껴안아 준 덕분에 그의 온기에 기대어 점차 정신을 또렷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잠깐…….’
나는 눈을 여러 번 끔벅이다가 다자르를 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당신, 아니, 그러니까 너. 다자르 맞아?”
“응. 희아. 나야. 다자르 시아스터. 오랫동안 널 찾아 헤맸어.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이건 꿈인가? 꿈이라도 좋아.”
“…….”
날 찾아 헤맸다니. 대체 왜?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다자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날…… 솔직하지 못하게, 네가 내 곁을 떠나도 된다고 말했던 게 너무나도 후회됐어. 희아.”
“어…… 잠깐.”
분명 나는, 아마도…….
‘또 공간 이동을 한 건가?’
이번에는 이전 세계에서 10년 뒤로 점프한 모양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다자르를 살짝 밀고 그를 빤히 응시했다.
‘게다가 지금의 다자르는…….’
마치 나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처럼, 맹목적인 애정을 보내 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어린 다자르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랬다.
“나와 함께 돌아가자. 희아. 시아스터 저택으로.”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며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이전 세계에서 10년 후로 이동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아마도 다자르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저번처럼 실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알았어.”
나는 다자르의 손을 맞잡았다.
* * *
“……맙소사.”
다자르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엘스턴이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뱉었다.
“바, 방금 뭐였죠? 처음 보는 외양의 여자가…….”
이희아. 다자르가 그토록 찾고 있는 여자이자, 제 약혼자. 엘스턴은 그녀가 실리아인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자르는 차원의 틈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말이다.
‘분명 그곳은 내 전생의 시아스터 저택이었어.’
그가 어린 날 매일 빠짐없이 향하던 공간이기에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 곳이었다. 희아가 저택에 온 뒤부터, 희아가 사라진 이후까지도 그는 매일 그곳에서 그녀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놀란 얼굴을 한 희아의 옆에 서 있던 소년. 공간 너머는 흐릿해서 제대로 보인 건 희아뿐이었지만, 다자르는 직감했다.
그 소년은 바로 어린 날의 자신이라고.
‘희아는 지금 내 과거에서 살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가 연모해 온 ‘그녀’는…… 이곳에서 제 과거로 넘어갔던 희아였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제게 남겼던 마지막 말이 또 한 번 스쳤다.
‘또 만나요. 다자르. 다음에는 실리아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그때 당신이 흔들 딸랑이 기대할게요.’
다자르는 이제야 그녀가 건넨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