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41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41화 –
그러나 내 우려와는 다르게, 신의 힘인지 뭔지 하는 걸 전달하는 건 아주 간단히 이루어졌다. 그와 나는 잠시 뒤, 쌀이 저장되어 있는 창고에 도착해 있었다.
붉은 새가 날 근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잡고서 그 힘을 내게 넘겨주겠다고만 생각해라. 간절함이 중요하다.”
“음……. 이 힘을 넘겨준다아. 넘겨준다아.”
“속으로만 생각하라니까.”
붉은 새가 말하는 대로, 벼 한 움큼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속으로 신의 힘을 넘겨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렇게만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진짜 그렇게만 해도 된다고?’
‘그럼 뭐 거창한 마법진이라도 그릴 거라고 생각했나? 그런 건 인간들이 제 그릇을 벗어난 힘을 쓸 때나 그러는 거지. 신이 그런 매개를 이용할 리가 없잖아.’
듣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설명이었기에, 잠자코 그가 말하는 대로 했다. 그러자…….
파앗-!
“어?”
쥐고 있던 벼에서 하얗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빛, 이전에도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어떤 장면이 스쳤다. 과거, 이희아로서 마지막을 맞이하던 때였다.
그래. 그때에도 이 빛을 마주한 적이 있어.
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붉은 새가 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봐! 이대로 날 소멸시킬 셈이냐! 어서 넘겨 달라고!”
그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저 녀석, 루벤이지. 그럼 신의 힘과도 상극이겠네. 어? 근데 왜 상극인 심의 힘을 원하는 거지. 문득 그런 의아함이 스쳤지만,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재빨리 읊조렸다.
‘힘아, 넘어가라. 넘어가라.’
내 의지가 전달된 것인지, 하얀빛이 점차 압축되듯 줄어들더니 이내 하얀 구슬처럼 변했다. 그러고는 붉은 새에게로 날아가 눈 깜빡할 사이에 흡수됐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빛이 사라지자, 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는 붉은 새가 눈에 들어왔다. 새 주제에 저런 자세가 가능한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그가 퍼뜩 일어나 앉았다.
“흠흠! 그럼 이제 드래곤 하트 차례다. 이번에는 그 허여멀건 한 녀석의 도움이 필요해.”
붉은 새가 말한 허여멀건 한 녀석은, 엘스턴이었다. 처음 그 드래곤 하트가 악시온의 심장에 자리 잡았을 때 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나. 정확히는 그의 마나가 마치 불순물처럼 악시온의 심장에 함께 섞여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걸 제거하면서 드래곤 하트를 분리하면 악시온은 무리 없이 건강하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예에? 드래곤 하트를…… 제거한다고요?”
엘스턴은 처음에 아기님을 해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격하게 반대했지만, 모습을 드러낸 붉은 새의 힘을 보고 꼬리를 말았다.
사실 엘스턴보다 내 마음이 더 불안하고 불편했다. 혹시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을까, 수십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악시온은 언젠가 또다시 루벤으로 각성하려 할 거야.’
그리고 그 시발점은 아마 나의 부재일 것이다. 이번과 같다면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악시온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건 인간으로서 맞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정해진 것.
그때 악시온이 다시 루벤으로 각성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악시온이 루벤이 될 씨앗을 제거해야 했다.
“걱정 마세요. 악시온은 아무 이상 없을 겁니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다자르가 내 어깨를 감싸 왔다. 나도 모르게 바싹 긴장하고 있던 몸에서 힘을 빼고 그에게 살짝 기댔다.
악시온은 새근새근 잠든 채로 아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돌아온 뒤 너무 정신이 없어 아직 악시온과 제대로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는 게 떠올랐다. 모든 게 끝나면 악시온을 꼬옥 안고 하루 종일 함께해야지.
“시작한다. 내 힘을 일부 사용해야 해서, 주변이 좀 안 보일 수도 있어.”
붉은 새의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불현듯 주변이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어두워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서던 빛들이 갑자기 도망치기라도 한 건지, 창문 밖도 검게 보였다.
잘 되고 있는 걸까? 손에 땀을 쥔 채 눈을 꾹 감았다. 내게는 영겁과도 같았던 찰나의 시간이 지난 뒤, 시야가 밝아졌다.
“다…… 다 됐다.”
“우웅? 마마?”
다행히 악시온은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잠에서 막 깬 듯 부스스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악시온!”
“아무 문제 없이 잘 제거됐어.”
붉은 새와 엘스턴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 있거나 말거나, 나는 일단 악시온에게로 달렸다. 아이를 안고 기쁨의 키스를 퍼부어 주었다.
이제 악시온은 루벤으로서의 운명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 * *
다자르는 삐딱하게 서서 제 앞에서 날개를 다듬고 있는 붉은 새를 응시했다. 녀석은 아주 멀리 날아갈 모양인지, 날개깃을 정성스레 다듬는 중이었다.
그를 바라보다 툭 말했다.
“조금 의외인데.”
“뭐가 말이냐?”
“네 녀석이 희아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 말이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저주를 조건으로 한 계약이라도 내걸 줄 알았거든.”
그러자 붉은 새가 날개깃을 다듬다 말고 힐끗 다자르를 보며 부리를 비죽였다.
“흥. 그랬다가는 네 녀석이 날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라는 건 지나가는 개미도 알 거다.”
“그건 당연하지. 그래도 네 녀석, 루벤이잖아? 그것도 한 세계를 먹어치운. 그런 네가 날 무서워할 리는 없어.”
다자르가 이제껏 그와 함께해 오며 깨달은 것은, 그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상식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고 정이 통하는 상대도 아니며, 그에게 측은지심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롯이 자신의 이익이나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는, 악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희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건 다자르에게 있어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붉은 새는 그와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만큼 내게 돌아올 열매가 달았으니, 당연히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만약 그 녀석이 원하는 게 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일지라도 난 순순히 들어줬을 거다. 그건 나라고 해도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겠지만.”
“…….”
예를 드는 게 꼭 자기 같은 것만 드는군. 세계 멸망이라니. 이미 그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는 다자르는 살짝 질린 낯을 했다.
어쨌든 희아가 건넨 것이 그에겐 아주 값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네게 필요한 거지? 이미 너는 루벤이 되었지 않나?”
순수한 호기심에서 물은 질문은, 예상치 못한 답을 마주했다.
“신에게 가까워지고 싶거든.”
“……뭐?”
“이 빌어먹을 루벤의 운명을 만든 것도 결국 신이라는 작자인 것을 알고 있나? 마치 신과 우리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니야.”
“……!”
“내가 루벤이 되며 막강한 힘을 얻었을 때 잠시 신에게 근접했었어. 그리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모든 만물이 신이 그려 둔 섭리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깨달음은 아주 잠시였지. 순식간에 나는 다시 하찮은 루벤으로 전락했다.”
붉은 새는 날개깃을 다듬는 것을 멈추고 날개를 느리게 파닥였다. 곧 날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건네준 것들은 신에게 근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니 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그렇군.”
이제껏 그와 함께하며 이런 속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입을 열지 못하게 했었지. 루벤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가 저주스럽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제 곁에 있게 되었으니, 무엇이든 좋았다. 다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루벤인 그도 그 나름의 소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잘 있어라.”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드넓은 창공에 붉은 빛이 번쩍였다. 다자르는 한동안 그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걷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제 약혼자, 오직 단 하나뿐인 사랑. 그녀를 향해서.
“어서 와요, 다자르. 배웅은 잘 했어요?”
악시온, 바닐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가 상냥하게 웃으며 다자르를 반겼다.
그녀를 마주하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떨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황홀한 벅차오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고 다채로웠다.
다자르는 그녀를 제 품에 조심스레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왔어요.”
“으아. 뭐예요. 머리카락 헝클어진다구요.”
품 안에서 그녀가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다자르는 그저 좋았다. 제 품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제 몸에 기분 좋은 공명을 만들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한동안 품 안에서 투덜대던 그녀가 문득 이런 제안을 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 이제 돌아갈까요? 우리 집으로. 그리고 다시 아이들과 함께 피크닉을 가는 거예요. 그동안 많이 못 놀았잖아요.”
우리 집. 이 세 글자가 이렇게 벅찬 단어였던가? 다자르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고 활짝 웃었다.
“그래요. 돌아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