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0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0화 –
아주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네? 엘스턴이 바닐라의 가정 교사가 되었다고요?”
“네.”
딸랑! 금색 딸랑이가 엘스턴의 짧은 답과 함께 흔들렸다.
한 시간 전, 마치 자신이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위풍당당한 얼굴로 나타난 엘스턴은 한쪽 손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 딸랑이를 들고 있었다.
그 휘황찬란함에 악시온은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가끔 흔들어 주던 딸랑이는 쳐다도 보지 않고 말이다.
“꺄아아!”
“후후후.”
엘스턴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재빨리 딸랑이를 흔드는 걸 바라보며 나는 문득 이 소설의 여주 바닐라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슬슬 만남을 주선해도 되지 않을까.’
다자르에게 허락도 받았겠다.
여주와 남주의 만남은 아주 우연히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흠흠.
“원래 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물렸나 보네요. 그래서 가르치는 과목이 뭐예요?”
“고대어와 세계사, 경제학, 마법 이론, 그리고 마법입니다.”
“…….”
마탑주가 그런 걸 다 가르쳐도 돼?
“그, 그래요? 그나저나 곧 가야 할 시간인 거 아니에요? 오늘부터 바로 수업을 시작한다면서요.”
“아……!”
아쉬움으로 눈물을 찔끔 흘리는 엘스턴을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며 슬쩍 말을 흘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그쪽으로 갈 일이 있는데. 악시온이랑 같이 갈까요?”
“……!”
엘스턴의 눈이 다시 하트로 뿅뿅 가득 차는 걸 보며, 나는 바닐라가 지내고 있는 본관의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여주이자 악시온의 그녀, 바닐라를.
적어도 두세 살은 될 것 같은 외양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공부하는 책상에 앉은 채,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헛. 너무 예쁘고 귀엽잖아!’
역시 여주인가.
어렸을 때부터 미모가 예사롭지 않았다.
“엉니는 누구세여?”
말도 예쁘게 잘하네!
……우리 악시온은 아직 말도 못 하지만. 흑.
바닐라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엘스턴이 끼어들었다.
“헛! 언제 여기까지 온 거죠. 이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긴 시아스터 공작님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허락은 받았으니까요.”
나는 바닐라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바닐라가 호기심 어린 얼굴을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안녕하세요. 바닐라 양. 저는 실리아 에반로아르라고 해요.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둘째 여식입니다.”
“안녕하세여. 실리아.”
“네, 반가워요.”
“엘스터언. 실리아랑 같이 저를 가르치는 거야?”
바닐라의 눈이 엘스턴에게 향한 순간, 나는 재빨리 악시온을 확인했다.
악시온의 입가에 혹시 침이 흐르진 않았는지, 여전히 귀여운지, 오늘 옷차림이 어땠는지 등을 확인했다.
좋아. 오늘의 악시온은 여전히 귀여웠다.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혹시 연하 집착남 좋아해요?”
“…….”
방금 엘스턴이 혼자 삐끗하면서 탭댄스를 춘 것 같은데.
바닐라는 내 질문을 받고 눈을 끔벅였다.
“엘스터언. 여나 집착나미 모에요?”
“그, 글쎄요.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훠이훠이, 이제 가시죠.”
이런. 내가 너무 성급했다.
아직 바닐라는 순수하구나!
나는 바닐라와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엘스턴의 귀를 콱 잡고 속닥였다.
“그러고 보니 바닐라가 몇 살이었죠?”
엘스턴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려던 그때. 누군가 바짝 붙어 있던 우리를 갈랐다.
“두 분 다 이곳에 계셨군요.”
“어……?”
‘기품 있고 예의 바른’ 모드의 다자르였다.
그는 우리 둘 사이를 손날로 가르고는 슬쩍 떨어뜨려 놓은 뒤, 빙긋 웃었다.
“에반로아르 자작 영애께 요청드릴 것이 있어서 찾고 있었습니다만.”
“아, 네.”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나가다 우연히 날 발견한 모양새였다. 셔츠 단추가 평소처럼 풀려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내숭을 떨 거면 철저해야지. 쯧. 속으로 혀를 차는데,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웅. 머야.”
책상에 앉아 있던 바닐라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다자르를 째려보았다.
“아, 바닐라. 엘스턴 씨에게 수업은 잘 듣고 있니?”
다자르가 친절하게 웃으며 그리 물었으나 바닐라는 동태눈을 하고 홱 고개를 돌렸다.
“말 걸디 마.”
“하하. 요 녀석, 어제 내가 놀아 주지 않아서 삐졌구나?”
“디랄.”
“하하하. 귀여운 녀석.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부녀 사이에 진득한 살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마 바닐라는 다자르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알 수밖에 없나.
‘너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무리 시아스터 공작이 제 아버지와 형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자라 해도.’
문득 세드릭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럼 다자르가 바닐라의 친아버지를 살해한 게 되잖아……?
바닐라와 다자르의 관계를 생각하며 땀을 삐질 흘리고 있는데, 엘스턴이 속삭였다.
“정말 사이좋은 부녀지요?”
“당신, 눈새력이 엄청나네요.”
* * *
그 후 어쩌다 보니 우리는 빙 둘러앉아 차를 마시게 됐다. 바닐라가 몇 살인지 물은 내 질문에 다자르는 즉답했다.
“바닐라는 이제 두 살일 겁니다.”
두 살일 겁니다……?
‘본인도 바닐라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는 거네.’
그럼 악시온과는 한 살 차이인가, 하고 나이를 가늠하는데, 바닐라가 빼액 외쳤다.
“나아눈 세 살이라고 해짜나!”
바닐라의 불만 어린 외침에 다자르가 우아하게 찻잔을 홀짝이고는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를 불퉁하게 응시하는 바닐라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친절하게 말했다.
“정정하죠. 세 살입니다.”
“아하…….”
바닐라의 볼이 더욱 부풀었다.
나는 마음이 조금 짠해지고 말았다. 여주인 바닐라도 어렸을 때부터 고생이 많았구나.
왠지 모를 동지애가 들어 바닐라를 힐끔 보았는데, 마침 날 보고 있어 눈이 마주쳤다.
시아스터가 특유의 검은 머리칼과 황금빛 눈을 지닌 바닐라는 아주 똘망해 보였다.
“얘는 모에요?”
바닐라가 작은 검지를 들어 내 품에 안겨 있는 악시온을 가리켰다.
“이 아이는 악시온이라고 해. 바닐라 양보다는 두 살 어려.”
“시온!”
발음이 어려운지, 시온이라고만 말하며 바닐라가 악시온을 물끄러미 보았다.
“방가어.”
“아부!”
여주와 남주의 역사적인 첫 만남 순간이었다.
후후. 둘의 만남이 이렇게 우연을 가장해 이루어지게 되었군.
이렇게 소꿉친구x소꿉친구가 시작되는 건가? 오늘 방에 돌아가서 칼과 자축이라도 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바닐라가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니, 바닐라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엉니 저 남댜 만나지 마여.”
작은 검지가 제 아버지, 다자르에게 향해 있었다.
“응?”
“개새기에요.”
“…….”
추후 청순가련한 여주로 자라날 바닐라는 꽤나 통찰력이 있었다.
* * *
“요청하려고 한 게 뭐예요?”
바닐라의 수업이 시작되고 자연스레 쫓겨난 우리는 복도에 덩그러니 섰다.
엘스턴이 없자 내숭은 집어치운 다자르가 삐딱하게 날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왠지 며칠 전보다 살짝 야윈 얼굴이었다.
“뭐?”
“……아까 뭐 요청할 게 있어서 찾았다면서요.”
“아.”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올리며 말했다.
“잊었어.”
“네?”
“잊었다고.”
“…….”
맨날 나만 보면 골 때린다고 하더니, 설마 그러다가 정말 골에 문제라도 생겼나.
‘설마 그건가?’
그때 가끔 해 달라고 했던 쌀밥.
테스트 차원이라고는 했지만, 생각해 보니 공저에 들어온 후 아직 해 준 적이 없었다.
‘오호?’
저 재수 옴 붙은 사돈이 머뭇대는 얼굴을 하는 걸 보니 왠지 그때 그 밥을 원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껏 내게 쌓아 둔 악행 스택이 꽤 있지? 흐응. 쉽게 해 주고 싶진 않은데.
나도 모르게 조금 사악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나 보다.
“그럼 이만.”
그가 입술 끝을 비틀더니 휙 몸을 돌렸다.
“아. 잠깐만요.”
“왜?”
그가 옷자락을 붙잡은 날 힐끔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약간 기대감 어린 눈이 내게 와 닿았다.
나는 그 기대를 무참히 무시하고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가끔 바닐라의 교육을 청강하러 가도 될까요?”
“그쪽이? 아아, 그렇지. 듣기로는 옛날에 가정 교사가 매일 쫓겨났다던데.”
그가 씩 웃었다.
“뭐, 지금이라도 그걸 보충하고 싶은 거라면, 그러도록 해.”
“아뇨. 제가 아니라, 우리 악시온이요!”
“그 꼬맹이?”
그가 눈썹을 까딱였다. 이죽대듯 올라가 있던 입술이 살짝 내려앉았다.
“악시온이 아직 아기이긴 하지만요.”
내 품에 안긴 악시온이 방금 마주한 바닐라에 비해서는 아주 작게 느껴져,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러자 다자르가 고개를 살짝 비틀며 툭 말했다.
“원래라면 지금쯤 바닐라만큼 성장했을 테니, 들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네?”
“그 녀석, 원래였으면 더 클 거잖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 전부터 생겨난 내 걱정거리를 정확히 짚어 낸 다자르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다자르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혀를 살짝 차는 게, 어딘가 실수했다는 낌새였다.
뭐야. 수상한데.
독심술이라도 하나? 어떻게 안 거지?
그때 다자르가 툭 말했다.
“마룡의 드래곤 하트가 박혀 있다며. 그럼 평범한 인간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단순히 그걸로 성장 속도에 대해 유추할 수 있나?
절로 눈이 게슴츠레하게 뜨였다.
“그 눈은 뭐야? 저번에 이 녀석에게 금제를 걸면서, 뭔가 느껴서 그래.”
“뭐가 느껴졌는데요?”
“그런 게 있어. 초월자의 영역이니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걸.”
으으으음.
아무리 봐도 대충 둘러대는 것 같은데.
저번에 전생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황급히 날 내쫓았던 것처럼, 다자르는 급히 이야기를 마치고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덕분에 마음 한편이 아주 찝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