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1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1화 –
“어이, 장 씨. 오늘 일감은 다 했는가?”
“껄껄. 새참 드세요, 새참!”
“으랏차! 오늘도 보람찬 농사일!”
언제부터 이런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흑매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러고 있다.
‘농덕도 주변으로 전염되나?’
나는 깔깔대며 논밭을 갈고 있는 그들을 심드렁하게 보다가, 이내 자리에 쭈그려 앉아 바닥에 낙서하기 시작했다.
내 손은 저절로 악시온을 그렸다.
바닐라에 비하면 아주 쪼그만 악시온.
‘여주보다는 키가 커야 하는데. 흑흑.’
악시온의 성장이 멈춰있다는 걸 깨달은 뒤, 나는 틈만 나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었다.
엄마들이 어릴 때 발육에 도움 되라고 녹용을 먹인다는 소리에 코웃음을 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가 이렇게 아이 발육을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끄응.’
불행을 먹고 자란다는 그 루벤과 악시온이 관련이 있는 걸까? 서재에서 읽은 책을 떠올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실리아!”
세드릭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내가 한창 우울함에 빠져 지구 내핵까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을 때쯤이었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어.”
“응? 왜?”
세드릭이 분홍 머리를 휘날리며 내 앞에 섰다.
한창 논일을 배우는 중인 그는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 논일이라고 해 봤자, 논밭을 만들고 흙을 가는 것밖에 없었지만.
“곧 황제 폐하의 탄신일로 무도회가 열리는데, 너도 초대하셨거든.”
“응……?”
그 세종대왕 스칼렛 황제?
그 언니가 날 왜……?
내가 어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세드릭이 수줍게 웃었다.
“왠지 요새 네가 우울해 보이길래, 기분 전환하라고 추천했지.”
그가 머쓱한 얼굴로 말하고는 폴짝폴짝 토끼처럼 논밭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고백을 막 마친 여고생의 수줍은 뒷모습 같았다.
아, 그러니까 네가 날 추천했다 이 말이지?
“…….”
이 몸에게 무도회를 기분 전환 삼아 가라고 하는 건 저놈밖에 없을 거다.
실리아의 인간관계는 한없이 좁고 좁았기에 그녀가 무도회에 초대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런 시장 바닥 같은 곳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무도회에 가는 게 기분 전환이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저 녀석이 말하는 기분 전환은 그런 게 아니겠지.’
실리아는 꽤 예쁜 얼굴을 지니고 있었고, 생각보다 무도회장에서 인기가 있어 남자들이 은근히 모여들곤 했는데…….
어느 날 조금 무례하게 접근해 온 영식에게,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귀싸대기를 날린 일화로 그녀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때 이렇게 말했지.
‘아. 감자에 붙은 해충인 줄.’
그때를 떠올린 나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내게 기분 전환 삼아 무도회에 가라고 추천했다는 것은, 가서 사람 하나 패고 오라는 말이었다.
* * *
“안 간다더니, 뭐예요?”
“뭐.”
다그닥 다그닥, 밖에서 말굽 소리가 들렸다. 마차 바퀴가 잘 닦인 도로를 부드럽게 굴러가는 소리도 함께.
나는 뚱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다리를 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남자는, 당연하게도 다자르였다.
‘곧 황제 폐하의 탄신일 무도회가 열린다던데, 혹시 그쪽도 가요?’
‘거길 내가 왜 가? 귀찮게.’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왜 내 앞에 있는 거냐고.
“누군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알아?”
잔뜩 짜증 난 목소리로 중얼대며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였다.
나 혼자 슬쩍 다녀오려고 했는데.
다자르는 원래 지금까지 황제의 탄신일에 열리는 무도회에 참가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껏 그의 불참에 묵묵하던 스칼렛 황제가 갑자기 그를 콕 집어 불렀다는 것이다.
‘어휴.’
그나 나나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무도회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 하지만 내게는 그런데도 가야 하는 이유가 두 개 있었다.
세드릭을 통해 명단이 올라갔으니, 마음대로 불참을 하게 되면 세드릭의 명성에 누가 되기도 했고. 황궁이 위치한 제도에서 구할 게 있었던 까닭이다.
‘제도에 유명한 기계 장인이 있다고 했지.’
그 장인을 만나 벼농사에 필요한 기계들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무도회에 가더라도 살짝 얼굴만 비추고 몰래 빠져나올 계획이다. 어차피 며칠 동안 열린다고 하니까.
* * *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제도는 황제의 탄생일을 맞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대로를 지나 황궁에 들어섰다.
미리 마련된 방에서 여독을 푼 뒤, 다음 날 우린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다자르 시아스터 공작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의 커다란 외침에 무도회장 안에서 웅성대던 소리가 잠시 끊겼다.
다자르의 뒤에 빼꼼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귀족들의 얼굴에 떠오른 동경과 약간의 공포를 보며, 새삼 그의 위상이 드높다는 걸 느꼈다.
“어머, 시아스터 공작님이시잖아요?”
“급히 일정을 바꿔 참석하신다더니. 정말 오셨네요.”
“웬일이시죠? 지금까지 폐하의 탄신일에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는데.”
“크흠. 소식 못 들었어요? 그 아이요. 그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거 아닐까요?”
“어머나!”
그가 등장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제 딸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나만 들은 게 아닐 텐데, 다자르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면서 서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가 내뱉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제가 왜요?”
“저 엄마 부대를 막으려면 너 정도의 악명이 필요해.”
“…….”
이 몸의 명성을 인정해 주다니, 그것참 고맙다.
하지만 그런 귀찮은 일은 사양입니다요.
나는 심드렁한 눈으로 내 진심을 전했지만, 그는 이쪽은 보지도 않고 휙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 숨어 있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옮겼다.
“실리아 에반로아르 자작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정자세로 서 있던 시종이 무뚝뚝한 얼굴로 크게 외쳤다. 그러자 무도회장은 또 한차례 정적에 휩싸였다.
수많은 시선이 휙 내 얼굴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히익……!”
겁에 질린 음성도 함께 들렸다.
아마 가장 마지막에 참석한 무도회에서 구두로 한 영식의 귀싸대기를 때린 내 모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나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귀족 명단에서 내 이름을 체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이라도 부리는 기분이네.’
마치 해일이 갈라지듯 내 앞의 귀족들이 후다닥 물러서는 게 보였다.
‘확실히 이 몸의 악명이 드높긴 하네.’
나도 엘스턴을 통해 이 몸의 평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언뜻 떠오르는 기억들을 통해 범상치 않았던 몸이라고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귀족들을 보니…….
‘좋은데?’
평소 사람 많은 곳은 질색하는 나였기에, 주위가 절로 정리되자 아주 쾌적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런 나와 달리 다자르의 곁에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그의 눈이 데굴 굴러 나에게 와 닿는 게 보였다. 황금빛 눈은 말하고 있었다.
냉큼 내 옆으로 와!
하지만.
난 그의 의견을 따라 줄 생각이 없었다. 게처럼 슬쩍슬쩍 옆으로 걸으며 그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다.
“내가 왜 옆에 있어야 해?”
어깨를 으쓱이고는 몰래 무도회장을 빠져나왔다.
선하디선한 세드릭이 나름 나의 기분 전환을 위해 가서 사람 한 명 뚜들겨 패라고 무도회에 추천했지만.
그런 기분 전환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비폭력 주의자란 말이다!
“여기가 맞나?”
나는 무도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말 그대로 발 도장만 찍고 나왔다.
제도로 가려면 황궁을 나서야 했으므로, 난 널따란 황궁을 성큼성큼 누볐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대로 대신, 옆으로 나 있는 정원을 통해 샛길로 나갈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다자르가 잡으러 올까 봐서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한창 정원을 헤매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마치 이곳을 꼭 봐 달라는, 그렇지 않으면 넌 사람도 아니라는, 그런 메시지가 느껴지는 소리였다.
“…….”
나는 무시하기로 했다.
왠지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 같아서였다.
심드렁한 얼굴로 발을 옮기던 내 뒤로 작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이보거라!”
한 문장만 내뱉었는데도. 매우 수상쩍은 어투를 지닌 여자였다.
나는 마지못해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괴상한 자세로 수풀에 얽혀 있는 웬 여자였다.
얼굴을 가릴 목적이었는지 노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알이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는 여자는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였다.
“……나, 나 좀 도와주거라.”
“…….”
레이더에서 이 여자를 도와주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도와주지 않으면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도와주기로 했다.
“고맙다. 크흠.”
“아니에요.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야죠.”
옷에 묻은 이파리들을 떼는 그녀를 보며 나는 선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너도 무도회장을 몰래 나온 게냐?”
도와주고 얼른 자리를 뜨려 했는데, 여자는 나와 향하는 방향이 같은 듯했다.
뭐지, 이 노인네 같은 말투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쪽도요?”
“그쪽……?”
“아, 그쪽 영애도요? 여식도요? 귀족 나으리도요? 뭐라고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실리아는 세드릭 말고는 친구가 없었고, 당연히 여자인 친구도 없었다.
거기다 예전에 칼이 말했던 것처럼 예절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난 빙의자였으므로 당연히 이쪽 예절을 몰랐고.
그렇기에 귀족 영애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크흠. 난 그냥 스칼ㄹ…… 아, 아니. 칼이라고 부르면 된다.”
“그건 안 돼요.”
“뭐? 왜지?”
“제 집사랑 이름이 겹쳐서요.”
미안하지만, 한때 로판 애독자였던 내게 동명이인은 용납할 수 없었다.
“…….”
여자는 조금 황당해 보였다. 그러다 으음 일리가 있군, 하고 중얼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렛시라고 불러다오.”
“알겠어요. 렛시. 전 실리아라고 해요.”
“실리아? 실리아 에반로아르?”
나를 아는 듯한 낌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