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5화 –
찬란한 블론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장발의 미남자.
그는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저 눈웃음 좀 보라. 사람 여럿 홀릴 것 같은 깔끔하고 다정한 눈웃음. 상냥하게 접히는 눈꼬리를 보고 있자니…….
‘천사인가?’
날개만 달렸으면 천사라고 해도 믿을 만한 외양의 남자였다.
그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워후, 에인젤 스마일.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어…… 네에.”
나는 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의 잘생김에 빠져서…… 는 절대 아니고. 그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던 까닭이다.
‘이 정도 얼굴이 원작에 등장 안 했을 리 없는데!’
겁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나를 심히 괴롭게 했다.
로판의 법칙.
주 등장인물들은 모두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고로, 주변 인물들을 모두 오징어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남자는 원작의 등장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정말 그렇다면.
‘조심해야 할 인물일지도 몰라.’
소설 속 세계에는 별의별 캐릭터들이 있었으니까. 갑자기 조급해진 탓인지,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윽. 저기, 초면에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 이름 말입니까?”
남자의 동그랗게 뜨인 보랏빛 눈동자를 보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내가 미쳤나.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웬 이름이냐.
“아. 아니에요. 말이 헛나왔네요.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블론드 머리카락에 자수정을 닮은 눈동자라. 흔치 않은 조합의 외양. 분명 원작에 나왔더라면 기억을 했을 것이다.
‘악시온이 컸을 때쯤이면 중년일 테니까…….’
그럼 미중년이 되어 있으려나.
어쨌든 중요한 건, 원작에 등장한 미중년은 꽤 있었지만, 그들 중에 이런 외모를 지닌 이는 없었단 것이다.
‘그럼, 엑스트라?’
이 얼굴이?
나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그의 잘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저었다.
‘그래. 믿기지 않지만, 분명 엑스트라야.’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 봐도 기억에 없었다. 실리아의 과거 기억에도 별다른 게 없는 걸 보니, 중요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으음. 아닙니다. 저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름을 알려 드리고 싶거든요.”
“네?”
난데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도리도리 흔들던 고개를 멈췄다. 남자가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제 이름은 모로카닐입니다.”
“모로…… 카닐?”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원작에서의 인물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다.
“네. 모로카닐이요. 남자 이름치고는 조금 특이하죠? 제 어머니가 들꽃을 좋아하셨거든요.”
“어…….”
들꽃?
급히 실리아의 머릿속을 뒤지니, 모로카닐이라는 들꽃이 이 대륙에 존재하고 있었다.
‘민들레랑 비슷하게 생긴 꽃이네.’
머릿속에서 떠오른 들꽃은 노란 민들레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제 머리 색이 노랗다며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방긋 웃으며 그리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선 여전히 빛이 났다.
저 반짝반짝 빛나는 블론드 빛 머리카락을 누가 노란색이라고 불렀다고?
나는 모로카닐의 어머님이 혹시 색을 구분하시는 데 어려움이 있으셨던 걸까, 생각하며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셨구나. 하하.”
“그럼 이번엔 제가 여쭤봐도 될까요?”
“제 이름이요?”
모로카닐이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가게에는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응? 내 이름이 아니라고?
이름을 물었으니 당연히 내 이름을 물어봐 올 거로 생각했던 나는, 멋들어지게 이름을 뱉으려다 실패했다.
“에…… 음, 뭘 좀 사러 왔어요.”
“어떤 것을요?”
모로카닐이 살짝 뒤돌아 계산대에서 갈색빛 종이를 가져와서는 펜을 쥐었다.
마치 내 말을 받아 적겠다는 자세였다.
“어, 제가 농사를 지을 거라서요. 해충은 제거하면서도, 식물에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먹는 사람에게도 해가 없는…… 그런 약이요.”
“아아, 그렇군요.”
쓱쓱. 내가 말한 것을 받아 적은 모로카닐이 종이를 곱게 접어 내게 건넸다.
엉겁결에 받은 날 보며 그가 싱긋 웃었다.
“아쉽지만, 오늘 이 가게의 손님은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랍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어, 하지만 아직 열려 있는 거 아닌가요?”
“이곳은 철저히 예약제로만 진행되고 있어서요. 오늘 당장 원하시는 걸 얻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
예약제였다니! 그건 몰랐는데!
“그리고 제가 알기로 예약은 이미 1년 정도 치가 밀려 있던 것 같은데…….”
허억.
머리카락을 뜯으며 좌절에 빠진 나를 본 모로카닐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 지으며 내 손에 건넨 종이를 가리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예약해 둔 주문이 바로 다음이니까요.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시면 될 것 같군요.”
“에…… 네?”
잉?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모로카닐은 종이를 쥐고 있는 내 손을 조심스레 잡고 제 옆으로 살짝 이끌었다.
한 걸음, 그와 가까워졌다.
“그 종이를 저 문 아래로 집어넣으시면 예약이 완료될 겁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예약에 꽤 까다로운지라 예약자의 필체도 기억하고 있어서 제가 대신 썼습니다.”
“아니, 괜찮…….”
아니, 아니. 아니지.
괜찮지 않지. 벼농사에 해충은 극악이라고! 사양해서는 안 돼!
나는 벙긋벙긋 움직이던 입을 살포시 다물고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에인젤. 에인젤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천사야! 천사라고!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외치면서 모로카닐이 말한 대로 재빨리 문틈으로 종이를 밀어 넣자, 작은 쪽지가 툭 밀려 나왔다.
[한 달 뒤에 이곳으로.]“그때 오시면 계산대에 주문하신 약이 올려져 있을 겁니다. 이것처럼요.”
“아…….”
그의 말대로, 계산대에는 마치 전시대처럼 네모난 나무판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정체 모를 돌이 올려져 있었다.
모로카닐이 주문한 것인 듯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갸웃했다.
어라.
“아, 그럼 가격은 어떻게 치르면 되나요?”
타닥, 타닥.
내 말에 가게를 나서려는 듯 스태프를 짚으며 문 쪽으로 걷던 모로카닐이 우뚝 멈췄다.
“아아, 그거요.”
그러다 살짝 고개를 돌려 씩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값은 예약을 맡길 때 미리 치러 뒀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저기, 잠시만요!”
“다음에 또 만나요, 실리아 에반로아르 영애.”
“……!”
탕, 문이 닫혔다.
나는 한동안 동상처럼 서서 눈을 껌벅였다.
‘뭐야, 방금?’
내 이름을 어떻게 안 거지?
* * *
아까 그 남자는 대체 뭘까.
나는 진중한 낯을 하고 주머니 속에 담겨 있을 돌을 살포시 쓸었다. 딱딱한 돌의 표면이 천 너머로 만져졌다.
이건 아까 모로카닐이라는 민들레 에인젤 남자가 놓고 간 돌이었다.
‘칠칠맞지 못하기는.’
온갖 멋짐을 뿜으며 사라진 남자는 칠칠맞지 못하게도 제가 주문한 돌을 놓고 가 버렸다.
그가 나서자 귀신같이 알아챈 가게 주인이 가게 불을 꺼 버려서 후다닥 돌을 가지고 나왔는데.
남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문이 닫혀서, 결국 내가 들고 오게 되었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너 말이야. 너무 늦어.”
내 앞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다자르가 멍멍댔다.
모로카닐을 찾아 헤매다 그와 약속한 시각을 넘겨 버린 탓이었다.
“아, 미안하다니까요. 시간이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어요.”
“흐응.”
못마땅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다자르가 또 한 번 멍멍댄 건 바로 다음이었다.
“게다가 말이야. 목숨을 구해 줬는데,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님이 언제 날 구해 줬는데?
내가 이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더니 그가 입술을 비틀었다.
“너 가끔 날 그런 눈으로 보더라?”
“무슨 눈이요?”
“인간 말종을 보는 눈.”
“하하. 무슨 소리세요.”
하여간 눈치 하나는 엄청 빠르다니까. 인성은 누구랑 달리 바닥이면서.
내가 방긋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자 그가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고는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파.”
“?”
“배고프다고.”
“어쩌라고요?”
배고프면 알아서 쳐드시든지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가 내 사돈이라는 것과 세드릭이 말한 그의 소문을 생각해 진정했다.
문득 레온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간 건 그때였다.
‘저희 주군, 밥을 잘 못 먹는 좀 이상한 병이 있거든요. 다 맛이 없대요.’
그리고 요새 은근슬쩍 쌀밥을 해 주길 요구해 오던 다자르도 떠올랐다.
지금 나한테 밥을 해 달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다자르가 웅얼대는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그때 그 하얀 거 말이야.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른 음식이 이전보다 더 역하게 느껴지더군.”
“으음.”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 재수탱이 사돈 녀석은 부탁을 참 곱게도 했다. 나는 삐죽 말려 올라가는 눈썹을 막지 않았다.
아니, 이 새퀴가.
조금 불쌍해서 밥 한번 해 줄까 하는 생각이 쏙 들어가고, 음험한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지배했다.
씩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면 하나 해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