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9화 –
“설명? 설명할 게 뭐 있어. 보는 대로지.”
그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붉게 변한 얼굴을 숨기려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잘 보였다.
“왜인지 네게 씌운 결계가 무효화 됐고, 그 결과 마물들이 널 볼 수 있게 된 거지. 다만…….”
거기까지 중얼댄 다자르가 조금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왜 마물이 내가 아닌 너에게도 향한 건지……. 정말 이상하군.”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거예요?”
“그럼 안 이상하겠어? 시아스터는 대대로 빌어먹을 마법에 걸린 채로 태어나. 아니, 마법이 아니라 저주라고 봐야겠군.”
“네?”
훌쩍, 코맹맹이 소리로 되묻자 다자르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조금 전 새빨갛게 변했던 얼굴은 원상태로 복귀해 있었다.
한마디로 썩 재수 없는 얼굴이란 말이었다. 쳇. 회복이 빠르군.
“몸에 흐르는 피 자체가 마물들을 끌어들이게 되어 있어. 그놈들 눈엔 내가 아주 맛 좋은 먹이로 보일걸. 이제껏 구경도 해 보지 못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먹이.”
“…….”
“몸에서 풍기는 향 자체가 그래. 그러니까 틈을 비집고 나온 마물들은 산 아래로 향하지 않고 모두 내게 달려들지.”
그런데, 그런 산해진미를 놔두고 날 쫓아왔다 이 말이지……?
멍하니 그의 말을 되새김질하고 있다가, 불현듯 내 뒤에서 느껴지는, 곰작거리는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헉. 인제 보니 이 개자식이 날 안고 있었잖아?
“……뭐야?”
“뭐가요.”
후다닥 그의 품에서 벗어나 엉금엉금 기어 그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마주 앉자, 다자르가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내가 무슨 벌레라도 돼? 아주 기겁을 하면서 떨어지네.”
그사이 독심술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건가.
나는 조금 흠칫하는 얼굴로 슬쩍 시선을 빗겼다. 그러자 다자르의 얼굴이 점점 더 썩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 내가 이런 녀석을 찾겠다고…….”
그가 저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마주 보고 앉으니 아까는 뒤에 있어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아까 내 어깨에 뚝, 떨어져 내린 게 땀이 맞았구나. 나는 살짝 젖어 살결이 비치는 그의 셔츠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저번에는 그 꼬맹이 때문에 그랬다고 치고. 아니, 아닌가?”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잠깐 실험 좀 해 보자.”
“네?”
“이리 와 봐.”
히익. 난 앉은 자세로 주춤 물러섰다.
“뭐야. 어딜 가? 이리 오라니까.”
“아니, 그게……. 아, 아니에요.”
머릿속에 음마가 끼었나. 저 젖은 하얀 셔츠가 왜 이렇게 야해 보이지. 난 빙의 전 내 책장에 빽빽이 꽂혀 있던 책들의 영향인가,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살짝 돌리고 다가갔다.
“결(結).”
다자르는 이번에는 저번처럼 피를 뿌리지 않고 공중에 휙휙 이상한 수식을 그렸다.
그러자 과거 악시온을 향했던 하얀 빛무리가 그의 손끝에서 생겨나더니 내게로 포롱포롱 날아왔다.
신비롭게 빛을 뿌리며 날아오던 빛무리는 내 몸에 닿자, 팅, 하고 튕겨 나갔다.
“응?”
“역시.”
빛무리는 계속해서 내 몸에 닿으려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점차 크기가 줄어들더니, 마침내 쉬익-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그가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다자르는 조금 고민하는 듯 침묵하다가 무릎 위에 턱을 괴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군.”
“네?”
“그때 그 동대륙 이야기 말이야.”
“어…….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잠옷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고 있는데,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동대륙에서 그 새로운 식량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내가 믿지 않았잖아.”
“음. 그랬죠.”
“하지만 네가 이런 체질이라면 동대륙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말이 되지. 대륙에 걸려 있는 어떤 결계도 네 몸에는 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
“그럼 유일하게, 바다를 횡단할 수 있는 몸이라는 건가.”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내가 엄청 대단한 존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어? 이 몸 알고 보니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거나?
“좋다고 히죽거리기는. 좋은 거 아니다, 그거.”
“……딱히 안 좋아했는데요.”
“너 거짓말할 때 코 움찔거리는 거 알아?”
“…….”
말없이 코끝을 두 손으로 가리자, 다자르가 픽 웃었다.
“거짓말인데. 걸려들었네, 멍청하긴.”
와. 저 개자식이.
내가 입술 끝을 꿈틀거리자, 다자르가 아주 우스워 죽겠다는 듯 낄낄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래서. 왜 좋은 게 아닌 건데요.”
“흐으음. 맨입으로 말해 줄 순 없지.”
“?”
“왜.”
“당신, 나한테 지금 큰 잘못한 거 벌써 까먹었나 봐?”
“아.”
그가 씨익 웃었다. 내숭을 부릴 때 짓곤 하는 우아한 미소였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에반로아르 영애.”
이 개자식을 지금 죽여도 될까?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고 있자니, 그가 살짝 시선을 빗기며 말했다.
“그거 줘. 그거.”
“그게 뭔데요. 시아스터 공작께서는 어휘력이 늘지를 않으시네. 뭐든 그거라고 하시니. 이거 참.”
빗겼던 시선을 휙 다시 가져온 그가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술을 비틀며 당당히 말했다.
“저번에 내게서 뺏어 간 그, 간장계란밥 달라고.”
인제 보니 간장계란밥에 홀리셨구만?
나는 쳇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러자 그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기쁜 듯 빙긋 웃었다. 처음 보는 진실한 미소였다.
* * *
다자르의 말에 따르면, 결계가 통하지 않는 몸인 걸 다른 사람에게 걸리면 아주아주 골치가 아플 거라고 한다.
특히…….
‘절대 그 마탑주 녀석에게 들키지 마.’
‘어…… 왜요?’
‘벌써 잊었나 봐? 그 꼬맹이 심장에 마룡의 드래곤 하트를 박아 넣은 게 그 녀석이라는 거.’
‘그건 악시온을 살리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잘 살아 있는 녀석에게 넣었을지도 모르지.’
으음.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악시온과 이 몸의 이복언니에게 마차 전복 사고가 있었던 건 사실이고.
악시온이 다친 것도 사실일 텐데…….
‘그러는 그쪽은 바닐라의 선생님으로 써먹고 있잖아요?’
‘그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다자르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작에서도 엘스턴은 흑막으로 나왔으니까.
지금 이렇게 악시온을 지나치게 아끼고 헬렐레하고 바보 같고 멍청이에 개복치고 덜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니, 왜 이렇게 애 상태가 심각하지?
스스로 그에 대한 평가가 아주 박하다는 걸 인지하고, 나는 역시 흑막인가,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엘스턴에게는 이 특성을 절대 들키지 않겠다고 다자르에게 이야기했다.
“저거, 흑매예요?”
우리는 저택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내가 가리킨 것은 저택 지붕 위를 마치 메뚜기처럼 날아다니고 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마물들을 단칼에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쪽을 힐끔 바라본 다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쓰레기이긴 해도 가끔은 쓸모가 있거든. 대부분이 쓸모없는 날이지만.”
칭찬하는 건가, 욕을 하는 건가. 헷갈리는 문장을 내뱉으며 다자르는 연신 손끝에서 하얀 빛무리를 여기저기 날렸다.
우리를 중심으로 달려오던 마물들이 그의 손짓 한 번에 쾅쾅쾅, 터져 나갔다.
아까도 느꼈지만 퍽 대단한 힘이긴 한가 보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뒤에서, 아까 그가 제 방에서 뒤져 꺼내 준 코트를 걸치고 졸졸 쫓아가는 중이었다.
‘어? 어디 가요? 밖에 나간다면서요?’
‘그러고 나가려고? 밖에 시커먼 애들이 가득인데.’
그러면서 던진 코트는 그의 것인 듯했다.
잠옷 차림으로 나가기에는 퍽 춥긴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위에 걸쳤다. 꽤 따뜻하고 포근했다.
밖으로 나와 공터 중앙에 선 다자르는 날 옆에 두고 마물을 휙휙 죽여 댔다.
처음에야 ‘으헉?’, ‘히익?’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외양의 마물들이 무서웠지, 밤을 꼴딱 새워 잡아 대고 있는 걸 보니…….
퍽 단조로웠다.
역시 사람은 대단하다. 아까는 무섭다고 호다닥 도망 다니던 것들에 익숙해지다니.
그럼 다자르나 흑매들은 더 익숙하겠지.
‘졸려…….’
나는 옆에서 퍽퍽 날아가고 있는 마물들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두 무릎을 앉은 자세로 스멀스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시아스터 공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