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8화 –
“너무 늦게 왔잖아.”
에반로아르 자작가에서 돌아온 나를 반긴 건, 우리 귀염둥이들이 아닌, 뚱한 얼굴의 다자르였다.
최근 바닐라 일 이후로 ‘인간 말종’에서 ‘인간 비슷한 것’ 정도로 승격해 주긴 했지만, 여전히 재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뭐야. 나랑 무슨 약속이라도 했었나.
얼굴에 떠오른 어이없음을 숨기지 않은 채 그를 보았다.
“뭐요. 왜요?”
이제 막 마차가 커다란 분수를 빙 돌아서 저택 앞에 선 참이었다. 마차 문으로 머리를 쏙 내밀자마자 마주한 다자르의 수려한 얼굴에 내 표정이 원치 않게 썩어 들어갔다.
“너무 늦게 왔어.”
“허, 참나.”
마저 걸음을 움직여 마차를 내려왔다. 앉아 있느라 구겨진 치맛자락을 팡팡 털면서 다자르를 쓱 지나쳤다.
“칼 통해서 쪽지 남겨 놨잖아요. 그리고 본인도 지금 무슨 일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거면서 왜 그래요?”
“당연히 알고 있지. 알고 있으니까 더 이러는 거 아니야.”
마부가 마차에서 짐가방을 꺼낸 걸 보고 그 속에서 작은 서류 가방만 가볍게 집었다.
“제 방으로 다 옮겨 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보통 시종이 알아서 할 일들인데, 이곳 시아스터 공작가에는 최소한의 인력들만 있어서인지 마부가 대부분의 일을 했다.
안 그래도 수도까지 들렀다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악덕 고용주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때였다.
“앗.”
“어딜 가? 지금 급해.”
다자르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서류 가방을 휙 낚아채고는 제 어깨에 짐을 메듯 올렸다. 그러며 휘적휘적 앞서 걷는 뒷모습이 퍽 한량 같아 보였다.
“저 지금 안 그래도 한동안 안 쓰던 머리 왕창 쓰고 와서 피곤하거든요? 꼭 지금이어야 해요?”
대충 하는 말을 들어보니, 식량과 관련된 이야기일 듯했다. 식량난으로 황실과 귀족들의 곳간을 열어젖힌 마당에, 안 그래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나 지금 너무 피곤하다고오.
“급한 일이야.”
으윽. 정말 급한 일인 건가.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돌아오자마자 찾을 줄은 몰랐는데.’
딱 보니, 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모양새다.
“그래서, 뭔데요?”
마주 보도록 배치된 집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물었다.
마주한 황금빛 눈동자는 전과 달리 조금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과거 그에게 쌀을 새로운 식량으로 들이밀었을 때 보였던 그 눈이었다.
“1년이 걸린다고 했었지? 수확할 때까지.”
“네. 그렇죠.”
“너무 오래 걸려.”
아니, 이미 오래 걸린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치 이제야 1년이 걸린다는 걸 알았다는 듯 말하는 다자르의 모습에 눈썹이 절로 까딱였다.
“더 줄여야 해. 그리고 이번 수확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얻으면 바로 제국의 이름으로 사들이도록 하지.”
사람이 왜 이렇게 급해졌어?
이번 건이 괜찮으면 바로 식량으로 쓰자는 건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이미 이야기된 거잖아요? 벼가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계절이 있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줄여요? 신도 아니고.”
“그러니까 방법을 강구해야지.”
“왜 이렇게 급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다자르의 눈빛에서 조급함을 읽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황실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내 물음에 다자르가 잠시 멈칫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알려 줘야 저도 ‘아, 그렇구나!’ 하고 동기부여가 되죠.”
“……그게,”
망설이던 다자르가 느릿하게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자세는 여유로웠으나 눈빛은 여전히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이번 분기에 황실에서 거둬들이려고 했던 미아르의 수급에 차질이 생겼어.”
“……?”
내가 못 알아듣는 얼굴을 하자 다자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제까지 미아르의 수급에 문제가 있었던 건, 미아르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라지 않는 게 컸던 건 알고 있겠지.”
“네. 병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일단은, 그렇게 추정하고 있지.”
에반로아르 자작령에서 키운 미아르 일부도 성장을 멈추면서 점차 수확량이 줄고 있었다. 그건 대륙에 퍼진 작물 병 때문이었고, 이젠 미아르를 키우는 곳이라면 모두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다자르가 진지한 낯빛을 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 영향을 받지 않았던 곳이 있었어.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대규모 지대. 미아르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긴 했지만, 그 지대 덕분에 제국에서 필요한 식량을 간신히 수급하고 있는 중이었지.”
“……설마.”
“그래. 그 지대의 모든 미아르가 성장을 멈췄어.”
맙소사.
절로 동그래진 눈으로 다자르를 멍하니 보았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서신이 날아온 거였구나.
“큰일이네요. 그래서 급하게 지금 곳간을 여는 거군요. 게다가 일이 벌어진 시기가 좋지 않네요.”
“그래. 일부러 ‘안식의 기간’을 노린 거지.”
노리다니? 마치 그 뒤에 이 사태를 만들어 낸 누군가가 있다는 뉘앙스였다.
쓸데없이 예리한 촉이 와서 나도 모르게 툭 묻고 말았다.
“그 뒤에 누가 있는데요? 일부러 이 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집단이 있다는 건가요?”
“……!”
내 물음에 다자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실수했다는 듯 입술을 살짝 물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황금빛 눈동자가 난감함을 품었다.
동시에 나도 아차 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악시온만을 잘 키우는 게 꿈인 나였기에. 이런 개입은 지양해야 했는데. 더군다나 악시온이 루벤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깊게 개입하는 건 더욱 조심해야 했다.
‘어어……. 안 되지, 안 돼.’
나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손을 살짝 저었다.
하하, 하하하.
“와. 제가 요새 소설을 너무 많이 봤나 봐요. 갑자기 이상한 상상력이 무럭무럭 싹텄네요. 대답 안 해 주셔도 돼요. 아니, 하지 마세요.”
굳이 대답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는데.
평소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지 아주 상냥하게 답을 주었다.
“그래. 새로운 식량을 만들어 내는 사업에, 네가 가장 핵심인데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숨겨서는 안 되겠지.”
“……아니, 저기.”
“이제껏 황실의 지대는 건들지 않던 그들이 갑자기 이렇게 나왔다는 건, 이 사업에 대해 눈치챘다는 걸지도 몰라.”
난 정말 괜찮다는 얼굴로 손을 저었지만, 다자르는 결단코 꼭 내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는 듯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리고 귀에 꽂힌 문장은 나도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너도 위험해질 수도 있어. 더불어 그 꼬마도.”
“……네? 저랑 악시온이요?”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리고 악시온은 전혀 연관도 없는데……?
“일부러 제국에 식량난을 불러온 녀석들이니, 새로운 식량의 탄생을 반기지 않을 거야.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이 그 식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럼 당연히 가만두지 않겠지.”
“…….”
일부러 제국에 식량난을 불러왔다, 라. 그렇다면 불행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문득 실베스타인이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루벤의 추종자’가 생각났다.
혹시 그 ‘루벤의 추종자’가 이들인가?
“그리고 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할 수도 있고.”
내 약점. 그건 악시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저번에 새로운 식량을 구한다는 공고를 낸 후, 네가 내게 왔지.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 공고는 실패한 걸로 되어 있어. 그런데 어디서 꼬리가 잡힌 건지 모르겠군.”
다자르가 조금 미안한 낯을 했다.
그에게서 좀처럼 볼 일이 없던 표정이라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진짜구나.
나는 낯을 굳힌 채 입술을 꾹 물었다.
아무리 원작에서 20년은 더 전의 일이라지만, 루벤이나 루벤의 추종자에 대해 원작상 너무 다루어진 게 없었다.
지난번 실베스타인의 편지를 받고 나서, 나는 악시온이 루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루벤의 추종자라니.
‘루벤은 불행을 먹고 각성하고, 악을 품고 자라나면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존재니까.’
루벤의 추종자들은 루벤이 불행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세계 종말이라면 말이다.
대체 왜 세상이 끝나길 바라는 거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악시온이 루벤인 걸 알게 되면 그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그럼 곤란한데.”
내가 작게 중얼대자, 다자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곤란하지. 그러니까 어서 그 쌀을 키워 내야 해.”
“……어떻게요? 뭐 방법이라도 있어요?”
아까 말했듯이, 내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자라는 속도를 조절하냔 말이다.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다자르가 툭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