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3화 –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건가?’
마차에서 내리면서 렛시를 걱정했다.
최근 미아르의 성장 중단으로 난리가 난 것도 있고, 이전 날 나와 함께 따로 황실을 벗어났다가 괴한의 습격을 받기도 하지 않았나.
‘물론, 그건 일부러 함정을 판 거라고 하지만.’
설마 이번에도 그 함정인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하는 곳은 렛시와 만나기로 한, 아주 작은 카페였다.
골목길 한구석에 위치한 카페는 카페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건물이 낡다 못해 다 떨어져 가는 모양새였다.
“계세요……?”
끼이익.
문을 열자 기름을 먹이지 않은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렛시가 알려 준 주소와 가게 이름은 이곳이 맞다.
‘간판이 너무 흐릿해서 이름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카페 무나. 가게 안은 겉보기와는 달리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카페보다는 가정집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주방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어여쁜 커튼이 달려 있었고, 그 너머로 달그락달그락 찻잔이 부딪치고,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먼저 온 건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테이블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구석 자리를 향해 발을 떼자,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막 의자에 엉덩이를 가져다 대려고 할 때.
“이쪽!”
어디선가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분명, 렛시였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벽으로만 보였던 공간이 살짝 젖혀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빠져나와 있는 하얀 손도.
어서 이쪽으로 오라는 듯 날 향해 펄럭이고 있었다.
“……렛시?”
“응. 맞다. 나다.”
보아하니 이 카페의 비밀 공간 같은 것인가 보다. 역시 황제는 황제인가, 생각하면서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엇.”
“아.”
그리고 의외의 인물을 마주했다.
“또 보네요. 에반로아르 영애.”
“어어……. 모로카닐?”
“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대륙의 에인젤, 모로카닐이었다.
그가 렛시의 바로 옆 의자에 다소곳이 앉은 채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뒤에 휘광이 비치는 것 같다.
‘윽. 눈부셔.’
보이지 않는 빛에 눈이 머는 듯한 착각이 들어 눈을 비볐다.
그때 렛시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실리아!”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반가움이 가득했다.
“오랜만이에요. 렛시!”
이전에 마주했을 때처럼 노란 보자기를 둘러쓴 렛시는 커다란 안경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흠흠, 맞다. 오랜만이다. 실리아!”
나와 렛시가 덥석 손을 잡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모로카닐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가 조금 놀라고 당황한 눈으로 렛시를 빤히 보았다.
아무래도 황제인 그녀가 일개 자작가의 영애와 이렇게 손을 맞잡으니, 당황한 듯했다.
황제의 품위나, 호신을 생각했을 때 그러면 안 되겠지.
하지만…….
‘난 몰라. 난 렛시가 황제인 걸 모른다아아.’
그가 당황한다고 뭐 어쩌겠는가.
난 그녀가 황제인 걸 모르는 입장이고. 우린 서로 여자 사람 친구를 하기로 한 사이란 말이다!
우리가 꺄꺄거리며 우정을 나누는 동안, 모로카닐은 잠시 어쩔 줄 모르는 기색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렛시가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렛시가 내게서 살짝 떨어진 후, 신기하다는 듯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답하기 전에 모로카닐이 입을 열었다.
“네. 조금 연이 있습니다.”
“음. 그래? 잘됐군.”
뭐가 잘되었다는 걸까.
뭐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렛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은 이게 중요했다.
“이렇게 밖에서 만나도 되는 거예요? 그때처럼 또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내 걱정 어린 질문에 렛시가 걱정 말라는 듯 검지를 까딱까딱했다.
“걱정 마라. 이번엔 호위를 둘이나 데려왔으니까.”
“호위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호위라고 부를 만한 이는 모로카닐밖에 보이지 않았다. 초월자를 호위로 쓰다니. 역시 황제는 남다르군.
‘그런데…….’
둘이라면, 여기 모로카닐이 있으니까 나머지 한 명이 더 있다는 건데.
누구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테이블 위에 찻잔과 티 주전자가 놓였다.
그 뒤를 따라, 향긋한 차 향기가 코를 찌르고…….
“젠장.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짜증 섞인 욕설이 뒤를 따랐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트레이를 한쪽 팔에 대충 낀 채 삐딱하게 서 있는 다자르가 보였다.
그의 단단한 상체에 매달려 있는 작고 귀여운 분홍빛 앞치마가…… 퍽 살벌했다.
“……당신 여기서 뭐 해요?”
그렇게 차려입고서. 우웩.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중요한 인사를 비밀스럽게 만난다기에 할 일도 놓고 따라왔구만. 이게 뭐야?”
그가 제 앞치마를 팡 털었다.
“다자르. 그대가 그렇게 주인처럼 입고 있어야 이곳이 위장 카페가 아니라는 걸 알릴 수 있지 않겠나.”
렛시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내가 들어도 참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다자르에게는 안타깝게도, 렛시의 표정이 진지한 걸 보니 정말 진심인 듯했다.
그때 모로카닐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에반로아르 영애께서 렛…… 시 님의 직……업이 무언지 알고 있는 겁니까?”
“크흠! 모른다. 하지만 우리 둘은 그런 걸 넘어서서 친구가 되기로 했다.”
렛시의 대답에 모로카닐이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렛시가 황제인 걸 아냐는 질문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돌려준 돌은 받은 건가?’
모로카닐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자니, 딱히 아는 척을 안 하는 걸로 봐서.
‘아직 가게에 간 적이 없거나.’
아니면 딱히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뭐, 상관없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지금의 내 상황을 신경 쓰는 게 낫다.
어쩌다 보니 초월자 둘과 황제를 마주한 채, 차를 마시는 상황에 처해 버렸으니까.
‘게다가 이건 다자르가 타 준 차.’
평소 귀찮은 걸 싫어하는 그가 차 마시는 건 많이 보지 못했다. 더불어 내게 차를 내주는 일도 없었고.
조금 묘한 기분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꽤 맛있었다.
렛시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자르는 역시 차를 잘 끓이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
“당연하지. 겉으론 나이가 같아도, 실제론 아니었으니까. 누구처럼 서투를 일이 없지요.”
다자르의 퉁명스러운 답에 렛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우리가 소꿉친구인 것은 변함없다.”
매우 포용력 있는 목소리였다.
네가 어떤 존재이든지 간에, 우린 친구라는 뜻…… 그런 걸까?
다자르는 렛시의 그 말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뚱한 얼굴로 내 옆자리에 앉는 걸 보면.
‘응?’
아니, 왜 내 옆에 앉아?
“저기요. 저쪽에 자리 많은데 왜 하필 여기에 앉아요?”
렛시도 모로카닐과 의자 하나 거리만큼은 떨어져서 앉아 있는데. 다자르와 나만 찰싹 붙어 있는 꼴이 됐다.
그러자 다자르가 뻔뻔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추워. 곧 겨울이잖아.”
“…….”
개뿔. 춥기는 뭐가 추워.
또 날 괴롭히려는 심산이군. 내 얼굴이 살짝 썩어 들어가자 다자르가 그제야 씩 웃었다.
저거 봐, 저거 봐.
자기 기분을 풀려고 날 일부러 자극시키는 게 틀림없었다.
그때 모로카닐이 다자르가 타 준 차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멀뚱히 물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두 분께서는 꽤 사이가 좋으시군요. 두 분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십니까? 다자르에게 이런…… 지인이 있다는 건 조금 놀라운데 말이죠.”
아니. 에인젤님. 사이가 좋다뇨?
내가 황당한 얼굴로 입을 딱 벌리고 절대 아니라는 표시로 고개를 휙휙 젓는데,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 툭 답했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신경 꺼.”
아. 둘의 만남이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잊을 뻔했다.
‘둘이 사이가 좋지 않았지.’
아마 전생부터 이어진 듯한데.
렛시의 표정을 살피니, 렛시는 둘의 대치가 익숙한 듯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럼 이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둘을 굳이 호위로 부른 건, 일부러 그런 건가?’
원치 않게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렛시는 어쩌면 둘의 갈등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다자르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역효과 같기는 했지만.
“이 녀석이 굳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나 혼자서도 호위는 충분할 것 같은데.”
다자르가 표정을 딱 굳히고 말하자, 모로카닐의 눈썹도 살짝 꺾였다. 순식간에 싸늘한 분위기가 둘 사이를 메웠다.
음. 난 렛시를 보러 온 건데. 매우 불편해졌어.
저번처럼 둘의 대치를 지켜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끼어들 틈을 보던 때였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모로카닐에게도 공유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불렀느니라. 모로카닐이 진행 중인 것도 공유하고.”
렛시가 의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함께 의논할 거리도 있다.”
그 말에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다자르와 모로카닐이 진중한 얼굴로 렛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황제와 초월자들의 논의 자리에 제가 왜 앉아 있는지 아시는 분?’
나는 내가 사실 알고 보니 나만 모르는 먼치킨 캐릭터라 이 제국에서 중대한 역할이라도 맡고 있는 건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