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9화 –
한쪽 손으로 제 입가를 살짝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걷던 다자르가 잠시 멈칫했다.
뒤에서 들려온 한 여인의 이름 때문이었다.
실리아. 실리아 에반로아르.
“……하, 정말.”
그가 두 손으로 귀를 털어 내듯 문질렀다.
거친 손놀림 탓에 금방 귀가 빨갛게 변했다.
“…….”
그녀가 입장을 마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절로 움직이려는 고개를 손으로 탁, 막았다.
멈췄던 걸음을 뗐다.
“잘 들어갔겠지. 뭘 또 확인하려고 그러냐.”
다자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저 자신을 향해 중얼댔다. 그러고는 점차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가 다자르라는 걸 확인한 시종이 안내한 곳이었다.
황궁의 수풀을 헤쳐, 숨겨진 통로로 들어선 그는 통로 안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도 개의치 않은 채 계속해서 걸었다.
빛 한 점 없는 통로 속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 완전히 갇힌 느낌이 들었다.
“근데 아까…….”
그가 문득 멈춰 서서 마른세수를 했다. 흠흠. 괜스레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큭. 참았던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녀석 얼굴, 정말 우스웠지.”
그 사색이 된 얼굴이라니.
“정말 사람을 여러모로 힘들게 하는 여자라니까.”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고 힘이 들었다.
얼굴 근육이 좀 마비된 것 같은데. 다자르가 입가를 매만졌다.
예전엔 이상한 여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보기만 해도 웃기단 말이야.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막 나.
‘응? 왜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
조금 이상한 논리였지만 금방 수긍했다.
그 여자가 날 웃게 한 일이 퍽 많아야지. 그래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나 보다, 생각하며 다자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자르.”
그가 한참 속으로 중얼대며 걷던 바로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스칼렛.”
“제시간에 맞춰 왔구나. 조금은 늦을까 싶었는데.”
“누구의 명인데 늦게 오겠습니까. 지금 아니면 둘만 따로 볼 시간도 없는데.”
그를 멈춰 세운 것은, 화려한 의복을 걸친 스칼렛이었다.
여기에 황제를 상징하는 지팡이와 여우 털이 박힌 망토를 걸치면 예복의 완성이었다.
다자르가 그녀의 복장을 살피더니 물었다.
“급히 나온 모양인데요?”
“옷 갈아입을 때가 아니면 하엘 경의 눈을 피하기가 어렵거든. 저번에 나갔던 것도 걸려서 한바탕 호되게 혼났다고.”
큭큭.
호위에게 혼이 나는 황제라니. 퍽 우스운 이야기였다.
다자르가 제 이야기에 위로는커녕 큭큭 대고 웃고 있자, 스칼렛이 눈을 세모꼴이 됐다.
그러다 이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하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말하겠노라. 지난번에는 듣는 귀가 많아 더 말하지 못했어. 이번 ‘안식의 장’에서 ‘루벤의 추종자’들이 손을 쓸 거라고 말했었지?”
“음.”
다자르가 기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모로카닐과 함께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안식의 장’에까지 손을 뻗은 걸 보면, 분명 뒤에 누군가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날 실리아와 모로카닐이 함께할 때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지만, 다자르는 같은 생각을 했다.
‘안식의 장’에 잠입해 일을 벌일 정도라면, 분명 큰 뒷배가 돕지 않고서야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루벤의 추종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일 생각이야.”
“……예?”
다자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실의 미아르까지 손을 댔어. 이 또한, 그들을 돕는 이들의 짓일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녀석들을 막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거셀 겁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곳간을 열라는 황실에서의 명령에 귀족들의 속은 꿍해 있을 터였다.
아무리 황실이라 할지라도, 무상으로 곳간을 열라는 명령을 좋아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평민을 가축처럼 생각하는 귀족들의 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으므로, 겉으로는 표 내지 않아도 분명 불만을 품고 있을 터였다.
“핵심 귀족들을 제외하고 ‘루벤의 추종자’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안식의 장’에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르는데. 혹시 귀족들이 제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잡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스칼렛이 끼어든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반가운 낯을 했다.
“아, 재상.”
“네. 폐하. 하엘 경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더군요.”
다자르가 제 앞에 나타난 웃는 얼굴의 남자를 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세이드리그 에이하르츠 후작. 제국의 재상이자, 황제의 왼팔.
저와 같이 황제의 손을 잡고 있는 이였지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재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다자르는 어쩐지 그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폐하께서 돌아가셔야 하니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루벤의 추종자’는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념은 굽혀지지 않으니, 그 신념을 역이용하여 그들을 선별하면 됩니다.”
“역이용…….”
“네. 게다가 지금은 귀족들의 목줄을 짧게 잡아야 하는 때입니다. 그들이 이에 불만을 품더라도, 더 강하게 나가면 결국 꼬리를 말 것입니다. 결국 언젠가는 부딪치게 될 문제이므로,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
그래. 저 청산유수 같은 말도 그렇고.
저 언제나 웃는 낯도 별로고.
“그럼, 이만 저희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좀 이따 보지. 다자르.”
“……예.”
재상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휘적휘적 먼저 걸어 나가는 황제의 뒤를 따라 걷다가, 그가 문득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 ‘균열의 날’ 때 에반로아르 영애가 저택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던데. 맞습니까?”
다자르가 저도 모르게 눈을 좁혔다.
갑자기 왜 그 여자를 찾지?
그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했다.
아. 저 녀석, 실리아에게 농사일을 배우고 있지.
‘게다가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했다고 했던가.’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알아 온 소꿉친구라는 건 모르는 다자르는 대충 둘이 안면 정도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만.”
“……흐음. 그랬군요. 제가 떨어져 있도록 충고를 했는데도.”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대충 알 것도 같다는 얼굴을 하며, 세드릭이 몸을 돌렸다.
“……뭐야. 저 녀석?”
원래도 기분 나쁜 녀석이지만 오늘은 특히 더 별로라고 생각하며, 다자르는 홱 몸을 돌렸다.
실리아를 따라 연회장에 들어가야 했다.
* * *
“흐음. 다자르는 ‘루벤의 추종자’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군.”
스칼렛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그러자 그녀의 뒤를 따르던 세드릭이 싱긋 웃었다.
“안심하십시오. 아마 폐하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걸 겁니다.”
“그건 안다.”
그들의 우정이 어렸을 때부터 깊다는 것은, 세드릭도 잘 알고 있었다.
다자르가 황제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낼지라도, 황제가 다자르를 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그들 사이에는 굳건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으니까.
“아까는 놀랐습니다. 하엘 경이 오우거처럼 뛰어다녀서요.”
“뭐라? 이런. 하엘 경이 화가 단단히 났나 보군. 그런 모습은 1년에 한 번 정도나 볼 수 있는 건데.”
스칼렛이 다급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르며 세드릭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이쯤이면 다자르는 이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 연회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의 소꿉친구, 실리아가 있는 곳으로.
“실리아가 오늘 연회를 잘 즐겨야 할 텐데.”
세드릭이 친절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
실리아에게는 조금 괴로운 하루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녀니까 잘 견뎌 낼 것이었다.
“힘들어한다면 내가 잘 달래 줘야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가 적극 도울 생각이었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 * *
아아.
아아아.
아, 귀찮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세 여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머, 영애.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정말 예의가 없으시네요. 사람을 앞에 두고 한숨이라니.”
“호호. 그러게요. 우리가 이해해야죠. 에반로아르 영애께선 이런 자리가 낯설 테니까요. 그렇죠?”
꺄르르.
저들끼리 이야기하고 맞장구를 치며 웃는 신호등의 모습에 검지로 뺨을 쓱쓱 긁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내가 연회장에 입장하자마자 후다닥 반기러 온 세 명의 귀족 영애들.
그들은 각기 빨갛고, 노랗고, 파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정말 신호등 같네.’
원래라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다들 바퀴벌레를 본 듯 사라져야 옳은데.
후다닥 후퇴하던 귀족들 사이를 용감하게 꿰뚫고 이 세 여자가 온 것이다.
‘용감한 녀석들일세.’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말을 거는 게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신호등 세 자매가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하고. 이 악명 높은 몸에게 말이다.
“세 분 다 용기가 가상하시네요. 감히 제게 말을 붙일 생각을 하시다니. 몸이 튼튼하신가 봐요? 맞아도 오뚜기처럼 벌떡벌떡 잘 일어나신다든가, 그런 특기라도 지니고 계세요?”
내가 싱긋 웃으며 던진 말에 신호등 세 자매가 몸을 흠칫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