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69화 –
“자, 악시온. 어디부터 가 볼까?”
황실의 커다란 별궁 한가운데에 악시온을 안고 서서, 씩 웃었다.
이튿날, 나는 악시온과 단둘이 이곳의 모든 방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방마다 각기 다른 주제로 이벤트가 진행된다고 했지?’
세드릭이 전해 주고 간 일정표를 손에 꼭 쥔 채로 발을 옮겼다.
왠지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나온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약간 설레고, 긴장되는 느낌.
“우아!”
“여기? 여기부터 가 볼까?”
살짝 심호흡하고 있는데, 악시온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른쪽 복도였다.
“어디 보자. 여긴, 시 낭송…… 이랑, 책 살롱…… 으, 음. 그리고, 지식인들의 강의……? 라고 적혀 있네.”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데.
“우아! 우아!”
“……그래? 꼭 가야 해?”
계속해서 그쪽을 가리키는 악시온 탓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충 악시온에게 얼른 보여 주고 다른 곳으로 향하기 위해,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한 방에 들어갔다.
주제가 무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세계가 곧 멸망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종말론자를 이곳에서 마주했다.
‘으응……?’
세계의 멸망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말이다.
‘어디서 들어 봤더라.’
곰곰이 생각…….
“우아!”
……은 무슨 생각.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여기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가져올 미래니까.
아니, 정정하자.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지.’
원작상 악시온은 비참한 인생을 보낸 후 이 세계를 멸망시켰지만, 내가 버리지 않고 키움으로써 미래가 바뀌어 가고 있을 것이다.
“…….”
‘바뀌어 가고 있기를 바라자…….’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악시온을 안고 있는 팔에 살며시 힘을 줘 아이를 꼬옥 안았다.
“우에?”
악시온이 제게 가해진 힘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의 귀여운 얼굴에 푸흐흐 웃으려는데, 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여러분!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분’이 나타나서 이 썩은 세계를 모두 치워 버리실 것입니다!”
강단에 선 남자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침을 튀겨가며 열렬히 강연하고 있었다.
칠판에는 큰 글씨로 ‘세계 종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음…….”
나야 원작을 알고 있으니 그의 주장에 이걸 어떻게 알았나 깜짝 놀라 귀를 기울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저런 미친 사람이 어떻게 황궁에 들어온 거죠?”
“그러게 말이에요. 놀랍게도 황실 아카데미 교수라던데요.”
“그 아카데미에 자네 조카가 다니지 않던가?”
자리에 앉아 있던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흠흠. 맞습니다. 예전엔 저명한 학자였는데 최근에 갑자기 저런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더군요. 그런데 또 우습게도, 그 주장을 믿는 사람도 생겼다고 합니다.”
“하! 정말 말세로군, 말세야. 누구는 남의 곳간을 강제 개방하지 않나. 황실 아카데미 교수라는 사람은 종말론을 퍼뜨리질 않나.”
중년 남자 귀족 하나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외치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나라 꼴이 잘도 돌아가는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무더기의 귀족들이 혀를 쯧쯧 차며 강의실을 나갔다.
나도 덩달아 그 무리를 따라 나가려다, 뒤를 힐끔 보았다.
‘어라…….’
놀랍게도 꽤 다수의 사람이 자리에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진지하게.
“우리는 이 세계를 깨끗이 정화해 줄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옳소!”
교수의 말에 작게 동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세계가 원래대로 흘러간다면 멸망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원작대로만 진행된다면 저 교수의 말대로 세계는 멸망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악시온의 손에.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마치 종교를 전파하듯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버럭버럭 외치는 교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 ‘안식의 장’에 ‘루벤의 추종자’들이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혹시 저 사람이 ‘루벤의 추종자’인 것은 아닐까.
내 이 의심이 맞는지, 어쩐지 강의실을 지키고 선 근위병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 어떻게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이걸 먼저 짚고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내 품에 안긴 악시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악시온은 강단에서 손을 높이 치켜든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자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진무구한 눈을 가진 아이가 사실 정말 루벤일 수도 있다는 것.
불행을 먹고 자란다는 루벤처럼 식량난이 더 극심해지자 성장한 것도 그렇고. 원작에서의 악시온의 행동이 루벤의 운명과 닮아 있다는 것도 그렇고.
분명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아무리 봐도 원작에서 악시온이 보인 모습을 따지고 보면, 루벤이 맞아.’
원작에서는 루벤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 특징을 보면 대부분이 들어맞았다.
이제는 의심을 넘어서 거의 확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번 실베스타인에게 답신이 오고 난 이후로 아직 서신이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악시온이 루벤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내가 악시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그저 나는 악시온을 지키고 아이가 행복하게 크도록 노력할 뿐이다.
순간 스쳐 지나간 바닐라와 다자르의 얼굴을 얼른 지워 냈다.
대신 다른 것을 떠올렸다.
‘원작에서는 분명 나중에 바닐라가 얻게 될 목걸이가…… 악시온의 순수한 악을 정화하는 듯했어.’
원작에서 마룡의 드래곤 하트를 끊어 내었던 목걸이. 그 목걸이를 얻어 낸다면 뭔가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바닐라 주변에는 아직 그 목걸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작에서도 바닐라가 악시온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나타났으니 아직 멀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어.’
‘루벤의 추종자’로 의심되는 이와 한 공간에 있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자,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가 볼까?”
“우웅?”
복도로 나온 나는 악시온의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씩 웃었다.
“헤에.”
이마를 쓸어 넘기자 악시온이 기분 좋은 듯 헤헤 웃었다.
악시온의 뜻대로 강연도 듣기는 들었으니,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한다.
양쪽 복도에서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무시하며,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여기 오래 있다가는 내 몸에서 잉크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으악. 여긴 잉크 냄새가 너무 난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잖니. 우린 여기 있으면 안 되잖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는지, 뒤쪽 복도 코너에서 학을 떼는 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빨리 나가자, 빨리!”
“알았잖니. 가잖니. 하지만 길을 잃었잖니.”
“이봐, 비켜. 우리 나가야……. 어? 너는?”
“으응? 누구잖니?”
이 독특한 말투라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에이슈? 그리고…… 코라?”
이전에 신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두 초월자.
소년의 모습을 한 초월자 에이슈와, 독특한 말투를 쓰는 초월자 코라가 서로에게 엉겨 붙은 채로 눈앞에 있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둘이 동시에 검지로 나를 콕 가리키며 외쳤다.
“어! 다자르를 대놓고 욕했던 사람!”
“대단한 사람!”
나는 그래도 이름으로 기억해 줬는데. 다자르를 대놓고 욕했던 사람이 뭐야.
대단한 사람은 좀 듣기 좋긴 하네.
“그 대단한 사람 이름이 뭔데요?”
“어…….”
내가 멀거니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에이슈가 멈칫하고는 슬쩍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름이 뭐였더라.”
그때 코라가 코끝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난 알잖니. 실리아잖니.”
“맞다! 실리아! 그리고 그때 그 아기네. 이 아기 이름은 기억나. 악시온이었지?”
에이슈가 뿌듯하다는 듯 씩 웃으며 물어왔다.
나는 봐준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맞아요. 두 사람, 여길 나가는 길이세요?”
“응! 코라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서 말이야.”
“그런데 우리 둘 다 길치라 길을 헤맸잖니.”
“…….”
이 일직선의 복도에서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