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78화 –
“그동안 루벤이 나타나지 않아서, 성녀의 존재 의미에 대해 너무 깊게 고찰을 했나 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다니.”
성녀가 다자르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다자르가 눈을 나른하게 내리뜨며 픽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뇨?”
성녀가 발끈한 목소리로 받아치자, 다자르는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고 한쪽 다리를 꼬았다.
“예전부터 사사건건 의심을 해 오다, 루벤의 추종자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니 애가 타는 건 알겠습니다.”
“……이전과는 움직임이 달라요.”
다자르의 말대로였다.
최근 루벤의 추종자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성녀는 초조했던 참이다.
물론 꼭 루벤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루벤의 추종자들의 움직임은 역사적으로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이처럼 크진 않았다.
살짝 작아진 목소리로 성녀가 답하자 다자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다르다고 칩시다. 그 전에, 초월자가 대체 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에 대해 의심을 한다는 건, 곧 신의 의지를 의심한다는 것 아닌가요?”
“…….”
“황실의 협력하에 루벤의 추종자들을 잡아들이려다가, 마침 내가 보이니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죠.”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고저 없는 목소리와 무표정한 얼굴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이런 대치를 오랫동안 이어 온 성녀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내가 루벤의 추종자라고 확신했다면 날 이런 방으로 안내하진 않았을 겁니다.”
확신을 얻은 순간 바로 좁고 비참한 지하 감옥으로 안내했을 것이다.
“폐하께서도 피곤하시겠군. 신전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쩡한 초월자를 반역자로 만들 수도 없고.”
아마도 대강 신전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구색을 갖추기 위해 모로카닐을 보낸 것일 테다.
‘그런데 그 녀석, 마치 내가 진짜 반역자인 양 일부러 실리아 앞에서 더 으스댔지.’
모로카닐의 딱딱히 굳은 얼굴을 떠올린 다자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감정 따위 없는 녀석이. 이상한 일이었다. 왜 굳이 실리아 앞에서 더 그런 모습을 보인 거지.
하지만 이 건에 대해 깊이 생각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다자르는 툭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얼마나 더 시간을 내줘야 합니까? 내 힘을 뺄 생각으로 며칠간 이곳에 머물게 했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지루하긴 해도, 오랜만에 이렇게 쉬니 오히려 좋거든요.”
다자르의 말에 성녀가 이를 악물었다.
분명 그에게 무언가가 있는데 알지 못해 답답했다.
뭔가가, 뭔가…….
“에반로아르 영애는 왜 저택으로 들인 거죠? 식량 개발은 꼭 저택에서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하.”
성녀의 물음에 다자르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뱉었다.
“내가 내 사적인 영역까지도 신전에 전부 밝혀야 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당신은 초월자니까…….”
“초월자는.”
그때 성녀의 말을 매섭게 끊은 다자르가 고개를 모로 세운 채 툭 말했다.
“초월자는 마음에 드는 여자도 제집으로 못 데려갑니까? 이상한데. 일찍 돌아가신 내 생물학적 어머니도 나름 내 아버지와 사랑을 한 것 같은데. 나는 예외라니.”
“……!”
난데없는 다자르의 고백에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껏 스캔들이라고는 일절 없고, 귀족들과는 철저히 벽을 둬 온 그가 갑자기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니?
진심으로 당황에 빠진 성녀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다자르는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건들지 마세요. 관심도 두지 말고. 그 여자의 모든 것에 말입니다. 그 여자의 집안, 아이, 하물며 그녀가 먹고 입는 것 모두. 그 어떤 것에도.”
“…….”
성녀가 어버버 하는 사이, 다자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폐하께서 허락해 주신 감금 기간은 끝난 거죠? 여기서 더 쉬었다가는 폐하께서 노하실 거라서.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자르는 성녀를 지나쳐 방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성녀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에 눈을 끔벅이며 멀거니 있었다.
다자르가…… 사랑?
저 냉혈한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디서 저런 거짓말을…….”
그렇게 중얼대던 성녀가 불현듯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안식의 장에서도 다자르가 실리아 에반로아르를 옹호해 주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설마, 정말인가?”
그녀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대고는, 눈을 깜박였다.
* * *
“거짓말이 좀 심했나?”
자신을 며칠 동안 작은 방에 가둬 두고 못 움직이게 한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를 마주하니, 감정 조절을 잘 못 한 것 같다.
“뭐 어때.”
난 당한 게 더 많은데.
다자르는 흥, 콧김을 뱉었다.
‘그 여자, 귀가 꽤 간지럽겠는걸.’
살짝 굳어 있던 얼굴이 그녀를 떠올리자 슬그머니 풀렸다. 귀가 간지럽다며 귀를 후비고 있을 실리아를 생각하니 우스웠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 입매를 굳혔다.
‘루벤을 가까이 둘 생각으로 저택으로 들인 건데. 그게 신전 녀석들의 의심을 살 줄은 몰랐군.’
세계의 존망을 등에 업은 작은 아기를 떠올리다가, 그 아기를 안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도 이어 떠올렸다.
이번 세계의 루벤의 보호자는 그 힘이 대단했다. 굳이 다자르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루벤의 운명을 막아서고 있었으니까.
저번 세계의 루벤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직후 내쳐져 불행한 삶을 정석대로 밟아 온 것 같던데.
제가 잡힌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붉은 새를 떠올리며 다자르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새로운 식량을 들고 온 것도 놀랍고.’
덕분에 루벤을 가까이 둘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신전 녀석들이 제법 예리했다.
‘……앞으로의 진행에 차질이 없으면 돼.’
무슨 차질이 없으면 된다는 걸까.
그는 성녀가 의심한 대로, 커다란 비밀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언지, 다자르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었다.
다자르는 제 얼굴에 떠올랐던 것들을 모두 갈무리한 채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황실 복도를 털레털레 걸었다.
복도를 쭉 따라 걷다가 오른쪽 통로로 이어진 곳으로 몸을 꺾던 그때.
다자르가 난데없이 우뚝 멈췄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혼잣말하는 모습이었으나, 다자르는 마치 누군가 제 옆에 있다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배웅이라도 하시려고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에 들이친 햇빛으로 생긴 벽 그림자가 살포시 흔들리더니 두 인영이 나타났다.
모로카닐과 스칼렛이었다.
“으음. 맞다. 배웅을 하려고 나왔다.”
스칼렛이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듯 손을 살짝 올렸다.
다자르의 눈썹이 까딱였다.
“아하. 영광스럽게도 폐하께서 직접 제 배웅을 나오셨군요. 이것 참, 너무 영광스러워서 주먹이 불끈 쥐어지네요.”
다자르가 꽉 쥔 주먹을 슬그머니 들어 올리자, 스칼렛이 흠흠! 크게 헛기침을 하며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왜 멀어지십니까? 제가 설마 폐하께서 옛날처럼 꿀밤이라도 날릴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 아니다.”
어린 날, 공주였던 제 이마에 감히 딱밤을 날리던 다자르를 떠올린 게 맞았지만, 스칼렛은 결단코 아니라고 잡아뗐다.
자존심이 상했던 까닭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참 크군.’
다자르가 주먹을 풀고 그 쪽은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제게서 시선이 떨어져 나가자 스칼렛은 먼지를 떼는 척하면서 슬쩍 이마를 쓸었다.
이마는 무사했다.
하긴, 황위에 오른 그녀에게 딱밤이라니.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이제 신하와 주군이 된 그들의 관계에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정말 루벤의 추종자로서, 제게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말이다.
‘……반역.’
예민한 주제의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자 스칼렛은 주먹을 쥐었다가, 쫙 폈다.
안식의 장이 열리기 전, 신전에서 성녀가 직접 알현을 신청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다자르가 루벤의 추종자라니.’
온통 하얀색 일색인 성녀는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답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시아스터가의 초월자입니다. 초월자 중 가장 마기에 노출이 잦고, 위험한 인물이죠.’
‘……하지만 다자르는 마기에 먹힐 정도로 약하지 않아. 게다가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초월자다.’
‘전생을 기억하기에, 더 위험한 겁니다.’
성녀는 그렇게 말하며 스칼렛이 흔들릴 만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다자르의 곁에 마탑주가 있습니다. 그가 다자르에 대한 정보를 제게 전해 주고 있지요. 그가 말하길, 다자르가 지난번에 루벤의 위치를 알고 있다던 마족 하나를 제거했다더군요.’
‘뭐라……?’
‘루벤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요. 이런 보고, 들은 적 없으시죠?’
실제로 들은 적 없었다. 스칼렛은 굳건하다 여겼던 다자르와의 사이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는 왜 자신에게 마족과 관련된 보고를 하지 않았을까.
스칼렛은 짜증이 가득 나 있는 다자르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다자르. 네게 명할 것이 있다.”
“……뭡니까?”
다자르가 스칼렛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 잠깐만 다자르 시아스터를 황궁에 붙잡아 주세요. 신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신전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다시 들리지 않도록, 확실히 하자고 하세요.’
스칼렛은 입매를 단단히 하고 말했다.
“신전이 너를 의심하고 있더군. 그대의 주군이자…… 평생을 함께해 온 소꿉친구로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러니, 모로카닐을 네게 감시역으로 붙여 의심할 일이라곤 없다는 걸 확실히 하도록 하자.”
“폐하……!”
다자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스칼렛은 다자르의 이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폭발 직전에 보이는 얼굴이었다.
스칼렛은 다자르에게서 휙 몸을 돌렸다. 다자르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가 자신을 붙잡지는 못할 터였다.
‘폐하께서도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는 못하고 계시죠?’
복도를 걷는 내내, 성녀의 목소리가 귓속을 울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