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8화 –
다자르 공작은 동상처럼 굳어 있는 내게서 살짝 멀어진 후,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시아스터 공작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그러고는 우아하게 걸어 소파에 앉았다.
‘기품 있고 예의 발라?’
기품과 예의에 대한 정의가 하루아침에 달라졌을 리는 없을 테고.
‘네 친구는 발부터 하나씩 썰어 줬는데. 넌 어디부터 시작해 줄까. 목부터?’
난폭한 미소를 지은 채 날 내려다보던 남자의 살벌한 눈초리는 쉬이 잊힐 만한 게 아니었다.
기품과 예의는 무슨. 웃기고 있네.
어제 만난 미친놈이 알고 보니 여주의 아버지인 다자르 공작이었다는 사실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해!’
돈! 돈을 벌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동그랗게 벌리고 있던 입을 두 손으로 꾹꾹 눌러 다물고, 척척 걸었다.
정말이지,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아, 저 사람은 대귀족 중의 대귀족이로군!’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고아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다자르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에반로아르 영애에 대한 칭찬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신 탓에 세속적인 삶과는 다소 거리를 두신다지요. 언젠가 한번 그 귀한 얼굴을 뵐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완벽한 디스였다.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들렸다.
‘아. 네가 그 농사에 미쳤다는 여자? 큭.’
처음 본 사람에게 검을 들이밀고, 갓난아기를 대롱대롱 든 공작의 모습을 어제 마주한 나는 이가 아득 갈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끈불끈 분노가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참을 인, 참을 인.’
어제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아무 이해관계 없는 낯선 미친놈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수중에 악시온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게다가 그는 여주 바닐라의 아빠였다. 곧, 미래에 내 사돈이 될 사람이란 말이었다!
‘맙소사.’
정말 정말 싫지만……!
어제의 나쁜 감정은 빠르게 집어치우고 좋은 관계를 쌓아야 했다.
나는야 물 같은 사람.
어딜 가든 적응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물처럼 녹아드는 그런 인재!
빙의 전 취업할 때 자소서에 썼던 문장을 되새기며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당겼다.
“안녕하세요. 시아스터 공작님. 처음 뵙겠습니다. 실리아 에반로아르라고 합니다.”
“처음?”
그러자 다자르가 고아한 미소를 살짝 흐리며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했다.
황금빛 눈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우리 어제 만났는데, 처음은 무슨? 라는 글귀가 저 황금빛 눈에 쓰여 있는 듯했다.
“아아, 에반로아르 영애께서 왠지 낯설지 않다 했더니, 제 어릴 적 친구와 아주 닮은 점이 있으시군요.”
이건 또 웬 생뚱맞은 소리인가 해서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친구요?”
그러자 그가 싱긋 웃었다.
“네. 영애의 백금발과 벽안을 쏙 빼닮은 색을 지녔던…… 퍽 아리따운 금붕어였죠.”
“…….”
“어느 날 집사가 자리를 비운 제 대신 밥을 잔뜩 줬는데도…… 배부른 걸 잊어버리고는, 제가 준 밥까지 모두 먹어 치운 후 배가 터져 제 곁을 떠나고 말았지요. 금붕어의 기억력이란, 참.”
“하하. 그것참 슬픈 이야기네요.”
정정하도록 하자. 자소서는 본디 자소설이 아니었던가.
나는 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불같은 사람이었지.
나를 금붕어 취급한 다자르 공작에 대한 분노로 입가가 씰룩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농사로 단련된 단단한 팔뚝으로 다자르 공작에게 헤드록을 걸 것만 같았다.
급하게 귀여운 악시온을 머릿속에 그렸다.
‘사돈이다, 사돈. 사돈. 사돈.’
아니, 잠깐. 그래. 꼭 사돈이랑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철천지원수가 되어도 결국 이뤄질 사랑은 이뤄지는 것 아니겠어?
돈이야 다른 걸로 벌면 되지? 하!
막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에게 달려들기 위해 소매를 천천히 올리던 나는 다자르 공작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동작을 멈췄다.
“그래요. 에반로아르 영애께서 제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지요, 엘스턴 씨?”
시종이 내온 쿠키를 히히 웃으며 깨작대고 있던 엘스턴이 깜짝 놀라며 답했다.
“크, 크흠. 네. 영애께서 새로운 식량이 될 만한 걸 가지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오호.”
다자르가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을 하고 날 보았다.
“영애의 그 고상한 취미가 이렇게 빛을 발하는군요. 어떤 이야기일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
마탑주인 엘스턴의 본래 이름을 알고 있을 텐데, 가명으로 부르는 걸 보니 사전에 말을 맞춘 듯했다.
그래. 마탑주가 여기저기 신상이 팔려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말자. 릴렉스, 릴렉스.’
나도 엘스턴의 정체를 모른 채로 부리는 게 더 편했으니, 모른 척하고 입을 뗐다.
“네. 듣자 하니 시아스터 공작가에서 새로운 식량이 될 만한 걸 찾고 있다고 들었어요.”
슬쩍 걷어 올리던 소매를 내렸다.
“네, 맞습니다.”
“제가 우연히 동대륙에서 들여온 식물이 있는데, 이 식물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동대륙이라…….”
동대륙은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가 단절되어 있는 미지의 대륙이었다.
교류가 단절된 이유는 단순히 바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디디고 있는 이 퀴젠 대륙을 둘러싼 갖가지 결계 때문이었다.
마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두른 결계들이 다른 대륙과의 교류도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교류가 불가능한 동대륙에서 들여온 식물이라고 하면, 다자르처럼 놀란 얼굴을 하는 게 당연했다.
“영애께서 제국 아카데미를 만년 수석으로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단순히 우수한 지적 능력만으로는 동대륙을 다녀온 것이 설명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기연이 있었기에 동대륙을 다녀오시게 된 건지 무척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일컫는 예의와 기품이라는 것은 짧은 문장을 길고 긴 문장으로 변환하는 저 능력을 말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동대륙을 너 따위가 어떻게?’라고 묻고 싶은 거겠지.
옆에서 쿠키 부스러기를 입에 묻힌 채 듣고 있던 엘스턴도 퍽 궁금한 낯이었다.
그때, 다자르가 깜빡했다는 듯 엘스턴을 보았다.
“아, 엘스턴 씨. 그러고 보니 바닐라에게 볼일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엘스턴이 깜짝 놀라 쿠키를 툭 떨궜다.
“네? 제가요?”
“네. 있으실 텐데요.”
“…….”
엘스턴이 눈을 끔벅였다. 어라, 내가 그런 약속을 했던가. 하는 얼굴이었다.
다자르는 그에게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바닐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자르 정도 되는 사람이 이리 말하니, 엘스턴도 어쩔 수 없는 얼굴로 일어섰다.
내가 어쩌다 동대륙을 다녀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무척 궁금한 얼굴로 뒤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그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응접실에는 둘만 남았다.
그러자 곧바로 껄렁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딸랑이. 뒷배가 생각보다 제법인데.”
“…….”
그가 나가자마자 다리를 꼬고 소파에 늘어지듯 기댄 그는 퍽 재수 없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내리깐 눈으로 날 응시하는 저 얼굴은 어제 만났던 그 미친놈 모드였다.
난 그의 본모습이 등장한 것이 그리 반갑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
“뒷배라뇨?”
“오호. 이전엔 반말이더니, 오늘은 또 존댓말이군?”
난 싱긋 웃었다.
“어머, 반말이요? 제가요? 공작님께선 농담도 참 잘하시는군요. 누가 들으면 어느 누구처럼 예의 없는 사람인 줄 알겠어요.”
“그 어느 누구가 나는 아닐 테고.”
“그럼요, 그럼요. 공작님은 그럴 분이 정말 아니죠.”
“흥.”
다자르가 우습다는 듯 척 팔짱을 꼈다.
“뒷배가 있어서인지 아주 당당하군?”
“뒷배요?”
“엘스턴 말이야.”
“아하. 저 마탑주요?”
“역시 알고 있었군.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순진한 녀석을 이용해 여기까지 온 것 같던데 말이야. 와서는 거짓말까지 하고.”
아니, 이놈이. 말하는 꼴 좀 보소.
사실을 그렇게 재수 없게 말하다니.
순진한 마탑주 꼬셔서 온 사람 기분 언짢게.
나는 아주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팍팍 드러내면서 고개를 비틀었다.
“거짓말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동대륙은 무슨. 그곳은 초월자들도 건너갈 수 없는 곳이야.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가 픽 웃었다.
“에반로아르 영애라. 유명하지. 이제껏 괴팍한 취미로 가세를 기울게 하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보지? 내게서 식량을 들먹여 뭐라도 뜯으러 온 걸 보면 말이야.”
이 남자는 내가 그에게 사기라도 치러 온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불처럼 화를 내면 오히려 내 손해였다.
나는 침착한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오해가 아주 수준급이시네요. 그리고 제가 엘스턴을 이용하고 있다면 대놓고 까발리시지, 왜 굳이 내보내고 나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데요?”
그러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호기심 많은 녀석이 네가 동대륙을 어떻게 다녀왔는지 궁금해 미치려고 하는 게 재밌잖아.”
“…….”
진짜 성격 나쁘네, 이 새…… 아니, 사돈.
“성격이 되게 공인인증서 같으시네요.”
“공인…… 뭐?”
아주 악독하시다고요. 사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