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6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96화 –
내가 저택에 없는 동안 엘스턴과 세드릭 둘이 붙어 있곤 했다더니, 정말이네.
나는 악시온을 안은 채 그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왔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대화 중이었다. 엘스턴의 눈이 힐끗 날 향한 듯도 했지만, 내 접근을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시하는 듯 보였다.
악시온과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아서 삐지기라도 한 건가.
“새로운 식량에 대해서는 이대로 두면 될까요?”
그의 반응에 조금 당황하려던 찰나, 엘스턴이 세드릭을 향해 물었다.
따지고 보면 세드릭이 재상이니, 존대를 쓰는 게 맞긴 하지만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더 정중한 듯했다. 세드릭은 뒤돌아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살짝 고개를 비스듬히 하며 답했다.
“고기를 잡으려면 미끼를 걸어야지. 그녀를 잡아 두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단이야.”
놀랍게도, 세드릭은 엘스턴에게 하대하고 있었다. 와. 재상이 마탑주에게 이렇게 하대해도 될 정도로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나?
‘명색이 마탑주인데, 재상에겐 어쩔 수 없는 건가.’
나는 눈을 두어 번 끔벅이며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은 여전히 내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들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리 없다는 것처럼.
“안식의 기간도 끝났으니 이제 슬슬 그녀를 저희 쪽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요?”
엘스턴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진지했다. 그 모습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세드릭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아. 그녀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녀가 누군데?”
이젠 더 가까이 갈 곳도 없었다. 복도를 떡하니 막고 있는 그들에게 불쑥 물었다.
다자르에게도 그녀가 있는데, 여기서도 그녀를 부르네. 여기저기서 그녀를 찾는구만.
아까부터 내가 다가오는 걸 보았으면서, 내가 갑자기 끼어들자 엘스턴은 새된 소리를 낼 정도로 깜짝 놀란 듯했다. 세드릭이 급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스턴이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시, 실리아 영애?”
“네. 여기서 둘이 뭐 해요? 저 여기 지나가야 하는데. 길을 이렇게 턱 막고 있으면 갈 수가 없잖아요.”
“어…… 어떻게 저희를…… 저희가 보이십니까?”
뭐지, 신종 따돌림 수법인가?
나랑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투명인간인 척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뚱한 얼굴로 툭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무 잘 보이는데요.”
“……보인다고?”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세드릭이 눈을 두어 번 깜박이며 중얼댔다. 그의 눈이 힐끗 엘스턴을 향했다. 어딘가 책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그러자 엘스턴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분명 침묵과 시야 교란을 중첩해 걸어 두었는데…….”
“네? 뭐라고요?”
“예? 아, 아닙니다.”
엘스턴은 정말로 크게 놀란 듯했다. 절대 뚫릴 리 없는 보안이 뚫려 버린 걸 알게 된 보안 담당자의 얼굴이랄까. 아무튼 그런 황망한 얼굴이다.
대충 보아 하니까, 둘이서 뭔가…….
“비밀 연애, 아니, 비밀 얘기라도 나누고 있었던 거예요?”
뭐야, 뭐야. 둘이 수상해.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인 건 아니지. 이렇게 사람 다 있는 곳에서…… 어머머.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엘스턴은 원작상 흑막이었잖아.’
아이코. 나도 모르게 흑막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들어 버린 건가.
이거 참, 크나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자고로 흑막의 대화는 주인공이 없는 곳에서 비밀스럽고 음침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어…… 더 이야기 나눠요. 둘이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하면 안 되죠. 더군다나 여긴 남의 집이잖아요. 조심성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겠어요.”
“……네, 네?”
“아무튼. 그럼 저는 이만 길을 좀 지나갈게요. 악시온, 가자.”
“우아?”
하지만 바로 가려던 그때, 날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 실리아.”
엘스턴의 옆에서 싱긋 웃고 있는 세드릭이었다.
“우리 오랜만에 봤잖아.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 가. 몸이 좀 아팠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어…… 응. 금방 나았어.”
이전과 별다를 게 없는 퐁실한 분홍색 머리카락, 선량해 보이는 눈에 동그란 안경. 분명 실리아의 소꿉친구 세드릭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마탑주에게 하대하는 권력자 재상의 모습이어서? 아니면, 흑막인 엘스턴과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조금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시아스터 공작이 무리하게 일을 맡기고 있는 건 아니지?”
“그걸 내가 가만히 둘 리가 없잖아.”
“하긴, 실리아니까.”
세드릭이 씩 웃었다.
“우웅?”
그때 내 품에 안겨 있던 악시온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뺨을 가볍게 쳤다.
내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도, 악시온의 눈은 아까부터 나를 향해 있었다. 마치 이곳에서 나만 보인다는 듯이.
‘어.’
악시온의 순수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어라…… 지금 저 둘이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 둔 상황인 건가?’
분명 아까 분명 엘스턴이 ‘침묵과 시야 교란’이라고 했지. 그게 마법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결계나 마법, 어떤 힘도 통하지 않는 몸이니까, 현재 마법이 걸리지 않은 상태인 것이고.
이 사실은 오로지 다자르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몸인 게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했고.
어, 으음.
지금 이 상황이 저 둘에게만 난감한 건 아닌 것 같지? 이러다 내 몸이 특수한 걸 걸릴 수도 있겠는데.
흑막인 엘스턴에……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세드릭에게 말이다.
‘우선 이곳을 뜨자.’
우선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법이 걸리지 않는 몸이라는 걸 저 둘이 눈치채면 안 되니까.
“지난번 황궁에서는 내가 바빠서 미처 인사를 못 했는데. 이 아이가 바로 악시…….”
“어머, 이걸 어째?”
마침 세드릭이 살짝 허리를 숙이고 악시온에게 인사를 하려던 찰나. 재빨리 말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악시온에게 말을 걸었다가, 악시온이 그를 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
오직 내게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들킬 것이었다.
“어디서 이상한 냄새 안 나? 으으음.”
“냄…… 새?”
“어. 그때 그 형님들이랑 맡았을 것 같은데. 저 산에서 말이야.”
내가 휙 검지로 창문 너머를 가리키자, 세드릭이 멍한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형님들……?”
“응. 그때 비료 구하러 같이 다녀온 아저씨들.”
“아.”
나는 냄새를 맡는 척 코를 킁킁대고는, 악시온을 고쳐 안았다.
“어머, 아무래도 우리 악시온이 실수를 한 것 같아. 나 먼저 들어가 볼게!”
“실리아, 잠깐……!”
“안녕!”
후다닥 그들에게서 멀어져 재빨리 방 안으로 직행했다.
“꺄아.”
아마 나 혼자 복도에서 떠들고 있는 걸로만 알았을 악시온이 연신 꺄꺄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자신에게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으으. 루벤이 해결되고 나니 이젠 또 이상한 게 머리를 아프게 만드네.’
세드릭이 엘스턴과 함께 흑막인 것 같은데!
맞지!
나는 확신에 찬 외침을 속으로 뱉으며 방문을 쾅 닫았다.
“실리아 님……?”
붕어즙을 마시다 말고 화들짝 놀란 얼굴의 칼에게 어색하게 웃어 주고 악시온을 요람에 눕혔다. 아이는 더 놀고 싶다는 듯 벌떡 일어나 손잡이를 탁탁 치기 시작했다.
“우아!”
“자아, 조금만 쉬자. 악시온. 조금 있다가 놀아 줄게.”
엄마가 지금 조금 사아알짝 놀란 것 같거든?
실리아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의 숨겨진 정체를 눈치…….
‘아니, 아니지.’
아직 정체를 아는 건 아니잖아.
엘스턴이 흑막인 건 원작에서 언급되긴 하지만, 그의 자세한 정체는 나오지 않았었고.
하물며.
‘세드릭도 전혀…… 구린 쪽으론 없는 걸로 나오는데.’
오히려 명망 있는 인물로 나오지 않던가. 스칼렛 황제의 왼팔이자, 악시온이 남몰래 흠모했던 학자.
‘대체 정체가 뭐지?’
연신 찾아드는 알 수 없는 상황들에 끄응,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 * *
[지금 당장 갈게!]세드릭의 정체에 대해 몇 날 며칠 고민하던 중, 실베스타인에게 답신이 날아왔다. 급하게 쓴 듯 휘날리듯 쓰인 글은 아주 짤막했다.
“실베스타인 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악시온의 옷을 갈아입혀 주던 칼이 지나가듯 물어왔다. 그는 요새 들어 자주 멍을 때리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 온대.”
“……예?”
칼의 고개가 휙 돌았다. 우두둑. 방금 저 목에서 뼈 어긋나는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실베스타인 님께서 돌아오신다고요?”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실베스타인이 오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오오. 실베스타인 님께서 드디어 돌아오시는군요. 이 할아범, 이대로 실베스타인 님을 뵙지 못하고 이 생을 끝내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만.”
훌쩍.
칼이 언제 꺼냈는지 모를 손수건으로 눈물 따위 보이지 않는 눈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다는 듯 서신 하나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홀먼 백작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만.”
여전히 손수건으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눈가를 톡톡 두드리면서, 그가 내게 서신을 건넸다.
홀먼 백작가라면, 지난날 ‘안식의 장’에서 인연을 맺은 미야 백작 영애가 보낸 것일 테다.
가볍게 받아 펼쳤다.
[잘 지내고 있을까요, 실리아? 저…… 갑작스럽지만 저희 티타임에 초대하고 싶어서요.]기나긴 안부 인사와 여러 미사여구를 다 빼고 나니, 핵심은 나를 초대한다는 거였다.
지난번에도 한번 초대했었는데, 그때는 가지 못했었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짜를 확인했다.
‘정확히…… 일주일 뒤네.’
그쯤이면 흑매들과 수확을 마쳤을 쯤일 것이다. 그럼 바로 정리하고 갈 수 있겠는걸.
“으음. 지금 바로 작업을 시작하는 게 좋겠어.”
나는 곧바로 농사일을 하기 위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저택을 나섰다.
“우어어…….”
좀비에서 이젠 애벌레가 되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흑매들이 보였다.
박수를 짝짝! 쳤다.
이제 함께 키워 낸 저 벼를 수확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