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01)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01화(101/276)
CG 전문가라기엔 그녀의 모습은 아직 너무나 어려 보였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건 턱수염이 수북하고 맥주에 환장할 것 같은 배불뚝이 아저씨였으니까.
하지만 성별도 다르고 비주얼도 너무나 다른 그녀의 모습에 뒤통수라도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뭐 문제라도 있나?”
잠시 멍하게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체스터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경찬현이라고 합니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녀는 늦은 것 때문에 많이 미안했는지, 아직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내 악수를 받으며 약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몸에 비해 한참은 커 보이는 옷엔 검정 바탕에 월식이라도 표현한 듯 달과 태양 사이에 지구가 있었다.
“자네는 옷이 우주 같은, 그런 것만 있는 건가? 매번 그런 것만 입고 있는 거 같구먼.”
체스터가 그녀의 옷을 보고 물었다.
“아뇨, 전엔 일식이고, 이건 월식인데요. ‘우주 같은’이라고 말로 묶기엔 엄청 다른 거라고요.”
“우주가 우주지 무슨…….”
“아니라니까요!”
그녀는 체스터를 향해 톡 쏘아붙인 직후,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성격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평범한 성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죄, 죄송…….”
“됐네, 말을 말지. 너한테 우주 이야기는 질리도록 들었으니, 일단 앉아서 이거나 한번 먹어봐.”
체스터는 상관없다는 듯, 미리 만들어둔 구운 김치 삼겹살 쌈을 입에 넣었다.
체스터가 먼저 포크로 시범을 보이자 옆에 있던 테일러도 그를 따라 고기 위에 김치를 올려놓고 입에 넣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도 이제야 한숨이 놓여 밥을 제대로 먹었다.
“일단 좀 들자고.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하고. 흐흐. 이런 음식을 기다리게 하는 것 자체가 범죄니까.”
체스터는 내 앞에 있는 소주를 곁눈질로 쳐다보자, 나는 잔을 하나 더 받아 그들에게 한 잔씩 따라줬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번 삼겹살 김치를 장전한 후 소주를 입에 털어놓고, 김치쌈을 입에 넣으며 둘 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술의 쓴맛을 닦아주는 기름지고 매콤한 김치 볶음. 이건 혁신이구먼.”
테일러는 맛있는 듯 작은 입을 한참을 오물거린 후 대답했다.
“엄청 맛있네요.”
“나중에 한국 오시면 다른 한국 음식점으로 모시죠.”
“흐흐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야 좋지.”
우리는 그렇게 몇 판을 더 시키고 볶음밥까지 먹은 후, 냉면으로 입가심까지 마무리했다.
하지만 옆에 보이는 제임스는 아직 한참은 남은 듯 아직도 그들의 고기 불판에선 아직도 기름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쯧. 자리를 옮기려고 했는데, 저 친구들 보니까 그러진 못하겠군. 흐흐. 저렇게 먹는데 누가 말리겠나.”
체스터는 제임스가 들리지 않게 장난스레 핀잔을 준 후, 나와 테일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2차에서 제대로 하려고 했지만, 뭐. 상관없지. 서로 소개라도 하지. 이쪽은 경찬현 영화감독. 발음에 유의하고. 이쪽은 진 테일러야. MILM(Major in Light and Miracle) 대표.”
“네……?”
“대표라고. 하하.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나? 뭐, 아직 신입사원 티를 벗지 못할 나이긴 하지.”
체스터의 말에 테일러는 부끄럽다는 듯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무늬만 대표예요. 일은 개미처럼 하거든요.”
테일러는 대표라는 직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쓴웃음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MILM이라는 기업은 내 기억에 없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활약한 영화 시각 효과 스튜디오 ILM.
그리고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제작하며 만난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웨타 디지털.
이 정도를 제외하면 CG 기업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조지 루카스나 피터 잭슨이 없는 세상에선 그런 시각 효과 기업들을 기대할 순 없었다.
“흠…….”
이런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확인할 건 따로 있었다.
“회사 대표시라면…… 전에 참여한 영화 같은 건 있으신가요?”
내 물음에 체스터는 입을 다문 채 턱을 괸 상태로 먼 산을 바라보듯 초점을 흐렸다.
“있긴 하다만…… MILM에서 진행했던 건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말인지?”
“CG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거였죠.”
“그럼 MILM에서 만든 건……?”
“아직 없어요. 하지만 기술력만큼은 어떤 곳보다 나을 거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있으니까요.”
나는 옆에 있던 체스터를 바라보자, 체스터는 내 눈을 바라본 채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작업물도 없는 회사 대표를 전문가랍시고 소개해준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체스터 정도의 인간이라면 분명 다른 생각이 있을 거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하하…….”
“지금 경 감독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알아요. 그리고 충분히 이해하고요. 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테일러는 주먹을 꽉 쥔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에 한 번만 찾아와 주세요. 저희가 어떤 것까지 해드릴 수 있는지 모두 보여드릴 테니까요.”
“그럼 혹시 CG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작품은요……?”
“…….”
체스터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담배 하나 피고 오겠네. 하하…… 둘이 이야기 좀 나누고 있게.”
체스터는 담배를 하나 꺼내 밖으로 나갔고, 테일러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쥬라기 공원>에 참여했어요. 근데…… 그것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어요. 정말요.”
“아…….”
내가 봤던 이 세계의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미치는 조악한 CG 퀄리티, 그리고 원작을 완전히 망쳐버린 스토리 각색 능력.
환장하는 조합에 총체적 개판. 더 이상 볼 수도 없었기에 보다 껐던 기억이 났다.
내 표정 보고,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차렸는지, 테일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별로였죠? 빌어먹을 쓰레기. 그게 공룡이에요? 차라리 뛰어다니는 닭들한테 랩터 옷을 입히는 게 낫지.”
“풉…….”
내가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간신히 참자, 그녀는 시뻘게진 얼굴로 한풀이하듯 말했다.
“차라리 웃어요. 그게 맘 편하겠으니까. 그 꼴을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게 한스러워요. 하…… 근데 더 화나는 건 뭔지 알아요?”
“…….”
“타협하기 싫어도 영화감독이 타협하면, 제 발언권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회사 대표도 돈 때문에 그냥 타협 보자고 저한테 도리어 화를 내고요. 그딴 쓰레기 작품을 만들어놓고 타협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요! 대체!”
이 말 이후로 그녀는 <쥬라기 공원>을 만들 때 있었던 일들을 장황하게 풀어냈다.
처음엔 촬영할 대상의 모형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1프레임 단위로 계속 촬영해 편집하는 스톱 모션을 이용한다며, CG를 이용하지 않을 것처럼 전달받았었지만, 감독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급하게 만드느라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공룡들.
그리고 그걸 어쩔 수 없이 활용했지만, 아무리 봐도 미완성된 공룡을 왜 사용하냐며 따지듯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였다고 했다.
“그때 느꼈죠. 그 감독은 CG에 관심도 없구나. 이 무궁무진한 기술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구나. 빌어먹을!”
테일러가 욕을 내뱉으며 소리치자 옆에 있던 제임스와 상현이는 우리 쪽을 보며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빤히 쳐다봤다.
“애초에 영화판 따위에 발을 들이는 게 아니었어.”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감정이 격했던 거 같네요.”
“아, 아닙니다. 하하…….”
그러던 중 체스터가 자리에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질 않았다.
“어으, 갑자기 훅 올라오네. 안 마시던 걸 마셔서 그런가.”
“많이 안 좋아요?”
내 물음에 체스터는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담배 하나 피고 오니, 머리가 띵하군. 여하튼 얘기는 잘했나? 나는 이미 다 들은 이야기 같아서 말이지.”
테일러는 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내일 MILM에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동양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백 번 듣기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라는 뜻인데. 이 말처럼 직접 한번 보고 나서 판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내 말에 테일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절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하하…….”
***
술자리가 끝나기 전, 테일러는 핑계를 대고 집에 돌아가는 척하며 쓰린 속을 부여잡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무엇을 보여줘야, 경찬현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수 있을까.
테일러는 회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야…….”
<쥬라기 공원>의 파편들.
하지만 미련이 너무 컸던 탓에 미완성본으로 영화에 실리긴 했지만, 그녀와 그녀의 팀원들은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쓸 생각으로 어느 정도 완성은 시켜놨다.
“흠…….”
이번 계약까지도 따내지 못한다면 MILM은 문을 닫게 생긴 상황.
그만큼 그녀에게 경찬현과의 계약은 중요했다.
각본도 없기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순 없었지만, 체스터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천재 중의 천재.
체스터가 그 정도로 칭찬하며 인정한 영화감독은 본 적이 없었다.
오늘 본 그는 어쩌면 이야기가 잘 통할 것만 같았다.
특히 영화에 관한 이야기할 때 불타오르는 그 열정. 그 열정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가 중요하다고 여긴 완벽한 프리 프로덕션.
CG를 어느 장면에 넣고 어떤 비주얼이 필요한지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후 수정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계획한 후에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던 그의 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갑자기 뭐가 필요하다며 다른 주문을 해 오는 감독들.
갑자기 장면에서 비가 내려야 한다며 전면 수정을 요청한다거나, 뜬금없이 이빨 개수로도 시비를 거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쥬라기 공원>을 만들 때 경험은 테일러의 CG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완전히 꺼버리게 할 수준이었다.
‘영화가 망한 건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CG가 쓰레기여서 그래! 너희가 제대로 준비만 했으면 영화가 망할 일은 없었어!’
모든 것을 CG 탓으로 돌려버리던 감독의 입김.
CG는 소품처럼 공을 들여 만드는 게 아니라, 컴퓨터 마우스만 톡톡 건드리면 뚝딱뚝딱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몰이해.
그런 몰이해는 테일러에게 큰 상처였다.
“후…….”
테일러는 잠시 컴퓨터 화면으로 우주 배경을 띄워놓은 후 멍하니 바라봤다.
광활한 우주 속에 빛나는 은하수와 별들.
그것들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에 테일러는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그 행동을 하곤 했다.
테일러는 경찬현에게 보여줄 결과물들을 뽑아낸 후 마무리 작업을 더 세세하게 들어갔다.
공룡의 주름, 눈알의 색, 다리의 움직임.
다시 한번 확인하자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