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08)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08화(108/276)
몇 달 후.
테일러는 닉과 함께 경찬현의 부름에 한국에 들어왔다.
“와…….”
깔끔한 공항은 오히려 LA 공항보다 더 좋아 보였다.
자신의 이미지 속에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론 경찬현도 깔끔한 느낌을 준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공항에서부터 이렇게 화사한 분위기를 풍기니, 테일러는 내심 기대가 된 듯 보였다.
“왜 그래요?”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입국 절차를 마치고, 대합실로 나가자 이미 경찬현이 보낸 기사가 있었고, 그 기사의 운전에 따라 테일러와 닉은 바로 새롭게 탄생할 CG 회사로 향했다.
테일러가 긴 비행에 피곤한 듯 눈을 간신히 뜨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닉이 말했다.
“시설 괜찮겠죠?”
“경찬현 감독. 믿을 만한 사람이잖아. 우릴 처음으로 믿어준 사람이고. 그 사람이라면 대충하진 않았을 거야.”
닉의 질문에 테일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흠…… 그렇긴 하죠.”
“잠깐 눈 좀 붙이자.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테일러는 고급 승용차의 안락함과 긴 비행에 따른 피곤함 때문인지 눈을 감자마자 바로 깊게 잠들었다.
“도착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테일러는 살며시 눈을 떴다.
“어……?”
전에 일하던 곳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빌딩.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창문과 바퀴벌레 하나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웅장함.
고급지다는 표현으론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건물 앞에 멈춰 선 차에 테일러는 당황한 듯 기사에게 물었다.
“여, 여기요?”
기사는 테일러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건물 6층입니다. 경찬현 감독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하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짐은 묵으실 곳에 제가 두겠습니다. 시간 맞춰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아, 제가 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경찬현 감독님이 직접 부탁하신 일입니다.”
“네…….”
테일러가 차 문을 열고 나가자, 생각과는 전혀 다른 비주얼이 펼쳐져 있었다.
빼곡하게 가득 찬 빌딩 숲.
<007 어나더데이>에서 본 한국은 소로 농사를 지으며 완전 시골 같은 느낌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비주얼에 테일러는 주위를 둘러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할리우드는 한국을 어떤 나라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던 찰나 닉이 옆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안 들어가요?”
“여기 남한 맞나?”
“그럼 북한이겠어요?”
닉의 말에 테일러는 피식 웃으며 새롭게 미래를 보낼 건물로 들어갔다.
“이게 얼마 만의 엘리베이터야.”
“쾌적한 향기…….”
닉과 테일러는 호들갑을 떨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도착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경찬현의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경 감독님!”
“그러게요. 오는 길은 괜찮았어요?”
“너무 좋던데요! 여기 건물도 진짜 좋고요!”
“하하. 일단 들어가시죠.”
경찬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안내했고, 회사 앞에 있는 로고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
이 로고가 눈에 들어오자, 테일러는 눈을 껌뻑였다.
“설마 이름도…….”
“네. 법인 대표 명의는 저와 제 친구로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론 테일러 씨의 능력으로 돌아가는 회사니까요.”
“…….”
테일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새로운 MILM으로 기대에 차 발을 디뎠다.
“와…….”
형광등이 몇 개나가 깜빡이는 예전의 MILM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공간.
발을 잡는 느낌이 들었던 끈적임도 역시 없었다.
개인마다 칸막이. 그리고 개인공간마다 새로운 컴퓨터까지.
“돈 엄청 많이 들으셨을 거 같은데요…….”
“일종의 투자죠. 이거 투자 비용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벌어다 주실 거잖아요.”
경찬현의 말에 테일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옷에 그려진 태양처럼 밝은 미소에 경찬현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서버실도 구비 했습니다. 서로 만든 걸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요. 그렇게만 되면 작업 속도도 더 빨라질 거라고 하셨죠?”
닉과 테일러는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근무환경에 서버실까지 꼼꼼히 살피며 입을 쩍 벌렸다.
“괜찮아요?”
“어지간한 미국 CG 회사보다 훨씬 좋은데요…….”
테일러는 반짝이는 눈으로 경찬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채용은 테일러 씨가 직접 하시는 게 좋겠어요. 채용할 사람들에게 무슨 능력이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니까요.”
“네. 맡겨만 주세요. 그 미국에서 만들어둔 건 몇 주나 돼야 도착한다고 하니까요. 그 안에 맡겨주신 일들 다 끝내볼게요.”
“일단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부탁드릴게요. 오늘은 사실 여기 한번 둘러보시라고 모신 거였거든요. 마음에 들어 하시니 안심이 되네요.”
테일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은혜는 확실하게 갚는 편이거든요. 믿고 맡겨만 주십쇼! 감독님!”
“하하…… 네.”
***
나는 테일러와 닉에게 MILM을 소개해준 후 성현 제작사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들어오자, 준성이가 물었다.
“괜찮대?”
“어지간한 미국 회사보다 낫다더라.”
“그럼, 거기 들인 돈이 얼만데. 다행이네.”
준성이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각본은 다 봤어?”
몇 달간 준비한 건 CG 회사 MILM뿐만이 아니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차기작 각본.
완성된 그 각본을 제일 먼저 본 건 준성이였다.
“스토리 자체는 괜찮아. 미래 행성 간의 우주 정치. 그리고 숨겨진 음모라든지 그걸 헤쳐나가는 주인공. 확실히 얘들만 좋아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야.”
준성이는 내용에 대해 말하면서도, 뭔가 걸리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글로만 보니까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 여태까지 네가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스토리랑 연출이 메인이었는데…… 이번엔 네가 직접 만들 수 없는 컴퓨터의 영역이니까…….”
“그래서 이렇게까지 공들인 거잖아. 잘 될 거야.”
“잘 돼야지. 후…… 내일이지? 회장님 뵙는 거?”
“응, 맞아.”
준성이는 깍지를 낀 채 팔을 쭉 뻗었다. 그리고 목도 크게 돌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내일이 이 일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구먼. 너 근데, 진짜 그렇게 설득할 거야?”
몇 달간 준비한 설득의 방법.
쉽게 설득되지 않을 이정호 회장의 귀를 열게 할 방법은 도박밖에 없었다.
“손해 보는 건 자식이라도 절대 용납 못 할 분이라…… 귀는 열게 할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알지?”
“…….”
CG 제작자들. 테일러와 닉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돈.
나와 준성이는 MILM을 만들기 위해 주머니를 먼지까지 털어낸 수준이었고, 그래서 정작 영화 제작비가 없었다.
이미 준성이의 제안은 거절당한 상황에 이정호 회장을 한 번 더 설득한다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난관만 잘 극복한다면…… 세계적으로 먹힐 영화를 만들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멍하게 있자, 준성이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어휴. 몰라. 이제 다 끝났어. 내일의 너한테 맡길래. 아직 테일러가 만들었다는 우주를 보지도 못해서 확신이 제대로 안 생겨. 그냥 너 믿고 가는 거야. 이 투기 종목인지, 투자 종목인지 알 수가 없는 놈아.”
준성이의 헛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믿어 봐. 좋은 소식 가져올 테니까.”
***
다음 날.
KMD 그룹 본사 회장실.
이정호 회장은 골프채를 들고 스윙을 연습하며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아무리 봐도, CG 산업엔 투자할 잠재력이 없어 보였다.
단순히 외부 업체를 쓰면 되는데도 굳이 CG 회사를 직접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 이준성과 경찬현은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회사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외국인까지 데려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끄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이정호 회장은 골프채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인터폰이 울리며 비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회장님.
“어, 왔나?”
-예. 바로 모실까요?
“그래. 그러지.”
이정호는 피던 장초를 한번 깊게 빨고 나서 재떨이에 비볐다.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들고 왔으려나…….”
경찬현은 투자받기 위해 올 때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며 귀를 홀렸다.
하지만 이번엔 쉽게 홀리기엔 그간의 투자 금액과는 급이 달랐다.
똑똑-.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경찬현이 들어오며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인사하자, 이정호 회장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왔나. 경 감독. 거기 앉지.”
“네. 회장님.”
경찬현은 두꺼운 각본을 먼저 탁자 위에 올려뒀다.
“그게 자네 차기작인가.”
“예. 회장님.”
“하하. 나중에 읽어보도록 하고. 그래, 이번엔 투자 금액이 좀 많이 크던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경찬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신 그만큼 돌아올 겁니다.”
“하하. 역시, 패기 빼면 시체구먼. 그래. CG 회사는 어떻게 돼가나? 준성이도 가지고 있던 KMD 주식 팔고, 자네도 팔았던데?”
이정호의 말에 경찬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CG 회사 만드는 데 다 썼습니다.”
“하, 그 기술이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데 말이지.”
이정호는 경찬현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한 듯 물었다.
“네. 앞으로 영화 시장은 CG가 점령할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뭐……? 여태 자네 작품에 CG가 들어간 적도 없잖나. 제작비도 최대 30억 정도였고 말이야. 그리고 오히려 CG가 들어간 국산 영화 작품은 대부분 망한 건 자네도 알잖나.”
이정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제작비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들. 특히 자네가 말한 CG가 들어간 영화 중 성공한 영화가 있나?”
“아직 없습니다.”
“<준비됐어?>, <성냥팔이 소녀의 기적>, <어제> 같은 영화들 봐보자고. CG를 많이 쓰고 돈도 많이 쓴 영화일수록 오히려 망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이정호는 앞서 망한 영화를 읊으며 CG를 이용한 영화는 비싸면서도 흥행도 하지 못한다는 걸 강조했다.
“네. 그 영화들은 그렇죠.”
경찬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이정호는 놓치지 않고 말했다.
“사람들은 진짜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컴퓨터로 만들어낸 가짜보다 말이야.”
이정호의 말에 경찬현은 미소를 지었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이 중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짜 같은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
“도금된 철 덩어리와 검은색으로 칠해진 순금이 떨어져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뭘 주울까요?”
“……도금이 돼 있는 철을 진짜 금인 줄 알고 줍겠지.”
“네. 맞습니다.”
경찬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이정호도 허탈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래, 경 감독 말대로 진짜 같은 가짜가 먹힌다고 보자고. 근데 말이야…….”
이정호의 끝나지 않은 말에 경찬현은 집중하는 듯 눈에 힘을 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 큰 금액을 감수하고, CG 회사를 직접 만든 이유가 뭔가? 내 입장으로 보면 굉장히 멍청한 짓이야.”
“아…….”
경찬현이 애매한 미소로 말을 흐리자 이정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이 심했다면 사과하겠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시설을 다 갖춰놓은 외부 업체가 널리고 널렸는데, 외국인까지 고용해서 그런 걸 하는 진짜 이유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