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11)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11화(111/276)
“근데, 그게 누군데요?”
테일러는 모션 캡쳐에 이용할 배우가 누구인지 기대가 되는 듯 물었다.
나도 이에 대한 정답을 수없이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하나였다.
“앤드루 사킬이요.”
“……네? <반지의 제왕>에 골룸 역 맡았던 배우요? 그 배우를 쓰겠다는 거예요?”
“네.”
테일러는 내 말에 턱을 괴며 깊게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도 문제가 없다곤…….”
“없어요. 전 그래서 CG 담당 인원의 문제라고 생각했죠.”
앤드루 사킬.
그를 수식하는 말은 모션 캡쳐 연기의 일인자.
<반지의 제왕> 골룸부터 소설 원작의 영화 <혹성 탈출>의 리부트 3부작의 침팬지 ‘시저’ 마지막으로 <킹콩>까지.
그의 움직임과 표정은 온전히 캐릭터에 스며들었다.
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그의 모션 캡쳐 연기였다.
“분명 한국에도 좋은 연기자들이 있을 거예요. 굳이 그를 캐스팅하기 위한 비용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적어도 그처럼 확실한 배우는 없겠죠.”
“증명된 건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제가 감이 좋아요. 일단 캐스팅 매니저한테 부탁은 해뒀으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
테일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얘기하시는 거라면 분명 이유가 있겠죠. 일단 그럼 경 감독님께서 스케치해준 셀린느 행성 종족부터 만들어볼게요.”
***
며칠 후.
영국 런던.
앤드루는 며칠 전 날아온 메일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이가 없었다. 뜬금없이 한국이라니?
한국이면 완전히 액션 배우 로버트 시걸이 몇 푼 벌기 위해 영화배우로서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영화를 찍으러 갔던 곳.
분명 그곳을 가면 배우 인생도 완전히 끝나버릴 거란 생각에 손을 떨며 메일을 보자마자. 앤드루는 온갖 욕지거리를 쓰며 답장을 보냈다.
[사기를 치려면 돈 있는 놈들한테나 쳐 이 XXX들아. 난 돈도 없다고! 심지어 한국 갈 돈도 없어! 이 XXX들아!]하지만 그 욕에 대한 답장은 오질 않았다.
“후…….”
공연장 뒤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던 앤드루는 며칠 전 한국에서 날아온 메일에 집중이 흐트러지자, 심호흡하며 자신의 대사를 복기했다.
수없이 섰던 연극무대였지만 이곳을 떠나 미국 할리우드로 갈 때까지만 해도 다시 이곳에 돌아올 거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런던의 연극 무대.
이곳에서 그는 변절자이자, 골룸 같은 존재였다.
앤드루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다시 로미오의 아버지 역할에 몰입했다.
로미오의 아버지 역할을 하기 위해 그의 얼굴엔 주름을 묘사한 화장에 하얀 가발을 쓴 채 무대 위로 올랐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자식의 슬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 절망에 빠진 자식을 방관하는 게 어찌 아비 된 자로서 도리란 말인가!”
몇 대사를 덧붙이고 나서 그는 무대 뒤로 빠져나오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로미오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가 앤드루를 놀리듯 말했다.
“골룸 선배. 역시 선배는 무대 체질이야. 괜히 뭐 할리우드 그런 데 가서 험한 꼴 당하지 말고…….”
“닥쳐.”
앤드루는 그의 말을 끊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헤이, 선배 할리우드 오디션 보러 갔을 때 기억 안 나요? 그땐 뭐 골룸 역할이라고 신나서 이야기해놓고, 갑자기 또 왜 짜증이람?”
젊은 배우는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앤드루를 놀려댔다.
<반지의 제왕> 개봉 후 계속된 놀림.
하지만 여기서 로미오를 맡은 배우를 패버린다면 이 연극단에서도 쫓겨날 것 같았기에 앤드루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스미고올~. 스미고올~. 저 호빗 놈들을 죽이고 반지를 챙기자고.”
젊은 배우는 골룸의 모습과 목소리까지 따라하며 주위에 있던 배우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 마라.”
“뭐, 어쩔 건데요. 하, 선배. 선배를 이 극단에서 다시 받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죠. 단장이 그러던데, 전에 젊었을 땐 로미오 배역하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그 얼굴에? 하, 참나.”
로미오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는 누가 봐도 잘생긴 훈훈한 이미지의 남자.
그에 반해 앤드루는 평범하디 너무 평범한 얼굴이었다.
자고로 배우란 관객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직업.
잘생기거나, 못생겼으면 뭔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라도 있어야 했지만, 앤드루는 그런 게 없었다.
그나마 그의 장점이라고 하면 다채로운 목소리.
하지만 성우가 아닌 배우에게 그런 목소리는 그다지 큰 이점이 아니었다.
목소리만 좋으면서 평범하게 생긴 배우보다는, 목소리가 안 좋아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배우가 더 고평가받았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배우 그만 해요. 뭐 배우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골룸이나 하시든가. 골룸! 골…….”
빠악-!
앤드루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에 꽂은 주먹에 젊은 배우는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악! 이 미친…….”
앤드루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다.
몇 달간 참아온 비아냥.
더 이상 참는다면 오히려 자기가 미쳐버릴 것만 같아 벌인 짓이었다.
“다시 한번 지껄여 봐.”
“쳤어? 이 새끼가…….”
그 젊은 배우는 주먹을 날렸지만, 휘청거리며 나자빠졌고 앤드루는 나자빠진 배우의 배에 정확한 킥을 꽂으며 말했다.
“꼭 이 꼴로 무대에 올라가라. 이 빌어먹을 아들 새끼야. 퉤. 이게 내 마지막 훈육이다.”
앤드루는 가발을 젊은 배우에게 집어 던진 후 그에게 침까지 뱉으며 그대로 공연장을 나왔다.
더러운 영국의 날씨.
하필 분위기에 맞게 비까지 오니 앤드루의 얼굴의 짙은 화장이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앤드루! 이 새끼야! 너! 이대로 가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이 골룸 새끼, 받아줄 땐 무릎 꿇고 눈물도 흘리면서 빌더니. 아주 배가 불렀어!”
뒤에서 들리는 단장의 잔소리.
“안 하고 맙니다. 내가 이딴 꼴이나 보려고 배우 된 줄 알아요?”
“뭐? 너, 이 새끼. 다시 오면 받아주나 봐!”
“올 생각도 없수다! 오늘 급여는 그 로미오 새끼 치료비로나 쓰게 하쇼. 카악! 퉤!”
앤드루는 거하게 연극극장 앞에 침까지 뱉으며 극장 입구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한 동양인 사내가 우산을 쓴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동양인은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앤드루를 바라봤다.
“뭐, 구경났어? 뭘 봐? 빗물에 화장 지워진 연극배우 처음 보냐?”
“아, 아닙니다.”
그 동양인은 어색한 미소로 앤드루를 바라봤다.
그 미소를 지나치고 자신의 차로 향하던 앤드루는 이내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라도 한 것 같은 미안함에 다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는 그 동양인에게 말했다.
“연극 잘 보고 들어가쇼. 내가 미안했수다. 근데 로미오는 못 볼 거요.”
앤드루는 자신의 말에 피식 웃은 후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뒤로 돌 때.
그 동양인이 말했다.
“그럼…… 차 한 잔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요?”
앤드루는 그 동양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정도로 미안하진 않은데?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대접이라도 해야 하나?”
“말씀드릴 것도 있고요. 저 한국에서 왔습니다. 하하, 이메일에 꽤 재밌는 말들이 적혀있더군요.”
앤드루는 ‘한국’이라는 말에 잠시 그를 바라봤다.
“어? 그…… 이메일 보낸 게 당신이었수?”
“아, 제 캐스팅 매니저가 보낸 겁니다.”
앤드루는 그 동양인을 유심히 살펴본 후 다시 물었다.
“당신은 배우요?”
“아뇨. 영화감독인데요. 경찬현이라고 합니다.”
그 동양인의 말에 앤드루는 눈을 껌뻑였다.
“내 전작이 뭔진 알아요?”
“<반지의 제왕>이죠.”
“그걸 아는 사람이 날 데리러 한국에서까지 찾아왔다고? 지금 뭐, 국제적으로 사기라도 칠 셈이요?”
앤드루는 잔뜩 골이 났는지 바닥에 고인 빗물을 철벅 철벅 밟으며 자신의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그 잘생긴 동양인이 자신의 차에 유리를 두드렸다.
앤드루는 창문을 내리며 동양인을 향해 쏘아붙였다.
“가쇼. 사기꾼놈들이랑은 상종할 생각 없수다. 그리고 이제 배우도 안 할…….”
툭-.
그 동양인은 앤드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차 안으로 던졌다.
“거기 제 명함이랑 제가 찍은 영화들 있습니다. 그리고 계약 조건도 있습니다. 호기심 생기면 연락주시죠. 정확히 내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앤드루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눈빛에 괜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제 할 말 다 했으면 꺼지쇼.”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하루는 개뿔.”
앤드루는 툴툴거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웅- 우우웅- 탁! 펑.
하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고 온갖 이상한 소리를 내며 차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내 본네트에선 시꺼먼 연기까지 올라왔다.
“이런 젠장.”
앤드루는 쏟아지는 비에 본네트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온갖 비아냥이 적힌 종이 쪼가리들이 적혀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실패한 골룸. 영국에서 꺼져라. 영국인의 수치.] [네가 배우냐? 컴퓨터지. 할리우드 조연 데뷔작에서 얼굴도 못 비친 놈.]“하…… 이런 벌레 새끼들이…….”
앤드루의 눈 밑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엔 간당간당한 택시비.
앞에 보이는 동양인이 택시를 기다리는 게 보이자, 그는 깊게 한숨을 들이 내쉰 후 차에 있던 그가 던진 가방을 가지고 나와 그에게 다가갔다.
“어이. 영화감독 씨.”
그 동양인 감독은 의아하다는 듯 앤드루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
“내 집까지 같이 갑시다. 차 한 잔 대접하지.”
“……?”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자, 앤드루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차 한 잔 대접한다고.”
“아, 예. 그러시죠.”
***
나는 앤드루가 캐스팅 매니저의 이메일을 받지도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영국으로 날아왔다.
그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좋아 보이질 않았다.
보자마자 극장에서 쫓겨난 그의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불쌍할 정도.
그의 배우 커리어에 있어 기적의 시작이었던 <반지의 제왕> 골룸은 그의 가장 거대한 흑역사로 남아있었다.
“뭘 그렇게 자꾸 보고 쌌어?”
“하하, 네.”
그리고 특히나 날카로운 그의 모습.
애초에 그와 만난 적이 처음이라 그의 성격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메이킹 필름 같은 곳에 비춘 그의 모습은 꽤 온화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온화함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이. 택시. 여기서 내리지. 돈은 이 아시아인한테 받으라고.”
“네. 감사합니다. 손님!”
기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리자, 그의 허름한 트레일러엔 빨간 글씨의 온갖 낙서가 보였다.
[영국 배우의 수치.] [골룸! 골룸! 영국 땅에서 꺼져라.] [미국의 노예 골룸. 왜 영국으로 돌아왔냐?]“뭐요. 얼른 들어가쇼.”
그의 트레일러로 들어가자,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그에겐 익숙한 냄새인 듯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선반에서 찻잔을 꺼냈다.
“차는 뭐로 할 거요? 뭐, 홍차밖에 없긴 하다만.”
“그럼 홍차로 주시죠.”
앤드루는 곰팡이가 피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숟가락으로 찻잔에 찻잎을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부었다.
“드쇼. 그리고 썩 나가고.”
“네?”
“난 빌어먹을 사기꾼들이랑 얘기 안 한다니까?”
앤드루는 푹 꺼진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빗물에 젖어버린 양말을 대충 아무 데나 집어 던졌다.
하지만 그의 뒤로 그의 밝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들과 있는 사진.
그 사진 안에 있는 그는 아내와 딸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기꾼 아닌데요?”
내 말에 앤드루는 인상을 찌푸렸다.
“영화 한다며, 영화하는 새끼들은 다 사기꾼이야. 그거나 마시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