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12)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12화(112/276)
앤드루는 나를 사기꾼 취급하며 비아냥대다가도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난 듯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배우에 대한 존중은 하나도 없고, 빌어먹을 돈만 생각하는 놈들이 사기꾼 아니면 뭐야? 젠장!”
그는 이후 막말을 섞어가며 온갖 욕을 쏟아부은 후에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그는 눈을 감고 옆에 있던 싸구려 시가에 불을 붙였다.
“이제 다 된 겁니까?”
“여태까지 뭘 들은 거야. 영어 잘 못 하나?”
“너무 잘 알아들어서 그래요.”
“꺼지라는 말이 뭔지 몰라? 그냥 가라고 해야 알아듣나?”
“아뇨, 잘 알아들었다니까요.”
앤드루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한 담배 연기를 내 얼굴로 내뿜었다.
일종의 도발인 듯 그는 내 반응을 살폈다.
나는 그의 도발에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의 담배 연기를 손으로 흩트리며 미소를 보였다.
“그럼 여기 왜 있는데? 뭐 청소라도 해주려고 있나?”
“청소하는 걸로 제 영화 출연해주신다면 기꺼이 해드리죠.”
내 말에 앤드루는 담배 연기를 내뱉다 목에 걸린 듯 쿨럭거렸다.
그러곤 그는 맥주캔과 시가, 그리고 눅눅해진 감자칩까지 순서대로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청소할 것도 없어.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고. 손 닿는 곳에 물건 두는 게 최고야. 지금 원하는 건 손만 뻗으면 다 잡을 수 있잖아?”
“그건 잘 알죠.”
몇 년이 지났어도, 혼자 살았을 때 이렇게 더럽혀진 방에서 살았던 기억은 아직 생생했다.
술병, 꽉 찬 재떨이. 그리고 곳곳에 얼룩까지.
앤드루의 트레일러는 이전에 내가 혼자 살던 방과 더 비슷했다.
내가 잠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동안 앤드루는 연신 시가를 빨아대며 같잖은 도발은 먹히지 않는 걸 깨달았는지 위쪽으로 연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못 잡겠죠.”
“뭐?”
“제 차기작 각본이요.”
나는 아까 앤드루가 다시 건넨 가방을 보며 말했다.
“그런 건 필요 없는데?”
“보지도 않고 판단할 건가요? 막상 보면 엄청나게 원할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앤드루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영화 안 한다고.”
“그럼 뭐 할 건데요?”
“네 알 바 아니잖아. 오늘 처음 본 놈이 오지랖까지 부리려고?”
“저는 앤드루 씨랑 좀 친해진 줄 알았는데? 택시까지 같이 탄 사이잖아요. 얼굴도 익숙해졌고.”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앤드루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골룸이나 익숙하겠지. 내 얼굴이 익숙하긴 개뿔이 익숙해?”
앤드루는 반쯤 찢어진 <반지의 제왕> 포스터를 바라보며 툴툴거렸다.
“골룸을 연기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럼 저 캐릭터가 당신이라고 봐야지 않겠어요?”
“아니! 아니지! 내 얼굴 그대로 영화에 나왔냐? 아니, 틀렸어! 빌어먹게도 아무도 몰라! 근데 쓰레기 같은 영국 배우 협회는 아주 잘들 아시지! 밖에 빨간 글씨 봤나?”
“네.”
[영국 배우의 수치]피를 연상시키는 검붉은 색의 필기체로 적힌 그 말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보고 수치란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할리우드 갈 때만 해도 그냥 오지랖 떨면서 염병을 떨더니, 돌아오니 그럴 줄 알았대.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좀 알려주지들.”
실패한 사람에게 그럴 줄 알았다는 말처럼 끔찍하게 잔인한 말은 없다.
실패한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으로 뼈아픈 말.
하지만 앤드루의 표정에선 분노보단 허탈함이라는 감정이 더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그만 가. 어차피 시간 낭비야. 빌어먹을 영화는 <반지의 제왕> 하나면 됐어. 그리고 뭐, 한국 영화에 영어 쓰는 놈 필요하면 아무나 데려가지. 뭐 하러 나까지 찾아왔어?”
“제 영화에 나오는 모션 캡쳐 기술에 당신이 필요…….”
“뭐?!”
앤드루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괴성을 질렀다.
“이 새끼가…… 너 나랑 장난치냐? 방금까지 뭘 들은 거야?”
“다 들었어요. 그래도 당신의 모션 캡쳐 연기가 필요해요.”
“이 씨…….”
앤드루는 비어버린 맥주캔을 바닥에 대충 집어 던진 후 냉장고에 쌓여있는 새 캔을 꺼냈다.
“내 연기? 골룸의 연기를 말하는 건가? 그게 내 연기가 맞긴 하냐? 나도 배우야. 얼굴 있는 배우라고. 근데 내 연기로 욕을 먹는 것도 아니고, 얼굴에 이상한 거 덕지덕지 붙여서 힘들게 연기했구먼. 그것마저도 망했어! 근데 이번에 그걸 또 하라고? 이 새끼가…….”
앤드루의 반응은 모순적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미련이 없는 척했지만, 모션 캡쳐 이야기로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짜증을 낸다는 것. 그리고 연거푸 하는 말.
그가 한 ‘나도 배우야’라는 말에서 그가 자신이 배우라는 직업에 얼마나 큰 애착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얼굴을 알리는 배우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단 것.
그 사실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를 더욱 감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더 강하게 나갔다.
“배우 그만하신다면서요.”
“뭐?”
앤드루는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그만 하세요. 배우 그만할 생각이면, 배우로서 가졌던 자존심도 버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그만할 거면서? 보아하니, 미련이 좀 남으셨나?”
“그건 내가 결정해. 이 빌어먹을 새끼야. 내 자존심을 네가 뭔데 판단하는 거야.”
“물론 결정은 당신이 하는 거죠. 근데 처음 보는 사람 말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니 배우를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오히려 배우를 하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 거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앤드루가 이를 악물자 턱 근육이 팽팽해졌다.
“……닥치고, 꺼져. 이젠 진짜 두 번 말 안 해.”
“저도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도 없이 허름한 트레일러 밖으로 나섰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
아직 설득은 되진 않았지만, 여기서 더 질척거렸다간 앤드루에게 있는 내 이미지도 무너진다.
그러면 촬영에 들어온다 한들 내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한 앤드루는 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겠지.
“두 번 다시 올 생각하지 마.”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할까요?”
“염병하지 말고, 꺼져.”
***
앤드루는 문을 강하게 닫고 나가버린 동양인 감독의 뒷모습을 작은 창문을 통해 잠시 바라봤다.
“또라이 같은 놈.”
앤드루는 욕을 몇 마디 더 내뱉고 푹 꺼진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한 손엔 맥주, 다른 손엔 싸구려 시가.
이런 인생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옆에 있던 감자칩에 손을 뻗었다.
쨍그랑-!
“아 씨…….”
앤드루는 이마를 부여잡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삐거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빗자루를 들어 깨진 그릇을 치우는 바로 그때.
옆에 경찬현이 두고 간 가방이 눈에 띄었다.
“이걸 두고 가? 칠칠하지 못한 놈…….”
앤드루는 그릇을 다 치운 후 그 가방을 못 본 체하며 다시 소파에 몸을 뉘었다.
다시 시가를 빨았지만, 눅눅한 날씨에 불이 꺼진 듯 아무것도 빨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되는 게 없네.”
뭣 같은 날.
오늘이 딱 앤드루에게 그런 날이었다. 뭐만 하면 꼬여버린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눅눅해져 불도 제대로 붙지 않는 시가를 쓰레기통에 던졌지만, 쓰레기통 입구에 맞고 튀어 나왔다.
앤드루는 그 꼴을 보고 해탈이라도 한 듯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조차 허락지 않는 듯 눈앞에 계속 경찬현의 가방이 아른거렸다.
“젠장…….”
앤드루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경찬현의 가방을 열었다.
“뭐…… 뭐야?”
돈으로 가득한 그의 가방에 앤드루는 당황한 듯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그 가방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자 돈 밑에 두꺼운 각본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각본에선 종이 쪼가리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앤드루는 꽤 큰 액수에 숨을 들이 내쉰 후 종이 쪼가리를 펼쳤다.
[각본 보고 괜찮으면 연락해주세요.]그 말 밑으로 적혀있는 경찬현의 번호와 이메일.
“이 돈은 또 뭐야.”
앤드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큰 액수의 금액을 두고 갔다면 금세 돌아와야 하지만 그는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미 그가 나간 지 1시간도 넘게 흐른 상황.
대충만 봐도 최소 400유로.
이 돈이면 며칠 정도는 질 좋은 맥주에 시가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무슨 거지새끼도 아니고…….”
앤드루는 그 말을 나지막이 내뱉으면서도 손은 주섬주섬 돈을 챙기고 있었다.
“아. 아냐. 이건 아니지.”
앤드루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내리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내 핸드폰을 들어 경찬현의 번호를 눌렀다.
짧은 신호음 끝에 경찬현이 전화를 받았다.
-내기는 벌써 제가 이긴 건가요?
경찬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앤드루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런 거 아냐. 자네 가방 두고 갔어. 여기 돈도 있다고.”
앤드루는 일부러 가방이 있는 반대편을 보고 말했다.
-아 맞네. 환전한 돈 거기다 넣어뒀구나! 아까 택시비를 거기서 꺼내 가지고…….
“그래. 찾으러 와.”
앤드루의 말에 경찬현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왜 말이 없어?”
-아, 그…… 시간이 좀 늦어서. 내일 가도 될까요?
“아니. 지금 당장 와. 빨리 저 각본 내 집에서 좀 치워줘. 아니면 버려도 되나?”
-지금 다른 배우 연락해보는 중이라서요. 그 각본 줄 생각인데. 버리지 말고 좀 둬요.
“뭐? 다른 배우?”
앤드루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앤드루 씨. 저도 뭐 하기 싫다는 사람 잡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프리 프로덕션에서 배우 캐스팅에 시간 많이 뺏기기 싫어서 다른 배우들도 알아봤죠. 근데 영국에 다른 분도 계시길래…….
경찬현의 말에 앤드루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한 시간 전만 해도 내가 필요하다며?”
-배우 안 할 거라면서요? 앤드루 씨가 배우를 아예 포기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죠.
경찬현의 말에 앤드루는 뭔가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내 괜찮은 척 연기하며 말했다.
“됐고. 그럼 내일 아침에 와서 가져가라고.”
-네. 캐리어에도 환전한 돈 있으니까, 내일 뭐 맥주 한 박스 사 갈게요. 그 정도면 하루 정도 맡기는 값으로 괜찮죠?
“그러시든가.”
경찬현과의 전화를 끊고, 앤드루는 뭔가 당한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에 몸을 계속 뒤척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잘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정신은 계속 말짱해지는 듯한 기분에 앤드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라이가 만든 각본이면 분명히 지루하겠지. 재미도 없을 거야.”
앤드루는 <스페이스 베가본드>라고 적혀있는 각본집의 표지를 한번 훑었다.
[<자월>로 칸 비공식 부문 수상한 최초의 한국 감독 : 경찬현]“응?”
애초에 영화배우가 아닌 연극배우였던 앤드루는 영화제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칸 영화제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알고 있었다.
근데, 자기 각본집에 이렇게까지 어필하는 감독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다가도 이내 잡생각을 접고 각본을 열었다.
영어로 번역을 꽤 깔끔하게 한 덕분인지 한국어 대사임에도 그 특유의 뉘앙스나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초반에 캐릭터 빌드업이 끝날 때쯤.
경찬현이 부탁하고 싶어 하는 모션 캡쳐로 해결할 빌런이 등장했다.
‘니크스로드’.
정치질과 선동에 능해 주인공들을 잡아 자신의 지지율에 이용할 생각을 하는 배역에 앤드루는 꽤 흥미를 느꼈다.
“왜 재밌지……?”
각색된 <반지의 제왕> 각본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작을 훼손하면서 재밌게 만들려면 확실히 재미라도 있었어야 했지만, <반지의 제왕>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 영화였다.
특히 감초 역할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골룸의 매력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니크스로드는 달랐다.
각본만 봐도 느껴지는 캐릭터의 매력. 그 매력 때문인지, 앤드루는 머릿속으로 그 외계인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던 찰나.
툭-.
각본집 사이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바닥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