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16)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16화(116/276)
술자리를 가지긴 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맨정신으로 깨부수긴 어려웠는지 자연스럽게 외국인들끼리 앉게 됐다.
“앤드루 씨?”
테일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앤드루를 향해 물었다.
“왜.”
“잔 받으라고요. 여기 문화에요. 첫 잔은 같이 건배하면서 소리치는 거.”
테일러는 한국의 문화 ‘첫 잔은 함께 원 샷.’을 앤드루에게 설명했지만, 앤드루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그 표정?”
“뭐가.”
“나이도 나보다 한참은 많아 보여서, 말은 함부로 안 하겠지만. 남의 나라에 왔으면 적어도 그 나라 문화에 맞춰주려는 노력이라도 조금 보여요.”
“…….”
앤드루는 테일러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맞추긴 뭘. 어차피 이번 영화 끝나며 안 볼 사람들이야.”
“혹시 알아요? 차기작, 차차기작도 할지?”
“영화판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구먼?”
앤드루는 조용히 술잔에 술을 따르는 닉을 힐끗 본 후 말했다.
“뭔데요?”
“영화는 말이야. 아주 정나미가 없는 예술이야. 사람보다 돈이 먼저거든. 자네도 조심해. 자네도 돈 안 되는 순간 여기서 버림받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앤드루의 말에 테일러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이 턱수염 아저씨가.”
테일러의 반응에 닉은 술을 따르다 말고, 눈만 껌뻑였다. 앞에 있던 앤드루도 테일러의 말에 당황한 듯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뭐라고?”
“그건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아니에요? 뭐, 경찬현 감독님이 우리 부모님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우쭈쭈하면서 키워주게?”
“…….”
“당신 할 일이나 잘하세요.”
앤드루는 테일러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닉이 건네는 술잔을 받았다. 그러곤 이내 할 말이 생각났는지 앤드루가 말했다.
“난 자신 있어. 잘할 자신이 넘쳐난다고. 근데 내 연기는 나한테만 맡겨진 게 아니라는 거. 자네도 알잖나?”
“네, 네. 그럼 잘 알죠. 근데 당신 연기가 대단하다는 게 증명된 적이 없는데요? 내가 본 적도 없고. 그나마 본 건 <반지의 제왕>이고요. 그게 당신 최고의 작품 아닌가요?”
“이…….”
테일러와 앤드루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라리자, 건배사를 하기 위해 일어난 경찬현이 당황한 듯 먼저 이쪽으로 달려왔다.
“다들 문제없는 거죠?”
“아뇨. 좀 있는데요.”
테일러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씩씩거리며 대답하자, 경찬현은 당황한 듯 그들을 쳐다보다 닉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닉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런 말도 없이 슬픈 눈으로 경찬현을 쳐다봤다.
“후…… 아니에요. 없어요. 제가 잠깐 흥분했네요. 사과드리죠. 앤드루 씨.”
테일러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닉은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고 앤드루의 눈 밑이 살짝 떨렸다.
“나, 나도 미안하게 됐어.”
“하하…… 이따가 다시 올게요. 일단…….”
“네, 건배사 하셔야죠!”
테일러는 얼굴에 남아있던 홍조가 싹 가시고,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경찬현을 바라봤다.
“하하…… 네. 그래야죠.”
경찬현이 일어난 상태에서 잔을 높게 쳐들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는 단번에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에 앤드루는 당황한 듯 주위를 빤히 쳐다봤다.
“자, 다들 잔 들어주세요~.”
테일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앤드루에게 신호를 줬다.
그러자 앤드루는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잔을 높게 들었다.
“다들 건배 하면서 우리의 항해의 시작을 세상에 알립시다. <스페이스 베가본드>를 위하여!”
“위하여!”
쨍-.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
끊임없는 그 소리에 테일러는 뭐가 그리 신난 건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거푸 잔을 부딪쳤다.
그 모습에 앤드루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 모습을 알아챈 테일러는 인상을 찌푸렸다.
“또 저 표정이네. 진짜. 술맛 떨어지게.”
“테일러, 왜 이래요…….”
닉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테일러에게 말했다.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잖아. 짜증 나게. 첫 만남인 주연 배우한테 저 인간이 한 소리 기억 안 나?”
테일러는 앤드루를 향해 쏘아붙이자, 앤드루도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당신, 뭐 돼요? 경찬현 감독이 뭐 당신한테 뭐가 있는 것 같아서 데려왔다곤 하지만. 그딴 태도면 당신이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이 집단에 섞이지 못하는 성질 고약한 외국인밖에 안 돼요. 이거 촬영하려면 몇 달은 걸릴 텐데, 계속 그딴 식으로 나올 거예요?”
“내가 일방적으로 그 주연 배우한테 모욕이라도 줬다는 식으로 들리는데?”
앤드루의 말에 테일러는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아니에요? 오늘 그 배우 표정 못 봤어요? 그리고 그딴 걸 질문이라고 던지는 건 또 뭔데요?”
“난 영화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래서 그런 거고. 지금 예의나 차릴 때라고 보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잖아. 촬영도 얼마 안 남았어. 그딴 식으로 인간적인 매력 풀풀 풍기면서 일할 거면, 다른 일이나 알아봐.”
앤드루의 말에 테일러는 맥주를 한껏 들이켠 후 말했다.
“이봐요. 지금 여기서 영화 망하길 바라는 사람 있어 보여요? 다들 영화 성공하자는 의미에서 다들 으쌰으쌰 하며 한 몸으로 움직이자는 거잖아요. 근데 거기서 비아냥대기나 하고. 그게 할 짓이에요?”
“나도 엄청 노력하고 있어.”
“자기 객관화가 확실히 덜 됐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서 물어봐도, 앤드루 씨가 한 짓을 노력이라고 하진 않을걸요?”
테일러는 앤드루를 노려봤다. 하지만 앤드루는 지지 않고 그녀와 맞불을 놓았다.
그리고 맞불이 서로 맞닿으며 터지기 직전, 그들 사이의 소방수로 나선 경찬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하하…… 역시 무슨 일 있는 거 맞죠?”
경찬현의 물음에 앤드루는 입맛을 다셨다.
“괜찮아.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지. 이 친구가 나한테 불만이 꽤 많은데.”
“됐어요. 전 할 말 다 했네요. 전 다른 분들이랑 한잔하러 갈게요.”
테일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닉도 눈치를 보며 뒤통수를 긁으며 일어났다.
그러자 경찬현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앤드루를 쳐다봤다.
“뭐, 자네도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보나?”
“없진 않죠.”
“쯧. 빈말은 안 해서 좋네.”
앤드루는 앞에 있던 맥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근데 자네는 내 말이 뭔지 알지 않나? 적어도 자네는 알 거야. 김승훈의 연기력. <스페이스 베가본드>의 주연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그 애매한 감정선들. 그건 스크린에 잘 드러나지도 않을 거라고.”
“…….”
앤드루의 말에 경찬현은 고민이 깊어진 듯 턱을 괴며 잠시 말이 없었다.
“자네가 연출력은 좋다는 거. 그래, 인정하지. 하지만 김승훈의 연기력을 자네의 연출만으로 해결하기엔 <스페이스 베가본드> 주연 역할은 벅찰 거야. 내 무대 인생 20년을 걸지.”
앤드루는 확신에 찬 눈으로 경찬현을 쳐다봤다.
“자네가 대체 어떻게 <밤>이라는 영화를 찍었는지 의문인 수준이라고. 하, <스페이스 베가본드>. 그래, 지금 느낌? 엄청 좋아. 내 비밀 하나 알려줄까?”
경찬현은 궁금하다는 듯 자기 잔에 맥주를 따르며 물었다.
“뭔데요?”
“‘행운 총량의 법칙’. 그게 내 비밀이야. 나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운이 더럽게 안 좋고,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운이 좋아지거든.”
앤드루의 말에 경찬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예요. 그게. 그냥 뭐,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낙관이 아니라고. <반지의 제왕> 때 내가 운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
출근길에 토스트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백이면 백 내용물이 없는 곳이 바닥을 바라봤고, 라디오를 틀면 자기가 딱 듣고 싶은 노래만 나오고, 자신의 가정사까지 털어내는 앤드루를 보곤 경찬현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놀랍지?”
“아…… 네.”
앤드루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말하자, 경찬현은 웃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오늘 호텔 방에 시계가 고장 난 거 봐. 그게 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호텔이랑 오늘 미팅룸이랑 별로 멀지도 않은데 온갖 신호에 다 걸렸다고. 이건 <스페이스 베가본드>가 성공할 징조라고!”
“조, 좋은데요……? 그거 정말 엄청난 소식이군요…….”
앤드루는 경찬현의 반응에 깊게 한숨을 들이 내쉬었다.
“안 믿는구먼. 그래, 믿지 말라고! 대신 그 주연배우. 그 친구 연기는 확실히 손 볼 필요가 있어!”
“곧 온다고 했는데,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어때요?”
경찬현의 말에 앤드루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테일러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경찬현에게 물었다.
“내 말이 그렇게 심했나?”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
“제 입장에선 앤드루 씨 말하는 방식에 문제지, 내용적인 문제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별말 안 하는 거고요.”
경찬현의 말에 앤드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내용적인 문제만 없으면 되는 거 아냐? 왜 다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문제를 보지 않고 내 손가락을 보고 뭐라고 하는 거지?”
“앤드루가 가리키는 손가락이 중간 손가락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경찬현은 앤드루에게 손등을 보이며 중간 손가락을 잡고 흔들거리며 말했다.
“저도 알아요. 예전에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속으로 생각했죠. 알맹이보다 껍데기만 신경 쓰는 멍청이들이라면서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요.”
경찬현이 앞에 있는 맥주를 한번 홀짝인 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주병을 쥐었다.
그리고 한번 회오리를 만든 후 병을 까서 앤드루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원래 진지한 얘기할 땐 이걸 먹어야 하거든요. 마셔볼래요?”
“그러지.”
앤드루는 잔을 들어 두 손으로 소주를 따르는 경찬현을 바라봤다.
“근데, 예전에 그랬다고?”
“네. 뭐 윽박지르고, 욕하고. 그리고 좋은 결과 나오면 이게 다 제 덕분이라고 생각했었죠. 결국 결과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요? 지금 앤드루 씨도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행동일 거고요.”
“그래, 내 맘을 좀 알아주네! 나도 이 영화에 최선을 다할 생각으로 하는 거라고!”
앤드루는 소리친 후 방금 채운 잔을 단번에 비워냈다. 그 모습을 보며 경찬현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그게 주변 사람들 제일 힘들게 하는 거더라고요. 결국 다 떠나가고 완전 빈털터리에 혼자가 됐었죠.”
“뭐……?”
“아…… 뭐. 예. 하하. 아니 그게 아니고…….”
경찬현은 의도치 않게 나와버린 말에 당황했는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저었다.
앤드루는 경찬현의 표정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한참은 젊어 보이는 사람이 뭐가 혼자가 됐다는 건지.
하지만 그의 표정은 완전히 진심인 듯한 표정이었다.
“하하, 짠이나 할까요?”
경찬현과 앤드루는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 번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자, 앤드루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크…….”
“괜찮아요?”
“나쁘지 않네.”
“그럼 한 잔 더?”
경찬현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소주를 들고 말하자, 앤드루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같은 시각.
김승훈은 술집 앞에서 담배를 깊게 빨며 간판을 바라봤다.
<밤> 때 회식했던 소고기 집.
오랜만에 찾는 곳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저 공간 안에 있는 한 인간.
앤드루 사킬이라는 인간 때문에 발이 그리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
불똥이 거의 필터 끝자락에 닿기 직전까지 피고 나서야 김승훈은 깊은 한숨과 함께 발로 비벼 담뱃불을 껐다.
김승훈은 지금 당장 느끼는 모순된 감정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고 싶었다.
단순한 자기소개였음에도 짧은 순간 안에 만들어낸 몰입감.
앤드루 사킬이 어떻게 그런 걸 했는지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공격적인 그의 어투는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김승훈은 발길을 다시 집으로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승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