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27)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27화(127/276)
몇 주간 촬영이 계속됐다.
세트장과 MILM을 번갈아 가며 움직인 탓에 몸이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거의 뺨까지 흘러내릴 것만 같은 다크 서클, 축 처진 입꼬리에 초점 없는 눈동자.
바쁘긴 더럽게 바빴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자, 뿌듯함이 느껴졌다.
“끄으…….”
기지개를 켜자, 신음이 절로 나왔다.
피곤함, 뿌듯함, 멍.
잠을 제대로 잔 게 몇 주 전인지. 기억도 제대로 나질 않는다.
세트장과 MILM을 가지 않는 날엔 사무실에서 준성이와 예산과 영화 촬영 진행 관련한 대화를 나눠야 했다.
띠링-.
[나 10분 정도 늦을 듯. 쏘리. 금방 갈게.]준성이의 문자에, 쪽잠을 잘 겸 미팅 룸에 불을 끈 채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탁-.
불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준성이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에 몸을 비비적비비적 움직이며 잠에서 깼다.
“괜찮냐?”
그의 목소리엔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얼굴 봐라. 이번엔 특히 더 심각하네.”
“뭐래. 인마. 진짜 죽을 거 같다고.”
“조금 더 잘래? 불 좀 꺼줄까?”
“이거 얘기하고, 다시 MILM 가 봐야 해.”
내 말에 준성이는 혀를 내둘렀다.
“야, 건강할 때 몸 챙겨. 그러다 훅 간다? 이제 서른이야. 20대처럼 청춘이 아니라고.”
“서른도 청춘이야.”
“청춘은 무슨. 서른이면 이제 형,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 호칭 들을 나이라고.”
준성이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아직 팔팔하거든?”
“거울은 보고 다니냐? 시체 꼴을 해놓고선 팔팔은 무슨.”
“진짜 시체들은 MILM에 있어. 거기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양반이라고.”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종일 모니터 앞에서만 일하고 있는 직원들.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의지를 더욱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돈 문제는 어떻게 돼가?”
“더 심각해. 생각보다 돈이 훨씬 많이 깨지고 있어.”
빠듯한 예산 때문에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만 했다.
시간은 결국 돈.
빠르게 촬영을 마무리하는 게 예산을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었지만, <스페이스 베가본드>에 있어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CG.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MILM에서 야근하고 있는 테일러와 팀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범주였다.
“이대로라면, 200억도 부족할 거 같은데…… 젠장.”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린 채 예산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돈과 시간과의 싸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싸움에서 점점 패배에 가까워진다는 소식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얼마 정도 더 필요한 거야?”
“……50억은 더 필요해. 이것도 최소야. 더 필요할지 몰라.”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젠장…… 여태까지 영화 제작비랑 차원이 달랐으면 오차도 충분히 계산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어.”
그는 책상에 머리를 몇 번 쿵쿵 박았다.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은 뇌세포 소중하게 대해.”
“끄으…….”
준성이는 책상에 엎드린 채 말했다.
“어떻게 하지? 돈 끌어올 데는 다 끌어왔다고! 젠장…… 여기서 더 끌어모으면 700만 이상은 봐야 해.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700만.
<자월>은 흥행 코드를 많이 이용해서 성공했지만,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투자자들에게 그다지 입맛이 끌리는 영화가 아니었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여태껏 나온 적도 없는 장르.
우리나라 최초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나오는 시점도 2019년.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들을 하나씩 곱씹었다.
그 영화들 사이에서 흥행할 수 있는 코드들은 이미 모두 <스페이스 베가본드>에 적용했다.
하지만, 일단 개봉해야 돈을 버는 건데. 개봉까지 가는 데만 해도 힘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돈을 끌을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머리를 스쳤다.
“어?”
“뭐, 뭐야?”
내 말에 준성이는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나를 향해 물었다.
“기똥찬 생각이 났어. 왜 진작에 이걸 생각 못했지?”
“아니, 뭔데. 뭐길래. 말을 해.”
준성이는 발로 바닥을 구르며 내 쪽으로 의자를 끌어왔다.
그의 눈엔 절실함과 간절함,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장난감.”
“뭐?”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난감이라고? 지금 장난하나…….”
그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린이 전용 영화로 만들게? 그럼 처음부터 특촬물처럼 만들던가. 모션 캡쳐, 뭐 온갖 고급 기술들을 다 써놓고 갑자기 어린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지금 나랑 장난치냐?”
준성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발을 굴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왜 어린 애들만 장난감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
“뭐? 장난감 뜻을 모르냐? 애초에 어린이들 놀이용으로 만든 거잖아? 근데 왜 아이들만 장난감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돼.”
나중에 만들어질 신조어 키덜트(kidult).
아이라는 뜻의 kid와 성인이라는 뜻의 adult의 합성어.
특히 이들은 소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성인 세대들이 타겟.
지금 70년대생들은 어느 정도 소비력을 갖춘 상태.
장난감 회사가 우리 영화에 어느 정도 관심만 있다면…….
투자받을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내 말에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이상한 걸 또 주워 들어와 가지고…… 미디어 믹스 말하는 거냐? 야, 그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성공한 적도 없어. 그건 미국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거야.”
“<스페이스 베가본드> 분명히 미국에서도 팔릴 거야.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거기서 더 잘 팔릴지 모른다고.”
“이유는 뭔데?”
준성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주선. 로망! 덕후하면 양덕이다. 그런 말도 모르냐? 진짜 너드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에 있어. 이 영화로 그 덕후들의 마음속에 있는 덕심만 깨워준다면…….”
“그걸 장난감 회사 사장한테 말해보겠다고?”
준성이는 내 말을 기대했다가, 이상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제작도 한참 많이 남았고,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야. 장난감 회사들이 뭘 믿고 돈을 투자하겠냐고.”
“지금 만든 CG 부분들이랑 미니어처, 세트장만 제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가능할 거야. 너도 MILM에서 만든 CG 봤잖아. 대단하다면서 어? 감탄할 거 다 해놓고.”
준성이의 이마에는 깊게 주름이 파였다.
“그건 그거고. 그래, 그 CG는 진짜 여태껏 내가 본 적도 없는 거였어. 그래서 돈 많이 든다고 툴툴대는 것도 이제 안 하잖아. 그 가격만큼 퀄리티가 나오니까. 근데 그걸 장난감으로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준성이는 말을 흐리며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그 두드림은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길었다.
“야, 생각해봐.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는 원소스 멀티유즈들. 캐릭터 카드, 장난감, 뭐 그런 걸 애들만 좋아하냐?”
“주변에 그런 거 모으는 놈들 있냐?”
“…….”
“그런 건 아이들이나 환장하는 것들이라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화계에서 제일 성공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사례, <스타워즈>가 없는 한 제대로 내 말을 믿어줄 리가 없었다.
<스타워즈>를 제외하고도, 프랜차이즈가 된 영화들의 장난감 수익은 어마어마했고, 세상을 휩쓸며 돈을 긁어모았다.
프랜차이즈 영화들 정도는 아닐지라도. 분명 <스페이스 베가본드> 장난감으로도 분명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럼 다른 방법 있어? 지금 당장 거금 끌어올 데 있냐고.”
“…….”
준성이는 아직도 책상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곤 이내 눈을 다시 뜨며 말했다.
“없어. 네 말대로 답이 없어. KMD에서 더 끌어오기엔 이미 200억이나 끌어왔고. 하…… 젠장.”
“그럼 이 방법 말곤 없지?”
도 아직 제대로 된 수익이 나기엔 준비 단계에 있는 상황.
지금 당장 돈을 끌어올 곳은 마땅치 않았다.
“후…… 그럼 일단 네 계획 한번 읊어봐. 그 원 소스 멀티유즈. 너 여태까지, 그런 있어 보이는 말로 사람들 등쳐먹는 놈들 많았던 거 알지?”
닷컴, IT 등 무슨 이름만 대충 붙인 상태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간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원 소스 멀티유즈도 그런 것 중 하나.
책을 원작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둥, 장난감 상품을 만든다는 둥.
겉은 화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원 소스 멀티유즈가 제대로 성공한 적은 아직 없었다.
“일단 내 생각으론 피규어 사업이야.”
“피규어?”
“응. 류성민의 이글스 우주선이라든지, 니크스로드라든지. 그런 것들을 정교하게 만드는 거야.”
“정교하게……?”
준성이는 호기심이 조금 생긴 듯 내게 물었다.
“두루뭉술한 인형 같은 게 아니라, 제대로 만드는 거라고?”
준성이가 말한 두루뭉술한 인형.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돌 인형 굿즈 같은 걸 생각했는지,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완벽히 똑같지만 크기만 줄인 거. 그런 장난감이면 너나 나 같은 성인들도 살 거라니까? 영화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장난감 회사도 구미가 당길 거야. 분명해.”
준성이는 다시 눈을 감고, 책상을 두드렸다.
톡톡- 톡톡-.
준성이는 머리를 재빠르게 돌리고 있는 듯.
책상을 두드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툭-.
준성이가 책상을 두드리는 걸 멈췄다.
그러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일단 이 방법이 최선이야. 돈을 끌어 모으기엔 이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준성이는 내 말에 어느 정도 넘어온 듯 보였다. 그러다 다시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스페이스 베가본드> 지분도 어느 정도 넘어갈 거야. 영화가 성공한 후에 판권 파는 거랑 지금 당장 판권 파는 거랑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날 거라고. 어쩌면 우리한테 큰 손해일지도 몰라.”
준성이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스페이스 베가본드>가 성공한 다음 판권을 판다면 지금 파는 가격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격에 팔 수 있을 터.
하지만 이건 지금 상황에 맞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지금 당장 영화부터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젠장…….”
준성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큰 그림을 봐야지. 지금 당장 눈앞에서 수익을 놓쳤다고 한숨 쉴 거냐?”
“원래 눈앞에 있는 것들 먼저 챙기면서 큰 그림 그리는 거거든?”
준성이는 이제야 생각이 좀 정리가 됐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내가 알아서 해볼게. 투자 계획서 만들어서 장난감 회사…….”
“최고로 좋은 회사로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최고로 좋은 회사가 새끼야, 개봉도 안 한 영화 피규어 만들자고 계약을 받겠냐? 뭐, 레고 회사에 연락이라도 해?”
“나쁘지 않지.”
내 말에 준성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이나 자라. 인마. 안 그래도 정신 나갔는데, 잠도 못 자니까 아예 정신 나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