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3)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3화(13/276)
준성이 가족과 나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준성이 아버지는 준성이에게 물었다.
“그래, 네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냐.”
준성이는 훅 들어오는 질문에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준성이는 자신의 사업 계획서를 포함한 내 시놉시스를 한번에 묶어둔 종이 뭉치를 전달했다.
“일단, 여기 있는 경찬현 감독과 구상 중인 영화입니다.”
“<밤>?”
“네. 요즘 유행 중인 느와르 영화를 구상 중입니다.”
“뭐 깡패 새끼들 나오는 거 말하는 거냐?”
준성의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냈던 예상 문제 중 하나였다.
“깡패들이 메인이긴 하지만, 평범한 영화와는 다릅니다. 시놉시스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형은 깡패, 동생은 경찰. 그리고 형의 친구는 깡패 이런 식으로 캐릭터가 구상되어 있습니다.”
“흠…….”
“요즘 나오는 양산형 코믹 느와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시놉시스를 읽는 동안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제작비는 얼마 정도로 보는데?”
“다다익선이지만…… 10억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10억?”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숨을 죽이며 시놉시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준성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10억은 2000년 기준으로 꽤 큰 값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쉬리>의 제작비도 32억이니…….
“그럼 회사도 만들 생각인 게냐. 그 정도 자금은 개인이 굴리지 못할 텐데?”
“예. 만약 아버지께 투자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제작사를 만들어서 이곳저곳에서 투자를 받을 생각입니다.”
“아직 데뷔도 못하지 않았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놈들에게 10억씩 투자하는 투자자가 있긴 하겠어?”
“있을 겁니다. 영화 산업에 특히나 열정적으로 투자하는 ‘JC’ 정도라면 가능할지 모르죠.”
준성이는 일부러 JC라는 이름에 강세를 넣어 말했다. 그러자 준성이 아버지는 바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JC? 소문으로는 아직 꽤 손해를 보는 중이라던데?”
“장기전으로 보는 걸 겁니다. 아버지처럼요.”
“뭐?”
“IMF 때 KMD도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JC도 그렇게 잠룡(潛龍)으로 있는 거겠지요. 영화 산업이 거대해질 때까지 돈을 쏟아붓는 거겠지요.”
“흠…….”
약간의 긍정적인 신호가 오자, 준성이는 한번 더 밀어붙였다.
“멀티플렉스 사업. 그러니까 상영관과 레져시설, 그리고 쇼핑까지 한번에 해결하는 건물을 짓는 게 아직도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럼, 얼마나 벌 수 있다고 예측하는 거지?”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을 셀 수 없이 해봤지만, 정확하게 대답이 나올 수 없었다.
2022년이면 1000만 영화가 꽤 많이 나온 이후라, 숫자를 가늠해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은 다르다.
<쉬리>는 전국에서 693만 명. <쉬리> 이전 최고 흥행작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로 서울에서 103만 그리고 전국적으론 290만 명이다.
<쉬리>가 나올 때, 제작진들은 쉬리가 서편제는 넘을 수 있을까로 내기를 했었지만, 2000년 당시엔 말도 되지 않는 관람객 수에 한국 영화계가 뒤집혔었다.
“서울에서 120만. 전국으로 250만 정도로 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배우들 섭외도 가능하다면요.”
“최대?”
“아뇨. 최소입니다.”
이정호는 최소라는 말에 피식 웃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전국 250만? 그것도 최소로?”
“네. 가능합니다.”
“6년간 허언증이라도 걸린 게냐?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지껄이는 게냐?”
순식간에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준성이네 어머니와 예지, 그리고 나는 숨을 죽이고 부자의 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다 아실 거라고 봅니다. 여태까지 이 정도로 관람객이 모인 영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 대박을 친 영화도 서울에서 간신히 80만 명이 봤다는 것도요.”
“그런데 네가 경 감독하고 만들 영화가 그것보다 더 잘나갈 거다? 무슨 근거로?”
준성이는 말이 막혔다. 정보를 제공하긴 했지만, 감성의 호소만으론 사업가의 이성과 논리를 이길 수 없다.
“회장님.”
“그래, 자네는 답을 갖고 있나?”
“저희가 만들 영화는 단순한 영화로만 평가받지 않을 겁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IMF 외환위기. 우리나라는 아직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하기도 전이다.
국민들은 지쳐있고, 피로를 해소할 비상구를 찾는다. 그 비상구는 대부분 유흥거리다.
스포츠에선 박세리와 박찬호, 게임에선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영화로는 <쉬리>가 있었다.
“국가적으로 힘든 상황에 10억짜리 영화를 만든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정신 나간 놈들이라고 생각하겠지. 경기도 안 좋은데 싸구려 유흥거리에 돈이나 쏟아붓는다고!”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나는 준성이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못 본 체하며 말을 이었다.
“단 5,000원으로 10억짜리 영화를 보게 해준다는 거에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불경기라 유흥거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회장님 말씀대로 싸구려라도 말이죠.”
“그럼…… 제작비가 높은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죠. 피씨방 한 시간에 얼만지 아십니까?”
내 질문에 준성이 아버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외의 접근에 당황한 듯 보였다.
“얼마지?”
“1,000원입니다. 한 시간 이용 금액이요.”
“그런데?”
“게임 두 판정도면 한 시간은 끝납니다. 그리고 몇몇은 꽤 오랜 시간 피씨방에 머무르기도 하고요. 지금 피씨방에 사람들이 가득한 건 아십니까?”
“…….”
물론 지금 피씨방에 사람들이 가득한 건 스타크래프트 덕이다. 하지만 준성이 아버지는 그걸 모른다. 단지 사람들이 유흥거리가 필요해서 피씨방을 가는 것으로 알뿐.
“사람들은 게임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로 판단하죠. 하지만 영화는 다릅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면 5,000원이면 싸게 봤다고 생각하겠죠. 10억짜리 작품이라고 광고하면 되니까요.”
“하. 웃긴 생각이구먼.”
아니다. 전혀 웃기지 않다. 2022년이야 포스터에 얼마가 들었냐, 최신 기술을 썼냐 말을 적는 게 촌스럽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시점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게 먹힌다.
“그리고, 일단 이런 걸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영화가 성공한다면, 차후 저와 준성이 몸값은 지금 투자할 수 있는 비용으로 살 수 없으실 겁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겠다는 그 전략이 사업이랑 별반 다를 게 없구만.”
준성이 아버지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와 준성이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준성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키지 않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신, 조건이 있어.”
“네?”
“방금 준성이 말엔 책임져야지. 남자가 자기가 한 말도 못 지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전국 250만 말씀이십니까?”
“그래. 최소라고 했지?”
준성이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걸 못 지키면 너는 바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거다. 영화 따위는 접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준성이네 어머니는 미소를 보이며 준성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준성이에게 물었다.
“사는 건 계속 친구네 얹혀살 생각이니?”
“네.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서요. 얘랑 의논할 게 지금부터 한두 개가 아니에요.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으로 해야죠.”
“지금 이렇게 대화할 시간은 있나? 빨리 뭐라도 해야지 않겠어?”
준성이네 아버지는 나와 준성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투자자 실망시키지 마라.”
나와 준성이는 집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냐? 어디 웅변학원 특강이라도 받았냐?”
“도움이 됐으면 고마워해야지. 남의 영업 비밀 들출 생각을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인마.”
“푸학, 미친놈.”
나는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남을 설득할 때 비교적 엄청 많은 시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 삶을 통해 꽤 발전했다. 억지를 부릴 때도 알았고, 궤변이라도 남을 설득하기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진 오래다.
“일단 제작사 만들러 가. 난 시나리오 다듬고 마무리할 테니까.”
“제작사 만들고, 프리 프로덕션 들어가면…… 머리 터지겠다.”
일단 제작사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원룸 사무실을 잡든 뭘 하든. 일단 공간이 필요하다.
“KMD 그룹 지하에 뭐 남는 방 없냐?”
내 질문에 준성이가 놀란 듯 되물었다.
“지하에서 하자고?”
“그럼 우리 집에서 하리? 우리 집에 사업자 등록증이라도 낼 생각이냐?”
“그래도 지하는…….”
“배가 불렀네?”
“아냐. 가자. 그래, 아버지한테 따로 연락 드려야겠다.”
“지금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닥쳐. 지금 아버지 얼굴 보면 토할 거 같으니까. 아까 죽는 줄 알았잖아.”
“역시 하남자구먼.”
우리는 골목을 걸으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업을 진행할지 의논했다.
제작사 이름은 <성현 제작사>.
준성이가 멋있게 영어로 하자고 했지만, 나는 제작사 이름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성현. 준성이와 내 이름의 마지막 자를 따면서도 별 성(星)에 나타날 현(顯).
대한민국 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놈들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그게 무슨 아재 같은 이름이야? 성현?”
“아재가 아니라 클래식이지. 낭만이고.”
“낭만 다 죽었다. 성현이 낭만이라고?”
“그래. 뭐 쓸데없이 드림 제작사 그딴 거보단 훨씬 나아.”
“쯧, 뭐 내 이름이 앞에 있으니까. 콜.”
***
다음 날부터 준성이는 알바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제작사를 공동 대표로 설립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내가 말하자, 준성이가 물었다.
“너 무교 아니냐?”
“맞는데?”
“근데 그런 말 해도 되냐? 신성 모독 아냐?”
“모든 가르침은 다 똑같은 거야. 서로 사랑해라 아니냐?”
“그건 맞지.”
우린 일단 명패를 걸어둔 지하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몇 년간 쓰지 않았는지 묵은 먼지가 눈에 선했다. 우리는 종일 청소만 했는데도 진이 빠졌다.
“아오, 아들이 사무실 임대한다고 하면 청소 업체 좀 쓰고 그러면 안되나?”
대충 청소를 끝내고 비지땀을 닦으며 깨끗해진 사무실을 쳐다보며 준성이가 말했다.
“이런 데를 싸게 빌려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거지. 빈대 본능이냐?”
“어허. 빈대라니. 가족 사이에 빈대가 어딨어? 헌신이지. 인마.”
준성이의 뻔뻔함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자리에 털썩 앉으며 앞으로 밟아가야 할 단계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문제였던 자금과 제작사 설립은 준성이 아버지의 투자로 해결이 되었다.
물론 자잘한 것들이 남아 있지만, 그건 준성이가 처리해야 할 몫이다.
내 몫은 이 투자와 제작사 설립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흥행할 영화를 찍는 일이다.
마침 내 생각을 읽은 듯, 준성이가 질문을 던졌다.
“시나리오 다 썼지?”
“당연하지.”
“근데 시나리오를 왜 이렇게 빨리 쓰냐?”
“머릿속에 다 있는 거니까.”
“허이구? 그러셔?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배우 캐스팅 해야지.”
이제부터 찍어야 하는 영화는 단순힌 졸업작품이 아니라 ‘상업영화’다.
상업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배우다.
좋은 배우를 만나면 그만큼 영화가 잘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운이 나쁠 경우 영화가 망하는 건 물론, 중간에 엎어지기도 한다.
“배우는 전에 말했던 그대로 가려고?”
“응. 이정우, 김승훈. 그 듀오로 가볼 생각이야.”
확실한 성공을 위해서는 확실한 배우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 <밤>에 어울리는 배우로는 이정우와 김승훈만 한 사람이 없다.
이 두 배우를 섭외하는 게 이 영화 제작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