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34)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34화(134/276)
준성이는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엥? 외국인인가?”
김은하는 영어를 쓰는 준성이를 보며 내게 말했다.
“전화 올 외국인은 앤드루밖에 없을 텐데……?”
준성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몇 마디를 나눴다.
누군가 궁금해질 때쯤 준성이가 나를 향해 전화를 건넸다.
“너 바꾸라는데. 체스터 씨야. 어후, 귀때기야. 이 양반 목소리가 왜 이리 커.”
“응? 체스터 씨?”
갑작스러운 체스터의 전화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전화를 받아들었다.
-이봐! 경 감독! 자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한껏 성나있는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네? 에?”
-아니, 자네 영화 개봉했다는 걸 왜 나한테 알려주질 않는 게야! 어! 내가 그걸 이 친구야. 다른 사람 입으로 전해 들어야겠나! 그리고 자네, 대체 이메일은 언제 보는 건가? 자네 이메일 안 보고 다녀? 그럴 거면 이메일은 왜 알려준 게야!
눈앞에서 들었다면 분명 귀가 마비됐을 법한 큰 목소리.
스피커폰 기능은 있지도 않은 전화기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무실을 울렸다.
-이봐! 경 감독! 끊은 거야, 뭐야. 왜 대답이…… 국제 전화 비싸. 이 사람아!
“아, 네. 체스터 씨. 듣고 있어요. 근데…….”
-뭐! 그래! 변명이라도 들어볼 테니! 말해봐.
“오늘 개봉했는데요?”
개봉한 지 며칠이라도 지났으면 모를까, 오늘 개봉이었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체스터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벌써 개봉한 지 9시간은 지났잖나! 어! 9시간은 시간도 아닌가!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러면 섭섭해!
“에이, 그건…….”
-변명하지 마! 안 되겠어. 한국으로 바로 출발하든가 해야지.
“아니, 방금은…….”
-됐어!
한국으로 바로 출발한다는 체스터의 말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급한 사람이었나……?
“아니, 근데 정식 자막도 없어요. 차라리 미국에 판권 팔릴 때까지…….”
-그럼 자네 작품이 필름 마켓에 팔리고, 미국에 배급되는 걸 기다리라고? 그럼 적어도 몇 달 이야!
“그럼 자막도 없는데 그걸 보겠다고요?”
-…….
내 물음에 체스터는 잠시 대답이 없다가, 더욱 크게 목소리를 키웠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서 해석본이라도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다른 관객들이 종이 넘기는 소리 신경 안 쓰이도록.
“뭐…… 그게…… 쉽진 않을 거예요. 표 구하는 게 좀 힘들다는 말이 돌아서…….”
-뭐? 그게 무슨 소린가?
“매진 됐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요…….”
-끄응…….
체스터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괜히 신경이 쓰였다.
“흠…… 아!”
-왜!?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건가!?
내 깨달음의 탄성에 체스터는 기대가 되는 듯한 눈치로 물었다.
“그럼 일단 한국으로 오시죠. 제작사에서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낫겠어요.”
-오……?
이제야 체스터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바로 오실 건가요?”
-그래, 내가 잠을 요새 통 못 자! 자네 영화 보고 싶어서!
“오늘 개봉했다니깐요…….”
-그건 됐고! 여하튼 끊지. 곧 갈 테니. 제발 이메일 확인 좀 해! 내가 속이 터져서 정말!
체스터는 몇 분을 더 툴툴댄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체스터 씨가 뭐래? 마지막엔 좀 잠잠해졌네.”
전화를 끊자마자 준성이가 물었다.
“한국 온다던데?”
“응? 갑자기?”
“<스페이스 베가본드> 보고 싶다고. 근데 자막이 없으니까, 성현 제작사에서 보라고 했어. 해석본 보면서 보라고.”
내 말에 준성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은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뭐…… 체스터!? 그 내가 아는 그 체스터 맞지?”
“어, 작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미친. 네 영화 때문에 그 사람이 한국에 직접 온다고?”
“그렇대. 이름값은 대단한데, 막상 만나보면 그냥 먹는 거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야.”
내 말에 김은하는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동네 아저씨라고……? 그 사람 펜 끝에 영화판에서 쫓겨난 사람이 몇 명인데!”
김은하는 놀란 마음을 달래는 듯 앞에 있던 아이스 커피의 얼음까지 으적으적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더 중점을 두는 게 미장센인지, 스토리인지, 뭔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고! 영화계의 거물인데…….”
“네 영화도 좋아할 텐데. 온 김에 네 영화도 보여줄까?”
내 물음에 김은하는 몸서리치며 대답했다.
“뭐!? 안 돼. 절대.”
“왜? 그 사람 평가 하나는 냉철하잖아. 네 영화,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거라니깐?”
“난 지금 평가로도 충분하거덩?”
“에이, 한번 보여줘 보자니까. 겸사겸사 1+1 행사 느낌으로!”
특히나 명 영화감독들이 사라진 세계라면.
김은하의 영화가 내가 알던 세상처럼 내수용에서 그치는 게 아닌, 세계로 퍼져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됐어. 무서워. 그리고 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영화를 보여준다고? 그건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야!”
“흠…….”
나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김은하를 빤히 쳐다봤다.
단지 체스터에게 영화를 평가받는다는 상상만 해도 긴장되는지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꽤 많이 돌려봤던 명작의 대사가 머리를 스쳤다.
“천하의 김은하가 왜 이리 혓바닥이 길어?”
내 말에 준성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맞아, 천하의 김은하가! 혓바닥이 왜 이리 기냐? 야, 근데 이거 어디 영화 대사야? 왜 이렇게 찰져?”
김은하는 내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김은하의 입장에선 잃을 게 없다.
게다가 체스터가 호의로 보여준 영화로 악평을 쓸 정신 나간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
김은하는 고민하는 듯 잠시 인상을 계속 쓰고 있었다.
감정의 동요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채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준성이가 갑자기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뭐.”
준성이는 표정을 최대한 얄밉게 만들며 시동을 걸었다.
눈썹을 잔뜩 치켜올리고, 옹졸한 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입술 사이로 나온 마법의 단어.
“쪼-올?”
“이 미친놈이.”
짜악-!
“으아악!”
준성이는 방금 맞은 부위에 손이 닿지 않는지 내게 달려오며 등을 보였다.
“야. 여기 좀 비벼 봐. 으아악! 불타오르는 거 같다고! 흐아아…….”
“어휴, 이 미련 곰탱아…… 그거 대상 보고 가려가면서 하는 거라고 했잖아.”
준성이가 한숨 섞인 신음을 내뱉는 동안.
김은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그러곤 결심했는지 그녀가 말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야! 그럼 나는 왜 맞은 거야!”
“방금 네 표정에 한 대면 덜 맞은 줄 알아!”
***
같은 시각.
테일러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 뉴스를 어떻게든 알아듣기 위해 종일 TV 앞에만 앉아있었다.
“닉.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테일러 씨가 저보다 한국말 잘하거든요? 테일러 씨가 못 알아듣는데 제가 알아들을 거 같아요?”
“하…….”
테일러는 그림 동화를 보듯 뉴스를 해석해야 했기에, 아나운서들이 나와서 하는 말은 바로 직독 직해하기 까진 힘이 들었다.
“후…… 한국말 너무 어렵다.”
“그냥 포기해요. 뭐, 영화관에 사람 붐비는 거 나오면 되는 거 아녜요?”
“그건 아까 나오긴 했어.”
“그럼 됐지. 뭘 기다리는 거예요?”
“뭐…… 관람객 숫자?”
테일러의 대답에 닉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테일러 씨. 관람객 합산하는 게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잖아요. 영화관마다 다 합치고 계산해야 하는데. 그게 개봉 당일에 나오겠어요?”
“그래도…….”
“몰라요. 전 자러 갑니다.”
닉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그때 테일러의 전화가 울렸다.
띠리링-.
집중을 방해하는 전화에 테일러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체스터 삼촌]삼촌의 연락에 테일러는 잘못 본 게 아닌지 눈을 비빈 후 다시 확인했다.
대부분의 연락은 이메일을 통해서 했다.
전화는 쓸데없이 비싸기도 했고, 이메일은 보내놓고 하루에 한 번씩 확인 정도만 하면 됐으니까.
“여보세요?”
-어, 테일러. 잘 지냈니? 이메일 잘 받았다.
따스한 체스터의 목소리에 테일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뇨.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했어요.”
-뭐? 죽을 뻔해? 무슨 일이야! 누가 괴롭히기라도 하디? 어떤 샊…….
체스터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이자 테일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라요. 다들 엄청 열심히 일하느라 죽을 뻔했다는 거예요.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좋았어요. 이렇게 작업하는 건 처음 같다니까요?”
-이런…… 쯧.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말아.
체스터는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테일러를 나무랐다.
“근데 갑자기 전화는 왜요?”
-아, 그게 말이야.
갑자기 체스터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잔뜩 흥분한 듯 그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지기까지 했다.
-한국에 가려고.
“네? 갑자기요?”
-<스페이스 베가본드> 개봉했다며. 네가 이메일로 그랬잖니.
“근데 그거 때문에 한국을 오시는 건 좀…….”
-뭐야, 자신 없어?
몇 년 전 만들어준 우주 CG를 체스터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
그땐 체스터의 물음대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만든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었다.
삼촌 체스터조차도 이 영화를 보면 눈을 번쩍 뜰 거라고.
테일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없다뇨! <스페이스 베가본드> 보려고 영화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거든요!”
-흐흐, 근데 그럼 왜 그러는 게냐?
체스터의 떠보는 듯한 목소리에, 테일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럼 와서 직접 보시든가요! 아 근데…… 번역이 아직…….”
-경 감독이 성현 제작사에서 직접 틀어줄 테니 보라고 하더구나. 따로 번역본도 준다고 하고.
“오…… 그거 괜찮네요. 제작사에서 직접 보면 잠시 멈출 수 있기도 하고요. 흠…….”
테일러의 말에 체스터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흐흐. 진짜 자신 있는 거 맞지?
“그렇다니깐요! 이 영화는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의 클래식이 될 거라고요!”
경찬현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테일러는 강한 확신을 내비쳤다.
-그래. 그래야 내 조카지. 흐흐. 그거 재밌구먼.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의 클래식.
체스터는 자기 혼자 잠시 웃더니,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식은 괜찮아? 여기서 삼겹살은 종종 먹고 있는데 말이야.
체스터의 물음에 테일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여기 와서 거의 5킬로 쪘어요. 제가 삼촌 입맛에 맞는 걸로 싸악 준비해둘게요.”
-그래, 그게 전화한 내용 중 제일 중요한 거였어. 흐흐. 그럼 조만간 보자고.
“예. 삼촌. 아, 근데 저랑 삼촌 관계, 경 감독한테 이젠 말해도 되겠죠?”
테일러의 물음에 체스터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네 능력도 제대로 보여줬으니까. 상관없겠지.
“네. 그럼 곧 봬요.”
-그러자꾸나.
툭-.
테일러는 전화를 끊고, 다시 TV에 집중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영화관을 보여주는 뉴스.
계속해서 반복해주는 장면에 테일러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