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38)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38화(138/276)
다음날
성현 제작사
이정호 회장의 제안을 우리는 생각을 길게 할 필요도 없었다.
준성이는 아버지에게 드디어 제대로 하나의 사업체를 일군 대표로 인정받은 것이었고, 나는 미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거였으니까.
“회장님한테 말씀드렸냐?”
내 물음에 준성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응?”
“쯧쯧. 아직 한참 멀었군요. 경찬현 씨.”
준성이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까딱 움직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그의 입꼬리는 어제 한식당 앞에서 펑펑 울었던 걸 까먹었는지 잔뜩 실룩거리고 있었다.
“어제 집에 가서 좀 더 생각을 해봤거든?”
“생각할 게 더 있어?”
“고럼.”
“뭔데?”
준성이는 발로 바닥을 한번 구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원래 제안받고 신나서 바로 받아들이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거. 협상의 기본원칙이거든. 이걸 깜빡할 뻔했어.”
“응? 아니. 뭐 더 받을 게 있으면 질질 끄는 것도 말이 되는데. 뭐 더 받을 게 있어?”
“그건 모르지. 인마.”
준성이는 피식 웃으며 내 앞에 있던 물잔을 비우며 말했다.
“아버지 얼굴 기억나냐? 그 표정?”
“어. 평소랑 같았잖아?”
“에이. 다르지. 우리한테 제안할 때 표정 말이야. 흐흐…….”
어제 울었던 건 따윈 완전히 기억에 잊은 게 맞다
그게 아닌 이상 저딴 음흉한 표정 따위는 지을 수 없을 테니까.
“여태까지 우리가 어, 아버지 때문에 피 말린 게 한두 번이냐?”
“응?”
“아니. 영화 처음 시작할 때 피 안 말렸어?”
“뭐…… 긴장 정도 했지. 근데 그걸로 복수라도 하겠다고?”
“응.”
준성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친놈이? 뭐가 이리 당당해? 첫 번째 이유는 그냥 두 번째 이유를 위한 핑계지?”
퍽-!
“흐흐…….”
나는 옆에서 뒤통수를 맞아도 실실거리는 준성이를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 영화 처음 시작할 때. 어? 20살에 가출한 나를 생각해 보라니깐.”
“벌써 10년 전 일이잖아?”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 몰라?”
이런 불속성 효자 같으니.
하지만 이정호 회장이 제안을 무를 리는 없었다.
시간은 충분히 준다고 했으니, 바로 다음 날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뭐라 할 사람도 아니고…….
일종의 부자 관계 밀당이라고 봐야 하나?
“알아서 해. 대신 회장님이 제안 무른다고 하시면, 널 묻어버릴 거야.”
“에이. 그럴 일 없지. 시간 준댔잖아. ”
“그럴 일 생기면 묻힐 준비나 하라고.”
“야박한 놈…….”
“뭐래. 밴댕이 소갈딱지가.”
준성이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똑똑-.
“네.”
“사이언 프라임, 양진겸 대표님 도착하셨답니다.”
“아, 예! 미팅룸으로 모셔주세요. 저희도 바로 갈 테니.”
오늘 찾아오기로 한 양진겸 대표.
감사 인사를 전할 겸 다른 이야기할 것도 있다며 찾아왔다.
미팅룸에 들어가자 양진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 감독님. 이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보다 나이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허리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나와 준성이도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휴, 안녕하다 말고요. 요즘 <스페이스 베가본드> 덕분에 살맛 납니다. 공장이 쉴 날이 없어요. 하하! 이게 다 두 분 덕분입니다.”
양진겸 대표는 나와 준성이를 번갈아 보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일단 앉으셔서 얘기하시죠. 대표님.”
준성이의 비즈니스 모드.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간결한 미소.
방금 사무실에서 보였던 음흉함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입을 꾹 닫았다.
“아, 예. 그러시죠. 하하.”
양진겸 대표는 싱글벙글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준성이의 의견에 따라 여름 방학에 맞춰 개봉한 <스페이스 베가본드>.
그건 확실히 큰 도움이 됐다.
가족 단위로 관람한 탓에,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손에 장난감을 사줄 수밖에 없는 환경.
그 환경을 제대로 노린 준성이의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진짜 대박입니다. 개봉 타이밍부터 너무 완벽했어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사이언 프라임에서 좋은 품질로 만들어주신 덕분인걸요.”
준성이와 양진겸 대표는 서로 듣기 좋은 말을 몇 번을 주고 받은 후에야 칭찬 릴레이가 끝이 났다.
그리곤 옆에서 멍하게 있는 나를 보며 양진겸 대표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게 다. 경 감독님의 완벽한 프레젠테이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덕분에 저도 이제 허리 좀 쫙 펴고 삽니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근데…….”
“예?”
“지금 수요를 감당하기 좀 힘든 상황일까요?”
***
양진겸은 갑작스러운 경찬현의 질문에 눈을 껌뻑였다.
혹여나 일종의 시험인가 싶어,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 뭐, 지금 있는 공장 정도면 충분히…….”
“다름이 아니라. 몇 주 정도 지나면 미국 쪽에도 개봉할 것 같거든요.”
미국이라는 말에 양진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미, 미국이요?”
“예.”
양진겸은 경찬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미국이라면…… 미디어 믹스의 성지.
미디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월트’, 그리고 ‘모블’, ‘AC’ 등 수많은 만화 회사들을 기반으로 한 장난감.
이런 대기업들의 점유율을 뚫을 수 있는 건 그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믹스 상품들.
근데 그런 거대한 장벽을 <스페이스 베가본드>가 뚫을 수 있을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아마도 일본, 어쩌면 피규어의 퀄리티에 따라 미국까지.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경찬현이 프레젠테이션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지만, 분명 이걸 처음 들었을 땐 단순히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미국이라는 단어를 꺼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건지 경찬현의 눈에서 확신이 보였다.
“양 대표님. 더 크게 보셔야 할 겁니다.”
“…….”
“여태까지 이런 영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뇨…….”
결과만 보아도,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초 흥행 블록버스터라는 이름값부터 시작해서 한국 영화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흥행한 최초의 영화.
양진겸 역시 개봉 직후 <스페이스 베가본드>를 관람했다.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럼 이게 왜 미국에서 안 먹힐 거라 보시는 거죠?”
“아,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게…… 하…….”
깊은 한숨. 하지만 그 한숨 직후.
갑작스럽게 다신 느끼고 싶지 않던 감정이 양진겸을 덮쳤다.
분명 <스페이스 베가본드>에 투자하고 그 사업에 뛰어든 건 도전정신.
하지만 지금 돈을 꽤 벌고 있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도전정신이 사라지기라도 한 건지.
몇 주 전과 확연히 달라진 자기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하…….”
갑자기 웃는 양진겸을 보며, 이준성과 경찬현은 당황한 듯 서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양진겸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 말씀대로 해보죠. 생산라인을 더 늘려보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경찬현은 해맑은 웃음에 화답하듯 미소를 지었고, 이준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되물음과 동시에 이준성은 비즈니스맨 컨셉이 깨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양진겸에게 사과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헛나갔네요.”
“아, 아닙니다. 이 대표님. 방금 경찬현 감독님 이야길 들으니.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아서 말이죠.”
경찬현은 손을 가로젓기 위해 손을 들며 말하려던 찰나, 양진겸은 허리를 숙여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스페이스 베가본드>에 투자했던 이유가 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저희도 감사합니다.”
경찬현과 이준성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허리를 숙였다.
***
몇 주 후.
경찬현의 아버지 경재수는 신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신문 헤드라인은 <스페이스 베가본드>의 일일 관객을 나열해놓은 표와 함께 <스페이스 베가본드>가 스크린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렸다.
[경찬현 감독의 <스페이스 베가본드> 한 달 반간의 대장정.]-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모두 갈아 치운 영화 <스페이스 베가본드>(경찬현 감독*성현제작사)가 상영 81일 만에 약 1100만의 관객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또한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대한민국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서…… 1,240억 원의 국내 생산액 유발 등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였으며…….
경찬현 감독의 말처럼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클래식으로 남을 법한 영화로 평가받고…….
“햐…….”
경재수는 경찬현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보며 감탄했다.
‘이게 진짜 내 아들에 대한 기사라고?’
경찬현이 아들이라는 걸 안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무슨 책 읽히셨어요? 태교는?
-아드님처럼 키우려면, 창의력 학원 다녀야 하나요? 혹시 IQ가 어떻게 되는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같았다.
‘바빠서 많이 못 놀아줬습니다. 하하…… 알아서 잘 크던데요.’
이런 대답을 듣고,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돌아갔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쯤은 알려줄 수 있지 않냐며 따지는 몰상식한 인간도 있었다.
“참…….”
하지만 경찬현은 말 그대로 알아서 잘 컸다.
물론 예민한 면은 있었지만, 예술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는 예민해야 한다는 생각에 별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예민함이 사라지고 나서부터 오히려 경찬현의 천재성은 폭발했으니.
‘예술 한다고 성격 지랄 맞은 거 합리화하면 안 돼요.’
나중에 누군가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재수는 신문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실실 웃었다.
“아버지. 진지 잡수셨어요? 엄마는요?”
“나도 아직이다. 엄마 오늘 친구들이랑 여행 갔잖니.”
<스페이스 베가본드> 준비할 땐 거의 1년을 집에 안 들어오다가, 촬영이 끝나자마자 집에 너무하다시피 붙어있는 경찬현.
“오늘도 약속 없니?”
“하암~. 네.”
입이 찢어질 듯 하품하는 아들의 모습에 경재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줘도 아들은 결국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자그마했던 아들이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올해 서른하나지?”
“네?”
경찬현은 못 들은 척하며 되묻곤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냈다.
“네 나이 말이야.”
“스무 살 이후로 세본 적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그럼 나랑 동갑이네?”
예상치 못한 농담인 듯 경찬현은 물을 마시다 내뿜으며 연거푸 기침했다.
“케헥. 어으, 갑자기 훅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하하.”
아들의 반응에 경재수는 신나 미소를 지으며 경찬현을 바라봤다.
“근데 갑자기 나이는 왜요?”
“왜요는 무슨. 일본 담요가 왜요고.”
“에이. 그건 너무 진부한데요.”
“쯧. 됐어. 인마.”
경찬현은 피식 웃고는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거대한 솥단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버지. 이거 다 카레에요……?”
“응.”
“이러다 인도인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엄마한테 말해줘? 카레 싫다고?”
“에이. 그건 아니고요.”
경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찬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앉아있어라. 직접 천만 감독 밥 차려 줄 테니.”
“에이, 밥 차려도 제가 차려야죠. 근데…….”
경찬현의 똘망똘망한 눈빛에 경재수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의심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뭐.”
“간만에 부자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위해 배에 기름칠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외식하자는 말을 그렇게 거창하게 해?”
“에이, 아버지~.”
여행 다녀온 여사님께서 이 소식을 아신다면 등짝에 불이야 나겠지만.
아들의 거창한 이유에 경재수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그럴까?”
“제가 살게요! 얼른 출발하시죠!”
경찬현은 신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씻어. 그럼.”
“에이, 그냥 모자나 쓰고 나가면 되죠.”
“누가 알아보면 어쩌게?”
“제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하하. 그냥 얼른 가시죠!”
밖으로 나가며, 경찬현이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나 물었다.
“북미 쪽에도 배급 알아본다고 했지, 아마?”
“네. 왜용?”
경찬현은 전에 경재수가 했던 ‘노래자’ 이야기를 의식했는지 이상한 발음으로 되물었다.
“그것 좀 하지 말라니깐.”
“에잉…….”
“어휴…….”
경재수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경찬현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체스터라는 좋은 분이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인복도 좋네.”
경재수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건지, 대체 목적이 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찬현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