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39)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39화(139/276)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체스터가 올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영화의 흥행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몇 번이나 열렸다. 그리고 다시 일해야 할 시간.
비록 한국에서는 상영이 끝났지만, 미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얼굴이 더 폈는데? 자네는 점점 젊어지는 거 같아.”
미팅룸에서 체스터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짐을 덜어서 그렇죠.”
“하, 짐이라는 게 있긴 했나? 내가 말했잖아. 이건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그래도 직접 경험하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하하.”
체스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미소 지은 후, 두꺼운 종이를 건넸다.
“미국 배급사 리스트야. 무슨 배급사가 어떤 영화에 강점이 있는지, 그런 정보들을 모아놨지. 당연히 5대 배급사를 생각 중이겠지?”
“하하……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할리우드 5대 배급사.
물론 이야기만 들어도 짜릿했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을 테니…….
“거기까지. 좋은 것에서 끝내. 뭐 더 생각하지 말고.”
체스터는 검지를 내보이며 내 말을 막았다.
“성현 제작사에서 머리 좀 잘 돌아가는 친구들로 붙여줘.”
“네?”
“내가 말했잖아. 책임진다고.”
“그럼……”
체스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공짜 아니라고 말했어. 좋은 영화들 그거면 돼.”
“…….”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 직접 배급사와 계약 체결까지 해주겠다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체스터가 히죽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노는 게 좀 질려서 말이야. 간만에 일도 좀 하고 그런 거지.”
“가, 감사합니다…… 체스터 씨.”
“고마우면 때깔 좋은 영화나 만들어. 미국 극장 개봉은 꼭 성공시켜줄 테니.”
체스터의 말대로 미국 극장 개봉이 성공한다면,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영화계가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
체스터는 성현 제작사 직원들 몇몇과 함께 <스페이스 베가본드> 필름을 들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목적은 할리우드 5대 배급사를 설득하는 것.
분명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미국에서도 통할 거란 생각에 체스터의 추진력으로 진행된 일이었다.
몇 주간 준비는 꽤 즐거웠다.
체스터는 마치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잠까지 줄여가며 성현 제작사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찾은 배급사 ‘에베레스트 픽처스’의 미팅룸에서 성현 제작사 직원들은 긴장했는지 숨을 골랐다.
“잘 될 테니. 걱정들 하지 마. 킴. 특히 자네. 열심히 했잖나? 흐흐.”
체스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성현 제작사 직원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체스터 역시도 긴장되긴 마찬가지.
아직 한국 영화가 미국 극장에서 상영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미국 본토에서 극장 상영되는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아니, 넘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벽의 크기가 제대로 가늠이 되질 않은 탓인지.
체스터는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그렇겠죠? 하하…….”
“체스터 씨만 믿습니다. 하하!”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체스터는 억지 미소를 보였다.
그러던 때. 에베레스트 픽처스의 협상팀이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다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정말 좋던데. 그죠? 이런 날에 일이라니…….”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에베레스트 픽처스의 배급 부서장 올리비아 스톤.
금발 머리에 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체스터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날씨도 좋은데 얼른 퇴근들 하고 어디 좋은 데서 맥주나 한잔들 하러 가셔야지요.”
“그건 당신이 뭘 가져왔는지 봐야겠죠. 체스터 씨.”
차갑게 미팅룸을 울리는 올리비아의 말.
그 말에 체스터는 앞에 있던 냉수를 한번 들이켰다.
‘쉽진 않겠군.’
올리비아의 입가에 보이는 냉소에 체스터는 직감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베가본드>라고 했던가요?”
“네.”
“풉…….”
올리비아의 웃음에 성현 제작사는 어리둥절해했고, 체스터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아, 죄송해요. 흠…… 체스터 씨. 이 영화와 관련된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거든요. 물어봐도 될까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그 질문에 체스터는 올리비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뭐든지.”
“갑자기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죠?”
“…….”
“한국에 있는 영화 배급 계약을 위해 직접 체스터 씨가 움직인다는 거. 예전의 당신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잖아요. 이거 돈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하하.”
“그만큼 이 영화가 잘 될 걸 아니까 이러는 겁니다.”
“감 다 떨어지셨나 봐요?”
올리비아의 냉소는 더욱 짙어졌다,
체스터는 주먹을 꽉 쥔 채 비아냥을 참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한국의 영화라는 게 제일 중요해요. 여태까지 한국 영화를 미국에서 극장 개봉한 적이 있었나요?”
“그래도 이 영화는 다릅니다.”
체스터의 대답에 올리비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 옆에 있던 협상단을 바라봤다. 그 협상단 인원들 역시도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 그녀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체스터를 향해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해요. 자기네들이 말하는 영화는 항상 특별하다, 뭔가 다르다. 하하. 이번에도 뻔한 레파토리네. 체스터 씨라고 해서 좀 기대했는데 말이죠.”
체스터는 올리비아의 비아냥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기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앞에 있는 탁자를 뒤집고 나갔을 테지만.
이 일은 경찬현 감독과 관련된 일.
그렇기에 체스터는 감정적으로 보이지 않으려 티 나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한국에서의 흥행실적은 봤어요. 1,100만. 네, 뭐 대단한 숫자긴 하지만. 그게 미국에서 이 영화가 먹힐 거란 지표가 되진 않아요.”
“하지만, 사람의 눈은 모두 같잖습니까. <스페이스 베가본드> 이 작품. 한국에서의 역대 최고의 흥행입니다. 1,100만이라는 숫자. 한국에서도 절대 쉬운 숫자 아니라고요.”
체스터 옆에 있던 성현 제작사 직원의 말에 올리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의 눈이 모두 같다고요? 하하. 참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이봐요들. 당신들이 영화 보는 수준하고, 내가 영화 보는 수준하고 같다고 생각해요?”
“네……?”
성현 제작사 직원은 예측하지 못한 답변에 눈만 껌뻑였다.
“나는 할리우드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에요. 당신과 영화 보는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고. 어딜 감히…….”
쾅-!
체스터는 참을 수 없는 듯 앞에 있던 책상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는 올리비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장난치나? 영화 보는 수준? 당신, 뭐라도 된다 생각하나? 내가 칸 영화제에 초청까지 힘쓴 작품의 감독이야. 당신이 그딴 말로…….”
체스터의 이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 올리비아는 체스터의 말을 끊어버렸다.
“특히나 그런 영화제는 의미가 없어요. 돈의 논리를 고려하지도 않는 곳에서 받은 상으로 할리우드에서 인정이라도 받으시려고요? 왜죠?”
올리비아는 체스터를 보며 냉소를 잊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 체스터 씨. 나이를 꽤 많이 잡수셔서 그런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감성적으로 바뀌셨대?”
“뭐?”
“투자회사 일선에선 나온 지 꽤 됐잖아요. 그리고 영화 평론 몇 년 하다가, 운 좋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한번 하니. 뭐라도 된 거 같죠? 그래 봤자, 당신은 그냥 일개 영화 평론가예요. 영화를 돈으로는 환산 못 하는 글쟁이라고요.”
올리비아의 목소리에선 일말의 여지조차 없었다.
단호하고, 묵직한 그녀의 말에 체스터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노려봤다.
“여기 할리우드예요. 체스터 씨. 그렇게 만만한 곳 아니라고요. 투자사 은퇴할 때도 감 떨어져서 은퇴한 거 아니었나? 근데 그런 사람이 들고 오는 한국 영화? 쯧. 말이 되는 소릴 해야죠.”
올리비아는 물을 한 모금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아시아권에서 흥행했다고, 할리우드에 먹힐 거란 단순한 생각이었다면. 그냥 집에서 쉬는 걸 추천해드리죠. 당신이 좋아하는 맥주나 한잔하면서?”
올리비아와 에베레스트 픽처스 직원들의 냉소에 체스터와 성현 제작사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에베레스트 픽처스 밖으로 나왔다.
성현 제작사 직원들은 처음 보는 체스터의 모습에 아무 말도 걸 수 없었다.
“젠장.”
체스터는 외마디 짧게 욕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체스터 씨. 하하, 다른 곳에선 <스페이스 베가본드> 가치를 알아봐 줄 거예요.”
“맞죠! 하하, 이 영화가 어떤 영환데…….”
“하하! 배급사가 여기 하나도 아니고! 잘 될 겁니다!”
억지로 분위기를 좀 풀려는 그들의 모습.
그들의 모습에 체스터도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 저 자식들이 눈알이 삔 게지. 다들 눈먼 벌레 자식들 상대하느라 고생들 했어. 하하…….”
***
며칠 후.
다른 배급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좀 힘들 것 같네요. 체스터 씨. 하하. 아무래도 동양인 감독에, 배우들 티켓파워도 그렇고요. 앤드루 사킬이 뭡니까……?
-저희 엿 먹이시려는 겁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벌써 치매라도 온 거 아니에요? 병원부터 좀 가보세요. 젊은 나이에 은퇴하시더니, 그동안 너무 노셨네.
-우주요? 참나. 아시아의 우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냉전 시대 때 진짜 우주 다녀온 미국에서도 안 건드리고 있는 소재를 잘 살렸겠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핑계로 <스페이스 베가본드>를 볼 생각조차 없었다.
한번 보고 판단해보면 어떻겠냐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굳이’라는 한 단어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는 연초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기분이 좋을 땐 고급 시가로 그 기분을 더 좋게 만들었지만, 기분이 더러울 땐 연초만 한 게 없었다.
고급스러운 맛보단 찝찝하고 싼 맛이 더러워진 기분을 더 잘 보듬어줬으니까.
‘이러면 차선책은 결국…….’
메이저 배급사가 아닌 미니 메이저나 중소 배급사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에 체스터는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젠장, 해놓은 말이 있는데…….’
경찬현에게 호언장담했던 게 생각났는지, 체스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현실적으로 한국 영화가 북미 지역에서 극장 개봉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
체스터도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베가본드>는 단순히 DVD 레이블에 판권이 팔릴 수준의 영화가 아니다.
이건 무조건 극장에 올려야 하는 영화.
하지만 지금 당장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봐 주질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코 높은 할리우드 5대 배급사들은 영화를 볼 생각조차 없으니…….
“체스터 씨!”
경찬현이 보낸 성현 제작사 직원 중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방금 경찬현 감독님이랑 통화했는데요.”
“어?”
체스터는 당황한 듯 직원을 쳐다봤다.
분명 자신의 실패에 대해 전해 들었을 거란 생각에 체스터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경 감독님이 꽤 재밌는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이게 저희 전략에 힌트가 될 거 같아서요.”
“응……?”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 방향에 체스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LA 한인 타운에 한국 영화 전용 영화관이 있지 않냐는 물어보시는 거예요?”
“뭐? 그딴 게 있을 리가…….”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삼겹살을 먹으러, 그리고 여러 한국 음식을 먹으러 그곳을 꽤 많이 돌아다녔지만 그런 영화관 따윈…….
“아……!?”
단번에 경찬현 이야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한인 교포들을 대상으로 팔리는 영화.
분명 한인 타운 근처 영화관이라면,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아 있을 테니.
굳이 당장 배급사를 찾지 않아도 당장 상영은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 주된 목적은 <스페이스 베가본드>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는 게 중요했으니까.
“하…… 참.”
체스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실거렸다.
왜 이런 간단한 걸 생각 못 했을까.
한국 영화니, 한국 교포들을 대상으로 먼저 보여주게 하고.
입소문만 좀 타게 된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텐데……?
“경 감독. 하하.”
이게 그가 자존심을 지켜주는 방식인가.
아무 의미 없는 헛소리를 하는 척하며, 이런 거대한 힌트를 주다니.
이런 것도 이렇게 티를 나게 하다니.
하지만 티를 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티를 내서 어이가 없는 듯 체스터는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러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빠르게 재떨이에 비빈 후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 그럼 지금 바로 움직이자고.”
***
같은 시각
얼굴이 시뻘게진 경찬현과 이준성.
이준성은 경찬현에게 실실거리며 물었다.
“없다고 그러지?”
“…….”
이준성의 물음에 경찬현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닫았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야 믿지. 미국에 한국 영화 전용 영화관? 정신 나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어. 이거 내기 네가 하자고 한 거다?”
“하, 그게…….”
“잘 먹겠습니다. 경 감독님~.”
이준성은 야무지게 구워진 삼겹살을 집고 파채와 함께 입에 넣었다.
“음~ 누가 사는 거라 그런가? 육질이 더 좋아진 거 같네~.”
“…….”
이준성은 더욱 얄밉게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던 중 경찬현에게 물었다.
“근데 내 핸드폰 어디 갔냐?”
“아, 여기.”
경찬현이 미소 지으며 건네준 핸드폰.
그의 웃음이 심상치 않았다.
“너 설마 국제전화를……?”
“그럼 내 거로 했겠냐?”
“이 정신 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