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57)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57화(157/276)
제타이스에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했지만, 막상 촬영을 앞둔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간 해외에서도 먹힐 만한 비주얼과 스토리 내용에 있어 고진훈과 수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음악 시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영화와는 느낌이 완전 달랐다.
특히나 어젯밤 내 머릿속 고정관념을 깨트린 고진훈의 한 마디.
‘해외 시장을 노리겠다고 미국식 감성을 넣는 건 별로일 거야. 미국식 감성을 커버한 한국 음악을 듣고 볼 바엔 차라리 그냥 미국 음악을 듣지 않을까?’
이 말은 꽤 큰 충격이었다.
제타이스의 음악 자체의 근간은 힙합.
하지만 고진훈은 제타이스의 음악이 미국의 거친 힙합과는 결이 다르기에 오히려 이게 미국에 통할 전략이 될 거라고 말을 덧붙였다.
“후…….”
결국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수 없는 망설임이 생겼다.
처음에 구상한 대로 뮤비를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이제라도 바꿔야 할지.
하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앞서 만들어놓았던 스토리를 갈아엎는 것.
내가 생각해둔 스토리는 결국 고진훈의 말처럼 미국식 감성을 자극하고자 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미국이라는 문화에 너무 얽매여 있었어.’
스토리를 갈아엎기로 결심하고 나자 여태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단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제타이스를 찾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익숙한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낯선 것을 배제하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서양은 조금 다르다.
낯선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동양에 비해는 훨씬 우호적이었다.
게다가 설사 ‘익숙함’을 무기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미국인들이 제타이스를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진 못한다.
익숙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여기저기 비슷한 대체재가 많다는 말이다.
눈에 띄지도 않고 다른 것들과 비슷한 걸 굳이 사람들이 나서서 찾을 이유가 있을까.
이쯤 되자 미국식으로 만들면 잘 될 거라고 혼자 착각했던 게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과거를 떠올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아이돌 역시 미국 시장을 타겟으로 한 전략은 영어로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뿐.
그들의 감성과 행동은 한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렇기에 스토리를 반드시 뒤엎어야 했다.
제타이스의 음악이 하는 이야기는 같았지만, 뮤직비디오 내용을 미국인들이 환호할 만한 것이 아닌, 한국의 감성이 들어간 형식으로.
“이제 36시간 남았나.”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6시간.
정확히는 35시간 30분.
이제 와서 스토리를 뒤엎는다고 하면 모두가 미친놈 취급하겠지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아올랐다.
3부작의 이야기는 이랬다.
꿈에서 만난 소년들. 그리고 그들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현실에서도 꿈을 이루는 소년들의 이야기.
김재헌의 음악에 따라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연출적인 면을 완전히 뒤엎어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진훈이 없었으면 돈은 돈대로 날리고 미국인들 따라 했다는 오명만 뒤집어쓸 뻔했으니…….’
아예 새롭게 진행된 연출.
촬영에도 그만한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완벽한 계획이어야 한다.
***
본 촬영 전날.
제타이스와의 협업으로 인해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쉴새 없이 뮤직비디오 제작 관련한 사람들을 만났다.
꽤 큰 자본이 투자된 덕분에 좋은 인력들만 구할 수 있었고, 확실히 그 돈은 그만한 가치를 만들어냈다.
CG로 해결하기 애매한 것들은 직접 소품을 제작했고, 그 촬영 소품들을 제작하는 동안 제타이스 멤버들은 댄스팀과 동선을 맞추고, 카메라 테스트까지 끝마쳤다.
“흐…….”
촬영 전날 번갯불에 콩 볶듯 만들어낸 스토리로 과연 어떤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질지.
과연 제타이스를 세상에 알릴 하나의 발판으로 사용할 수준으로 나올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만들어놓은 스토리보드를 다듬으며 화각도 여러 번 번복했다.
제타이스의 퍼포먼스를 한 번에 다이나믹하게 표현하기 위한 크레인 샷도 필수.
너무 영화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걸 수정하며, 뮤직비디오에 맞는 여러 샷을 만들어냈다.
“야, 카메라 테스트 보니까, 죽이긴 하더라. 표정에 무슨…… 살기가 있어. 전에 뮤직비디오 보면 무슨 하늘하늘한 어린 애들 같던데.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야.”
스토리보드를 매만지고 있던 사이, 준성이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엔 그런 느낌으로 가야 하니까. 뭐 눈에 걸리는 건 없었어?”
“응. 내 눈에 걸리는 건 이거밖에 없다. 아니, 왜 자꾸 필요한 돈이 더 느냐?”
준성이는 예산안이 적힌 종이를 흔들며 투덜거렸다.
“이왕 쓸 거 확실히 쓰자는 거지.”
“크레인은 또 뭐고? 영화 촬영할 때도 잘 안 쓰던걸…….”
“이번엔 필요해. 전체적인 각도에서 잡아줄 거거든.”
“결과물 보면 알겠지. 흠, 기대가 좀 되긴 하는데…….”
준성이는 손바닥을 비비며 나를 바라봤다.
“안시호, 이 친구 있잖아. 꽤 괜찮은 친구 같던데, 진훈이한테 물어봐서 배우로도 데뷔시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긴 게 완전 그냥 배우상 아니냐?”
“생긴 건 좋지만, 연기가 많이 부족해.”
안시호의 연기는 뮤직비디오 촬영하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지금 당장 장편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농후한 수준.
“그래도, 안시호 나온다고 하면 시청률도 꽤 괜찮게 나올 텐데. 배우 캐스팅도 몇 개 받은 거 같던데? 진훈이가 막았다고 하긴 하지만…….”
“진훈이가 잘한 거지.”
아이돌의 발연기에 대한 비난.
이 비난에 대해 어떤 한 배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돌이 되는 건, 아이돌로서 성공하는 건 뭐 쉽나. 그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뭘 해도 한다.]이 말을 시작으로 아이돌이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영화나 드라마에 꽂히는 실태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이 드라마에 꽂아야 해. 이거 하면 뜬다’라고 말하는 기획사를 탓해야 한다. 아이돌도 사람이다. 단지 원색적인 비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들에게 상처만 줄뿐.]고진훈도 이 말과 비슷한 취지로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철저한 완벽주의.
제타이스는 데뷔하고 나서부터 승승장구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고진훈의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었을지 모른다.
“너나 걔나 너무 깐깐해. 어휴. 돈을 벌 생각은 있는 건지…….”
준성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자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눈앞에 있는 것만 먹을 생각이면 그래도 되겠지만, 숨겨져 있는 것까지 모두 먹는 게 좋지 않겠냐?”
“숨겨져 있는 거……?”
준성이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안 보이면 됐고. 제타이스는 지금 활동에만 집중하게 하자고. 지금은 그게 핵심이야. 이 계획만 성공하면 뭐든 해도 될 테니까.”
“여하튼 내일 촬영이나 잘해라. 그냥 믿고 맡길 테니까.”
***
다음 날.
제타이스 멤버들은 아침 일찍부터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퍼포먼스를 위주로 촬영하는 날.
힘든 걸 얼른 끝내버리자는 경찬현 감독의 계획에 따른 일정이었다.
“와…….”
이전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규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제타이스 멤버들은 신기한 듯 주변을 돌아봤다.
준비된 다수의 카메라 그리고 제작진들과 댄서 팀만 있어도 바글바글한 촬영장.
“미쳤는데……?”
“뭐냐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대체 이 뮤직비디오에 몇 명이 붙은 거야……?”
제타이스는 보이는 제작진마다 허리 숙여 인사하며 지나갔고, 멀리서 소품을 확인하고 있는 경찬현이 보이자 재빨리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경찬현 감독님!”
재헌의 인사를 앞세우며 제타이스는 단체로 허리를 숙였다.
“어, 왔어요? 다들 잠은 잘 잤죠?”
“아, 예! 하하. 워낙 숙소가 좋아서…… 근데 스케일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재헌의 말에 경찬현은 밝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앞으로 더 크게 되실 분들인데요. 하하.”
“하하…….”
경찬현의 이야기에 재헌은 무대를 바라봤다.
거대한 세트장에 브로드웨이 극장이 연상되는 화려한 무대.
돈이 대체 얼마나 들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미국을 노린다는 경찬현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 신빙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준아. 괜찮지?”
잔뜩 긴장되어 보이는 하준의 모습에 시호가 말했다.
“어……? 응. 하하. 괜찮지…….”
“하준 씨! 잠시 대화 좀 가능할까요?”
갑작스러운 경찬현의 부름에 하준은 심호흡을 내뱉은 후 경찬현에게 다가갔다.
“네, 감독님.”
“하준 씨가 이 퍼포먼스에선 주인공이에요. 하준 씨가 클로즈업된 장면에서 잠시 독무를 맡고. 그게 점점 와이드샷으로 변환되면서 하준 씨와 댄서팀을 함께 담을 거예요.”
경찬현의 말에 하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선 특히 표정이 더 중요해요. 하준 씨 표정을 클로즈업하면서 점점 풀어줄 거니까요. 연습한 대로. 아시겠죠?”
“네. 감독님! 열심히 아, 아니. 잘해보겠습니다!”
“잘할 거예요. 믿고 있을게요.”
경찬현이 싱긋 웃으며 하준의 어깨를 두드리자, 하준은 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
뮤직비디오의 첫 촬영을 앞두고.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타이스 역시 분장을 마치고 댄스팀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동선을 맞췄다.
“후…….”
이번 촬영은 꿈속에서 안시호가 첫 동료 방하준을 만나는 이야기.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제타이스 멤버들이 신 모르페우스로부터 선물 받은 꿈에서 안시호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다.
제타이스 멤버들이 함께 꿈을 공유하며, 그 꿈속에서 만난 인연을 메피스토를 통해 현실로 만들어낸다는 컨셉.
꿈이라는 컨셉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소품들의 모양을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흘러내리는 시계도 배치해뒀다.
그런 소재를 통해 지금 보이는 게 꿈이라는 걸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만들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신화의 내용을 따오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이 연출되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흠…….”
다들 준비가 됐고, 이제 내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통해 한번 더 화각을 다시 확인한 후 내 신호에 따라 시작됐다.
방하준의 표정으로부터 시작되는 퍼포먼스.
준성이의 말대로 살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순수한 아이처럼 웃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채.
살기가 새어 나오는 그의 표정은 감탄이 나올 지경.
‘프로 아이돌은 확실히 프로 아이돌인가…….’
그리고 점차 시작되는 방하준의 독무.
제작진들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방하준의 춤을 잠시 감상했고, 이제 곧 시작되는 와이드숏에 나는 특수효과팀에게 무전기로 말을 전달했다.
“포그머신 작동시켜주세요.”
꿈같이 몽환적으로 보이기 위한 연출.
딱 알맞은 타이밍에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타이밍에 필요한 건 단체 군무를 더욱 돋보여줄 스트로보 라이트.
잔상효과를 통해 카메라 플래시 같은 빛을 연속적으로 켰다 껐다를 반복함으로 해서 물체가 끊어지게 보이는 착시현상.
완벽한 타이밍에 작동한 조명은 방하준과 댄스팀의 퍼포먼스를 더욱 빛내줬다.
그들의 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면서도 세련되게 만들었다.
“진짜 뭐지……?”
“하준이 뭐, 뭐냐…… 신들렸나 봐.”
“내가 말했지? 저거 엄살이라고. 저렇게 잘할 거면서…… 근데 오늘따라 더 미치긴 했는데?”
제타이스의 멤버들 말대로 모니터에 담긴 방하준의 퍼포먼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표현보단 최고라는 표현.
최고라는 표현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을지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퍼포먼스였다.
“이야…….”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노련한 움직임.
춤 선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건지. 와이드샷으로 잡아 주위에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댄서들과 함께 화면에 잡혀있었지만,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오는 건 방하준의 춤이었다.
“컷! 좋습니다!”
내 외침에 방하준은 얼굴에 살기가 빠지고 걱정스러워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 괜찮나요? 제가 실수를 좀 한 거 같은데…….”
“아냐. 하준아. 너 미쳤어. 와, 이게 그 뭐냐. 감독님 연출이랑 네 춤이랑 합쳐지니까…… 그냥 작품이야. 작품. 진짜로!”
“네. 호영 씨 말이 맞아요. 진짜 작품이에요. 한번 볼래요?”
모니터를 통해 자기 모습을 바라보던 호영은 눈을 껌뻑인 후 제타이스 멤버들과 나를 번갈아 봤다.
“대…… 대박이네요…….”
“이야, 하준이가 저런 말 하는 거 처음 같지 않아?”
“하하, 감독님. 죄송합니다. 하준이 식으로 최고로 좋다는 표현이 딱 저 수준이거든요.”
제타이스 멤버들은 아이들처럼 배시시 웃으며 방하준의 모습을 놀려댔고, 방하준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이런 식으로만 진행해보자고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3편의 뮤직비디오를 묶은 한편의 단편 영화.
그 시작이 제타이스에게 확신을 준 것만 같았다.
그들의 표정은 첫 만남 때보다 훨씬 밝아진 상태.
그들의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자신감들이 좀 생긴 거 같네요?”
내 물음에 제타이스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독님…… 이런 식으로 보여줄 장면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김재헌은 눈을 밝히며 나를 바라봤다.
“진짜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진짜 영화 같습니다.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