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6)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6화(16/276)
“오셨어요?”
준성이 웃으며 묻자, 이정우는 약간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소인배라고 했던 게 잊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네. 빈손으로 오긴 좀 그래서 뭘 좀 사왔습니다.”
“어우, 승훈 씨도 뭐 사 왔던데. 역시 통하는 게 있나 봐요? 배우끼리.”
준성이의 넉살에 이정우는 준성이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고, 김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이정우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김승훈입니다.”
“네…… 이정우입니다.”
둘이 악수만 해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였다.
준성이의 말대로 종족이 다른 존재 같았다.
“앉으시죠. 음식 준비 다 됐습니다.”
“네.”
이정우는 어색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전에 무례했던 건 죄송합니다. 저랑 경 감독이 이정우 씨를 꼭 이런 자리에서 뵙고 싶어 가지고요.”
“아, 네. 괜찮습니다.”
이정우는 전혀 괜찮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뭐 일단 한잔 마시고 얘기 나눌까요? 아니면 일단 얘기 나누다가 한잔?”
준성이의 말에, 내가 외쳤다.
“그걸 말이라도 하나! 이 사람아!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있나!”
“역! 시! 경 감독! 나랑 통하는 게 있어!”
나와 준성이의 즉석 꽁트에 김승훈은 끅끅대며 웃었고, 이정우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잔 받으시고~.”
“술도 받으시지요~.”
나와 준성이는 어떻게든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이정우는 전과 같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자, 짠!”
그렇게 우린 열성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몇 잔을 연속으로 먹었는지, 제육은 금세 바닥을 보였고 소주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정우는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우. 소주가 이제 없나?”
나는 소주를 찾았지만, 없는 척했다. 이건 계획의 신호탄이었다.
“아이고, 소주를! 더 사와야겠네!”
준성이가 내 대사를 받았고, 우린 천천히 겉옷을 챙겼다.
“저희 과자랑 소주 좀 더 사올 테니까. 두 분 뭐 천천히 얘기 나누시던가, 하세요! 금방 와요. 한 10분?”
“두 분이 같이 간다고요?”
이정우는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가 얼굴 시뻘게져서 술 사러 갔다는 소문이 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저희끼리 갔다 오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건 그런데…… 한 분만 가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술 몇 병을 더 사 올 건데 혼자 가요? 그거 노동 착취에요!”
준성이는 취한 척하며 눈깔을 뒤집으며 소리쳤다.
“그래도…….”
이정우는 꽤 곤란스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제가 잠시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정우 씨 불편하시면.”
“네?”
이정우는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고, 김승훈은 우리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두 분 다녀오세요. 술 끊기는 시간이 길면 안 되잖아요?”
“역시! 김승훈 씨! 대배우의 자질이 있으십니다!”
준성이가 말하며 외투를 챙겼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두 분 하실 이야기도 많으실 거 같은데,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세요. 저희 금방 올게요.”
김승훈은 내 신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정우는 당황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빨리 사 와야지.”
준성이가 내 팔을 잡고 끌고 밖으로 나갔다.
“괜찮을 거 같냐? 이렇게 억지로 분위기 띄우는 것도 1학년 이후로 처음이야.”
“지금이 딱 타이밍이야. 둘이 따로 대화 나누는 거지. 묵은 감정도 풀고.”
우리는 오들오들 떨며 조금 더 멀리 있는 편의점을 향해 갔다.
이제 김승훈, 이정우 이 둘에게 달려있다.
***
찬현과 준성이 밖으로 나간 뒤, 이정우와 김승훈 사이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저는 일단 뭐, 경 감독님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아…… 아닙니다. 여기 계세요.”
이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김승훈이 자리에 앉고, 다시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몇 분 정도 지나자, 김승훈이 한숨을 쉬었다.
“뭐 이리 안 오시지…….”
김승훈은 찬현이 말한 대로 주위를 서성거렸고, 소주 몇 병이 남아있는 걸 찾았다.
“어? 경 감독님이 이걸 못 봤나 봐요!”
“그러게요.”
“저희끼리 먼저 마시고 있을까요? 제가 도중에 끊기는 건 못 참아서. 하하.”
“그러시죠.”
김승훈과 이정우는 말없이 소주를 들이키다, 적당히 다시 취기가 오를 때쯤 김승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합니더. 정우 씨.”
김승훈은 취한 듯 사투리가 더 심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네……?”
“지 소속사가 한 짓 말입니더, 그…… 하…… 더러븐 짓 하지 않았슴꺼?”
“아, 그 기사들 말씀이신 거죠?”
“소속사 놈들이 그딴 짓을 해글어쌌는디, 하. 지가 후지 박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우 씨도 알지요? 배우가 무슨 힘이 있습니꺼? 소속사가 까라면 까야지.”
이정우는 술병을 들고 김승훈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그런 뒤 잔을 부딪치며 술을 다시 들이켰다.
“그렇죠. 뭐…… 그 새끼들은 저희를 상품으로만 보니까요. 저도 죄송합니다…… 소속사가 그런 기사를 낸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더라고요.”
이정우가 전과 달리 살짝 웃으며 대답하자, 김승훈도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니까예. 내 남사시러워가 정우 씨 얼굴도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시상식에서 무시한 건 미안합니더.”
“뭐, 지난 일인데요. 저도 뭐 사과할 거야 많죠…….”
“진짜 하답답어서 뭘 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아닙니꺼? 매니저도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말하질 않나. 뭐 하려고 하면 계약 위반이다 뭐다, 이 지럴을 해쌌고.”
김승훈은 정말 억울했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고인 상태로 말했다.
그러자 이정우는 다시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저도 승훈 씨처럼 소속사가 마음에 안 들어요. 일부러 방송에서 가면 쓰고 다니는 느낌이라니까요?”
“정우 씨도요? 나도 그런데. 친구들 만나면 뭐, 방송에서 왜 이리 말이 읎냐고 갈궈 댄다니까?”
“저도요! 아니, 사석에서는 말도 없는 새끼가 뭐 방송에만 나가면 웃고 있으니까 이상하다고. 가족들도 뭐라고 한다니깐요? 왜 방송에 나올 때보다 가족이랑 더 어색하냐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도 이런 얘기할 동료들이 없어서…… 여태 몰랐네요.”
김승훈은 살며시 미소를 띠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73년 소띠 맞죠?”
“네. 아, 승훈 씨도 73이죠?”
“동갑인데, 친구나 할까예? 저도 뭐 영화판엔 친구가 많이 없어서…… 뭐 불편하면 안 하셔도 되긴 하는데…….”
김승훈은 자기가 말해놓고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어댔다.
“아, 뭐. 친구 하자. 뭐. 별 거 있냐? 이제 뭐 오해도 풀렸고.”
“그래. 새꺄! 어! 지럴은 소속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뭐, 우리끼리 친하게 지내면 되지 않겠나! 우리만 정신 단디 챙기믄 되는 기라!”
***
나와 준성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이제 슬슬 들어가도 되지 않겠냐? 추워 뒈지겠어.”
“얼마 정도 지났지?”
“1시간?”
“좀 애매한데. 한 5분만 더?”
“나 추워서 발음도 잘 안 나와. 열쇠 있지?”
우리는 소주와 과자가 담긴 봉지를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얼큰하게 취한 남자 두 명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술이 있었네? 아니, 주변에 편의점이 없어서 멀리 돌아서 왔는데.”
“아으, 경 감독님. 한잔 더 하셔야죠!”
이정우의 상태가 이상하다. 아까 그 무표정한 이정우 어디 갔어…….
왜 무섭게 실실 웃고 있는 거야.
“어우, 근데 뭐 짧은 시간에 엄청 드셨네들.”
준성이가 말하며, 김승훈과 이정우 앞에 있는 술병들을 치웠다.
아마 작전용으로 남겨뒀던 술들을 모두 마셔버린 것 같았다.
“프로듀서님. 아으, 앉아요. 술 더 사 왔어요?”
“아, 네. 과자도 사 왔죠.”
“아, 좋아 좋아! 더 달려! 아 맞다.”
이정우는 풀린 눈으로 나와 준성이를 보며 말했다.
“아, 저 이제 승훈이랑 친굽니다. 여러분. 모두 짠!”
준성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급히 술을 까서 따랐다.
“정우 내 친구! 짠 하자!”
“그래! 달려!”
“술도 마이 묵었으면 친구제?”
“아이구, 그렇죠. 하하. 그럼 저도?”
준성이가 묻자, 김승훈도 풀린 눈으로 준성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몇 살 입니꺼?”
“스물 일곱입니다.”
“그럼 애네. 애야. 어? 꼬맹이가 어딜 겸상을 해!”
김승훈의 농담에 이정우는 크게 웃으며 다시 잔을 부딪쳤다.
이 사람들. 술 괴물이었다.
둘이 친해진 이유는 둘이 대화를 진득하게 나눠서가 아니라, 서로 주량이 잘 맞아서였던 건가…….
나와 준성이는 그 배우들보다 술을 덜 먹었지만, 그들보다 빠르게 술자리에서 벗어나 방으로 도망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기분으로 먹었지만,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저들은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
다음 날.
눈을 떴다.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찢어질 것 같고. 속은 부글거렸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위장이 쏠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문을 열자, 무언가에 걸려 열리지 않았다.
“아오, 뭐야.”
문을 확 제껴 버리자, 비명이 들렸다.
“끄악!”
준성이었다.
준성이도 맛이 갔다. 내 방문 앞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끄어어…… 찬현아…… 나 지금 살아있냐? 나 안 죽었지? 안 죽었다고 해줘어…….”
“일어나, 미친놈아.”
나는 몸을 힘겹게 기울이며 준성이를 일으켰다.
준성이는 힘겹게 일어나, 거실에 있는 소파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소파는 이미 김승훈, 이정우 차지였다.
이들은 우리가 도망간 후에도 더 마셨는지 술병이 여러 병 더 있었다.
“야…… 이거 뭐야? 어제 이것도 마셨어……?”
준성이는 힘겹게 식탁에 앉아, 위에 있는 술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캡틴 큐.
마시면 안주로 자기 손가락을 먹어도 모른다는 전설의 술.
저런 걸 마셨으니 상태가 이러지…….
아직 돈이 없는 배우라 그런지 싸게 취하고 싶었던 건가…….
그렇다고 선물로 저런 암살 무기를 가져오다니. 어떤 정신 나간 놈이지.
끼릭.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벌써 오셨다고 말하기엔 시간이 벌써 저녁이다. 몇 시간을 뻗어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허메, 이게 무슨 냄새야?”
엄마의 목소리다.
현관을 지나 엄마와 아버지를 마주쳤고, 엄마는 집안 꼴을 보며 소리쳤다.
“이놈이? 아니, 영화 얘기한다며! 이놈아! 이게 술병이 몇 개야? 아이고, 미쳤어. 미쳤어.”
아버지도 이 상황은 감당이 안 되는 듯 먼 곳을 바라보셨다.
“아…… 엄마. 지금 저기…… 배우들도 있어요.”
봉 여사는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말에 순식간에 온화한 표정으로 바뀐 채 주위를 돌아보셨다.
그리고 소파 위에 방치된 상태로 누워있는 배우들을 봤다.
“어머 어머, 저분들 혹시? 이정우? 그리고 김승훈이야?”
“네.”
“그럼 엄마가 빨리 해장국 끓여줄게. 방에 들어가서 편히 주무시라 그래. 웬일이니. 이게?”
“준성아…… 움직여.”
“그…… 래애…….”
준성이는 나와 함께 힘겹게 한 명씩 옮겼다.
“내가…… 이 인간들이랑 두 번 다시 술 마시나 봐. 그러면 사람도 아니다…….”
“인간이 아닌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