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60)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60화(160/276)
몇 주가 지나고, 제타이스 뮤직비디오 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조만간 좋은 소식 들고 올게.’
진훈이는 이 말과 함께 제타이스의 컴백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큰일 하나 끝났다는 생각에 후련한 마음이었다.
“이제 확실히 다 끝난 거지?”
옆에 있던 준성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훈이한테 맡길 일이지. 내 손은 떠났어.”
“그럼 이제 차기작 준비나 들어가자고. 생각해둔 건 있냐?”
“할 거야 많지. 일단 서스펜스 가득한 스릴러 영화로 해보려고.”
“스릴러?”
준성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감독의 연출 역량을 보여주기 가장 좋은 장르니까.”
연출에 따라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서스펜스의 수준이 갈리는 장르.
동시에 제작사에게 능력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들이 선택하는 가장 효율적인 장르였다.
“흠…… 근데 스릴러도 뭐 많잖아. 범죄, 법정, 뭐. 어떤 거로 갈 건데?”
“범죄가 제일 무난하지.”
내 대답에 준성이는 신난 듯 말을 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싸이코 살인마 영화는 어때? 미국 애들이 그런 거에 환장하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런 장르에 네 연출만 섞이면야…….”
“…….”
원래라면 코엔 형제의 연출로 만들어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그 영화는 듣도 보도 못한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고, 깊이감도 없이 그저 안톤 쉬거라는 싸이코 패스 살인마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영화였다.
싸구려 슬래셔 영화 같은 연출.
잔인한 걸 보여주겠다는 식의 끔찍한 연출이 생각나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런 거 말고.”
“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럭저럭 재밌게 보긴 했는데.”
“그 소설을 영화화할 거면 킬링 타임이 아니라 명작을 만들었어야지.”
“……?”
준성이는 눈을 껌뻑이다 이내 고개를 젓곤 말했다.
“여하튼 각본 작업이나 끝내면 말해. 할리우드 데뷔작인 만큼 확실히 이름값 있는 배우들로 붙여줄 테니까. 뭐, 누구 데려와 줄까? 이름만 대 봐. 어?”
“흠, 로버트 펜?”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말에 준성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로버트 펜이라고……?”
“아?”
준성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약쟁이는 절대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약뿐만이 문제가 아냐, 워낙 사고뭉치로 유명한 인간이잖아. 근데 그 배우를…….”
로버트 펜이라면 준성이가 먼저 두손 두발 들고 환영할 줄 알았다.
내 기억 속에 몸값 비싼 배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 중 한 명이자, 한때 우상이었던 로버트 펜.
하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2020년대와는 크게 달랐다.
“아, 맞네…….”
“맞긴 뭐가 맞아. 야, 로버트 펜 쓰려면 보험료도 훨씬 많이 나올 거라고. 너도 그리고 전에 같이 얘기했잖냐. 약쟁이는 쓰지 말자고. 어? 할리우드 들어온 순간부터 약쟁이들이랑은 말도 섞지 말자고 해놓고…….”
준성이는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열변을 토했지만 준성이의 말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응.”
“너 듣고 있냐? 어?”
“응.”
준성이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너 안 들었지?”
“응?”
“어휴, 이 새끼 또 안 들었네. 여하튼 로버트 펜은 절대 아냐. 절대!”
“그래도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준성이는 내 말에 의자에 풀썩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답답한 듯 물을 한 잔 들이켠 후 말했다.
“마약 끊는 게 가능한 거 같냐? 개가 똥을 끊지. 담배 끊는 거랑은 수준이 다른 거라고.”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마약은 한 번만 해도 인생 종 친다는 말이 있다.
담배의 금단현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약의 금단현상.
차라리 죽고 싶어 한다는 마약 중독자들의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다.
“너나 나나 지금 담배 끊은 지 꽤 됐지만, 마약은 애초에 그런 게 불가능해.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트레일러 들어가서 마약 하는 배우들 있다잖냐. 그런 놈들이랑 일하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냐?”
평소에 나 역시도 ‘사람 고쳐서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 펜은 이 말의 예외가 되는 완벽한 사례였다.
하지만 이걸 알 턱이 없는 준성이는 더욱 깊게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알겠어. 인마. 인상 펴라. 그러다 뭐 주먹이라도 날아오겠다.”
“날아가기 직전이야.”
“무서운 놈…….”
“무섭긴. 난 로버트 펜 캐스팅했을 때 나올 보험료가 더 무서워.”
“네가 먼저 이름만 대보라며…….”
준성이는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말했다.
“네 주둥아리에서 배우가 아니라 약쟁이가 나올 줄 알았겠냐!?”
***
그날 밤.
경찬현은 노트에 ‘로버트 펜’이라는 이름을 적어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동시에 끔찍했던 과거도 다시 생각났다.
“흠…….”
이준성의 물음에 단번에 떠오른 그의 이름.
로버트 펜이라는 이름은 경찬현에겐 과거를 곱씹게 해줄 만한 배우였다.
그만큼 그의 인생도 기구했기에, 특히나 경찬현에겐 꽤 큰 의미가 있는 배우였다.
‘아이고, 아직도 영화판에서 머리 들이밀고 있는 거냐?’
‘누가 널 써주긴 해?’
‘포기해. 등신아. 이제 나이 먹어가는데 아직도 뭐 하는 거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촬영장을 배회하던 것도 수년.
어차피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생활비를 버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기회를 얻어보기 위해 감독들에게 아부하며 밑바닥 생활부터 다시 해도, 그저 일회용품으로 사용되고 버려졌던 경험.
이런 것들에 지쳐 영화판에서 아예 떠나려고 할 때.
망나니 마약쟁이로 유명했던 로버트 펜이 복귀했다.
원래 그의 이름값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소한 조연.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 그는 천천히 배우로서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술과 마약을 완전히 끊은 그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완벽했다.
애초에 20대의 나이에 80대의 찰리 채플린의 역할까지 맡았던 배우였으니까.
그리고 이듬해.
그의 몸값이 20배 이상 치솟게 되는 영화가 개봉했다.
‘아이언 가이.’
이 영화로 그의 인생은 다시 황금기를 맞았고, 그의 모습에 경찬현은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라며 영화를 손에서 떼질 않았다.
어떻게든 영화판에서 아등바등 남아있으려고 했던 계기.
그가 아니었다면 영화는 진작에 손에서 놔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한번 만나라도 볼까?’
일단 영화 캐스팅이 목적이라기보단, 순수한 궁금증.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사내와의 만남.
그 자체에 경찬현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준성이는 출근하는 나를 보자마자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왜 뭐 할 말 있냐?”
“너 혹시 로버트 펜…….”
띠링-.
타이밍 좋게 전화가 울리자, 준성의 의심하는 듯한 눈빛은 더 강렬해졌다.
그 눈빛을 피해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아, 예. 여보세요?”
-경 감독님. 부탁하신 로버트 펜 찾았습니다.
“아하, 네. 그러시구나. 어디시죠? 지금?”
제임스는 내 목소리에서 뭔가 미심쩍은 게 느껴졌는지 빠른 눈치로 말했다.
-로버트 펜은 지금 ‘버거 엠퍼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버거 엠퍼러로 찾아갈까요?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죠. 주소만 문자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툭-.
“왜 표정이 밝아지냐? 전화는 또 뭐 그렇게 빨리 끊어?”
“아, 제임스 씨.”
LA에 처음 왔을 때 체스터 씨가 붙여준 수행비서 제임스.
할리우드에 제작사를 만든 이후로 그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해결해줬고, 오늘 아침에 부탁했지만 그를 찾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질 않았다.
“제임스 씨가 왜?”
“지금 바로 위험한 동네 갈 거 같아서. 제임스 씨랑 같이 가려고.”
“위험한 동네?”
준성이의 되물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국 문화도 알아놔야지. 현장 답사 가는 거야. 내 각본에 미국의 진짜를 담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수박 겉핥기식으로 각본에 녹이면 성공 못 해. 디테일하게 담아야지.”
“흠…….”
준성이는 내 표정을 미심쩍은 듯 살피며 말했다.
“확실해?”
“응.”
“네 콧구멍은 아니…….”
벌컥-.
나는 준성이의 말을 끊고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다녀올게! 이따가 오랜만에! 맥주나 한잔하자고! 연락할게!”
나는 성현 KMD 픽처스 건물 밖에 있는 차에 바로 올라탔다.
그리고 문자로 와있는 햄버거집의 위치를 확인한 후 바로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어서 오세요. 버거 엠퍼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버거집에 뛰어 들어가자, 꽤 앳된 얼굴의 남자 종업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 일단 치즈버거 세트 한 개랑요. 그리고 제가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
“잠깐만요. 혹시……?”
종업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쭉 훑었다.
“예전에 코넌 레이트 나잇 쇼 나오지 않으셨어요?”
“아, 예. 맞습니다. 하하.”
“오, 씨. 혹시 <스페이스 베가본드> 감독이에요? 이런 미친. 와. 대박이네. 와, 저 그거 세 번 넘게 봤거든요. 와, 미쳤네. 이야, 와 씨. 오늘 여기서 <스페이스 베가본드> 창조주님을 만날 줄이야…….”
현란한 감탄사를 남발하던 종업원은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스페이스 베가본드>의 우주선 연료는 무엇이며, 류의 국적은 어떻게 되는지.
온갖 디테일한 질문에 대답해주고 나서 다른 질문을 하려고 다시 종업원이 입을 벌리려는 찰나.
“죄송합니다만. 근데 지금 제가 좀 급해서요……,”
“아아, 죄송합니다. 누구 찾는다고 하셨죠?”
“로버트 펜 씨요.”
종업원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 사장님인데요?”
“네?”
“사장님 성함이 로버트 펜이라고요.”
내가 잠시 눈을 껌뻑이고 있자, 종업원은 뒤에서 치즈버거를 받아 내게 건넸다.
“요즘 이거 먹는 사람 많이 없는데. 사장님이랑 취향 비슷하시네요. 요즘에 버거 엠퍼러에서 대부분 워퍼를 먹지…… 누가 치즈버거를 먹나 했는데…….”
종업원은 내게 건네는 조그만 치즈버거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아, 혹시.”
“네?”
“지금 사장님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팬이라서…….”
“팬이요? 펜 씨한테 아직도 팬이 남았…… 풉. 어?”
종업원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펜 씨랑 무슨 영화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정말 개인적으로 팬이라서 그런 겁니다.”
“그렇죠? 하하. 그럴 리가 없지.”
종업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 후 치즈버거를 받고 돌아가려던 내게 말했다.
“매장 문 아침마다 사장님이 여세요. 아침마다 치즈버거 하나씩은 직접 만들어서 꼭 드시니까요.”
희소식.
직접 로버트 펜을 만난단 소식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