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73)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73화(173/276)
“이렇게 사석에서는 처음이네요.”
경찬현의 옷을 입고 온 로버트는 불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 필립을 보며 말했다.
“네. 처음이죠.”
“인터뷰를 요청하셨다고요?”
로버트의 물음에 필립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녹음기와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요즘 어떠세요. 좋죠? 아주?”
필립은 수첩을 든 채 로버트를 향해 비아냥대듯 물었다.
“좋죠. 그럼. 아주 행복합니다. 경찬현 감독님 덕분에 촬영도 잘 진행 중이고, 느낌도 아주 좋아요.”
필립의 비아냥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로버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하, 경찬현…… 씁.”
필립은 경찬현의 이름을 나지막이 말하곤 입맛을 다셨다.
그에겐 꽤 불쾌한 이름인 듯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파였다.
“이 인터뷰는 경찬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 아닙니다. 그 감독 이야기는 좀 이따가 하죠.”
“편하신 대로.”
로버트의 여유로움과 대비되는 필립의 초조함.
그 초조함이 로버트의 눈에도 보이는 듯 의아한 눈초리로 필립을 바라봤다.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죠. 저는 당신에 대한 기사로 주목받았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미안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요.”
필립의 말에 로버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옛날에 내가 쓴 기사들은 사실이었고 곁가지를 붙인 건 찌꺼기나 받아먹는 쓰레기들이었죠.”
“요즘 당신 기사들은 그 쓰레기들하고 별반 다를 게 없던데요.”
로버트는 필립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을 이어가자, 필립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은 어쩔 수 없죠. 사람들의 입맛이 토마토케첩 맛에 익숙해져 있으니, 진짜 토마토 맛 따위는 중요하게 된 게 요즘 세상이니까요.”
필립의 대답에 로버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실과 타협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네. 하지만 부끄럽진 않아요. 나름대로 기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길이니까.”
“남들 뒷이야기로 사명감이라도 느끼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보이네요.”
“사명감이라기보단, 삶에 대한 열망이 뚜렷한 거라고 하죠.”
필립은 이젠 다른 의미로 그 열망이 뚜렷해져야만 했다.
전엔 가루가 될 때까지 까던 로버트 펜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에 힘써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번 인터뷰로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흠…….”
필립은 자신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로버트 펜을 향해 자연스럽게 말했다.
“알짜배기 기사죠.”
“네?”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만한 기사라고요.”
“……?”
로버트 펜은 필립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죠?”
“경찬현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제 죗값을 치를 때가 왔다고.”
필립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아서요. 당신 마약 검사도 봤고요. 1년 정도 완전히 끊으셨던데요.”
“아……?”
“그래서 당신을 돕고 싶어진 겁니다.”
“네?”
로버트는 갑작스러운 필립의 말에 눈만 껌뻑였다.
분명 이런 인간이 아닌데도, 갑자기 도움이라니.
너무나 뜬금없는 흐름이었지만, 필립의 눈을 보면 꽤 간절해 보였다.
“절 돕고 싶다고요?”
“네.”
필립은 분명 돕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꽉 깨문 듯 뺨이 파르르 떨렸다.
눈과는 전혀 다른 듯한 신호에 로버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뭔가를 알아챈 듯 필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찬현 감독님에게 뭔가 약점이라도 잡히셨나 보네요.”
“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런 식으로 나올 분이 아니라는 거 압니다.”
“…….”
로버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이 그 약점에 대해서 말해주진 않았지만요. 그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거겠죠?”
“…….”
필립은 아무 말 없이 숨을 깊게 내쉰 후 고개를 저었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을 띄우는 게 중요한 겁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로버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다 웃었습니까?”
“아뇨. 좀만 더 웃죠.”
로버트는 이를 악물고 있는 필립을 보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경찬현이 대체 무슨 짓을 해낸 건지.
어떤 약점을 잡아냈기에 필립이 이런 식으로 비굴하게 나오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계획은 있습니까?”
“계획은 수십 가지가 있죠.”
필립은 수첩에 방법을 적어 내려갔다.
“일단 당신이 마약을 다시 시작했다는 식으로 찌라시를 돌릴 겁니다.”
“뭐요?”
로버트가 되묻자, 필립은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일단 대중이 당신에 대해 가진 악감정을 부풀어 오르게 한 후. 당신이 직접 마약 검사를 다시 받는 겁니다. 그리고 음성 결과지를 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거죠.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을 바라볼까요?”
“안쓰럽게 보겠죠. 음해를 당한 거니까.”
“네. 그겁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죠.”
“동정심이라…….”
“이게 제일 쉽고 간편한 방법이죠. 오해받아야 하는 걸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후 필립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 동정심을 다시 팬심으로 바꾸는 건 당신에게 달린 일이죠. 할 수 있겠어요?”
“그 정도야 쉽죠. 기회만 주어진다면.”
로버트의 대답에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조만간 찌라시가 돌 겁니다. 주위에 다시 마약을 시작한 듯한 가짜 증거를 던져줘요. 그래야 사람들의 오해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가까운 가족, 그리고 경찬현 감독 정도를 제외하곤 확실히 오해할 수 있게. 알겠죠?”
“한번 노력해보죠.”
필립은 가방을 챙긴 후 로버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번 대박 기사 만들어봅시다.”
“일종의 사기극 같은데요.”
“아름다운 거짓이 밋밋한 현실보다 재밌는 법이니까요. 이만 가보죠. 다음에 또 뵙죠.”
필립은 허리 숙여 인사하고 카페 밖으로 나가며 경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했나?
“내가 누군데. 일 하나는 끝장나게 하는 인간이라고.”
-어떻게 할 건데?
필립은 경찬현에게 로버트와 나눈 이야기에 대해 전달하며 끝에 말을 덧붙였다.
-괜찮네. 확실히 이미지 탈바꿈은 되겠어.
만족스러워하는 경찬현의 목소리에 필립은 흐뭇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일만 해결되면, 그 사진들 다 없애주는 거겠지?”
-음. 보고. 이번 영화 경과까지 다 지켜봐야지. 안 그래?
“빌어먹을 자식…….”
욕을 듣곤 경찬현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필립에게 말했다.
-여기서 없애준다고 하면 그게 더 거짓말 같지 않나? 뭐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으면 해주지.
“닥쳐.”
-그리고 이번 부탁으로 당신한테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 오히려 예전의 위상을 다시 찾는 걸지도 모르고 말이야.
경찬현의 말에 필립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정의로운 할리우드 기자. 이제 누굴 공격하는 정의가 아닌, 누굴 지키기 위한 정의인 거지. 팔기 위한 신문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드는 게 언젠지 기억은 나나?
“됐어. 끊어.”
툭-.
필립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가방에 대충 집어 던졌다.
‘좋은 인간이야, 아니면 미친 인간이야?’
제대로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경찬현의 태도에 필립은 차에 앉아서 잠시 고민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쉽사리 낼 수 없단 걸 깨닫곤 차에 시동을 걸었다.
***
며칠 후.
로버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좋지 못한 안색으로 촬영장을 찾았다.
회색빛에 거칠어 보이는 피부.
그 모습에 주위 제작진들이 속삭였다.
“다시 시작한 거 같지?”
“100퍼센트 확실해. 이거 촬영 큰일 나는 거 아냐?”
“아니, 경찬현 감독님이 그렇게 믿어줬는데…….”
“망나니 새끼는 끝까지 망나니인 거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로버트 펜을 믿은 경찬현 감독 잘못이야.”
로버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트레일러로 향했고, 트레일러에서 대기하던 분장팀이 로버트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로버트 씨, 무슨 일 있어요? 얼굴색이…….”
“네? 아, 예. 괜찮죠. 최곱니다.”
“혹시…… 아니죠?”
“뭐 문제 있나요?”
“아, 아닙니다.”
로버트는 자기가 마약을 끊은 직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의 표정을 연기했다.
그게 잘 먹힌 듯 주위 제작진들조차 껌뻑 속은 듯한 모습이었다.
“로버트 씨. 경찬현 감독님이 부르시는데요. 촬영 전에 특히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아, 예. 지금 바로 가죠.”
로버트는 대충 분장을 받은 후 경찬현을 찾아갔다.
경찬현은 로버트의 얼굴을 보며 주변 눈치를 보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괜찮겠어요?”
“욕먹는 게 한두 번인가요. 욕에 내성 생겨서 별 감정 없을 겁니다. 걱정인 건 아내뿐이죠.”
로버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내 분에겐 말씀드렸죠?”
“그럼요. 아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하더군요. 확실히 그것만큼 확실하게 제 이미지를 바꿀 건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요.”
경찬현은 진짜 어딘가 아파 보이는 듯한 로버트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뭐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녜요?”
“변비약 4알 정도 먹으면 사람이 이렇게 됩니다.”
로버트의 대답에 경찬현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무 아파 보이시는데요…….”
“속일 거라면 확실히 속여야죠. 필립 그놈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주위 사람들부터 제대로 속여야 그만큼 효과가 좋을 거라고.”
로버트는 회색빛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럼 저는 분장 마무리하고 오겠습니다.”
“네.”
경찬현은 괜찮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멍하게 로버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감독님!”
갑작스레 뒤에서 들리는 급박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촬영 감독 해리스였다.
“네?”
“그…… 그게 말이죠. 촬영 스텝이 오늘 로버트 모습을 봤는데…….”
“네. 저도 방금 봤습니다.”
경찬현의 대답에 해리스는 눈알을 굴리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뭐 할 말 있는 거 아녜요?”
“아, 감독님이 그 마약 중독자가 며칠 동안 마약 안 하면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셔서 그런 거 같은데…… 딱 저런 모습이거든요. 금단현상이라고요, 저거!”
해리스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경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해요?”
“네?”
“확실하냐고요. 로버트 씨가 마약 하는 거 봤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단편적인 증거로만 다시 마약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경찬현의 말에 해리스는 침을 꼴깍 넘기며 말했다.
“원래 로버트 펜은 저런 인간이라고요! 지금 여기에 달린 목이 몇 갠진 아시고 그러시는 겁니까? 이거 촬영 엎어지면…….”
“그럴 일 없습니다.”
“네?”
“일단 촬영은 계속할 겁니다. 그 어떤 소문이 돌아도 촬영이 끊길 일은 없을 거라고요.”
경찬현은 해리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지만.
필립의 말대로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확실히 로버트 펜의 이미지를 바꾸려면 사건을 크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으론 같은 팀까지도 속여야 한다는 것.
‘어쩔 수 없어.’
경찬현은 당황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해리스를 향해 말했다.
“로버트 펜 씨는 확실히 마약 끊었어요. 제가 보증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