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78)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78화(178/276)
며칠 후.
촬영은 생각보다 진도가 잘 나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덕분인지, 새로 만난 제작진들은 더욱 끈끈해졌고 신인 배우들의 연기는 날마다 일취월장해갔다.
“끄으…….”
하지만 쌀쌀해지는 날씨와 더불어 비까지.
우리나라처럼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겨울철에 비가 더 많이 왔다.
‘1월에 비라니…….’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에 오늘 촬영은 취소됐다.
간만에 일정도 없었기에 그저 침대에서 오랜만에 원 없이 잠을 청했다.
이렇게 잠자는 게 얼마 만인지…….
어쩔 수 없이 촬영을 못 하는 거였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띠링-.
“으…….”
이불을 걷어내고 핸드폰을 찾았다.
익숙한 이름에 입맛을 다시며 전화를 받았다.
“한국 좋냐?”
-히히. 그럼 인마. 신토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준성이는 업무차 잠시 한국에 갔다.
“왜, 근데?”
-아니. 나 없어서 심심할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오늘 촬영도 없다며. 비는 모레까지 온다고 하고. 일에 미친 워커홀릭이 심심해서 우짜냐.
“혼자서도 잘 놀거든?”
-얼씨구? 잠만 잤겠지.
“…….”
-맞지?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네.
준성이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신난 듯 말을 이었다.
-잠만 자지 말고. 인마. 어? 나 없으면 사석에서 만날 친구도 좀 사귀고 그래라. 어?
“됐어. 인마. 이상한 소리 할 거면 끊어.”
-에잉…… 이상한 소리라니. 친구가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를…….
“끊는다?”
-잠깐…….
툭-.
전화를 끊고 잠시 천장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럽게 감기는 눈.
다시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눈을 감으려고 하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분명 또 준성일 거란 생각에 눈을 감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아, 왜 또.”
-여보세요?
“……어? 뭐야.”
핸드폰에 뜬 이름은 코넌.
갑작스러운 전화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전화를 받았다.
“아, 코넌 씨. 죄송합니다. 하하…… 제가 잠깐 오해를 해 가지고.”
-아. 예. 그거 한국어로 욕인가요? 왜 또?
“예? 아, 그런 거 아녜요. 근데 갑자기 무슨 일로……?”
-아니. 요즘 너무 재밌는 일이 많이 터졌잖아요.
코넌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비도 오고 그래서 뭐, 약속 같은 거 있어요? 촬영 일정은 없다던데?
“네? 아…… 뭐, 없긴 한데…….”
-그럼 전에 밥 먹자고 했던 거. 그거나 한 끼 하죠.
“네?”
-아니, 레이트 나잇 쇼 끝날 때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아…… 아, 그랬죠. 아. 맞네. 하하. 네.”
한국인의 인사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코넌은 기억하고 있었던 듯 보였다.
-우리 집 문자로 보내줄 테니. 와요. 내가 맛있는 거 해드릴게.
“네? 집으로요?”
-네.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대답해주는 건 경 감독님 결정이겠지만, 꽤 재밌는 이야기들이 쌓였을 거 같아서요. 우리 인종차별하고 함께 싸운 동지 아닙니까? 네? 아직 그 싸움은 진행 중이고요. 네?
코넌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 알겠어요. 갈게요.”
-나이스! 이따가 봅시다!
***
그날 저녁.
똑똑-.
코넌은 입가에 잔뜩 미소를 지은 채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꽤 긴장한 듯한 표정의 경찬현이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왔어요?”
“네. 하하, 이건 선물이요.”
“뭐 이런 걸…….”
코넌은 선물을 받으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살짝 흔들었다.
“좀 무거운데요?”
“별거 아닙니다. 하하, 저녁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거죠.”
경찬현은 코넌의 반응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곤 집을 한번 훑어보며 코넌을 향해 물었다.
“집에 다른 분은 안 계세요?”
“와이프가 딸이랑 아들 데리고 친정 놀러 갔거든요. 오늘 하루 자고 온대서 파티하려고요.”
“파티요?”
경찬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코넌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움직인 후 대답했다.
“원래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파티라고 하는 겁니다. 기분도 내고, 좋잖아요?”
“아, 네. 하하…… 좋네요.”
“음식 가리는 건 있어요?”
주방으로 경찬현을 안내하며 코넌이 물었다.
“아뇨. 다 잘 먹습니다.”
“흠, 다행이네. 일단 좀 먹읍시다. 배고프죠?”
“그럼요.”
코넌은 오븐에서 폭립을 꺼냈다.
바비큐 소스의 짜릿한 냄새가 풍기자 경찬현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혼자 살면 뭐 해 먹기 귀찮잖아요. 점심은 먹었어요?”
“아…… 그냥 오늘 종일 잠만 자서요.”
“크,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셨나? 뭐…… 요즘 같은 사건 사고면 나 같아도 못 잤을 거 같긴 한데.”
코넌은 콧노래를 부르며 식탁 중앙에 폭립을 내려놨다.
“일단 좀 먹은 다음 얘기합시다. 원래 속에 뭐라도 들어있어야 말도 하는 법이니까요.”
“네! 잘 먹겠습니다.”
경찬현은 먼저 폭립부터 자른 후 손으로 집어 순식간에 뼈를 발라냈다.
그러곤 손가락에 묻은 소스까지 빨아먹은 후 음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친 둘은 대충 접시들을 치운 후 식탁에 마주 앉았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작 코넌은 궁금한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흐…….”
“물어보고 싶은 거 많죠?”
“네?”
“코넌 씨 얼굴에 다 쓰여있는데요. 궁금한 게 무지무지 많다고.”
경찬현의 미소에 코넌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피식 웃었다.
“궁금한 거야 많죠. 근데 잡스러운 기자처럼 보일까 봐 못 물어보는 거지.”
“편하게 물어보세요. 괜찮습니다.”
경찬현의 말에 코넌은 눈을 밝히며 물었다.
“진짜죠?”
“네.”
“필립 그 자식을 어떻게 구워삶은 거예요?”
시작부터 민감한 내용이었는지 경찬현은 당황한 듯 눈만 껌뻑거렸다.
“네, 네?”
“필립 그놈 그런 기사 쓸 놈이 아니거든요. 제가 그놈을 좀 아는데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놈이 아니에요. 근데 뜬금없이 그 자식이 감독님에 대해 좋은 기사를 써주길래 깜짝 놀랐다니까요?”
코넌은 필립의 전략에 대해서 이미 모두 다 알고 있었다.
한 번 띄운 후에 침몰시키는 전략.
굉장히 고전적인 언론 기술이었지만, 그만큼 잘 먹히는 기술.
하지만 띄우기만 했을 뿐 침몰시키지도 않았고, 그 이후엔 로버트 펜과 관련된 사건까지 해결해준 수준.
“아…… 하하.”
“시작부터 너무 민감했나요?”
경찬현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네. 하하. 필립 씨는 원래 정의로운…….”
“에이, 그거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거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긴데요.”
“…….”
“됐습니다. 대답하기 좀 그런 거죠?”
경찬현의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며 코넌은 실실 웃었다.
“인종차별과 함께 싸운 동지한테 이야기 못 해줄 정도라면…… 뭐 엄청나게 민감한 이야기겠죠.”
“하하…… 고마워요.”
코넌은 저렇게까지 곤란해하는 사람에게 더 파고드는 건 무례라는 생각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건 어때요? 괜찮아요?”
“흠…… 네. 뭐 사실 자본도 한국 자본으로 만들고 있는 수준이니까요. 사실 미국에서 만드는 한국 영화라도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죠.”
코넌은 의외라는 듯 경찬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드는데도요?”
“네.”
“일부러 의도한 건가요?”
“네.”
일말의 여지도 없이 경찬현은 대답했다.
“왜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작품을 성공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만약 이 작품에 다른 데서 투자받았으면 로버트 펜은 절대 섭외 못 했을걸요.”
“허…….”
코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경찬현이 만들고 있는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작품치고 저예산 영화.
분명 많은 예산이 드는 영화였다면, 다른 기업의 투자도 받았어야 했을 거고, 그럼 주연을 로버트 펜으로 쓰는 결과는 만들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 투자하는 대신 투자사의 입맛에 맞는 배우들을 꽂는 건 관행이자 역사였고.
그리고 로버트 펜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배우였으니까.
“그리고 증명할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만 진행되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요. 그래야 투자사들 입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레이트 나잇 쇼에서도 봤던 확신에 찬 경찬현의 눈.
그 눈을 다시 보자 코넌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흠…… 이번 영화는 꼭 흥행에 성공해야겠네요.”
“할 겁니다. 꼭.”
“흐핫. 마음에 들어요. 진짜. 크으, 진짜 마음에 들어.”
코넌은 잠시 큰소리로 웃고 난 후 경찬현을 향해 물었다.
“근데 영화감독으로서 꿈이 뭐예요? 오스카상? 뭐 그런 상들인가?”
“상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 미국에서 상을 받으면 참 좋긴 하겠지만…… 아시잖아요?”
경찬현의 눈빛에 코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상은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라는 미국 영화인 단체가 주는 상.
미국 영화인들의 잔치로 보면 되는 곳이지만, 사실상 백인들의 잔치라고 봐도 무방했다.
“흠…… 그렇긴 하죠. 빌어먹을 놈들이 세상에 워낙 많아서.”
“일종의 정치죠.”
영화는 애초에 정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전적이 있는 수단.
히틀러는 영화라는 수단으로 나치당 선전물을 만들었고 그 효과 역시 뛰어났다.
그리고 할리우드 역시 영화를 비슷하게 사용하긴 마찬가지였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에 나왔던 비 백인 캐릭터 가운데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된 인디언들.
분명 아메리카 대륙의 침입자는 백인이었지만, 영화 속 백인들은 항상 수호자였다.
그런데 이걸 완벽하게 비꼬아버린 배우가 있었다.
그 배우의 이름은 말론 브란도.
그는 <대부>로 그해 최고의 연기자가 되었지만, 시상식장에 나오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배우를 내세워 자기 말을 전하게 했다.
-그들의 선한 의도를 범죄로 만들고, 우리의 악행을 선한 의도로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의 문장으로 그는 인디언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이 세계에 <대부>는 없었고.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지.’
경찬현은 이런 생각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 선물은 술인가요? 좀 묵직하던데?”
무거워진 분위기에 코넌은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아, 네. 하하. 나중에 아내분이랑 드시라고…….”
“에이. 괜찮아요. 우리 엘리자베스는 술 안 마셔요. 먹을 사람도 없는데 우리끼리 마시죠.”
“하하…… 네. 그러시죠.”
경찬현의 말에 코넌은 신난 듯 흥얼거리며 경찬현의 선물을 뜯었다.
“와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꽤 화려한 포장지를 자랑하는 와인.
코넌은 신난 듯 입꼬리에 미소를 품은 채 경찬현을 바라봤다.
“에이, 코넌 씨한테 이 정도는 써야죠.”
“하…… 오늘 식삿값보다 와인 값이 훨씬 비싸겠는데요.”
“원래 호의에는 가격을 묻지 않는 법입니다. 코넌 씨가 직접 해준 식사에 어떻게 값어치를 매기겠어요?”
경찬현의 넉살에 코넌은 크게 웃었다.
“하, 진짜 마음에 드네. 우리 친구 합시다. 크, 이건 친구 이상이지.”